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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의 라오스 여행 일다는 라오스의 문화, 생태, 정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이영란님은 라오스를 고향처럼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으로, <싸바이디 라오스>의 저자입니다. (일다 www.ildaro.com)
 
산골학교 지원을 위한 답사여행

다시 라오스를 간다! 귀국해서부터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던 단체에서 지난 10월 라오스 산골학교 지원을 위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이 단체는 기후변화와 에너지정책 관련 NGO로 특히 기후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라오스, 버마(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제3세계와의 연대와 지원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번 현지조사를 시작으로 이 단체가 라오스에 구체적으로 실시할 사업 내용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빛이 없는 산골 중학교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것.
 
이것은 내게 지금까지 그저 ‘라오스를 이렇게 사랑해’라고 말로 해서 끝날 일이 아니라, 명확한 의사소통으로 무언가 일을 되게 만들어야 하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은 머릿속의 중압감 보다 먼저 설레기 시작했다.
 
우선 비행기 표부터 예약했다. 몇 달 걸려서 갈 육로와 해로가 아니라면 라오스로 가는 길은 딱 두 가지다. 베트남 하노이를 거쳐 루앙파방(세계문화유산의 도시)으로 가든가, 타이 방콕을 거쳐 수도 위양짠으로 가든가. 나는 당연히 나의 고향 싸이냐부리에서 가까운 루앙파방 노선을 택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노이까지 가는 좌석은 문제가 없는데 루앙파방으로 가는 좌석은 확약할 수 없다는 것. 이건 하노이에서 루앙파방 들어가는 비행기가 50인승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콕에서 위양짠 가는 것은 100인승 정도 된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대기상태로 기다릴 수는 없는 일, 여정을 완전히 뒤집어 위양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마침 베트남항공이 11월 1일부터 성수기 요금을 적용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싼 타이항공을 이용하게 된 행운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라오스에 들어가서도 이렇게 비행기 덕분에 경비를 줄이게 되는 행운(?)이 계속됐다. 위양짠에서 싸이냐부리로 들어가는 국내선 비행기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위양짠에서 10인승 비행기로 싸이냐부리로, 싸이냐부리에서 산골학교가 있는 반싸멛(싸멛 마을)을 들어갔다 나와서 버스를 4시간 타고 루앙파방으로, 루앙파방에서 12시간 버스를 타고 위양짠으로 돌아오는 일주 여정을 위양짠에서 루앙파방을 거쳐 싸이냐부리, 그리고 반싸멛에 들어갔다가 다시 그대로 되짚어 나오는 왕복여정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1인당 100달러 정도 되는 싸이냐부리행 비행기 값은 1/10 버스 값으로 절약되고 시간은 20배가 더 들게 되었다.
 
두근두근 위양짠의 첫날밤
 

밤 9시가 넘어 위양짠 왇따이 공항에 내렸다. 이번에도 나의 일을 가장 긴하게 도와줄 우리 교장 선생님 아짠 완텅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내가 알고 있던 대로 전화단말기 카드 유효기간이 석 달이라면 나는 당장 이 밤 전화기를 빌려야 하고 낼 새벽부터 전화 단말기, 전화요금 충전 카드를 사러 다녀야 할 판이었다. 이는 하늘이 도왔다. 정상적으로 신호가 간다. 아짠 완텅의 든든한 목소리에 내가 안도하고 나의 편안해진 표정에 일행이 모두 안도한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지 12시간이 넘어 이제야 라오스에 도착한 거다. 휴우~
 
우리 일행은 모두 넷이었다. 이 단체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해 활동하는 담당자, 스스로에게 준 한 달간의 휴가를 라오스에서 보내기로 한 이, 내 책을 읽고 라오스를 꼭 가보고 싶어 한 친구, 그리고 나. 셋은 당연히 위양짠이 처음이었고 나는 여러 번 왔었다. 그렇지만 방콕 공항을 거쳐 위양짠 공항에 내린 것은 이제 두 번째.
 
3년 전 해외봉사단원으로 라오스에 파견되었을 때, 그때는 늦은 밤 처음이었어도 동료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이번엔 달랐다. 배낭이 두 개씩은 되는 짐을 들고 공항 밖으로 나가 요금 흥정을 해 롣뚝뚝(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삼륜택시)을 잡아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환전을 하고(라오스는 사설 환전소보다 공항 또는 은행 환전소 환율이 더 좋다) 요금이 비싸지만 공항 택시를 타기로 했다. 외국인이 많은 지역 남푸(분수라는 뜻)로 가는데 요금은 내가 타고 다녔던 뚝뚝 요금의 대략 5배다. 하지만 택시는 네 사람이 타도 짐이 많아도 추가요금을 내지 않으니 이럴 때는 더 싼 것 같기도 하다. 기왕 공항택시로 호사를 하는 김에 택시기사에게 싸고 좋은 여관까지 부탁했다.
 
우리는 흐안팍 씨험(네 가지 향기 여관)에 내렸다. 침대 2개, 에어컨, 텔레비전까지 있는 방이 125천 낍(15달러). 애초 제시한 10달러를 초과해 그땐 좋은 줄 몰랐지만, 출국하기 전 묵었던 그보다 못한 여관이 16달러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때 택시기사 레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한 게 정말 미안하다.

 
‘네 가지 향기 여관’은 남푸의 초입, 위양짠에서 나름 유명한 웨스트 윈드(West Wind)라는 클럽 근처에 있었다. 덕분에 라오스에서는 아주 늦은 시각인 밤 10시가 넘어서도 뜨뜻한 국물로 요기를 할 수 있었다. 밤 1시가 넘도록 클럽 손님들을 겨냥해 주변 국수집이 문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차마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라오스 젊은이들의 밤 문화도 얼핏 구경할 수 있었고.
 
라오스의 신재생에너지 회사, 썬라봅
 
다음 날 우리는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여행 피로에 밤 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 것치고는 거뜬하게 일어났다. 왜냐면 라오스는 우리보다 2시간 늦으니까, 한국시간으로 치면 벌써 아침 9시. 라오스의 신재생에너지 회사(우리가 보기에 활동은 거의 비영리단체 수준인데, 웹사이트에는 굳이 회사라고 명시해 놓았다) 썬라봅의 담당자와 약속한 게 8시였다.
 
아침을 먹지도 못하고 뚝뚝을 잡아탔다. 뚝뚝 아저씨가 썬라봅을 모른다. 주라오스한국대사관(꼭 남한이라고 짚고 넘어가야 한다. 라오스는 사회주의 체제로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근처로 가자고 했다. 역시 하늘이 돕는다. 뚝뚝을 타고 가다 이쯤이 아닐까 내다보는데, 바로 썬라봅의 노란 간판이 읽혔다.
  
썬라봅은 영어 Sun과 라오스어 라봅(체계, 시스템)을 붙여 만든 말이다. 라오스의 신재생에너지 회사 이름으로 딱이다. 뚝뚝에서 내려 정원이 넓은 주택 같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라오스 식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서니 서양 사람이 맞아준다. 헉, 싸바이디(안녕하세요)가 좀처럼 헬로우(Hello)로 바뀌지 않는다. 라오스 사람들은 다 어디 간 거야? 처음 인사한 사람은 독일사람, 또 다음에 나타난 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다. 우리와 만나기로 한 사람이 약속에 늦는 것이 그들 체질에 무척이나 불편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사무실 이곳 저곳을 살피며 천천히 기다렸다. 나중에 영국사람까지 와서 안절부절 하며 알게 된 이유는, 그날 11월 2일이 라오스 불교의 큰 명절, 탇루앙(황금의 탑) 축제가 있어 썬라봅의 라오스 직원들은 거의 모두 탇루앙에 들렀다 오느라 늦는다는 거였다. 사실상 사장인 독일 사람은 우리에게 정말 미안해하며, 한편 오늘이 축제인 것을 알면서 왜 담당자가 약속시간을 8시로 잡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라오스에서 사업을 했다면서 아직까지 잘 모르나?
 
탇루앙에 들렀다 온 담당자 다오펟과의 이야기는 아주 어려웠다. 내가 신재생에너지 시스템, 또 그에 대한 라오스어 전문기술 용어에 약한 것도 있었지만, 다오펟이 라오스어를 구사하는 외국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도 한 원인이었던 것 같다. 어려웠던 만큼 길었던 첫 만남 덕분에, 반싸멛 산골학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만난 두 번째는 무척 수월했다.
 
이때는 또 프랑스 사람이 동석했는데, 화니는 외국어로 영어를 쓰는 사람으로 아주 쉬운 영어를 쓰며 우리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세일즈 마켓팅 담당자인 화니가 나와 라오스 사람이 하는 대화에서도 제때 중요한 것을 짚어내는 것을 보며 의사소통은 절대 언어능력에만 달려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썬라봅에 화니가 있어 일이 잘 될 것 같다.
 
갈 때처럼 올 때도 방콕공항에서의 기다림은 힘들었다. 무려 9시간. 한국에서 라오스를 오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노이에서든 방콕에서든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어쩌면 이건 하늘이 준 시간일지 모른다. 빨리빨리 한국사람에서 느긋한 라오스 사람으로의 변신을 위한.  [관련 기사 보기] 나는 왜 라오스에 꽂힌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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