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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놀이, 휴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난 하는 일은 많아도, 소위 말하는 ‘직업’은 없다. 그래서 주변사람들로부터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거나, 공개석상에서, 또는 서류상으로 직업을 소개할 일이 있을 때 잠시 머뭇거리며 곤란해 하곤 한다. 일에 대한 질문조차도 돈벌이에 대한 것이며, 그 돈벌이는 일상의 상당부분을 바치는 것이어야 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 가운데 돈벌이에 해당될 수 있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번역가라거나 철학선생이라거나 철학교육프로그램 제작자라고 어정쩡하게 대답하고 만다.
 
하지만 내 속에는 다른 대답이 있다. 동네 꼬마들이 신기해하며 불러주는 ‘철학자’라든가, 좋은 일상을 고민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나 스스로에게 붙인 ‘종합생활인’이라든가, 물건을 재활용하는 기쁨을 즐기는 ‘재활용 예술가’라든가 하는 이름들 말이다.
 
이런 이름들은 돈벌이와 관련이 없어, 입에서 내뱉는 순간 생뚱맞을까봐 그냥 속으로 삼키게 된다.
 
직업은 없어도 하는 일은 많다
 

추천서- 헬렌 니어링 & 스코트 니어링 "조화로운 삶" (보리, 2000)

물론 누구나 생존하기 위해 일을 한다. 그런데 생존에 필요한 식의주를 자급하기 어려운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돈벌이와 가사노동은 필수일 수밖에 없다. 도시인인 나 역시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다. 기본적 식의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환수단으로 ‘돈’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일에서 돈벌이가 빠질 수는 없으며,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생계를 꾸리기 위한 돈벌이에만 갇혀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은 돈벌이뿐만 아니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노동인 가사일, 돈은 되지 않지만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 남과 더불어 나누며 세상에 기여하는 일 등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럴 때만이 일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일 자체가 가져다 주는 즐거움, 기쁨, 만족감,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즐거움
 
즐겁게 일하려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하고 싶은 일만 하게 된 것 같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해서인지, 만족스럽지 않은 현재가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다고 결론지어서인지….
 
아무튼, 돈을 벌 때조차 하고 싶은 일을 고집하다 보니, 특정 직업에서는 멀어져 갔지만, 시기마다 일을 변화시켜가며 다채로운 일에 뛰어들 수 있었고, 일하는 재미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마음 가는 대로, 느린 속도로, 아니 남들과 다른 속도로 일을 해 나갔다. 그러는 중, 일과 놀이의 경계가 흐려졌다. 심지어 휴식까지도.
 
집중해서 생각하고 글 쓰는 일이 어느 순간 너무 피로할 때는 잠시 멈춘다. 그리고 쌓인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하며, 몸을 움직이고 머리는 비워 생각에서 벗어난다. 글 쓰는 일이 가사일로 이어졌지만, 이때 가사일은 오히려 휴식이 된다.
 
또 일을 하던 중 필요한 책이 생기면 도서관을 향해 길을 나선다. 가는 도중에 하늘도 바라보고 바람도 쐬고 새소리, 아이들 웃음소리도 들으면서, 놀듯 쉬듯 공원을 천천히 가로지른다. 도서관에 들러서는 필요한 책을 찾아 들고 금방 되돌아나올 수도 있지만, 이 책 저 책을 기웃기웃 들춰보며 새로운 읽을거리를 찾아내는, 발견의 기쁨을 만끽할 수도 있다. 일과 일 사이에 놀이와 휴식이 연결되고, 일이 순식간에 놀이로 탈바꿈하기도 하는 것이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를 챙기는 일이 맛과 향기를 음미하는 즐거운 요리의 세계로 열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놀기 위해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새로운 정보와 영감을 얻어 생각지 못한 일을 계획하기도 한다. 또 대화가 오히려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휴식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같은 일이 다양한 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시작한, 사람 가르치는 일이 타인과 나누는 기쁨을 안겨다 주고, 배우는 사람을 통해 나도 더불어 성장하는 배움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선생과 학생이라는 배치된 관계의 긴장감이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만남의 즐거움으로 질적 변화를 낳기도 한다.
 
결국 일, 놀이, 휴식이 서로 자연스럽게 뒤섞이다 보니 일의 부담이 적어지고, 일이 다른 일로 연결되어 일이 더 활기차다. 게다가, 일 자체가 놀이가 되고 휴식이 될 뿐만 아니라, 휴식 속에 일이 성장하고, 놀이가 값진 생산물을 안겨주는 일도 생겨난다. 이처럼 일, 놀이, 휴식의 경계를 넘나들고 서로 스며들게 되면서 즐거움도, 새로움도 솟아나는 것 같다.
 
적게 벌어도 일의 즐거움을 찾아서
 
그래서 일이 즐거움을 주기보다 고된 것이며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이니, 안 하고 살 수 있다면 안 하는 것이 낫다는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생존을 거의 돈에 내맡기는 것, 즐거움이 없는, 오직 돈벌이만을 위한 직업을 받아들이는 것, 즐거움은 일 밖의 여가생활에서 추구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일과 놀이에 대한 태도는 불편하기만 하다.
 
나는 즐거움 없이 고되기만 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의 ‘직업’을 원한 적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 청소년기에도 구체적인 직업을 꿈꾸며 미래를 설계해 오지 않았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난 직업보다는 ‘일’, 놀이와 분리된 일보다는 ‘놀이 같은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내내 노는 사람이기도 하고, 쉴새 없이 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직장에 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큰 돈을 벌기는 참 어렵다. 또 하고 싶은 일로 생계를 꾸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한 생계를 꾸리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주변에는 생존적 필요를 넘는 돈벌이로 현재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며 인생을 소모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누구나, 꼭 돈이 되지는 않더라도 삶의 즐거움과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을 각자 나름대로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실제, 우리 이웃 가운데는, 돈을 버는 데 인생을 걸어야 하는, 팍팍한 도시생활보다는 가난하더라도 자급할 수 있고, 삶의 재미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시골의 텃밭, 좋은 인간관계를 선택한 이들이 있다.
 
아무튼 지금도 나는 그들과는 또 다른, 내 방식으로 일의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경신의 철학하는 일상 www.ildaro.com

[철학하는 일상]  자립적 삶을 위한 ‘필요노동’, 집안일  |  왜 도시에서도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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