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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여교사 성추행 동영상이 남긴 것

<여러 남성이 한 여성을 둘러싸고 어깨에 손을 올리며 ‘사귀자’고 종용한다. 이를 피하려고 여성이 자리를 옮기자, 놀려대며 다시 에워싸고 팔을 잡는다. 그리고 이 상황을 카메라로 찍어 외부에 공개한다.>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누가 보아도 명백한 성추행이다. 그런데 이 일이 교실에서 남학생과 여교사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는 이유로, 성추행이나 성희롱이라는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워진다. 위 상황 속에서 분명히 존재하는 남성-여성 간의 ‘성별 권력’ 관계를 우리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성별 권력관계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사건의 본질이 은폐될 수밖에 없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소위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 사건 이후 오가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교실 성폭력 예방하기 위한 방법’보다는 침해 당한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때마침 추진 중인 ‘교내 휴대폰 사용금지 조례’ 제정움직임과 맞물려, 교권회복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철 지난 논쟁인 ‘남교사 할당제’를 도입하자는 말도 나온다.
 
‘성별 권력권계’라는 본질 은폐해선 안돼
 
19일, 이번 교실 성추행 사건을 다시금 살펴보고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필자가 속해 있는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이하 교사모임)과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여성주의팀(이하 청소년네트워크) 구성원들이 모여 대담을 진행했다.

 
우리는 먼저 이번 사건이 ‘교권침해’사건으로 일반화되어선 안 된다는 점에 공감했다. 교사모임의 정주연씨는 ‘교권’이 보장되던 1970~1980년대에도 “여교사에 대한 남학생들의 성희롱은 늘 있어 왔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잘못된 교실문화를 개선한답시고 학생들을 억압하거나 통제할 근거를 만들어 내는 건, “엉뚱하고 무책임한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청소년네트워크 엠건씨도 “성희롱의 본질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고, 어린애가 교사들한테 기어 올랐다는 것에만 집중된 언론의 태도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교사모임의 조영선씨는 기존에 여교사들이 겪은 성희롱보다 이번 사건이 크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 공간에 유통시킨 것이 학교집단에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영선씨는 이 사건의 여파가 핸드폰 사용금지 조례 제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또한 대담자들은 이번 사건이 ‘교권침해’라고 뭉뚱그려지면서, 정작 사건 당사자인 여교사 본인의 목소리는 사라져 버렸다는 점에 주목했다.
 
청소년네트워크 한낱씨는 “우리 사회가 성폭력이 문제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막상 사건을 다루는 시선에서는 여성이 배제되는 일이 잦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젊은 여교사의 ‘위치’
 
사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본인이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 당당하게 나서서 이야기하기란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 비정규직 여교사의 경우라면, 학교사회에서 자신의 피해를 발언하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교사는 단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아니라, 다층적인 권력관계 망 속에 놓여 있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권’이라는 말로 교사집단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기간제’로 일하고 있는 젊은 여교사인 만큼, 실제로 교직사회 안에서 이 교사의 정당한 권리가 얼마나 보장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교사모임에서는 전형적인 신규 여교사의 입장에 대해서 “아가씨 선생님”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학교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 처하게 되는 교무실의 현실은 배려와 우대, 그리고 무시와 하대가 묘하게 섞여 있는 분위기다.
 
일례로 남학생들이 있는 앞에서 “여자선생님은 약하시니까 너희들이 잘 도와드려!”라고 말하는 선배 남자교사의 ‘배려 아닌 배려’는, 학교에서 여교사의 위치를 더욱 의존적이고 나약한 것으로 만들 뿐이다.
 
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인 십대들도 입을 모아 ‘남자선생님들이 여자선생님들을 학생들 앞에서 귀엽지 않느냐고 칭찬한다’, ‘학교에서 남자선생님이 하는 역할과 여자선생님이 하는 역할이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학교 내 가부장적 교사문화를 이야기했다.
 
성적 긴장감을 ‘가족적’이라고 포장하는 학교
 
학교운영이 가부장적 가족모델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남교사가 해야 할 역할과 여교사가 해야 할 역할을 나누어, 성별 분업구조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한 예로 지적됐다.
 
또한 남자교사들은 엄하게 혼내고 규율을 잡는 역할을 한다면, 여교사들은 학생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하는 분위기도 엄연히 존재한다. ‘남교사 할당제’를 요구하는 쪽에서 ‘여교사는 엄마, 남교사는 아빠역할이니 모두 균형 있게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를 드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교사모임의 조영선씨는 이러한 가부장적 가족모델에 기반한 학교문화가 ‘교권을 노동권으로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문화는 엄연히 존재하는 남학생과 여교사 사이, 남교사와 여학생 사이의 성별 권력관계, 그리고 성적 긴장감을 ‘가족적’이라고 포장하는 기반이 된다.
 
청소년네트워크의 공기씨와 엠건씨는 학교에서 담임교사와 ‘아빠와 딸’ 같은 사적인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교사가 자신의 일상생활에 대해 강한 규제를 행사하게 되어 당황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학교 내 교사 성추행 사건’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학교문화와 맞물려 있어, 다양한 논쟁의 지점을 던져주고 있다. 여성주의 교사모임 <삐삐 롱스타킹>과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여성주의팀에서는 이날 논의결과를 담은 입장을 공동 발표하기로 했다.
 
‘학교 내 성폭력’ 근본적 문제제기 필요해
 
사실 남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여교사의 이야기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의 고정 레퍼토리 중 하나다. 최근 여교사와 남학생 사이 로맨스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몇 번 다루어졌다. 이번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 사건은 어찌 보면 흔한 ‘여교사 수난시리즈’의 변주곡인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려면 학교 내 성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교장, 교감, 부장교사들이 신규교사에게 행하는 직장 내 성희롱, 남교사에 의한 여학생 성추행 문제 등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논의 없이 ‘교권을 강화’한다는 것은, 학교 안의 남성적인 훈육방식을 강화한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해법은 학교문화의 가부장성을 타파하고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좌담이 끝나고 청소년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한 청소년이 건넨 후기다. 스스로 ‘10대 여성주의자’라고 말하는 십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경청해보자.
 
<이번 사건이 터지고 ‘문제는 교권의 추락’, ‘인성교육 강화해야’ 등으로 몰리는 반응을 보면서, 이것이 한 여성에게 가해진 성적 폭력이란 사실엔 대부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감히 ‘교사’에게 기어오른 학생이라는 점에서, 극심한 반감을 느끼고 있을 뿐.
 
좌담 자리에서 ‘교권의 주어는 남교사’라는 말을 듣고 이야기 나누는 동안, 이런 흐름들이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 사건의 대책으로 교권 신장을 주장하는 담론은 ‘누구를 위한’ 목소리인가? 적어도 이것이 학생들을 위한 목소리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당사자인 교사조차 배제시킨 채 이야기가 진행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 심지어 여교사들을 위한 목소리도 아니다.
 
교권을 사랑하는 분들께 끝으로 몇 마디! 교사들이 겪는 인권침해 때문이라도 교사의 권위가 서야 한다? 교사들의 고통이 말 안 듣는 못된 학생에게서 기인한다면, 학생들의 고통은 권위적인 교사들과 억압적인 학교와 사회로부터 기인한다는 걸 무시해선 안 된다. ‘교사들의 현실적 고통이 학생들과 대립한다고 해결될 수 있느냐?’ 물었을 때, 그러한 해법은 학생들을 때려서 내 고통을 없애는 전형적인 강자의 방식밖에 안 된다는 걸 꼭 기억하시길.>  우완 / 일다 www.ildaro.com

[일다의 다른 기사보기] 학생성폭력, 교육자의 역할을 묻는다 | 교사들이 말하는 ‘학교폭력, 그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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