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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여성들
여성경제공동체인 ‘스리랑카 여성은행’(스리랑카여성개발서비스협동조합 Women's Development Services Cooperative Society Ltd)이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7월초 한국의 주거권 관련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와 비닐하우스 지역주민 한 분과 함께, 20주년을 축하하고 여성은행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보기 위해 스리랑카를 방문했다.
스리랑카 여성은행은 1989년 22명의 여성들이 모여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2007년에는 3만 7천명, 2009년 현재 스리랑카 전체에서 150개 지점에 6만 5천명에 이른다.
스리랑카 여성은행의 시스템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과 비슷하다. 빈곤층이 본래 갖고 있는 힘을 제대로 발휘하여 빈곤층 스스로 활동이 가능하게끔 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연대의식’을 토대로 5~15명이 한 그룹을 이루어, 주 1회 공동체저축(Community Saving)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공동저축’ 통한 신뢰가 빈곤여성들의 자립 일궈
스리랑카는 소수민족인 타밀족과 인구 74%를 차지하고 있는 싱할리족 간 민족분쟁으로 26년 동안이나 내전을 겪었다. 타밀타이거(스리랑카 북동부에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정부에 맞서 싸운 무장반군단체, Liberty Tiger of Tamil Elam) 지도자가 죽음으로써 2009년 5월 말 내전을 마쳐, 우리가 방문한 시기에 수도 콜롬보는 축제분위기였다. 거리 곳곳에는 정부군에 감사하다는 포스터가 붙어있었지만, 군인들의 검문은 여전했다.
우리는 남부고산지대인 누와라 엘리야(Nuwara Eliya)에 방문했다. 영국 식민지시대에 홍차 플랜테이션으로 개발된 전형적인 차 재배지다. 영국이 인도인과 타밀족들을 이곳에 강제로 이주시켜 차를 재배하게 만든 후부터, 소수민족인 타밀족은 대대손손 빈곤한 이주노동자의 삶을 대물려 살고 있었다.
누와라 엘리야에는 여성은행의 150개 지점 중 2개가 있다. 지점이라고 해서 큰 사무실이 아니라 회원의 집 중 한 군데를 사무실로 정하고, 그 집 앞에 간판을 세워 두었다. 우리는 한 지점을 방문해 여성은행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지점은 회원이 350명으로, 총 16개 공동체 저축그룹(Community Savig Group)이 있었다.
2002년 누와라 엘리야의 여성 3명이 콜롬보 여성은행 본부로 가서 이 프로그램을 배워와 시작했고, 2004년이 되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현재 350명 회원으로 16개 그룹이 있는데, 그 중 14개 그룹은 각각 15명씩 구성되어 있고, 2개 그룹은 아직 미완성이다.
한 그룹은 최소 5명이 되어야 하며, 최대 15명이다. 이들이 모으는 돈은 1주일에 5루피(55원)씩이다. 그 작은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들이 하는 활동들은 단순한 돈 이상의 것들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여성은행 전체지점 한달 평균 저축금액은 20만루피(한화 220만원)이며, 그 중 4천루피(4만4천원)는 여성은행의 운영비나 사업비로 사용된다. 물가를 고려해보았을 때 20만루피는 매우 큰 금액이다.
또, 한 그룹 15명이 3년 정도 꾸준히 공동저축을 하여 신뢰를 쌓은 후 4~5명씩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사업아이템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그룹대출을 해주고 있었다.
이때 이 대출금으로 사업을 한 후, 수익의 일부를 공동체에 기부하여 마을의 기금(상조회비, 마을아동사업기금 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따로 적립을 하고 있었다. 개인이 혼자 저축하고 사업을 벌였다면 힘들었을 일들을, 공동저축을 통해 서로 신뢰를 쌓고 공동사업확장을 통해 번 수익을 다시 공동체에 환원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다.
“돈이 목적은 아닙니다” 종족과 종교 초월한 연대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던 한 마을여성이 던진 이야기는, 이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여성은행을 운영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 해주었다.
“내가 당장 대출이 필요 없어도 내 돈을 적립함으로써 이웃을 도와줄 수 있다는 공동체의식이 강합니다. 현재 저축이 잘되는 그룹과 잘 안 되는 그룹을 연결시켜주어 서로 배우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돈이 있는 사람만 받지 않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이 그룹에 참여하려고 할 때, 우리는 마음과 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보다 공동체적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장부를 직접 보여주었는데, 15명씩이 주1회 저축하는 그룹별 장부부터 350명을 아우르는 전체장부까지 장부 이름은 동네아동사업을 위한 대장, 공동사업 대출대장, 공동사업으로 인한 수익기부금대장, 상조회비(제사 등) 대장, 개인적 문제로 대출받은 대장 등 성격 별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손으로 작성한다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 이들은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할 까봐, 모임이 없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직접 15명으로 이루어진 한 그룹이 주 1회 모임을 어떻게 하는지 재현해주겠다고 했다. 배려 속에서, 회원들이 모여 있는 집으로 이동했다.
동그란 식탁 위에는 수기로 작성한 장부와 각 기금성격 별로 나누어진 돈 통이 놓여 있었다. 우선 서기가 전 모임 회의록을 낭독했다. 누가 왔고, 누가 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지난 주 어떤 일들이 있었고 돈을 얼마 저금했는지 낭독한 후 3명의 구성원에게 확인절차를 거쳤다. 손으로 작성하지만 주 1회 이런 확인절차를 거치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꼼꼼하게 운영해가고 있었다.
여성은행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24시간 열려있는 은행이라는 점이다. 그 지점 돈 통의 열쇠를 가진 사람, 돈 빌려가는 것을 확인해 주는 사람, 돈 빌리는 사람이 구성되면 24시간 급한 일이 생기면 돈을 빌려갈 수 있다. 확인절차를 거친 후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본인들이 대출받은 돈으로 어떠한 일들을 하고 있는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남편의 실직으로 대출받은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오토릭샤 운전을 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사고, 본인은 조그마한 홍차밭 하나를 샀다고 했다.
소수민족인 타밀족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이 모임이 힌두교이든 타밀족이든 상관없이 평등하게 이야기하고 모임에 참여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리랑카에 있는 동안 타밀족에 대한 반감이나 소외는 눈에 띄게 드러났다. 하지만 여성은행 사람들은 종족과 종교를 떠난 공동체성과 연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성병원 설립준비…마을을 바꿔나가는 여성들
콜롬보로 돌아와 스리랑카 여성은행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행사장 입구 도착했을 때,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붉은 사리를 입고 환영인사를 해주는 여성회원들, 방송사에서 나온 기자들,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 춤을 추며 맞아주는 어린 친구들.
행사장으로 들어가니 운동장 크기만한 넓이에 각 부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여성은행 로고를 설명한 판넬, 여성은행의 역사부스와 지점현황들 그리고 각 마을에서 준비하여 차린 부스들, 여성들이 직접 만들어온 수공예품, 본인들의 전통음식을 준비한 부스까지 규모가 실로 놀라웠다.
색색의 사리로 마을을 표시하여 맞춰 입고 행사장을 꽉 채워 줄지어 앉아있는 만 여명의 여성회원들의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그 뙤약볕에서도 행사 내내 집중하여 자리를 지키던 회원들의 모습, 어린 여성들로부터 할머니까지. 또한 햇볕에 노출된 회원들의 건강을 위해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들 2명이 시종일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재 여성은행은 여성병원을 준비 중이다. 조그마한 5루피가 기적을 만들고 있었다. 한편으로 6만5천여 명의 여성은행 회원들이 스리랑카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5루피로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를 통해 마을을 바꾸고 있는 모습. 그것은 집밖조차도 잘 나오지 않았던 여성들이 아래로부터 만들어낸 연대에서 나온 힘이었다.
<서윤미/ ‘아시안브릿지’ 생태-문화 P/G 코디네이터 –일다 www.ildaro.com>
[관련 기사] 빈곤여성에 저금리 장기대출을! | 인도 빈곤여성들의 조직된 힘 | '착한은행'에 거래트자
20주년 맞은 여성경제공동체 스리랑카 여성은행
스리랑카 여성은행은 1989년 22명의 여성들이 모여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2007년에는 3만 7천명, 2009년 현재 스리랑카 전체에서 150개 지점에 6만 5천명에 이른다.
스리랑카 여성은행의 시스템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과 비슷하다. 빈곤층이 본래 갖고 있는 힘을 제대로 발휘하여 빈곤층 스스로 활동이 가능하게끔 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연대의식’을 토대로 5~15명이 한 그룹을 이루어, 주 1회 공동체저축(Community Saving)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공동저축’ 통한 신뢰가 빈곤여성들의 자립 일궈
누와라 엘리야 지점의 회원들이 일하는 모습
우리는 남부고산지대인 누와라 엘리야(Nuwara Eliya)에 방문했다. 영국 식민지시대에 홍차 플랜테이션으로 개발된 전형적인 차 재배지다. 영국이 인도인과 타밀족들을 이곳에 강제로 이주시켜 차를 재배하게 만든 후부터, 소수민족인 타밀족은 대대손손 빈곤한 이주노동자의 삶을 대물려 살고 있었다.
누와라 엘리야에는 여성은행의 150개 지점 중 2개가 있다. 지점이라고 해서 큰 사무실이 아니라 회원의 집 중 한 군데를 사무실로 정하고, 그 집 앞에 간판을 세워 두었다. 우리는 한 지점을 방문해 여성은행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지점은 회원이 350명으로, 총 16개 공동체 저축그룹(Community Savig Group)이 있었다.
2002년 누와라 엘리야의 여성 3명이 콜롬보 여성은행 본부로 가서 이 프로그램을 배워와 시작했고, 2004년이 되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현재 350명 회원으로 16개 그룹이 있는데, 그 중 14개 그룹은 각각 15명씩 구성되어 있고, 2개 그룹은 아직 미완성이다.
한 그룹은 최소 5명이 되어야 하며, 최대 15명이다. 이들이 모으는 돈은 1주일에 5루피(55원)씩이다. 그 작은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들이 하는 활동들은 단순한 돈 이상의 것들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누와라 엘리야 지점은 350명 회원, 16개 그룹이 있다
또, 한 그룹 15명이 3년 정도 꾸준히 공동저축을 하여 신뢰를 쌓은 후 4~5명씩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사업아이템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그룹대출을 해주고 있었다.
이때 이 대출금으로 사업을 한 후, 수익의 일부를 공동체에 기부하여 마을의 기금(상조회비, 마을아동사업기금 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따로 적립을 하고 있었다. 개인이 혼자 저축하고 사업을 벌였다면 힘들었을 일들을, 공동저축을 통해 서로 신뢰를 쌓고 공동사업확장을 통해 번 수익을 다시 공동체에 환원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다.
“돈이 목적은 아닙니다” 종족과 종교 초월한 연대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던 한 마을여성이 던진 이야기는, 이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여성은행을 운영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 해주었다.
“내가 당장 대출이 필요 없어도 내 돈을 적립함으로써 이웃을 도와줄 수 있다는 공동체의식이 강합니다. 현재 저축이 잘되는 그룹과 잘 안 되는 그룹을 연결시켜주어 서로 배우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돈이 있는 사람만 받지 않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이 그룹에 참여하려고 할 때, 우리는 마음과 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보다 공동체적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리랑카 여성은행 회원들은 돈보다도 공동체적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이들은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할 까봐, 모임이 없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직접 15명으로 이루어진 한 그룹이 주 1회 모임을 어떻게 하는지 재현해주겠다고 했다. 배려 속에서, 회원들이 모여 있는 집으로 이동했다.
동그란 식탁 위에는 수기로 작성한 장부와 각 기금성격 별로 나누어진 돈 통이 놓여 있었다. 우선 서기가 전 모임 회의록을 낭독했다. 누가 왔고, 누가 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지난 주 어떤 일들이 있었고 돈을 얼마 저금했는지 낭독한 후 3명의 구성원에게 확인절차를 거쳤다. 손으로 작성하지만 주 1회 이런 확인절차를 거치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꼼꼼하게 운영해가고 있었다.
여성은행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24시간 열려있는 은행이라는 점이다. 그 지점 돈 통의 열쇠를 가진 사람, 돈 빌려가는 것을 확인해 주는 사람, 돈 빌리는 사람이 구성되면 24시간 급한 일이 생기면 돈을 빌려갈 수 있다. 확인절차를 거친 후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본인들이 대출받은 돈으로 어떠한 일들을 하고 있는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남편의 실직으로 대출받은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오토릭샤 운전을 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사고, 본인은 조그마한 홍차밭 하나를 샀다고 했다.
소수민족인 타밀족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이 모임이 힌두교이든 타밀족이든 상관없이 평등하게 이야기하고 모임에 참여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리랑카에 있는 동안 타밀족에 대한 반감이나 소외는 눈에 띄게 드러났다. 하지만 여성은행 사람들은 종족과 종교를 떠난 공동체성과 연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성병원 설립준비…마을을 바꿔나가는 여성들
20주년 기념식에 참여한 여성은행 회원들
행사장으로 들어가니 운동장 크기만한 넓이에 각 부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여성은행 로고를 설명한 판넬, 여성은행의 역사부스와 지점현황들 그리고 각 마을에서 준비하여 차린 부스들, 여성들이 직접 만들어온 수공예품, 본인들의 전통음식을 준비한 부스까지 규모가 실로 놀라웠다.
색색의 사리로 마을을 표시하여 맞춰 입고 행사장을 꽉 채워 줄지어 앉아있는 만 여명의 여성회원들의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그 뙤약볕에서도 행사 내내 집중하여 자리를 지키던 회원들의 모습, 어린 여성들로부터 할머니까지. 또한 햇볕에 노출된 회원들의 건강을 위해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들 2명이 시종일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재 여성은행은 여성병원을 준비 중이다. 조그마한 5루피가 기적을 만들고 있었다. 한편으로 6만5천여 명의 여성은행 회원들이 스리랑카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5루피로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를 통해 마을을 바꾸고 있는 모습. 그것은 집밖조차도 잘 나오지 않았던 여성들이 아래로부터 만들어낸 연대에서 나온 힘이었다.
<서윤미/ ‘아시안브릿지’ 생태-문화 P/G 코디네이터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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