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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 대한민국 서울 잠실동, 택시 안

 

2014년에 성인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미국에서 자란 나는 이제까지 두세 번 정도밖에 택시를 타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택시를 타는 즐거움과 불쾌함을 동시에 발견하게 되었다. 장점 -가격이 싼(편)! 엄청 빠르다! 택시 기사님께 빨리 가주세요! 서울역에서 10시 30분 기차 타야돼요! 라고 하면 택시 기사님은 마치 아침 드라마 속에 한 장면처럼 엄청난 속도로 밟는다. 그런 순간들에서 나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교통법규를 조금은 느슨하게 지키는 택시 기사님께 감사한다.

 

유일한 단점이라고 한다면 밀폐된 공간에서 기사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인데, 처음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그것마저 한국어를 연습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잠실에 있는 친구 집에서 이화여대 앞에 있던 내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외국인이야?” 택시 기사님은 출발하면서 질문을 시작했다.

 

“아니오, 한국사람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기사님이 그 질문을 하는 이유가 내 방식의 한국어 때문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같은 질문을 꽤 자주 들어왔고, 비교적 익숙한 편이었다.

 

“뭐? 외국인야? 어디서 왔어?” 기사님은 확인하듯 재차 질문했다.

 

“아니오, 한국사람입니다,” 더 정확하고 천천히 다시 대답했다. 어쩌면 내 말하기 속도가 아저씨에게는 조금 빨랐는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백미러로 내 얼굴을 쓱 쳐다보면서. “한국 사람 아닌데? 외국 사람이구만. 어디서 왔어요?”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저는 입양인입니다,” 나는 대답 대신 설명했다. 그때 나는 매일 하루에 네 시간씩 한국어학당에 다니고 있었다. 어학당의 커리큘럼은 아쉽게도 입양 산업을 낯선 사람에게 설명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입양인'이라는 단어를 다른 입양인 활동가 친구에게 배워뒀었다. 나는 기사님에게 한국으로 돌아온 입양인에 대해 좀 알려주고싶다는 생각에 ‘입양인'이라고 말해보기로 했다.

 

“입 양 인,” 이번에는 더 크고 천천히 다시 대답해줬다. 한국어를 쓰는 많은 사람이 이 단어를 모르거나 쓰려하지 않지만, 입양인들은 ‘입양인’이라는 말로 우리 스스로를 오랫동안 지칭해왔다. 어떤 사람들을 우리가 어린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입양아’라고 하거나, 좀 더 격식 있어 보이기 위해 ‘입양아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분’을 붙이면 존댓말이라도 되는 듯이.

 

“거 입양이 됐어도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말을 해야지! 거참 한국말 한번 잘~하네!” 아저씨가 대답했다.

 

앗싸! 한국어 교과서에서 들어본 표현이 드디어 나왔다. 지난주에 수업 시간에서 배운 바로 그 표현이다. -사람들이 내 한국어에 대해서 코멘트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에 대한 바로 그 표현. 옆자리에 앉아있었던 벨기에에서 온 백인 남자랑 연습했던 바로 그 대화! 새로 배운 이 표현을 실제 생활에서 써 볼 완벽한 기회가 드디어 왔다.

 

“잘하기는요,”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기사님은 꽤 오랫동안 백미러로 나를 쳐다봤지만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예! 오늘도 한국어 실력이 업그레이드 됐다! 이제 한국 사람 다 됐네.

 

 

2017년 겨울, 대한민국 경기도 안양시, 엄마와의 대화

 

일요일 오후 12시 롯데백화점 푸드코트 앞에서 나는 엄마와 만났다. 엄마는 이복동생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나를 만나기 위해 교회에서 몰래 조금 일찍 빠져나왔다. 엄마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검정색으로 빼 입고선 카멜색의 긴 울코트를 걸쳐 입고 있었다. 엄마는 단발머리 스타일에 지난번에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눈썹 문신을 하셨다. 엄마는 나와 비교도 안 될만큼 세련돼 보인다. 이날을 위해 나는 제일 잘 어울리는 청바지를 입고, 늘 신고 다니는 크록스 대신 하얀 운동화도 신고 나갔다.

 

“살쪘네,” 그리고, “뭐 좀 먹자.”

 

푸드코트에서 돈까스를 받아서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엄마는 돈까스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고 내가 돈까스를 먹는 걸 쳐다보기만 하셨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의 시선은 어색하게 느껴지고, 그 시선을 받으며 돈까스 먹기는 어렵다. 우리가 다시 만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이 없다. (물론 그 이유 중 하나는, 내 한국어 실력이 최근에서야 파파고를 통하거나 제스처로 바디랭귀지를 하는 것이 아닌 진짜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도 나에 대해서 비슷하게 생각할까?

 

“질문 있어요.” 잘게 썰어진 양배추와 샐러드 드레싱을 섞으면서 나는 대화를 시작했다. “제 아빠에 대해 좀 알려 주실 수 있어요? 어떤 분이셨어요?” 이 질문이 엄마에게 있어 갑작스럽고 민감한 영역에 있는 걸 알기에 나는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지난번에 문자로 비슷한 질문을 했을 때 엄마는 문자의 답장도, 몇 개월 동안 연락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 눈썹을 불태울 것처럼 쳐다봤다. “모른다.” 답한다. “그 사람 이름도, 얼굴도, 나는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 엄마의 눈은 두 번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는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눈빛을 받아치면서 다시 시도해본다. “아빠 고향은요? 나이는…?”

 

“모른다고.” 엄마는 다그치듯이 대답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안 적도 없고.”

 

그 대답이 거짓말인 줄 알고 있지만,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 엄마와 아빠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고 상견례도 했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기에, 엄마가 나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정보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삶이 임신, 파혼, 출산, 입양, 나를 보내고 난 후에 아픔과 트라우마로 가득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엄마와 나는 블랙홀의 각각 양 끝에 서서, 우리 둘 모두에게 비슷한 이유와 다른 이유들로 인해, 누가 먼저 감히 거기로 뛰어들건지 서로를 지켜본다.

 

나는 엄마의 시선을 무시하고 식사를 이어갔다.

 

“나는 몰랐었어.” 엄마는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아무도 나한테 얘기해준 적이 없었어. 내가 너를 혼자 키울 수 있는지 몰랐어. 한 사람이라도 나한테 혼자라도 애를 키울 수 있다고 말해줬으면 나는 너를 키웠을 거다.” 마치 고해하듯이 말을 이어 나갔다. “니 동생들, 내가 걔들 아빠 없이 키웠어. 내가 혼자 키웠다고. 지금은 나도 알지, 혼자서도 애들 키울 수 있는 거. 근데 그때는 아무도 나한테 할 수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없어. 전부 다 나한테 너를 보내버려야 한다고 했어. 그러면 안 됐는데, 그때는 몰랐지.” 엄마의 목소리엔 메스꺼움이 섞여 있지만 이번엔 나를 향한 감정이 아닌 것을 안다.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애쓰며, “몰랐잖아요,” 대답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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