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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춘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 심각한 백래시 시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스무 편이 연재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에서 서울 말고 다른 곳에선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규모는 꾸준히 커졌지만, 동시에 혐오 세력의 방해 활동도 다채로워졌다. 초창기에는 확성기를 끼우고 오토바이로 행진 주변을 돌던 사람 몇 명 보는 것 정도였는데, 이제는 혐오 세력이 퀴어보다 퀴어문화축제에 더 진심인 것 같다.

 

가장 부아가 났던 건, 서울광장에서 축제에 참여할 때 우리는 계속 갇혀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홍대입구에서 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진 않았는데(그때는 퍼레이드 때 혐오자들이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워서 진행이 n시간 연장되긴 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갇혀서 축제를 진행해야 했다. 광장을 둘러싸고 철책을 치고, 그 안에서 부스를 차리고 왔다 갔다 했던 시간들. 몇만 명의 사람이 더운 날씨에 그 안에서 오가고 있을 때, 철책 너머에서는 혐오자들이 부채춤을 추고 트럭에서 거짓 선동을 하고 어린이를 앞세워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나는 축제에 가는 게 기쁘면서도, 안과 밖을 가로지르는 ‘경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순간마다 무언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곤 했다.

 

▲ 2018년 전주퀴어문화축제 행진에 참여했을 때 촬영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오래 다녀서 그런지, 부스를 돌아다니거나 공연 관람 시 어깨를 부딪치지 않는 경험이 새로웠다. 그래도 참여자들이 모여 한옥마을을 가로지를 때는 굉장히 짜릿했다. (촬영: 정한새)


혐오자의 인구만큼 퀴어의 인구도 많은 서울조차 그럴진대, 다른 지역은 어떻게 이걸 감내할까? 
그런 기억이 지역적 상상력을 제한했다.

 

작년 하반기, 춘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했을 때 본능적으로 가는 눈을 뜨고야 말았다. 춘천!?!?!! 내가 아는 그 춘천? 내가 나고 자라고 걷고 뛰고 피카츄 돈까스 먹으면서 하교하던 그 춘천에서 퀴어문화축제를? 맨얼굴로 나가면 분명히 누군가가 나를 알아볼 거라고! 이를테면 ‘어, 저기 무지개 깃발 들고 있는 쟤, 옆집 사는 사람 언니 남편의 조카의 친구의 후배 아니냐?’처럼 말이다! 춘천에서 살며 춘천시민 외의 사람을 보는 것부터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는데, 그 와중에 교회니 모임이니 하는 인적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어서(이 ‘도시’ 어딘가에는 아직도 집성촌이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신상 털리는 건 한순간이다... (정한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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