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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멜레세 글‧그림 『키오스크』

 

이른 아침, 가판대 문 앞에 배달온 신문 뭉치를 안으로 들여놓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여자가 있다. 그림책 『키오스크』(아테네 멜레세 글‧그림, 김서정 옮김, 미래아이)의 주인공 올가의 이야기이다.

 

올가는 신문이나 잡지, 복권을 파는 가판대, 키오스크를 지키며 산다. 친절하고 일에 능숙한 올가는 단골손님들 취향도 다 꿰고 있다. 낚시와 고양이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아주머니에게는 시사 잡지를, 아이에게는 막대 사탕을, 아침 10시 35분마다 달리기를 하는 남자에게는 물을 척척 건넨다.

 

▲ 라트비아 출신으로 지금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살며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아테네 멜레세(Anete Melece)의 그림책 『키오스크』(김서정 옮김, 미래아이)

 

그런데, 올가는 갑갑하지 않을까? 사방이 막힌 키오스크를 지키는 일이 적성에 잘 맞는 걸까? 나는 가끔 삶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몸이 무겁고 답답해서 벗어던질 수 있다면 그러고만 싶다. 몸을 둘러싼 물건, 관계, 역할들이 나를 갑갑하게 하는 것인지, 몸의 갑갑함이 삶으로 번져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과체중으로 살아온 나는 이 갑갑함이 내 몸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올가는 내 걱정과 달리 키오스크에서 보내는 시간에 충실하다. 그녀는 하루 종일 물건을 팔고 나르고 정리하고, 관광객들에게 미술관 가는 길도 일러 주면서 성심껏 일한다. 저녁이 되면 기진맥진해진다. 그러면 키오스크 안 소파에 기대어 여행 잡지를 읽는다. 석양이 황홀한 먼바다 사진을 평화롭게 바라보며, 언젠가 그곳에 가 볼 것을 꿈꾸기도 하면서 잠이 든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올가에게 큰 사고가 터지고 만다. 키오스크가 뒤집힌 것이다. 평소보다 가판대 문밖 멀찍이 떨어진 곳에 신문 뭉치가 놓여 있어서, 올가가 그걸 힘겹게 안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그때 좀도둑이 가판대 위에 있는 과자를 훔치려고 했고, 그 모습을 본 올가가 도둑을 막으려다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 키오스크가 뒤집혔다! 헝클어지고 망가진 키오스크처럼 그야말로 올가의 세상도 뒤집혀 버리는데….

 

▲ 그림책 『키오스크』(아테네 멜레세 글 그림, 김서정 옮김, 미래아이) 중에서

 

인생이 통째로 흔들리고 뒤집히는 게 언제나 나쁜 일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자기를 둘러싼 세상이 무너졌을 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하니까. 올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올가는 키오스크가 뒤집히는 사건으로 인해 몰랐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예기치 않은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강물은 올가를 태운 채 흐르고 흘러서….”

“바다까지 데리고 갔어요.”

“올가는 사흘 밤낮을 떠다니다가 큰 파도를 만나 바닷가로 밀려왔답니다.”

 

화사하고 채도 높은 색감과 귀엽고도 다채로운 여러 인물의 표정을 보는 것이 이 그림책을 보는 기쁨 중 하나다. 특히 나는 이 장면, 키오스크를 쓴 채로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올가의 모습과 그 강을 둘러싼 세상의 풍경 장면을 좋아한다.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면 잠시 이렇게 세상에 기대어 가만히 흘러도 괜찮지 않을까?

 

누구나 살면서 한두 번은 각자의 이유로 삶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경험을 하는 게 인생인 것도 같다. 나는 가족이 전 재산을 잃고 큰 빚을 졌을 때 덩달아 크게 휘청였다. 성인이 된 이후였지만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아직 원가족에게 독립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힘들었던 건, 휘청였던 문제 자체라기보다 한번 휘청이기 시작한 것들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균형을 잃고 자꾸 고꾸라진다는 점이다.

 

그때 내가 넘어진 순간의 공포와 수치심에 괴로워하기보다, 내가 가진 고유한 힘과 세상을 믿고 올가처럼 다채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면 조금은 유영하듯 그 시절을 건너올 수 있었으려나…. 그래도 크게 넘어진 덕분에, 나는 가족과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처럼 넘어진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공동체를 꿈꾸게 됐다.

 

▲ The Kiosk from Anete Melece on Vimeo 중에서 

 

책에서 올가는 두 번 균형을 잃는다. 두 번 다 올가의 실수라기보다는 느닷없이 일어난 사고 때문이다. 그때마다 올가는 자신을 탓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는 데만 힘쓰지 않고,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도록 꿈꾸던, 석양이 있는 바다로 흘러간다. 이제 바다에 도착한 올가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이 책의 또 다른 볼거리는 단골손님들이다. 올가의 움직임에 따라 단골손님들의 위치와 표정, 움직임의 변화 역시 눈여겨보자. 당신들이 거기 살고 있기에, 키오스크의 창을 통해 올가와 소통하고 있기에, 어쩌면 올가는 계속 올가의 인생을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책 전체에서 올가가 키오스크 밖으로 완전히 나온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올가를 두른 키오스크는 무거운 갑옷처럼 올가를 갑갑하게도 하지만, 동시에 올가를 보호하기도 한다.

 

“키오스크는 올가의 인생이나 다름없었지요.”

 

나를 이루는 내 둥그런 몸, 사랑하지만 힘겨운 가족, 기쁨과 상처가 얽혀있는 기억들. 모험을 떠나고 흘러가야 할 곳과 기꺼이 수용할 것을 알아채며 오늘 또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필자 소개: 안지혜 님은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김하나 그림, 창비)을 쓴 작가입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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