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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온 기후 편지] 독자와 나눈 대화

 

[한국에서 보내는 독자의 편지] 안녕하세요. 베를린에서 온 기후 편지를 흥미롭게 받아 본 독자 남미자입니다. 간단히 제 소개를 할게요. 대체로 주중에는 공부와 연구를 하면서 지내고요 주말에 하루는 도자기를 빚으러 가요. 아침저녁으로 열한 살 노견과 하는 동네 산책은 중요한 일과이고요. 가끔 뜨개질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요. 아,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소설과 드라마를 보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죠.

 

▲ 초겨울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어느 농산물 직판장에서, 인근 유기농 인증(Bioland) 농장의 제철 채소들이 팔리고 있다. 지역민들이 재배하고 생산 전 과정에서 탄소발자국이 적은 이 먹거리는 대형 마트들의 유통 체인이나 가격 경쟁을 거치지 않아 훨씬 비싸다. 이런 왜곡된 시스템이 하루 빨리 바뀌길 바란다.   ©하리타

 

‘플라스틱 제로’는 정책과 산업의 변화가 필요해

 

어느새 기후 편지를 받은 지 일년이 되어가네요. 기후 편지가 준 직관적인 느낌은 조금 씁쓸하지만 ‘부러움’이었어요. 한국은 아직 독일만큼 기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 것 같거든요. 물론 코로나19를 계기로 ‘기후 변화’라는 말 대신 ‘기후 위기’라는 말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고, 그 심각성이 공유되고는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속한 기관(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도 종이컵 같은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재생지를 사용하고, 미생물 음식물 처리기를 설치하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죠.

 

하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기후 위기나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이유로 일회용품 사용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기관에서도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는 일이 급격하게 증가했죠. 도시락을 먹고 음식쓰레기 처리와 분리수거를 하는 번거로움에 대해 불평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도시락을 먹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의 없었어요.

 

기후 문제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지엽적인 방식으로, 그러니까 일회용컵이나 빨대를 쓰지 말자, 분리수거를 잘 하자와 같은 대안으로 제한되면, 경제와 산업구조나 정치적 측면을 오히려 숨기게 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제로 플라스틱’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요, 부끄럽게도 하루 만에 실패해버렸어요. 사실 ‘제로 플라스틱’의 실패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플라스틱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페트(PET) 외에도 PVC(폴리염화비닐), PES(폴리에스테르), PA(폴리아마이드, 나일론), PS(폴리스티렌, 불투명플라스틱) 등 분자구조에 따라 매우 다양해서 의류, 음료수병, 포장비닐, 각종 일상용품 등 플라스틱이 아닌 물건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하니까요. 신용카드도 플라스틱이죠.

 

그런 점에서 폐기물 1kg당 천원, EU 플라스틱세를 소개합니다라는 편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부 우려가 있다고는 하지만, 저는 소비자 개인이 아닌 생산자 기업들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플라스틱세가 부럽습니다. 아무리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 해도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유기농 마켓에서조차도 포장재의 상당수는 플라스틱이거든요. 한국도 플라스틱세가 도입되면 좋겠습니다.

  

▲ 베를린에서는 제로-웨이스트 슈퍼마켓이 아니더라도, 집 앞 가까운 일반 마켓에서도 낱개로 과일, 야채 등을 살 수 있다. 쌀과 파스타 면, 마늘 망은 피할 수 없었다. 바나나에 붙은 스티커의 경우 플라스틱 비닐 대신 레이저 처리하는 곳이 늘고 있다. 언젠가 100% 제로웨이스트 장보기를 실현할 수 있을지도!   ©손어진

 

친환경 소비보다는 ‘아껴 쓰고 빌려 쓰고 고쳐 쓰기’

 

요즘 전 뭐랄까, 환경 감수성이 일종의 트렌드로 소비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불편하기도 합니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지만, 새로운 프로모션이 나올 때마다 텀블러를 또 산다면 그것이 친환경적일까. 평소에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지만, 2년에 한번씩 새 핸드폰을 산다면 친환경적일까. 중요한 게 빠진 것 같거든요. 일각에서는 가치와 신념을 반영하는 MZ세대의 소비 특징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더라고요. 조금 비싸더라도 동물복지 식품이나 화장품,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고요. 인터넷 쇼핑몰에서 ‘에코 퍼’라고 의류 소재가 적힌 것을 보았습니다. ‘에코 퍼’는 인조 모피, 그러니까 플라스틱 같은 원료로 만들어진 화학섬유를 지칭하는 말이었어요. 동물 모피가 아니라는 것만으로 ‘에코’라는 말을 붙여도 되는 걸까요? 게다가 그 옷을 대량 생산하는데 들어간 물과 전기, 석탄은요? 씁쓸하더라고요.

 

이런 저의 문제의식 때문에 채소나 과일도 재배 방식이나 이동 거리에 따라 탄소 배출량이 많을 수 있다는 점을 다룬 채식이 기후 위기의 대안일까?에 공감했어요. 무엇이 친환경이냐 아니냐를 따지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는 것들이 어디서부터 왔는지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전기차, 수소차…’저공해차’의 불편한 진실도 이와 연관된 이야기였죠.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위해서 엄청난 양의 리튬이 필요하고, 리튬 생산을 위해서는 또한 엄청난 양의 물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전기의 대부분이 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다는 점도 생각해봤으면 하고요.

 

빌려쓰고 다시 쓰고…기후위기 시대의 경제에서 두 분이 지적한 것처럼 ‘친환경’이나 ‘비건’이 소비 트렌드화 되면서 기업의 그린워싱(greenwashing, 친환경이라며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위장에 불과한 기업의 상술)도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스타벅스에서 리유저블 컵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했는데, 사실 스타벅스는 코로나19를 이유로 텀블러를 가져간 사람에게조차 일회용 컵에 음료를 제공했답니다.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이죠.

 

▲ 매년 7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한 광장에서 열리는 벼룩시장. 이곳에서 훈제 두부를 넣은 비건 김밥을 판매하기도 했다. 일년 내내 곳곳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찾는 것이 ‘소확행’이자 대안적인 소비 활동이다.  ©하리타

 

성장 이데올로기는 종식을 고해야

 

저는 요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을 해요. 인간을 포함한 지구 전체가 유한한 세계라는 점에서, 오랫동안 인류의 문화와 삶 전반을 지배해 온 성장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출하지 않고서는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우리에게는 새롭고 현명한 생존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구분이 우리가 봉착한 문제들의 시작 같아요. 사실 이 때 인간(Man)은, 백인, 남성, 중산층, 이성애자, 비장애인이잖아요? 인간(Man)의 범주를 확장할 게 아니라, 인간(Man)과 인간 아닌 존재의 구분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여전히 사회는 인간(Man)의 힘을 믿고 있는 것 같아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체인 아주 작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의 생활양식을 2년째 바꾸어 놓고 있음에도 말이죠. 제가 올해 교사와 학생들의 생태 패러다임(New Ecological Paradigm)에 관해 조사했는데요, 감각적으로 생태 위기를 인식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을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간주하면서 과학기술, 다시 말해 인간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소비자본주의에서부터 비롯된 무한 성장 이데올로기가 생각보다 공고하구나 싶었습니다. 그 어떤 존재도 무한히 성장하기만 하지 않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이 “인간에게 호흡을 멈추라고 설득할 수 없는 것처럼, 자본주의에게 성장을 제한하라고 설득할 수는 없다”고 말했나 봅니다.

 

성장 이데올로기가 공고해진 데는 교육이 큰 역할을 했죠. 교육 연구자로서 책임을 느낍니다. 『탈성장사회』의 저자 세르주 라투슈는 교육이 “경제성장이라는 종교를 전파하고 진보에 대한 믿음을 주입”하면서 “소외된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문명화된 노예를 만들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일견 설득력 있는 주장이죠.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접근은 교육의 대상이 되는 청소년을 수동적 존재로, 자기 생각을 하지 못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수많은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결석시위에 참여하고 있잖아요. 독일의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을 다룬 우리는 정당들보다 거리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했다 편지를 감명 깊게 읽었는데요. 한국에 청소년들도 나서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몫으로 기후행동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봅니다. 저도 제 몫의 일들을 계속해 볼게요.

 

독일과 유럽의 이야기를 전해주신 하리타 님과 손어진 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사실 한국에서 자본주의나 경제성장에 대해 비판하거나 ‘탈성장’을 주장하는 것은, 아무도 없는 숲에서 혼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큰 지지가 되죠. 두 분의 기후 편지를 이제는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니까, 하고 숨을 내쉬어봅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 한국에서 탈성장을 지향하는 비건인, 교육 연구자 남미자 드림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제 삶을 따뜻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열두 명이 밀도 있게 들려주는 주거생애사이자, 물려받은 자산 없이는 나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곳을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는 독자들에게 조심스

www.aladin.co.kr

 

[베를린에서 온 답장] 기후 위기의 해법은 ‘연결’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인 채로 2021년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기후 위기와 전염병 시대를 사는 지금, ‘베를린에서 보내는 편지’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 닿을까 궁금했는데, 남미자 님의 편지를 받고 반가웠습니다.

 

▲ 해마다 친구는 ‘비건’(vegan)이 된 날을 기념한다. 3주년이 되던 날, 친구는 대체육과 건두부가 들어간 맛있는 김밥과, 직접 담근 비트 장아찌, 배추 된장국으로 한 상을 마련해 우리를 대접했다. 이 친구 덕분에 나도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   ©손어진

 

사실, 기후 편지를 받는 한국 독자들의 마음이 부러움이나 부끄러움은 아니길 바랐어요. 유럽은 세계에서 산업화를 가장 먼저 겪으면서 오랜 세월 엄청난 양의 자원을 착취하고 탄소를 배출해왔죠. 기후 위기에 대한 엄중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탈핵을 선언하고 단계적으로 이행 중이지만, 이는 최근의 변화이고 적절한 규제가 없던 과거 수십 년 동안에는 방사능 폐기물을 해안에 버리고 지역사회에도 폐기물을 매립했어요. 지금도 여러 유럽 국가들이 방사능 오염수를 합법적으로 방출하고 있고요.(관련 기사: ‘탈핵’ 코앞으로 온 독일, 핵폐기물 처리 정책은?)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유럽인들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와 항공기 여행으로 인한 누적 탄소배출량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많죠.(관련 기사: 지구온난화 가속하는 “부끄러운 항공 여행” 안 할 것) 유럽 국가들의 기후 위기 정책이 일부 더 급진적인데, 이는 역사적 책임에 대한 뒤늦은 자각이자 풍요를 먼저 오래 누린 사람들의 여유에서 비롯된 추동력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남미자 님은 개인적 실천에는 한계가 있고, 산업구조 자체를 지속가능하게 전환하려는 정치·경제적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저희도 유럽에 살면서 환경 정책과 제도가 기업을 비롯한 사회조직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주목합니다. 개인의 식생활 전환에서 출발한 채식이 학교나 공공기관의 의무 식단으로 제도화되거나,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내 운행을 법으로 제한시키자 시정부들과 기업이 합심해 전기차 충전소를 늘리는 것처럼요.

 

최근에 의미 있는 정치적 전환점도 있었지요. 독일 녹색당이 16년만에 집권 정당(사민당, 자민당과 함께 연합정부 구성)이 되었어요. 1980년 창당 이후 40년 만에 최고 지지율을 경신했는데,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정치를 원하는 표심이 드러난 거지요. 새 정부의 목표 14개 중 세 번째로 명시된 것이 “파리기후협약 목표 달성”이에요. 파리협정 초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모든 협약국이 달성하더라도, 2100년까지 기온은 2.1도에서 3도 폭으로 상승할 전망이래요. 그런데 지난 6년간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요.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독일은 약속을 지킬까요? 2030년까지 탈석탄하겠다는 목표도 눈에 띄어요. 탈원전 이후 탈석탄을 실현할지도 궁금하네요.

 

[※2022년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 협약”을 맺은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이때부터 개발국들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해 각종 온실가스 방출을 제한하고 지구 온난화를 막자고 합의했는데, 이후 1997년 “교토의정서”(중국과 인도 포함되지 않음. 2005년 발효 전 2001년 미국 탈퇴, 2011년 캐나다 탈퇴, 2012년 일본, 러시아 탈퇴), 2015년 “파리협정”(2017년 미국 탈퇴 후 2021년 재가입)을 지나는 동안 그 누구도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하지 않아 논의는 제자리 상태였다. 2018년 폴란드에서 열린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스웨덴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당신들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우리 눈 앞에서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가 각국의 이해관계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로 때문에 부진한 것을 비판하는 시민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성장을 포기하고 성숙하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리타

 

새 정부가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사회적·생태적 시장경제’로 재정의한 것도 인상적인데요, 자유 시장경제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로, 나아가 생태적 시장경제로 국가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 희망적이지만, 한편 ‘생태적’이란 말이 ‘시장경제’와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의심스럽기도 해요. 남미자 님이 ‘에코 퍼(eco fur)’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던 것처럼, 저희도 ‘그린 뉴딜'이나 ‘지속가능한 성장’, ‘동물복지 축산업’ 같은 정책의 효과를 전면 인정하기 어려워요. 근본적인 전환을 단행하지 못하고 성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Man)의 허상이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그런 의미에서, 남미자 님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탈성장(degrowth)’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공감해요. 1970년대 유럽 학계에서 처음 등장한 탈성장 개념은 생물경제학이나 정치생태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었고, 사회운동이기도 하죠. ‘지구의 균형이 자본주의 시스템과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면서, 경제성장을 사회 공동 목표에서 제외해야 된다고 해요. 그리고 사회구조와 에너지 이용 방식, 노동 방식, 인간-비인간 관계까지 새로 설정해서 ‘코끼리를 날씬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코끼리를 달팽이로 변환하는 것'이라고요. 이게 마냥 막연하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탈성장 철학이 현실에 많이 구현되고 있다는 것을 배웠거든요. 연구자들은 우리 생활에 이미 깊숙이 들어온 기본소득, 협동조합, 저작권 공유, 생태공동체, 일자리 나누기, 노동조합, 도시 텃밭 같은 것들이 자율성과 돌봄, 직접 민주주의 등이 반영된 탈성장의 행동이라고 해요.(페데리코 데마리아·요르고스 칼리스 엮음, 『탈성장 개념어 사전』)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아직 희망이 있는 것 같아요.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보기보다 복잡한 문제인 것 같아요. 독일에서 고기 소비(2020년 기준 채식 650명, 비건 110만 명)가 줄어 문을 닫는 도축장이 생긴다는 뉴스가 들리는 한편, 전체 고기 소비가 줄지는 않았다는 통계도 접했어요. 마트에서 유기농, 비건 제품을 구입하려고 해도 견고한 플라스틱 포장을 보면 힘이 빠지고, 꼭 필요한 야채 과일 견과류 등이 수천 킬로 떨어진 곳에서 왔다는 표시를 보며(이곳 슈퍼마켓에서 한국산 새송이 버섯을 팔아요!) 이게 친환경인가 자문하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가 주도하고 실감할 수 있는 변화가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서 계속 일어나고 있고, 그럴 때 마음 속 무력감이 줄어들어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요거트나 생수를 평생 먹다가 그만 두고 유리 제품으로 바꿨다거나, 기후위기 때문에 난생 처음 녹색당에 표를 주었다는 지인들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어요.

 

▲ 가까운 사람들과 연 벼룩시장. 안 쓰는 물건, 옷가지를 가지고 나와 저렴한 가격으로 팔거나 물물교환했다. 한 친구는 유기농 재료로 만든 비건 쿠키를 가지고 나왔고, 한 친구는 긴 겨울밤 손수 뜬 털모자들을 가지고 나와 팔았다.   ©손어진

 

최근에 본 다큐멘터리 <기후위기의 아이들>(Die Kinder der Klimakrise)에서 세네갈, 인도, 호주, 인도네시아에 살며 기후운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여주었는데요, 특히 인도네시아의 한 마을에서 쓰레기 분류 노동을 하는 12살 남짓 여자 아이들을 봤어요. 세계 곳곳에서 ‘수출한' 쓰레기를 떠안은 아이들이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거예요. 마을 어른들과 선생님에게 이 많은 쓰레기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따져 묻고, 마을의 생명들이 미세플라스틱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이 아이들이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는 것을 보며 ‘나 한 사람의 실천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회의감은 싹 없어지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플라스틱 제로, 비거니즘, 비행기 안 타기, 재생에너지 이용,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생활을 하자고 다짐했어요.

 

남미자 님도 “내가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는 것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셨지요? 이것이 다름아닌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일’이라고 믿어요. 자연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가려지고 끊어진 연결을 복원하고, 나아가 이 존재들이 서로 타자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있음을 감각하는 일이요. 우리는 지구 생태계나 동식물만 착취하고 상처 입힌 것이 아니라, 그 존재들과 연결된 우리 자신도 함부로 소진시키고 닦달했어요. 끊어졌던 연결을 복원하며 함께 치유하고 회복한다면, 무언가 사지 않아도 충분하고 과시하고 증명하지 않아도 충만한 때가 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시간과 공간을 같이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끝>  일다

 

[필자 소개] 손어진. 정치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독일/유럽연합의 R&D 정책분석 일을 하고 있다. 독일 녹색당의 정치적 역동을 경험하고 싶어 베를린에 왔다. 지속가능한 삶을 연구하는 움벨트(Umwelt) 모임 소속으로, 유럽의 녹색정치와 여성, 이민자 영역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존재의 확장을 경험 중이다.

 

[필자 소개] 하리타: ‘에코워리어’들이 많이 사는 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 거버넌스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탈서울 녹색전환을 위해 독일에 왔다. 다양한 종(種)과 성(性)이 공존하는 대안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고 소신 있게 사는 것이 일관된 관심사. 관련 저서 <뜨거운 지구 열차를 멈추기 위해 - 모두를 위한 세계환경교육 현장을 가다>(공저,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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