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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말하는 기후위기>④ 기후위기X슬로패션
지난 9월 16일, 여성환경연대 주최로 제6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가 ‘여성X기후위기’를 주제로 열렸다. 서울시 성평등기금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 행사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대안을 찾고 실천하는 5명의 여성들이 강의한 내용을 연속 기고를 통해 소개한다. [일다] ildaro.com
▲ “내 손으로 무언가를 짓는 행위는 내 삶을 변화시켰다.” 최기영 옷을키우는목화학교 손작업자가 실을 잣는 가락바퀴를 들어보이는 모습. slowcotton.com |
목화씨 뿌려 1년…목화솜 누벼 조끼를 만든 경험
“우리가 입는 옷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 물음 하나로 7명이 모여 목화 농사를 지었다. 경험도 없고 배울 곳도 없어 시행착오 끝에 수확한 솜은 겨우내 일일이 손으로 씨앗을 뺐다. 그렇게 1년을 공들여 얻은 목화솜을 놓고 누벼서 조끼 한 벌씩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수고롭고 불편한 과정을 거쳐 ‘내 손으로 무엇을 짓는 행위’가 삶을 변화시켰다. 옷은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다음부터 옷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옷뿐 아니라 내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물로 확장되었다. 가능하면 아껴 쓰고, 만드는 이의 수고로움을 생각하게 되었다.
생애 처음 목화솜을 만지고 내 손을 사용하며 사물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던 그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목화학교를 해오고 있다. 나는 이를 ‘옷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 본다’라고 표현한다. 이 땅에서 농사지은 목화솜에서 씨를 빼고, 실을 잣고, 염색하고, 그 실로 작은 직조를 해본다. 목화솜을 놓고 누벼 옷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이렇게 목화를 만지고 놀면서 슬로패션(Slow Fashion)을 경험하다 보면 옷을 소비하는 태도가 바뀌게 될 것이다. 옷을 사는 것도, 버리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 목화학교에서 참여자들과 함께 솜 염색을 하고 있다. ©옷을키우는목화학교 |
‘패스트패션’에 관한 불편한 진실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의 역사는 40년 정도 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패션이 산업이 된 것이다. 자유무역과 함께 필요 이상의 옷을 만들어 전 세계로 유통하게 되었다.
유행을 따라 1, 2주일 단위로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고, 1년에 최대 50번의 사이클로 새 옷을 생산하기도 한다. 그렇게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다양한 옷을 만드는 만큼 옷의 품질은 떨어지기에, 쉽게 버려진다. 심지어 너무 많이 만들어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곧바로 쓰레기 매립장으로 가는 비율도 높다.
[수입 목화와 패스트패션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
-목화재배 면적은 전 세계 농지의 3~5%에 불과한데, 전 세계 농약의 약 10%, 전 세계 살충제의 25%가 목화재배에 사용된다.
-농부들은 씨앗을 다국적 기업에 의존하게 되었다. GMO(유전자변형)나 실험실에서 개량된 종자는 기후변화 적응력이 낮다.
-목화재배로 사막화 현상이 가속화된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목화재배를 위해 아랄해로 들어가는 강물을 대규모로 끌어다 쓰면서 아랄해가 사라져간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에서 목화 생산자는 가난한 소농이거나 소작인이다.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 산업은 선진국들이 양보하지 않는다.
-면섬유 제품을 만드는 데는 20여 단계의 가공 과정을 거친다. 후발 개발도상국 즉, 폐수 유발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낮은 곳에서 생산하고 있어 환경오염을 가속화한다.
-패션 산업은 전 세계 20%의 폐수와 10%의 탄소배출량을 차지한다.
그뿐 아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약 40만 명의 소녀들이 옷을 만드는 노동자인데, 그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2013년에 지상 9층 빌딩인 라나플라자가 무너져 1,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금이 간 건물에서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 공장주가 바깥에서 문을 잠그고 일을 시키다 붕괴 사고로 이어진 것이었다.
▲ 경기도 대야미에서 경작하는 목화밭에서 잎벌레를 잡고 있다. (제공: 옷을키우는목화학교 slowcotton.com) |
이처럼 패스트패션은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의 어린 임금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다. 즉, 패스트패션 산업은 농약, 살충제, 폐수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뿐 아니라 인권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메이드 인 페루” 라벨이 붙은 청바지는 미국 텍사스에서 농사를 짓고,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실을 뽑고 직조한다. 그리고 페루에서 재단과 재봉을 하고, 멕시코에서 워싱을 하고 전 세계로 판매된다. 왜 이렇게 많은 나라를 옮겨가면서 만들어야 할까? 패스트패션은 더 싸게 만들고 싶은 사람과 더 값싸게 사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다.
‘슬로패션’을 실천하는 세 가지 방법
패스트패션 산업의 홍수 가운데서 우리는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입어야 할까? 더디긴 하지만, 패션산업 안에서 갖게 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슬로패션으로 나아가고 있다.
슬로패션은 유행을 좇아가지 않고, 오랜 기간 입을 수 있는 옷을 말한다. 단순하게 토양, 물, 에너지, 생물 다양성 등 환경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도 슬로패션이지만, 그걸 넘어서 목화 농장이나 공장, 운송회사나 점포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슬로패션이다. 또 나아가서 우리의 소비 습관을 바꾸고, 재사용하고 수선하고 재활용하는 것, 세탁하는 방법까지 모두 슬로패션의 폭넓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 9월 16일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한 제6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여성X기후위기’ 행사에서 최기영 옷을키우는목화학교 손작업자가 ‘슬로패션’(Slow Fashion)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성환경연대 |
옷을키우는목화학교는 일상에서 슬로패션을 실천하는 3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1. 직접성을 더 많이 복원하자: 내 손으로 옷을 만드는 더 많은 과정을 경험해보자. 그러면 더 싼 것이 선택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환경 파괴나 노동자의 희생, 노동의 가치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2. 소비에 대한 태도를 바꾸자: 영국의 윤리적 패션의 개척자로 알려진 오솔라 드 카스트로는 “우리는 더 나은 제품만 요구할 게 아니라, 더 나은 구매 습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한 달만이라도 물건을 사지 않는 미션을 수행해보는 건 어떨까. 식재료를 제외하고 한 달 동안 물건을 사지 않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오래 입을 옷을 필요한 만큼만 사고, 가죽을 입지 말고, 드라이클리닝을 하지 않는 등 좀 더 생태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만든 옷을 사는 노력이 필요하다.
3. 생활 태도를 바꾸자: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4인 가족이 5~6일 정도 사용하는 물을 사용한다. 이렇게 많은 물을 사용해서 만든 옷을 또 열심히 빨게 된다. 땀 나는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는 한 번 이상 입고 빨래도 모아서 빨고, 세제는 화학성분이 덜한 것을 쓰고, 에너지 소모가 정말 많은 건조기는 좀 덜 쓰거나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가능하면 오래 입고 재활용하고 바꿔 입거나 물려 입자.
기후위기와 생태계의 문제가 심각할수록,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처음 목화학교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인터넷에서 슬로패션을 검색하면 기사나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엔 슬로패션으로 나아가는 긍정적 변화가 더 빨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재미있는 건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H&M의 경우에도 중고 의류를 판매하고 재활용 소재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빠른 패션보다 옳은 패션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결과이다. 여러분이 목소리를 내야만 가능한 변화이기도 하다. 지구가 자정 능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나부터, 작은 것부터, 실천을 해보자. 중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말이다.
[필자 소개] 최기영. 옷을키우는목화학교 손작업자. 2018년부터 도시에서 목화 농사를 지으며 패스트패션의 문제점을 알리고 슬로패션을 실천하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솜을 만지고 놀면서 사라져 가는 손기술을 조금씩 살려내는 활동도 함께한다 [일다] 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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