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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손해배상 청구소송 각하, 어떻게 볼 것인가②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양호)가 강제징용 피해자 80여 명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 선고하여 파문이 일고 있다. 앞서 지난 4월 21일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민성철)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0인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 선고하였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다. 원고의 주장을 검토하고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는 ‘기각’과는 달리, 본격적인 검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잇따른 과거사 피해와 관련한 국내 법원의 판단에 대해, 식민주의적 태도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앞의 글에 이어서, 4월 21일 일본군 ‘위안부’ 판결의 핵심적 문제를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의 살던 북한은

북한 출신 여성이 들려주는북한의 음식과 술, 대중문화, 가정과 양육, 노동과 일상 평범한 북한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만약에 남북한 사람들이 같이 만나서 생활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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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으로 ‘피해 회복’이 이뤄졌나?

 

2015년 12월 28일, 전격적으로 한국의 윤병세 외교장관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외무대신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공동기자회견을 발표했다. 그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합의문’의 문서도 없이, ‘위안부’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국제법규를 위반한 것인지도 밝히지 않은 채, 국제기구들의 권고나 보고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으며,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지급을 약속한 10억 엔은 전혀 법적 배상금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했다.

 

조시현이 언명하듯이, “한일 양국 정부가 정식 조약의 길을 가지 않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적 합의에 나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몇 개월 후 개최된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제출한 정례보고에 대해서 ‘2015년 한일 공동기자회견이 피해자 중심의 접근 방법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피해자들의 구제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손해배상, 만족, 공식사죄와 재활서비스를 포함하는 완전하고 실효적인 회복과 배상을 제공할 것’ 등을 포함하는 최종의견을 낸 바 있다.

▲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20주년을 기념해 작년 12월 4일~5일 서울에서 개최된 [2000년 여성국제법정의 공공기억과 확산: 식민주의를 넘어서 미래세대를 향하여] 행사에서 필자(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습.

한일 장관의 공동기자회견은 2006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청구했던 헌법소원에서 시작되었다. 이 청구에 대해 2011년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국민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 행사에 있어 부작위(한일 청구권 협정의 재협상을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음)에 따라 위헌 상태에 놓여있다고 선고하였다.

 

이렇게 피해자의 요청으로 출발한 헌법소원과 그 결정을 숙고할 때, 이후 일본과의 협상을 위해 외교부에 설치했던 관련 TF는 그 정신과 원칙에서 철저히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취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TF는 어떤 과정과 내용으로 협상이 이루어졌는지 전혀 알기 어렵게 ‘커튼 뒤에서’ 그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절차가 예언하듯이, 피해자를 비롯해 이 문제를 천착해 온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본 발표를 도출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2015년 공동기자회견’을 통해서 피해자들(좁은 의미의 당사자들 나아가 이 문제와 관련된 유족, 친지 등 중층적인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의 요청(needs)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이번 손해배상 청구는 ‘2015년 공동기자회견’의 발표가 피해자들의 요청을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을 웅변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볼 때, 재판부가 ‘2015. 12. 28. 한일 합의가 이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인 권리 수단’이라고 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이는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의 개인적·역사적·사회적 취지를 무시하는 언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어떠한 요청이 2015 공동기자회견으로 해소되지 않은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의 부재라는 점이다. 필자는, 이 해소되지 않은 무엇은 손해배상금이라기보다는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주어온 일본군 성노예제도에 수반된 불법행위들은 일본 정부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라는 담백하고도 오해의 여지 없는 판단을 사법부로부터 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이 피해자들의 회복(reparation)의 핵심인 “정의의 경험”이 아닐까.

 

▲ 2016년 1월 13일 일본대사관 앞 1213차 수요시위에서 이옥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발언 모습. 출처: 여성국제법정 20주년을 기념하며 일본군‘위안부’연구회에서 제작한 영상 “3. 증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미래세대의 대화” 중


돌이켜 보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 자체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원점으로 했던 ‘아래로부터의’ 회복 운동이었다. 이러한 과정의 귀중함과 의미를 무시하고 망각한 채, 재판부는 그동안 실수와 오류를 거듭해 온 ‘위로부터의(국가중심의)’ 회복운동으로 돌아가라고, 게다가 그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고 안이하게 권고하고 있다.

 

2021년 4월 현재,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2015년 한일 장관의 공동기자회견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추가적인 외교적 교섭을 원활하게” 수행할지 불확실한 가운데, 사법부는 자신들의 책무를 행정부에 넘겨버렸다. 게다가, 한일 장관의 공동기자회견은 피해자들의 법적 청구권를 다룬 것이 아니었다고 일본과 한국 정부가 명백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본 군대가 당시 조선에 대해서 “외국의 군대”였는가?

 

재판부는 이탈리아의 페리니(Ferrini) 사건을 다루었던 ICJ의 판결(Germany v. Italy, ICJ, 2012.2.3.선고)의 다수의견을 인용하였다. 피고가 이 사건 피해자들을 위안부로 차출한 행위는 “법정지국의 영토 내에서 무력분쟁 과정에서 외국의 군대 또는 그와 협력하는 외국의 국가기관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한다.

 

즉 법정지국인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무력분쟁 중의 상황에서 외국 군대에 의해 발생하였으므로, ’국가면제‘(국내 법원이 타국에 대해서 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국제관습법)가 인정되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변을 제시한 것이다. 식민지 시기의 조선에서 조선인에 대해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일본국과 일본군이 그저 “외국”에 해당한다는 언명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현재 대한민국의 외국이고 별도의 주권국가인 것은 분명하지만, 불법행위 발생 당시 그것이 불법 강점이라고 할지라도 법형식적으로 조선인은 일본의 차별받는 국민의 일부였다. 비록 국적법 등 적용이 배제되는 상태였을지라도 현재까지 유효한 사법부와 행정부의 결정이 내려졌고 소유관계가 맺어진 시기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식민지 시기의 결정과 효과가 무효화될 수 없는 노릇이라면 ‘식민지적 법의 통치’ 상태에 대한 별도의 논구가 필요한 일이다.

 

물론 이 부분에 관한 논리를 본 재판부가 모두 구성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저 ‘외국의 군대’가 조선에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라고 보아서 국가면제를 인정한 것은 본 판결의 핵심인 국가면제의 논리 구성에도 미흡하다. 식민지 치하에서 공권력과 법을 활용해서 자행하였던 불법행위를 지금에 와서 외국 정부라는 이유로 보편적인 면제를 요청하는 법논리의 허울을 벗겨내야 할 것이다.

 

▲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20주년을 기념해 작년 12월 4일~5일 열린 [2000년 여성국제법정의 공공기억과 확산: 식민주의를 넘어서 미래세대를 향하여] 행사 로고. 이번 행사에서는 특히 일본군 성노예제의 식민주의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군 성노예제의 피해자 중 조선의 여성들이 가장 다수였고, 가장 원거리에서 가장 장기간의 피해를 겪어야 했던 이유는 조선이 일본 본토로부터 근거리에 놓여있다는 지정학적 위치에다가 식민지 강점 상태로 인한 법적·군사적·정치적 지배가 이루어졌다는 점에 기인한다. 식민지하에 발생했던 젠더폭력에 대한 법의 미응답이 본 손해배상 소송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조선인 여성들이 겪은 피해의 ‘모든 곳에’ 조선의 식민지성이 녹아 있다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보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그저 무력분쟁 중 ‘외국의 정부’에 의해 발생한 불법행위로 간주하는 대한민국 사법부는 아직도 ‘식민후기’의 시대에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 사건 피해자를 포함하여 모든 한국인이 앓고 있는 식민지인이었음의 피해를 선연히 대면하고 새로운 법논리를 구성함으로써, 식민지성의 질긴 고리에서 해방되어 ‘정의의 경험’을 하게 해 줄 대한민국의 ‘탈(脫)식민’ 사법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 자료]

양현아, “2015년 한일외교장관의 ‘위안부 문제 합의에서 피해자는 어디에 있(었)나”, 조시현,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의 법적 함의”, 이나영, “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역사와 ‘2015 한일 합의’의 문제점”, 김창록, “<2015 한일 외교장관 합의>의 실체와 문제점”, 김창록 외 3인, 『2015 ’위안부‘ 합의 이대로는 안 된다』, 경인문화사, 2016.

 

[필자 소개]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젠더 법학과 법사회학을 가르치고 연구해 왔다. 호주제 폐지와 한국 가족법의 ‘전통문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공권력 피해자의 증언 재현과 피해 회복, 낙태죄 폐지와 재생산권 시스템 마련 등 페미니즘과 포스트식민주의와 법의 접점에서 다양한 연구 거점들을 만들어 왔다. 대표 저서로 『한국 가족법 읽기, 전통, 식민지성, 젠더의 교차로에서』(창비, 201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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