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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를 가진 수산가공업은 왜 기록되지 않았을까?

 

 

≪일다≫ 항구도시 부산, ‘알공장’과 ‘노하우’라는 이름의 여성노동

“굉장히 추워요” 수산가공업 현장의 여성노동자들 “현장이 굉장히 춥잖아요. 기본적인 온도를 18도, 15도에서 18도를 유지해야 되기 때문에 항상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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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추워요” 수산가공업 현장의 여성노동자들

 

“현장이 굉장히 춥잖아요. 기본적인 온도를 18도, 15도에서 18도를 유지해야 되기 때문에 항상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어놔서 추우니까. 내 친구는 추위를 너무 많이 타서 난 도저히 못 버티겠다. 그리고 자기는 키가 크고 나는 요 다이(작업대)에 딱(맞고)……” (덕화푸드 생산직 여성노동자 G)

 

▲ 부산광역시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진으로, 국제수산물도매시장과 수산가공선진화단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수산가공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작업 현장은 추위로 감각된다. 특히 명란은 비가열 식품이라, 현장의 적정 온도는 노동하는 이들에게는 춥고, 동시에 자신들이 생물을 다루는 노동을 하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한다.

 

여성노동자들은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작업복 안에 옷을 두껍게 입고, 쉬는 시간에는 탈의실의 뜨끈한 바닥에서 몸을 누이고, 점심시간에는 시간을 내 운동을 한다. 현장의 작업대는 여성노동자들의 평균 나이와, 평균 신체를 통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수산가공업 현장은 여성노동자의 신체 없이는 불가능한 공간이며, ‘종사’한다는 것의 의미는 고용관계를 넘어 다양한 관계 속에 있다. 이러한 관계성이 지닌 맥락들을 드러내고자, 명란제조업체인 <덕화푸드>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풀어내었다.

 

부산 수산가공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구술 아카이빙을 위해 2019년 10월부터 약 두 달간, 동료 연구자(김만석)와 함께 <덕화푸드> 생산직 여성노동자 열 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인터뷰에 참여한 명란제조업체 덕화푸드 생산직 여성노동자 10명의 기본정보. 50대~60대 초반이고 경력은 10년~20년 정도다.

 

수산업 중에서도 비가시화된 노동, 지역소멸 담론과 맞물려

 

수산가공업은 부산의 오래된 산업으로, 종사자 대부분이 여성이다. 하지만 부산에서 이와 관련한 정보를 찾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부산 산업의 역사 속에서 수산가공업과 수산가공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노동을 인식해온 방식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맥락을 짚어본다면, 먼저 지역소멸 담론을 꼽을 수 있다. 지역소멸 담론은 지역의 역사를 자연사(自然死)로 인식하게 한다. 과거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성장-쇠락’의 인과적 서사 속에서 수산가공업은 자연사할 사양산업으로 인식된다.

 

수산가공업이 오랜 역사에 비해 노동자 개인의 노하우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한계로 지적하며, 다양한 선진수산기술의 함양이 필요한 산업으로 진단된다. 다르게 말하자면 수산가공업은 기술 경쟁력 없이, 전근대적인 노동의 형태를 유지한 채 남아있고, 앞으로의 전망도 희박한 산업으로 설정되고 있다.

 

지역사회가 수산업에서 물류산업과 물류노동에 관심을 가져온 것에 비해, 수산가공업의 가공노동과 이 산업에 종사해 온 여성노동자들은 비가시화되고 있다. 지역소멸 담론은 ‘사양산업-기술력 없음-여성노동’이라는 젠더화된 프레임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 ‘수산가공 선진화단지’이다. 부산 서구의 감천항을 중심으로, 수산가공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려는 목적에서 설립되어 2014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이 공간의 구축은 수산가공업에서 ‘가공’의 공정은 기술력의 발전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특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산가공업은 아직 기술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산업이기에 선진화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 2019년 11월 6일 부산시 보도자료 중. 당시 오거돈 시장이 13번째 ‘부산대개조 정책투어’를 서구청 신관 다목적홀에서 진행하는 모습.  *출처: 한국문화정보원, 공공누리(www.kogl.or.kr)

 

수산가공 선진화단지와 국제수산물도매시장의 산업 경관 속에 <덕화푸드>가 위치해 있다. 그런데 주변의 도로 인프라는 물류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반면, 이 공간에서 오랜 시간 노동하는 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사람의 자리를 상상하지 않는 분절되고 고립된 공간화 방식은, 노하우와 역량을 구축해 온 이들의 이야기가 공백으로 남도록 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알 공장’이라는 말이 드러내는 가공 공정

 

“일단은 선별하고, 선별된 알을 가지고 나와서 계량을 하게 되거든요. 하고 난 다음에 입상. 예쁘게 모양을 성형하는 거죠. 한 다음에 그 다음에 기계로 올라가게 되면, 제가 만든 트레이를 하나하나 내주면 밥을 푸게 됩니다. 밥을 퍼주면 기계 흘러가서 패킹을 하고 기계가 검사를 해주고 나면 라벨기로 흘러가가지고 기계서 올라오거든예. 사람이 확인하고 받아가지고 다시 또 케이스 담고 나면 검사하고. 그게 최종포장입니다. 다시 또 숙성고로 가가지고 거서 보관했다가 출고.”(A씨)

 

수산가공업에서 가공 공정의 특수성은 “알”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난다. 명란제조업체라는 명칭이 아니라 “알 공장”이라 일컫고, 명란이라는 말 대신 “알”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완성된 제품의 상태를 명란이라고 부른다면, 명란을 만드는 가공의 공정에서는 알이라는 단어를 쓴다. 명란이라는 완성품과 알이라는 재료를 구분해서 인식한다는 것은, 알이 자신들의 손과 노동의 과정을 거쳐 명란이라는 제품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알이라는 표현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재료가 생물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밥을 퍼주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가공 공정에 대한 인식에서 보듯이 생물은 곧 음식의 재료이기도 하다. 식품위생이라는 측면을 넘어 자신의 노동이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며, 그것이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일이라는 공통성에 대한 인식 또한 담고 있다.

 

▲ ‘알 공장’(명란제조업체)에서 일한다는 표현에서 여성들의 수산가공 노동의 특징이 드러난다.

 

“색깔을 마차가지고” 노하우가 드러내는 가공 공정

 

가공의 공정에서 또 다른 측면에는 ‘노하우’가 있다. 인터뷰이들은 현재 <덕화푸드>에서 경력이 오래된 분들로, 적게는 10년, 많게는 20년이라는 시간을 이곳에서 일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노하우에 대한 질문은 선진화 혹은 기술화에 대한 영역이 아니라, 각각 다른 신체의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을 묻는 말이다. 그것은 객관적 수치가 아닌 신체에 굳은살로 자리 잡은 오래된 노동의 시간이자 통증의 후유증으로 남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노하우는 ‘나의 것’이다.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신체에 누적된 것들로서의 나의 것.

 

“나만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하지만 노하우를 묻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면서, 노하우라는 것이 다양한 맥락 위에 놓여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만의 노하우는 일에 익숙해져서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를 갖기도 하고, “나만의 노하우로 일을 잘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은 아니다”라는 위치에 놓인 말이기도 했다.

 

노하우는 “포장반은 (자기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지만, 나는 시키는 대로 한다”라는 말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공정들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알을 선별하고 계량하는 작업에서는 컨베이어 벨트의 기계적인 움직임이 크게 작용하는 반면, 포장반의 공정은 제품의 디자인이 세분화되는 시장의 전환으로 이전보다 세분화된 몸의 움직임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Q: 계량할 때 노하우라든지 뭐 이런 거는 있으십니까. 요거는 요래 딱 하면 되는 일이다..

A: 노하우가 뭐가 있습니까. 우리는 바로 색깔 보고 있다아입니까. 색상이 빨간 게 있고 하얀 게 있고 노란 게 있고 단풍들은 것 같이. 그거에 색깔을 마차(맞춰)가지고..(B씨)

 

계량 노하우에 대한 질문에서 들은 대답은 어떻게 하면 더 정밀하고, 정확한 수치에 가까워지는지가 아니라, 알의 색을 맞추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였다. 명란제조의 공정체계 안에서 색을 맞추는 일은 공정으로 기입되어 있지는 않지만, 노하우라는 방식 안에서 드러나게 된다. 색상을 맞추는 일에 대한 비유에서도 보이듯이, 그 작업은 노동자와 예술가 사이에 존재하기도 한다.

 

▲ 수산가공선진화단지를 둘러싼 경관을 살펴보기 위해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물류의 흐름을 중심으로 공간이 구획되어 있다.  ©신민희


기술력 없는 산업, 기술자가 되는 경험

 

노하우에 대한 다양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수산가공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노동은 손으로 하는 단순노동이라는 프레임이 반복된다. 이 구조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기술자’로 존재했던 과거의 경험을 들려준다.

 

“그때는 시다라 해야 되나. 보조로 밑에 시다 일을 하다가 신발끈도 자르고. 나도 미싱을 하면서 인자 기술자가 됐지.”(E씨)

 

현재 수산가공업의 위치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들의 삶의 지평을 본다면 부산의 산업구조 안에서 신발산업에 종사했던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를 거쳐 태광산업, 국제상사, 태창기업, 동양고무 등에서 근무하면서 기술자가 되었던 경험을 들려준다. 이러한 경험들은 여성의 노동을 ‘기술력 없음’이라고 규정해 온 프레임의 바깥을 보여준다. 

 

객관적 지표와 수치로만 남는 ‘기술력’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수치화되지 않는 것으로서 ‘기술자’가 된 경험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황지영의 논문 「기술의 역학과 여공의 정동: 1930년대 공장소설을 중심으로」(2020)에서 여공들에게 있어서 기술 습득은 신체의 변용 능력을 증가하는 것이었으며, 여공들의 정동이 기술을 습득할수록 스스로를 비하하던 차원에서 벗어나 부정한 대상을 거부하는 쪽으로 이행했음을 밝히고 있다. 신발산업에 종사했던 이들이 자신을 기술자였다고 여기는 맥락 역시 역량이 강화된 경험으로 남아있다.

 

Q: 미싱 어렵지 않습니까?

A: 다 하는 거니까. 아니 뭐 다 하는 거니까. 그것도 처음에는 배울 때 좀 바늘에도 좀 찔리고 하니까. 마 하다 보면 (하하하) 그것도 단계별로 있어요. 일자로 쭉쭉 박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양 커브 돌고 꼬불꼬불하고 이런 거 있잖아요. 우리가 시험을 치거든요. 한단계씩 올라가는 기능시험이라 해가지고 그렇게 시간을 재서 통과가 되면 시급이 조금 오르면서 한단계 올라가서 그 단계에 미싱을 하고. 현장에 있으면 하는 부서에서 와가지고 우리 하는 거 시간재고 이렇게 하는 거 봐요.

 

Q: 떨어지는 분도 많으셨나요?

A: 떨어지지는 안해봐가지고. 떨어지는 사람도 뭐 시험이니까 안 있었겠어요. 점심시간에 연습도 좀 하고 그렇게 하니까. 미싱 하는 사람 밑에를 시다라고. 아무래도 시다는 생각하는 게 아무래도 그렇잖아요. 자기 밑에니까 우리가 동등하게 하고 싶으니까 점심시간에 연습도 하고. (K씨)

 

부산 산업의 역사에서 신발산업은 전성기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역사화되는 동시에, 수공업의 요소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었기에 사양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된다. 하지만 기술자로서의 경험은 이러한 서술과 다르게 자신이 다른 존재가 되었던, 역량이 강화되었던 경험으로 남아있다.

 

“다 하는 거니까”라는 대답의 의미는 오랫동안 여성들의 노동을 기술력의 차원에서 발전될 수 없는 단순노동으로 불러온 것에 대한 대답일 수 있다. 이어진 질문에 미싱 기술을 익혀 온 단계들을 기억하는 일과, 시다가 아니라 “동등하게 하고 싶”었다는 열망은 기술자로서의 경험과 함께 놓인다.

 

부산의 신발산업을 역사화해 온 방식은 현재 수산가공업을 사양산업이라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반복되고 있다. 수산가공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기술력 없음’에 대한 인식은 여성의 노동을 기술력의 차원에서 단순노동으로 연결시키는 역사의 반복인 동시에, 여성의 노동이 경력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혼과 동시에 많은 이들이 경력 단절을 겪었고, 기술자가 되었던 경험을 연결성이 아닌 단절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기술력 없음, 선진화될 수 없음이라는 결여태로써가 아닌, 기술력으로 수치화되지 않는 노하우와 기술자로서의 경험이 다시 연결성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바구 떨다

 

여성노동자들은 대체 이 일(기록)을 왜 하는 것인지, 자신이 하는 말 중 하나도 쓸 것은 없지 않느냐, 앞에 사람들도 다 이런 얘기밖에 안 했을 것인데 괜찮은지 말을 건네셨다. 그 말들을 전해 받으며, 왜 이런 기록들이 필요한지 이야기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말하다 보니 재미있다, 이야기하다 보니 또 생각이 난다’며 짓던 웃음들이다.

 

이바구라는 말이 있다. 경상도 사투리인데, 사전에서는 이야기 정도로 표준화된다. 하지만 이야기하다 보니 재미있다 라는 말은 인터뷰도 아니고 이야기도 아닌 이바구의 의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이들을 만나 자신들의 생애를 들려주는 일, 인터뷰가 끝난 뒤에 작업장으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하는 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웃었던 일. 그리고 인터뷰이는 아니었지만 추위에 약해, 키가 커서 일하기가 수월치 않아 떠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 이런 시공간 속에 있는 것이 이바구는 아닐까.

 

표준화될 수도 추상화될 수도 없는 여성노동자들의 이바구 기록들이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란다.

 

-신민희. 젠더·어펙트 연구소 특별 연구원. 지역의 문제를 젠더적 관점, 정동적 관점에서 독해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글은 필자가 쓴 「항구도시 부산과 여성노동자들의 해양노동」(『약속과 예측』, 산지니, 2020)과 「로컬산업과 여성노동자의 삶-노동의 구조」(젠더·어펙트 국제학술대회 발표문, 2020)를 기반으로 요약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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