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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더 이상 우리가 영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응하다 번아웃으로 사망한 의료인…미국 사회에 경종


 

2021년의 새해가 밝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지쳤지만 그 중에서도 재난 현장의 보건의료진이 겪고 있는 번아웃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코로나19 담당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연숙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응답자 319명 중 158명(49.5%·복수 응답)은 신체적인 증상을, 132명(41.3%)을 우울감을 토로했다. 응답자의 30%는 정서적으로 소진되었고, 9명은 자살 위험성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의료진 10명 중 4명은 우울”…국가트라우마센터 조사, 2020년 10월 8일자 참조) 


팬데믹 상황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우울 등 보건의료진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미국에선 <닥터 로나 브린 보건의료진(Health care provider) 보호법>(이하, 로나 브린 법)이 발의되었다는 소식이다.


닥터 로나 브린과 영웅들 재단 웹사이트 (Dr. Lorna Breen Heroes’ Foundation)


작년 4월 사망한 의사 로나 브린(Lorna Breen)의 이름을 딴 이 법안은 로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유족들이 만든 ‘닥터 로나 브린과 영웅들 재단’(Dr. Lorna Breen Heroes’ Foundation)과 민주당, 공화당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의기투합하여 만든 것이다.


확진자들 돌보며 번아웃과 무기력에 시달리던 의사


로나 브린(49)은 뉴욕이 코로나19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받던 당시, 맨해튼에 있는 뉴욕-프레스비테리언 알렌 병원의 응급 병동을 관장하던 내과 의사였다.


봄부터 로나와 동료들은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자들로 인해 보통 때보다 세 배나 많은 환자를 돌봐야 했다. 12시간 근무가 끝나도 쉴 수 없을 정도로 환자가 넘쳐났다. 하지만 개인보호장비(PPE)는 한정적이었고, 필요한 의료용품도 부족했다. 환자들에게 공급할 산소도 부족했지만 환자들의 수는 계속 늘어 복도까지 점령할 정도였다.


2020년 4월 미국 뉴욕의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었다.


4월이 되자 미국은 하루 확진자가 만 명이 넘고 사망자가 천명을 육박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로나 브린은 환자들을 치료하다 자신도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다행히 치료되었지만, 병원에 돌아가자 환자의 1/4이 사망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됐다.


병원에서 나온 사람은 택시 승차를 거부당하는 상황에서도 매일 출근을 감행하던 로나는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로나는 친구들에게 “나와 동료들은 매번 바뀌는 지침과 일괄적이지 않은 메시지에 너무 혼란스럽다”며 스트레스를 토로했다고 한다. 또 “난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난 그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는데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과, “의자에서 일어날 힘도 없다”고 번아웃 상태임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던 4월 26일 로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의료인은 약한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압박


닥터 로나 브린은 2019년 11월 공저자로 “임상의료진의 번아웃과 응급병동 팀 기반 치료의 연관성”(Clinician Burnout and its Association with Team-Based Care in the Emergency Department)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의료진의 번아웃과 정신건강의 위험을 경고한 바 있어 더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아픈 사람들,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또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 특히 정신건강과 관련된 지원이 필요하다는 건 사회적으로 많이 논의되지 않은 부분이다.


재단을 만든 로나의 여동생 제니퍼 브린은 로나가 생전에 ‘도움을 요청하기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정신건강과 관련된 질환을 진단 받게 되면 의사로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는 건 아닌지, 의사 면허를 잃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했고, 도움을 요청하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의료 전문가가 아닌 ‘약한 사람’으로 볼까 봐 두려워했다는 거다.


‘생명을 다루는 보건의료진은 약한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되고, 완벽해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과 기대치가 낙인(Stigma)를 만들어 내고, 그런 낙인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보건의료인이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선 의사와 간호사의 자살율이 비의료진에 비해 2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도 의료진의 자살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또한 비의료진의 경우 남성의 자살율이 여성보다 높은 것에 반해, 의료진의 경우 여성과 남성 자살율이 거의 동일하게 나타났다. (Suicide by health professionals: a retrospective mortality study in Australia, 2001-2012, Allison J Milner, Humaira Maheen, Marie M Bismark and Matthew J Spittal, 2016년 9월 19일)


지난 12월, 미국 CNN 인터뷰에 응한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은 사회가 자신들을 영웅이라 할지 모르지만, “우린 더 이상 우리가 영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Dr. Breen needed support. We can't let such a tragedy happen again, CNN, 2020년 12월 17일자)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안내하고 있는 <감염병 진료에 참여하는 의료진을 위한 마음건강지침> 중 


로나 브린 재단은 이런 위험 신호를 더 이상 두고 봐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 시대라고 하는 팬데믹 상황을 버티고 있는 많은 보건의료진이 스트레스와 우울, 무기력, 번아웃을 겪는 것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로나 브린 재단이 제안하고 민주당 상원의원 팀 케인, 잭 리드, 공화당 상원의원 토드 영, 빌 캐시디 등이 함께 지원하여 발의한 로나 브린 법은 의료진이 정신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를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안의 내용은 보건의료진의 정신 및 행동건강, 그리고 번아웃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의료 전문 인력의 정신건강을 위한 의료 서비스 보조금을 마련하며, 보건의료진을 위한 행동건강 및 웰빙 교육, 그리고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인식을 개선하는 캠페인과 교육 등을 담고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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