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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시오-코르테스의 연설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경종을 울린 ‘청년 여성’ 정치인



‘전 딸이 있다고 좋은 남성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인이 있다고 좋은 남성이 되지도 않죠. 타인을 인격체로 존중할 때 좋은 남성이 되죠. 그리고 좋은 남성이 어떤 일을 잘못했을 땐 최선을 다해 사과합니다. 체면을 살리려고 하거나, 표를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으로 인한 피해를 인지하고 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사과하죠. 그래야 우리 모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요.’


‘나는 딸도 있고, 아내도 있고, 그들을 사랑한다. 그러니 내가 여성을 혐오할 리 없다’라는 말은 성차별을 지적당한 남성들이 곧잘 하는 변명 중 하나로, 우리에게도 꽤 익숙하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아무런 변명이 되지 못한다는 걸 정확히 지적하며,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과 차별에 경종을 울리는 연설이 지난 7월 23일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울려퍼졌다.


‘역사에 남을 연설’, ‘마스터 클래스 연설’ 등으로 칭송 받는 이 연설을 미리 쓴 대본도 없이 진행한 건, 미국 뉴욕 14구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Alexandria Ocasio-Cortez)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SNS를 통해, 23일 연설은 미리 만들어진 대본이 아니라 자신이 끄적거리며 정리한 노트를 기반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인스타그램 ©AOC)


2018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국회에 진출한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1989년생인 ‘여성 청년’이며, 초선 의원이지만 민주당 경선 때부터 돌풍을 일으킨 주역이며 현재 미국 정치권에서 인지도가 상당하다. (관련 기사: “소수자들, 자기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을 선택하다”, 일다 2019년 11월 21일자)


그가 약 10분 동안 열변을 토하며 이런 연설을 하게 된 건, 공화당 테드 요호 의원이 7월 20일 기자들도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을 ‘‘XX년”(Fucking Bitch)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요호 의원은 ‘당연하게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인과 딸을 가진 남자이기 때문에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며 주변의 여성을 방패막이로 삼아 변명을 늘어놓았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더 이상 이런 모욕적인 취급과 폭력에 침묵하지 않겠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렇게 탄생한 연설은 그 자체만으로 감명 깊었지만, 그의 말에서 더 큰 울림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동안 그가 ‘젊은, 신진, 여성, 비백인’ 정치인으로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어리고, 가진 것 없는, 이주민의 ‘딸’이 정치인이 되었을 때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출마 선언을 할 때부터 어떤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하원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가게 되면 만 29세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 타이틀을 거머쥐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어린’ 여성 정치인의 등장이었다.


거기다 백인도 아니고, 엘리트 집안 출신도 아니고, 부모의 후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났고, 영어와 스페인어를 쓰는 이중언어 사용자이며, 가족은 모두 노동자 계층이었다. 대학교 때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한 뒤에 집을 잃을 뻔한 일로 법원을 드나들어, 주거권 이슈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서민층이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도 대학 졸업 후 웨이트리스, 바텐더 등으로 다양한 일을 해왔다.


2018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 뛰어든 4인의 여성들을 좇은 다큐멘터리 영화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Knock down the house) 중. 선거 캠프에서 고민하는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 모습 ©Netflix


처음에 그가 국회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심지어 그가 민주당 경선에서 대결해야 하는 상대는 당 내에서 입지가 상당한 10선의 현직 하원의원 조 크롤리였다. 약 20년 동안 조 크롤리에게 도전한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그의 자리는 확고해 보였다. 지역 언론도, 대중 미디어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을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접전도 아닌15% 차이로 경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본선거에선 78%의 득표율로 공화당 및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국회로 가는 티켓을 거머쥐었다.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의 탄생. 그제서야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에게서 보는 건 ‘나이 어린, 정치 경험도 없는, 이주민의 딸’인 모습이었다.


특히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 성향의 사람들과 미디어는 “노동자 계급 치곤 너무 좋은 옷을 입고 다닌다”고 지적하는 등, 그가 입은 옷과 가방 등 외적인 부분에 대해 한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나이 어린, 정치 경험도 없는, 이주민의 ‘아들’이었다면 과연 그런 말들이 나왔을까? (기사가 계속됩니다) 


 이어진 전체 기사 전체보기: 한국 국회에도 ‘오카시오-코르테스’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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