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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들의 새로운 독일 이주 트렌드

<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연재를 마치며


※ 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국외 이주가 늘고 있습니다. 파독 간호사로 시작된 한국 여성의 독일 이주 역사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다>는 독일로 이주해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고 는 한국 여성들을 만납니다. 또한 이들과 연관된 유럽의 여러 젠더와 이주 쟁점에 대해서도 함께 다룹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이번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근래 뚜렷하게 나타나는 한국 여성들의 독일 이주 양상을 몇 가지 언급하고 싶다. 독일의 전통적인 직종이나 고용 형태가 아닌 방식으로 독일에 체류하며 생계를 잇는 여성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먼저, 입학이나 취업처럼 현지에 소속을 두고 독일에 장기간 체류할 계획으로 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일년 살기’ ‘3개월 살기’ 같은 컨셉으로 오는 이들이 늘고있다. 다양성이 높고 외국인에게 보다 열려있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이들은 따로 또 같이 도시를 마음껏 유영한다. 목돈을 모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 받은 자격증이나 경력증명서를 바탕으로 요가 강사, 타투이스트, 유튜브 편집자, 웹 디자이너, 아로마 테라피스트 등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체류가 길어지면 프리랜서 형태로 작업장을 빌리거나 재택근무를 하며 한인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고객층을 넓혀간다. 독일에서도 비교적 새로운 직종이라서 국가공인자격이나 학위가 필수적인 다른 직종과 달리 경제활동이 자유로운 편이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서, 독일에서는 퀴어들이 한층 힘을 얻었다. 국가가 동성커플을 부부로 인정하자 나이든 세대의 보수적인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지역 퀴어 퍼레이드에서 크로스-드레싱을 한 파트너와 포즈를 취했다. (출처: 하리타)


섹슈얼리티 자유를 위해 독일에 오는 레즈비언 커플들도 종종 보았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독일에서는 둘 중 한 사람만 체류권이 있어도 ‘파트너 비자’를 받아 함께 지낼 수 있다. 외국인이 독일에서 혼인신고를 하는 일이 간단치는 않다. 한국 관공서에서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고 번역은 물론 공증, 아포스티유까지 받아야 하며, 독일 법원에서 서류를 심사해 혼인신고일자를 받기까지 최소한 서너 달 걸린다. 한국에선 법적으로 불가능하고, 커밍아웃도 위험한 동성 커플들에게 이 정도 번거로움은 감수할 만할지도 모른다.


엔(n)잡러로 살아가는 것


마지막으로 엔(n)잡러가 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 가지 이상의 직업을 동시에 수행하며 여러가지 소득원과 전문성으로 돈을 벌고 자아를 실현하는 방식이다. 보수적인 독일 관청에서 반기지는 않지만, 적절한 증빙서류가 있다면 두 가지 이상 직업으로 노동 비자를 받을 수 있다.


가령 내가 2018년부터 소지하고 있는 프리랜서 노동비자에는 세 가지 직업이 적혀있다. 저널리스트, 통번역가 그리고 이벤트 매니저. 처음부터 엔잡러를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환경대학원을 다닐 때 시작한 통번역 일은 졸업 이후에 더 늘어서 환경 연수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것으로 이어졌는데, 해외여행 성수기/비수기에 영향을 받아 일거리가 들쑥날쑥했다. 자연히 다른 일도 병행하게 됐다.


‘월경 프로젝트’을 벌여 젠더와 이주를 주제로 글 쓰고 활동하는 일은 ‘저널리스트’라는 타이틀로 요약되었다. 한국에서 했던 문화기획 경험을 살려 지역 청년들과 축제를 열거나, 문화공간에서 전시회와 공연을 운영하는 일은 크게 돈이 되지는 않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사회에 참여하면서 생동감과 유대감을 주기 때문에 계속하고 싶다. 비자담당 공무원은 나의 설명을 듣고는 ‘이벤트 매니저’라고 적었다.


글쓰기 외에 또다른 언어로 나를 표현하고 유럽에서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시각예술 작업을 시작했다. ‘Harita Moonrider Arts’라는  1인 브랜드를 만들었다. haritamoonrider.com. 인스타그램: /haritamoonrider


한동안 나는 ‘엔잡러’로 살아가는 스스로가 못마땅했다. 여전히 전문가가 대우받는 사회에서 뭔가 부족하고 애매한 위치인 것 같아 정규직 일자리를 잡으려고 애쓴 적도 있다. 한 가지에 매진하지 못하는 것을 게으름이나 과욕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들은 종종 서로 영감과 자극을 주면서 시너지를 내기도 하고, 일의 가치는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나 이력서 문구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여러가지 얼굴로 일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 만나게 되었다.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하면서 일렉 기타를 수리하는 필릭스, 시청 시간제 공무원으로 일하며 밴드 공연으로도 수입을 얻고, 선거 때는 당직자로 뛰는 미하엘. X-Ray 촬영기사로 직업훈련을 받으면서 집 근처 바에서도 즐겁게 일하는 친구 나디아처럼 말이다.


엔잡러는 이주민의 특정한 생활방식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늘고 있는 직업 트렌드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한국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정규직 채용이 점점 줄어들고, 석박사까지 공부해도 취직이 어렵다. 사람들은 점점 더, 월급만큼이나 번 돈을 쓸 수 있는 양질의 여가 시간을 중요시한다. 유튜브나 인터넷 강의로 뭐든 쉽게 배울 수 있어서 새로운 직업에 대한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엔잡러는 풀타임 고용인의 복지 대상에서 제외되어 수입이나 혜택이 적은 게 단점이지만, 대신 남들은 돈을 쓰는 취미활동으로 돈을 벌고 하고 싶은 일들을 두루 실현하며 뿌듯하게 산다.(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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