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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었어요?” 11년차 ‘여행자’로 사는 베를린의 여성 셰프
<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미혜: 셰프 및 독립영화 프로듀서, 베를린
※ 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국외 이주가 늘고 있습니다. 파독 간호사로 시작된 한국 여성의 독일 이주 역사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다>는 독일로 이주해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을 만납니다. 또한 이들과 연관된 유럽의 여러 젠더와 이주 쟁점에 대해서도 함께 다룹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미혜 이주 이력서
이주 11년 차.
2000년부터 6개월 일하고 6개월 여행하는 노마드 인생 시작
2009년 런던으로 어학 비자 받고 도착
2011년 우연히 여행 왔다가 베를린에 거주 시작
2012년 젠트리피케이션 주제로 개인 전시회 “APART” 개최
2013년 주독한국문화원 ‘디아스포라’ 영화제 프로그래머
2012년~현재 독립영화 프로듀서
2017년~현재 레스토랑 KIMCHI PLANET 공동 운영
베를린에 있는 레스토랑 김치플래닛(KIMCHI PLANET) 앞에 셰프 미혜가 서있다. ⓒ채혜원
베를리너는 물론 여행자에게도 사랑받는 베를린의 인기 있는 동네, 크로이츠베르크. 동네 한가운데 흐르는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한국 레스토랑 ‘김치플래닛’(KIMCHI PLANET)이 나온다. 실내테이블이 다섯 개 정도로 작고 고즈넉한 김치플래닛에서는 비빔밥, 잡채, 불고기, 닭갈비 등 대표적인 한국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오픈형 부엌에서는 셰프가 혼자 일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손님을 맞이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및 이동 제한조치(lock down)로 가장 크게 변화한 모습은 ‘김치플래닛’처럼 동네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것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던 이웃들의 공간이 한순간 없어졌다. 지난 5월 중순부터 규제가 완화돼 조금씩 예전 모습을 되찾고는 있지만, ‘김치플래닛’도 현재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테이크아웃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다.
‘김치플래닛’의 셰프인 미혜는 지난 3월 중순부터 평범한 일상을 잃었다.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 대책을 마련한 덕에 3개월간 가게 월세와 보험료 부담은 덜었지만, 테이크아웃 서비스만 제공하면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혜는 잊지 않고 가게를 들르는 손님을 위해 주중에 매일 가게를 지키고 있다.
‘김치플래닛’의 고객은 대부분 동네 주민이다. 그러다 보니 미혜는 손님이 올 때마다 그 손님의 구체적인 취향까지 다 알고 있다. 라면을 주문할 때 스프를 조금만 넣고 야채를 많이 넣어 먹는 어린이 손님, 올 때마다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는 터키 손님, 점심시간마다 직장 동료와 함께 ‘오늘의 메뉴’를 즐기는 건축사무소 손님들 그리고 가게 옆 여성공동주택 ‘베기네호프’에 사는 할머니 손님들까지. 남녀노소 모두 찾는 미혜의 가게를 보면 자연스레 영화 <카모메 식당>이 떠오른다. 핀란드 헬싱키가 아닌, 독일 베를린의 카모메 식당.
‘돈’ 아닌 ‘시간’ 선택, 베를린에서 한식 셰프로 사는 일상
미혜가 처음 다른 사람을 위한 요리를 시작한 것은 교회였다. 1990년대 후반 패밀리 레스토랑이 한참 인기가 많았을 때, 미혜가 다니는 작은 교회에서는 아동과 청소년을 위해 김밥 등 분식을 자주 사주곤 했다. 하지만 미혜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마음에 걸려 교회에 제안했다. 아이들에게 사주는 식비로 재료를 사게 해주면,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요리를 만들어보겠다고. 그때부터 미혜는 아이들을 위해 멕시코, 미국, 호주 등 다양한 패밀리 레스토랑 메뉴를 직접 요리해줬다.
넉넉지 않아도 베풀고, 가슴 아픈 이야기에 함께 눈물 흘리는 공감력을 지닌 미혜의 요리는 늘 따스하다. 2016년 세월호 유가족이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가게로 초대해 따뜻한 밥상을 차렸고, 오래전부터 독일에서 민주화운동을 해온 선생님들을 위해 종종 고향의 음식을 선물하며, 주변의 가난한 아티스트 친구들을 위해 언제든 가게 문을 열어놓는다.
한식당 ‘코레’는 2017년부터 미혜가 셰프로 일하는 ‘김치플래닛’이 되었다. ⓒ김치플래닛
현재 미혜가 셰프로 일하고 있는 ‘김치플래닛’은 이전에 파독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이 은퇴 이후 운영하는 ‘코레’(core)라는 다른 한식당이었다. 미혜는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다가 선생님들이 가게를 팔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미혜는 첫눈에 반한 이 가게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가게 권리금을 혼자 내기 어려운 데다 가게 운영과정에서 처리해야 하는 복잡한 서류 작업을 해줄 동업자가 필요했다. 마침 상황이 맞는 재독 교포 1.5세 친구가 동업 제안을 받아들였고, 2017년부터 미혜는 김치플래닛의 셰프가 됐다.
코로나 이전에 가게를 여는 시간은 월~금 12시부터 오후 6시였다. 보통 오전 9시, 재료 준비로 미혜의 일과가 시작되고 12시부터 3시까지 손님들로 테이블은 계속 차 있다. 3시 이후 조금 시간이 나면 김치를 담그고 각종 양념을 만들며 다음날 쓸 고기를 썰어놓는다. 이후엔 정리와 청소로 일을 마무리한다. 고정 메뉴는 비빔밥, 불고기, 잡채 등이지만 시즌별로 고등어 김치찜, 비빔국수, 갈비, 김밥 등 특별 메뉴도 선보인다. 미혜는 “식당 일의 대부분은 요리보다 정리하는 일이라, 계속 치우고 닦고 청소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고 말했다.
미혜는 셰프 일을 하며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 점심 장사만 하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진 못해도 대신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 손님도 거의 단골이라 가게에 가까운 친구들이 놀러 오는 기분이다. 단골손님 외에도 독일 사회 내 한식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집밥처럼 한식을 즐기는 나이 드신 손님이나, 타지 생활하며 가장 그리운 한식을 먹고 싶어 들르는 한국인 손님도 많다.
여느 식당처럼 점심, 저녁 장사를 다 하면 돈은 더 많이 벌 수 있지만 미혜는 돈 대신 점심 장사만 하는 ‘시간 부자’를 택했다. 동업자 외에 가게 오픈 때부터 함께 일해 온 든든한 지원군인 직원들도 큰 힘이 된다.
“한국에서는 돈도, 시간도 없었지만 베를린에서는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시간 부자가 됐어요. 사계절은 물론 하루하루 다른 온도와 바람, 하늘색의 변화를 천천히 보고 느끼며 살아요.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주어져요. 물론 지금도 뭔가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과 불안은 있어요. 서른 살 아무 생각 없이 한국을 떠났는데, 어느덧 마흔이 넘었으니까요. 늘 계획 없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지 않을까 싶어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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