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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병역, ‘거부’와 ‘복무’ 사이

페미니즘과 군대 그리고 여군의 위치를 고민하다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발굴한 여성의 역사: 가시화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자취와 기억을 공적 담론의 장으로 건져 올리는 여성사 쓰기.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페미니스트 평화운동가이자 연구자인 신시아 코번(Cynthia Cockburn)은 여성들 사이의 ‘위치성’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여성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전쟁과 민족주의, 평화에 대한 사유가 다르고 활동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민족주의를 평화운동의 자원으로 여기는 여성도 있지만, 민족주의는 전쟁을 자극하는 광기라며 비판하는 여성도 있다.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군대에 가는 여성도 있고, 군대 없는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여성도 있다.(신시아 코번 지음, 김엘리 옮김 『여성, 총 앞에 서다』 삼인, 2009) 만약 이분화된 두 극단의 확고한 입장만을 대비시켜 언급한다면, 모순적인 현실을 떠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그 사이를 무한 왕복하며 머뭇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지우게 된다.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지음, 여지우/최정민 옮김, 전쟁없는세상 엮음 『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경계, 2018) 출간 북콘서트 중에서. (전쟁없는세상)


변희수 하사의 눈물과 여군의 위치


필자는 페미니스트로서 병역거부 운동을 지지하며, 군대가 없어져야 한다고 외쳐온 사람이다. 그래서 트랜스젠더 여성 변희수 하사가 여군으로서 복무를 이어갈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군인이 될 기회를 달라”며 눈물의 거수경례를 하던 날, 순간적으로 당혹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가 군대 내에서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고 성소수자의 자리를 확보하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곧 납득이 되었다. 무엇보다 변 하사가 휴가 중에 성확정 수술을 받고 돌아오도록 대대장이 허락했다는 것, 그리고 동료 군인들이 그녀를 지지해 주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진심으로 기뻤다.


하지만 결국 육군은 변 하사를 상대로 의무심사를 진행했고, ‘심신장애 3급’으로 현역복무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여 강제 전역을 명령했다. 한국의 군대는 견고한 성별 이분법과 ‘정상적 신체’라는 편견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그러나 변희수 하사의 주장은 한국의 군대로 하여금 성소수자와의 공존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둘러싼 논쟁과 함께 우리 사회에 ‘여성’의 범주를 되묻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각각 여군의 일상을, 여대생의 안전을 위협하는 ‘침입자’라는 낙인을 찍으려는 움직임도 포착되었다.


변 하사의 강제 전역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군들의 거부를 그 이유로 들었다. 과연 그럴까? 이와 관련해 군인권센터 소장은 tbs 교통방송 라디오 ‘김지윤의 이브닝쇼’와의 인터뷰(1월 22일)에서 현역 여군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언제부터 우리 인권을 그렇게 걱정해줬냐, 남군하고 생활하는 게 불편하면 우리를 위해서 남군들 다 전역시킬 거 아니잖나. 소수자끼리 싸움 붙이는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는 것.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일단 숙소는 영외 숙소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그리고 화장실을 같이 쓰는 건, 어차피 다 칸막이가 돼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진 순간, 변 하사를 받아들이는 데는 ‘영외’와 ‘칸막이’라는 조건이 붙는구나 싶었다.


그날, 여군의 ‘위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위치성’은 권력 관계를 암시하는 말이다. 한 개인이 어떤 계급, (인)종, 젠더, 장애의 차원에 위치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가지면서, 권력이 상대적으로 강하거나 약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신시아 코번 지음, 『여성, 총 앞에 서다』(From where we stand) 표지 이미지


신시아 코번이 쓴 『여성, 총 앞에 서다』의 원제목은 From where we stand(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서 있는 곳’(where we stand)은 변화가 가능하고 고정되지 않은 자리에서 동시에 여러 질문을 향해 열려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여기에 서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곳으로부터’(from where)라는 표현은 여러 일들이 일어나는 변화의 지평을 바라볼 새로운 해석이 필요함을 환기한다. ‘서다’(stand)라는 표현은 요지부동의 태도가 아니라, 불확실하고 임시적인 거점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서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사유는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여성들이 어떻게 서로의 자리를 비추며 당면한 공동의 문제를 함께, 그러나 다르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페미니즘이 모든 차별적 구조와 권력에 저항한다고 할 때, 페미니즘과 병역거부 운동 그리고 여군은 어디까지 함께 갈 수 있고, 어느 지점에서 어긋나는가. 병역을 거부하는 여성들과 군에 복무하는 여성들이 다른 위치성에서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계속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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