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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 취득 후, 동성 파트너와 결혼을 앞두고 있죠

<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태선: 글로벌 기업 코디네이터, 에센


※ 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국외 이주가 늘고 있습니다. 파독 간호사로 시작된 한국 여성의 독일 이주 역사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다>는 독일로 이주해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을 만납니다. 또한 이들과 연관된 유럽의 여러 젠더와 이주 쟁점에 대해서도 함께 다룹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태선 이주 이력서


이주 7년차.

2011년 네덜란드에서 1학기 교환학생

2012년 8월 한국에서 국제관계학 학사 졸업

2013년 10월 베를린 자유대학-공과대학 공동 석사과정 ‘환경정책과 계획’ 입학

2016년 4월 글로벌 기업 IT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입사

2019년 8월 독일 영주권 취득, 올해 4월 동성(여성) 파트너와 결혼 예정


태선은 2013년에 베를린으로 건너와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태선에게 외국 생활은 큰 도전이라기보다는 ‘다들 한 번쯤 해보는 것’에 가까웠다. 대학 전공이 국제관계학이라 주변 분위기가 더욱 그랬다. 졸업을 1년 앞두고 네덜란드로 한 학기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난 뒤, 대학원 유학 결심을 굳혔다. 베를린 자유대학과 공과대학이 공동으로 개설한 새로운 석사과정 ‘환경정책과 계획’(Environmental Policy & Planning)에 1기 학생으로 들어갔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학생들이 전부 영어로 소통하고 공부하는 곳이었다.


대학원에 입학할 무렵만 해도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태선이 생각하는 진로였다. 그런데 이 분야에 대해 알아갈수록 ‘국제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실상을 잘 모른 채 그저 주변의 영향을 받아 그런 목표를 세웠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당시는 반기문 씨가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이 화제가 되면서 한국에서 국제기구 진출 관련 정보가 부쩍 많아진 시기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국제기구 현장 요원으로 케냐 오지에 식수를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맡는다면 낯선 지역에서 장기 체류하면서 지역민과 소통하는 뛰어난 적응력과 모험심이 필요한데, 저는 이런 자질에 대한 고민을 안 했던 거예요. 그리고 나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가족, 친구와 멀리 떨어져서 생활하려면 인류사회에 대한 사명감이나 남다른 봉사 정신이 있어야겠죠.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 행복할까?’ 물었을 때 아니라는 답이 빨리 돌아왔어요. 저는 ‘국제’라는 단어,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에 혹해 막연히 스펙만 쌓고 있었던 것 같아요.”


졸업 후 태선은 독일에 남아 직장생활을 해보기로 하고, 독일 대학 졸업자에게 발급하는 18개월짜리 구직 비자(Aufenthaltserlaubnis zur Arbeitsplatzsuche)를 받았다. 전공을 살려 환경 연구소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쉽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대신 에센(Essen)시에 있는 글로벌 건설회사에 최종 합격했다.


에센에서 동성 파트너와 함께 꾸린 새로운 생활


그즈음 생애 처음으로 동성 애인이 생겼다. 태선의 적극적인 구애로 둘은 사귄 지 1년여 만에 에센에서 함께 살게 됐다. 초반에 애인이 한국으로 귀국해서 둘은 한동안 장거리 연애를 해야 했는데, 태선은 애인에게 다시 독일로 오라고 설득했다. 애인이 자신을 믿고 와 준 데다, 낯선 분야에서 직장생활도 시작하면서 태선은 강한 책임감을 갖고 새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여행지에서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은 태선과 파트너의 모습.


“저는 제 새로운 성적 지향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그냥 적응한 것 같아요. 지인들, 가족들한테도 바로 알렸어요. 이미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었는데 뒤늦게 ‘발견’했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면 중학교 때 HOT(1990년대 남성 아이돌 그룹) 코스프레를 하는 언니를 좋아했고, 동성 친구에게 사귀자는 고백을 받기도 했는데… 그냥 이성애자로 사회화됐던 거죠. 2015년 여름에 베를린에서 지금 애인을 만났는데 너무 설레는 거예요. ‘덕질’하듯이 그 친구 아이디를 포털에 검색해서 온라인상 행적을 살펴보다가 양성애자라는 걸 알아냈어요. 아, 내가 고백해도 되는 사람이구나, 하곤 가차 없이 고백했죠.”


다만, 태선은 직장에서만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 차별이나 불이익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사적인 얘기를 안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간혹 연애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싶지 않아 그냥 ‘없다’고 답한다. 일할 때는 능력과 맡은 역할로 인정을 받고 싶지, ‘아시아인’ ‘한국인’ ‘젊은 여성’ 같은 정체성의 ‘해시태그’는 떼고 싶다. 처음 만나자마자 국적부터 묻는 이들에겐 불쾌감을 표시하는 편이다. 최근 팀원 3명이 새로 와서 돌아가며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태선은 일부러 출신지를 말하지 않고 소속과 직무만 밝혔다.


일터에서 살아남기…인종, 국적, 성별 꼬리표는 거부


태선은 점심시간처럼 사적으로 서로 알아가는 자리에서도 한국에 대한 화제보다는 독일 생활이나 식사 메뉴같이 현재 동료들과 공유하는 것들을 주로 소재로 삼는다. 인종, 성별, 국적의 차이를 드러내는 대화는 불필요하다고 느껴져 점점 안 하게 된다. 독일에 사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내 이름으로 살고 싶어서’인 태선이 독일에서 유색인종 외국인으로 일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마련한 행동규범이다.


태선이 느끼기에 직장생활은 대체로 ‘널널하다.’ 올해 7월 유럽연합 차원에서 강화된 탄력근무제에 따라 근무시간을 더욱 세분화해 기록하게 되었고, 재택근무를 포함한 초과 노동시간은 휴가로 차곡차곡 적립된다. 근무시간이 많아지면 타임 트래킹 프로그램에 경고 알람이 뜨고, 인사담당자 및 직속 상사와 개별 면담을 통해 업무량을 조정하기도 한다. 직장에 모든 에너지를 쏟지는 않았기에, 태선은 여가 시간을 활용해 독서 모임에 나가거나 친구들과 전시회에 다녔다. 여자 셋이 술을 마시며 미술 전시회에 다녀온 소감을 나누는 ‘미수ㄹ다’라는 팟캐스트를 제작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가 주 제품인 회사의 IT프로젝트 부서에서 태선의 직책은 ‘코디네이터’로, 팀 매니저를 도와 다양한 회의자료를 만들고 일정표를 업데이트한다. 협력 부서의 담당자들과도 수시로 소통하며 프로젝트가 기한 내에 끝나도록 제반 관리를 맡는다. IT 부서에서 관장하는 프로젝트는 예를 들어, 발로 뛰며 고객을 만나는 영업 담당자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디지털 툴을 개발하는 것이다. 백 오피스에서 각종 전산 처리에 쓰는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고, 아직 시스템이 미비한 작은 동유럽 지부들에 이를 보급하는 것도 주된 프로젝트이다.


태선이 2016년부터 근무하고 있는 글로벌 건설회사 사옥이 오른쪽에 보인다.


태선은 입사 전만 해도 IT 분야에 문외한이었는데,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업무 특성상 여러 부서를 오가며 다양한 직원들과 일하는데, 그중 유독 ‘케미’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즐겁다. 하지만 지난 3년 반 동안 회사에서 ‘소름 끼치는 재미’를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여성 비율이 너무 적어서 이 회사에서 큰 비전을 보기 어려웠다. 본사 차원에서 여성 관리직 비율을 12%까지 올리는 것을 ‘지속가능 경영 목표’로 내세울 정도다. 유일한 롤모델이었던 여성 상사는 6년째 승진을 못 하고 매니저로 있다가 결국 다른 회사의 더 높은 직급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주권 취득을 계기로, 진로와 결혼에 대해 고민하다


태선은 2019년 8월에 영주권을 취득했다. 독일 대학을 졸업하고 현지에서 취업하면 노동 비자로 체류권이 전환되는데, 이후 세금과 연금 보험을 2년 이상 납부할 때 영주권 신청 자격이 충족된다, 태선은 외국에서 온 이른바 ‘고급 인력’을 우대하는 이 제도를 활용해 큰 무리 없이 영주권을 받았다.


이는 태선에게 ‘독일 생활이 이제 좀 안정되었다’는 느낌으로 다가왔고, 비로소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인지 여유를 갖고 성찰해보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콘텐츠 사업을 해볼 생각으로 웹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스타트업 이벤트도 찾아다녔다. 요즘은 35살이 되기 전에 사업을 런칭하고 10년 뒤에는 성공 궤도에 올랐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몇 시간이고 하는 일에서 사업 모델을 찾아보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웹툰 마니아인 제 모습이 보여서 독일에서 웹툰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창업은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라는데, 아직은 자금, 초기 개발, 법적 기반, 사무실 공간, 개인 생활비 등등 문제투성이예요. 그래도 여기저기 많이 헤집고 다녔어요. 만화 작가들을 무작정 찾아가서 디지털 작화도 하겠느냐 물어보고 다니기도 했죠.”


태선의 독일 생활은 앞으로 ‘가족’을 만들면서 더욱 안정될 전망이다. 오는 4월, 동성 파트너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 이미 4년째 동거 중, 사실혼과 다름없다고 생각해 독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2017년 6월)되고 난 후에도 크게 혼인 의향이 없었는데, 자신보다 체류 상황이 불안한 애인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결혼을 하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풀타임 노동자이며 영주권자인 태선의 공공의료보험과 체류권을 둘이 같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태선은 오는 4월 지난 4년간 함께 살아온 동성 파트너와 독일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발급하는 혼인관계증명서 등을 독일어로 공증해 시청에 제출했고, 법원의 서류 심사를 거쳐 혼인신고일을 정했다. 요즘 독일 젊은 커플들처럼 신고를 마친 뒤 관청 앞뜰에서 지인들과 간단하게 세레모니를 하고 장소를 옮겨 피로연을 할 계획이다. 두 사람의 결혼은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독일에서 부부로 인정받고 살아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태선은 상견례도 하고 싶고, 결혼식에 양쪽 부모님도 초대해 꼭 축하를 받고 싶지만, 그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다. 현재는 애인의 어머니만이 “내 딸이 행복하다면 나는 괜찮다”는 입장이고, 태선의 부모님은 딸의 동성애 문제를 조용히 회피하고 부정하는 중이다.


태선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할 당시 사실 아무 걱정이나 고민이 없었다. 당연히 인정받을 줄 알았다. ‘뭐든 네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면 된다는’ 것이 부모님의 일관된 교육관이었고, 아빠와 태선은 특히 보기 드물게 친밀한 부녀였기 때문에 부모님과 반목하기보다 지지를 받는 것에 익숙했다. 태선은 지금도 낙관적이다. 겨울 휴가 때 한국에 가서 부모님과 진지하게 결혼 문제를 상의하면 이해받으리라 믿고 있다.


태선은 한국에 있을 때는 페미니즘과 퀴어 이슈에 큰 관심이 없었다. 독일에 와서 퀴어 커뮤니티에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퀴어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미처 실감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두 사람은 독일 길거리에서는 자연스레 스킨십을 하지만 한국에 가면 애인의 제지를 받아 태선도 주변 눈치를 보게 된다. 물론 이는 독일에 호모포비아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없는 외국에서 느끼는 해방감, 그리고 속된말로 ‘개썅마이웨이’가 보편적인 개인주의 문화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태선은 제도적인 권리가 보장된 독일보다는 한국의 열악한 동성애 이슈에 더 관심이 간다.


독일 사회의 ‘여성 인권’ 안에 과연 나는 포함되는가?


태선은 ‘실업자가 되더라도 선진국에서 되는 게 낫다’고 여기며,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준말,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지켜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당당하게 결혼도 할 수 있는 독일에서 사는 것이 대체로 만족스럽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자각하게 된 자신의 소수자 정체성과, 길거리에서 숱하게 당하는 ‘캣콜링’(catcalling, 유색인종 여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등의 언어 성희롱)은 “독일 사회의 상식적인 ‘여성 인권’ 안에 과연 나는 포함되는가 의문”을 갖게 한다.


“에센이라는 도시요? 되게 구려요. 루어게비트(Ruhrgebiet, 과거 중공업 산업시설이 몰려있던 독일 중서부 지역으로, 지금도 인구밀집 지역으로 꼽힌다)에 속하는 도시라서 북쪽 지역에 산업화가 남기고 간 흉터 같은, 삭막한 풍경이 많아요. 무엇보다 양극화가 심한 도시예요. 남쪽에 멋진 호수가 있는데 그 주변에는 가족 중심의 윤택한 분위기예요. 단독 주택들도 많고. 그런데 저 같은 외국인이나, 유학생, 젊은 사람들, 이주 난민들은 중앙역 기준으로 북쪽에 많이 살아요.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니하오’ 조롱 같은 인종차별을 거의 겪은 적이 없었는데 에센으로 온 뒤로 질릴 만큼 너무 많이 당하고 있어요.”


태선은 작년 봄 여자친구와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10대 청소년 무리에게 ‘니하오’로 시작된 심한 조롱을 또 당했다. 태선뿐 아니라 여자친구도 독일어가 서툰 외국인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혼자 담배를 피울 때 청소년들의 공격을 받았다. 태선은 그날 여느 때보다 더 심하게 화가 났고, 그 기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겠다’ ‘가만히 있어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행동에 나섰다. 먼저 다른 지인들이 겪은 인종차별 및 성차별 사례를 모으는 설문 조사를 했고 ‘캣콜링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여자친구는 설문 응답자들이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사진작가인 애인은 촬영과 편집을 맡고 태선은 관련 경험이 없음에도 선뜻 제작과 연출에 도전했다. 프로젝트 취지에 공감한 주변 친구들이 연기, 음향, 배경음악을 담당하며 힘을 보태왔다. 올해 봄 결혼 전까지 다큐를 완성해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피해 당사자끼리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인들과 다른 현지 외국인들도 함께 보고 문제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독일어와 영어 자막도 꼭 넣을 계획이다.


한국 여성들이 겪은 차별 경험을 담은 다큐 <캣콜링 프로젝트>의 엔딩씬을 촬영한 후 태선이 제작진 및 출연자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한인 여성 공동체와 “캣콜링 프로젝트”에 착수하다


적극적이고 명쾌한 성격의 태선은 이처럼 새로운 일에 남들보다 빨리 뛰어들고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는 편이다. ‘캣콜링 프로젝트’는 일상에서 겪는 지속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태선에게 창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고 보면 전공 분야로 취업이 잘 안 될 때 진로를 바꾸고, 첫 동성 파트너와 더 행복한 삶을 위해 결혼을 결심한 것도 모두 ‘태선다운’ 적극적인 삶의 방식이다.


“세 걸음 더 뒤로 가시고요, 걸어오는 장면부터 다시 찍을게요.”

“컷, 오케이- 잘 나온 것 같은데 같이 확인해볼까요?”


어느 화창한 늦가을 날, 베를린의 한 호숫가에서 촬영이 한창이다. 태선이 만드는 다큐에 나오는 7명의 인터뷰이 중 한 명으로서 나도 카메라 앞에 섰다. 제작팀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완성된 다큐는 태선의 결혼 피로연 때 하객들과 다 같이 보아도 좋겠다. 두 사람이 부부로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발맞춘 끝에 세상에 내놓는 첫 번째 결실이니까. 그리고 또한 두 사람이 속한 여성 공동체가 합심해 만든 축복 같은 추억이니까.


태선은 이번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붙을지 모를 ‘퀴어 여성’이라는 해시태그조차 탐탁지 않다고 했다. 누군가의 성적 지향이 화젯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동성애도 ‘그럴 수도 있지 뭐’ 정도의 별 것 아닌 평범한 일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태선은 궁극적으로 ‘태선,’ 그저 자기 이름으로 살고 싶다.


독일의 동성결혼 제도


독일은 2017년 7월부로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당시 다수당이며 보수적인 성향의 기독민주당(CDU) 의원 75%가 반대표를 던졌지만, 전체 과반수가 조금 넘는 그 외 정당 의석들에서 압도적으로 찬성표가 나와 법안이 통과되었다.


법안이 발효된 당해년도 10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레즈비언 5,067쌍, 게이 6,080쌍이 혼인신고를 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2018년 말 누적 동성 부부는 32,904쌍인데, 그 가운데 여성-여성 부부는 16,138쌍으로 전체의 49%이다.(출처: 일간지 Die Zeit 2019년 8월 19일자 보도) 독일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 동성 부부 숫자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동성결혼법이 연방 의회에서 최종 통과될 무렵,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기사. ‘무지개 가족’(Regenbogenfamilie, 동성 커플과 그들의 아이로 구성된 가족을 칭한다)에서 자란 아이도 별 다를 바 없는 발달과정을 보이며 건강하게 자란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 https://bmfsfj.de)


2001년부터 독일 정부는 동성 커플이 ‘동성 공동체’(gleichgeschlechtliche Lebensgemeinschaft)로 등록해 결혼과 유사한 사회보장 및 세금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해왔다. 단, 자녀 입양법에는 변화가 없어서 동성 커플이 법적으로 아이를 갖는데 제약이 있었다.


레즈비언 커플은 둘 중 한 사람이 친모이면 반려자로 등록된 동성 파트너와 자녀를 함께 기를 수 있었다. 하지만 게이 커플의 경우는 이전에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둔 자녀에 대한 부권 행사 외에 ‘입양’은 불가능했다. 대리모를 두는 것도 불법이다. 2017년부터 시행된 동성결혼법은 혈연관계가 없는 아이와 동성 커플이 가족이 될 수 있게 한다는 점, 특히 게이 커플에게도 자녀 입양의 길을 전면 열어줬다는 데 차별점이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하리타(정세연). 현재 독일 라이프치히 거주. 일다에서 <29살, 섹슈얼리티 중간 정산> <우리 자신의 목소리로–독일 여성 난민들의 말하기> <하리타의 월경만남>을 연재했으며, 저서로 <오늘부터 내 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어>(동녘, 2017)가 있다. ‘이주’라는 삶의 모험을 함께하고 있는 이웃 여성들에 대한 큰 사랑과 존경이 이번 연재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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