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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청년들, 거리의 외침으론 만족 못해 ‘국회로!’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X <2020여성출마프로젝트>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Knock down the house, 2019년, 감독 레이첼 리어스)은 작년 11월 미국에서 치러진 중간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민주당 경선(예비선거)에 뛰어든 4인의 여성들의 선거 과정을 담고 있다. 올해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넷플릭스에서 천만 달러(약 116억 원)를 내고 배급권을 획득할 만큼 ‘핫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그 이유는 바로 등장인물 때문이다.


작년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 뛰어든 4인의 여성들의 선거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Knock down the house) 포스터 ©Netflix


민주당 경선에서 당내 하원의원 서열 탑3로 꼽히는 거물 정치인을 상대로 큰 파란을 일으키며 승리, 결국 11월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꺾고 만 29세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관련 기사: ‘소수자들, 자기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을 선택하다’ http://ildaro.com/8351)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은 지금 미국에서 누구보다도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손꼽히는 그녀가 정치인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세간의 관심을 끈 이 다큐는 ‘정치의 미래를 보여줬다’는 등의 호평을 받았다. 이제 유명 정치인이 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이후, 줄여서 AOC) 뿐만이 아니다. 막강한 권력과 돈을 가진 거물 정치인들을 상대로 무모한 도전장을 던진, 정치 경험도 없으며 가진 것도 없는 여성들이 왜 도전을 시작했으며 어떻게 그 도전을 끌고 가는지 보여 줌으로써 보는 이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이 다큐에 등장하는 4명의 주인공과 같은 여성 정치인의 등장과 그들의 이야기를 기다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래의 정치’ 향해 출사표 던질 여성 청년들을 찾아서


한국에서도 작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신지예 후보, 제주도지사 후보로 나섰던 고은영 후보를 비롯한 여성 청년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기존의 정치인을 대표하는 ‘중년 이상의 남성’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고, 아쉽게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한국 정치에서 여성/청년의 현황. (출처: 녹색당 2020여성출마프로젝트 우.정.해 3편 ‘여성 정치인이 많아지면’)


그렇다고 그 도전이 의미 없다고 치부할 수 없다. 거기서 멈출 필요도 없다. 신지예와 고은영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 녹색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2020여성출마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 “국회의 얼굴을 바꾸자”며 2020년 총선에 출마할 여성들을 직접 양성하겠다는 이 프로젝트가 궁금했다.


대중들을 대상으로 ‘정치와 권력’에 대한 연속 강의를 진행 중이며, 5월 23일엔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에서, 앞서 소개한 다큐멘터리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상영회를 열어 토론을 진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이야기를 해 볼 타이밍이다 싶어 이 프로젝트를 움직이는 사람을 만났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고 지금은 <2020여성출마프로젝트>를 널리 알리는 “치마사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작년 선거에서는 서울시장선본 홍보국장이었으며 지금은 프로젝트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이은정 씨, 작년 선거에선 한 명의 유권자였고 지금은 이 프로젝트의 교육을 맡은 백희원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을 만나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과 <2020여성출마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큐멘터리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과 녹색당의 <2020여성출마프로젝트> 얘기로 열띤 대담을 나눈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이은정 녹색당원, 백희원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사진: 일다 박주연 기자)


거리의 외침 이후, “올해가 여성들에게 정말 중요한 해”


다큐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영화를 본 소감과 인상 깊었던 인물 혹은 장면에 대해 묻자, 지난 선거에서 각자의 위치가 드러나는 흥미로운 대답이 나왔다.


신지예 공동운영위원장은 “미국에선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서 자신의 정책이나 공약을 알릴 수 있는데, 후보자가 유권자들과 실제로 눈을 마주치는 선거를 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고 말해, 선거에서 직접 후보로 뛴 경험이 어디 안 가는구나 싶었다.


선거 캠프에서 후보 홍보를 담당한 이은정 씨의 대답에서도 그 경험과 시선이 드러났다. “광부의 딸로 자란 폴라 진과, 의료보험 시스템 문제로 딸을 잃은 에이미가 출마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개인의 역사가 출마하기까지의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눈길이 갔어요. 정치/권력을 나의 것이라 인식하고 내가 출마를 해야겠다,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그 과정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한편, 지방선거 당시 유권자 입장이었던 백희원 공동정책위원장은 ‘선거 캠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장면들이 좋았다’고 답했다. “폴라 진이 연설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을 때 그를 격려하는 스텝이 있었는데, 후보자한테 준비된 연설문을 이제 그만 보고 그냥 당신답게 당신의 이야기를 전하면 된다고 격려하던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다양한 개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기 자신을 저버리지 않고 출마할 수 있는 곳이 녹색당”이라 소개하는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출처: 2020여성출마프로젝트 우.정.해 6편 : ‘우리가 녹색당에서 목소리 내는 이유’)


미국과 한국은 사회 분위기도, 정치 환경도 다르다 보니 차이점들도 눈에 보였고 부러울 점도 있었다. ‘AOC의 탄생’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AOC 보면 움직임도 큰 편이고 목소리도 크고 사실 상대방한테 삿대질도 하고 그러잖아요. 화내면서 말할 때도 많고.(”맞아 맞아”하며 다같이 웃음) 한국에선 과연 그게 받아들여질까요?”


방송에 출연했을 때 조금만 무표정으로 있어도 ‘화나셨어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며 한탄을 한 신지예 공동운영위원장은 한국에선 ‘여성/청년’의 위치가 더 취약하며 정치인 후보자로 나섰을 때 ‘상품’으로 보는 경향도 더 강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AOC의 탄생’이 배경이 된 불평등한 사회환경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도 미투(#MeToo) 운동이 있었고, 사실 훨씬 그 전에 ‘아니타 힐’ 사건(1991년 변호사이자 법대 교수였던 흑인 여성 아니타 힐이 클레런스 토마스 연방대법관 지명자를 검증하는 청문회에서 과거 상사였던 그에게 당한 성희롱을 고발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용기와 성희롱 고발 이후 겪은 ‘2차 피해’로도 유명하며, 지금까지도 미국 정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도 있었죠. 작년 가을, 브랫 캐버노 연방대법관 후보 청문회 때 그를 성폭력 가해자로 고발한 피해자 증언이 있었는데도 결국 대법관으로 채택된 일이 많은 여성들을 분노케 했고 정치에 뛰어들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걸 생각하면, 한국과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올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신지예 공동운영위원장은 “작년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서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정치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었다. 미투 운동 이후 발의된 관련 법안은 백 개가 넘지만, 대다수가 멈춰있는 국회와 함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장학썬’(장자연 & 김학의 & 버닝썬) 사건마저 흐지부지되고 있는 이 상황을 이제 정말 뒤집을 때가 되었다는 거다. “와장창 깨뜨리며 한번 좀 떼로 들어가 봐야죠.”


2018년 5월 31일 지방선거 선거기간 첫날,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녹색당 고은영 씨가 제주시청 앞에서 응원 나팔을 통해 연설 중인 모습. (출처: 고은영의 녹색정치)


여성 청년 정치인, 이제 정말 나올 때 되었잖아요?


스포일러이긴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4명의 도전자 중 AOC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경선에서 낙선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 여전히 열심히 각자의 의제를 가지고 활동 중이다. 이미 2020년 선거(미국 하원의원 임기는 2년이다) 출마 예정이라고 공표한 사람도 있다. “선거가 끝난 거지 불평등은 아직 안 끝났다”며 그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20여성출마프로젝트>도 탄생한 걸까? 지난 선거에서의 도전이 끝난 게 아니라 더 달려보겠다는 의지를 밝히 것일까? “지금이 바로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를 해야 할 때니까요. 아니, 사실 늦은 거죠.”


백희원 공동정책위원장은 왜 <2020여성출마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여러 이슈들을 경유하면서 여성/페미니스트 시민들이 가시화되었고 집회를 하며 목소리 내긴 했지만, 이들이 ‘결정자’가 되는 일은 아직 비어 있어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건 부조리하다고 생각해요. 거기다 지금까지 여성들이 제기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이제 여성들이 등판하는 게 당연하죠.”


물론 지금도 여성 정치인이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정치판에 진입한 여성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것과는 다른 의제를 가진 새로운 여성 청년들이, 더 많은 여성들이 정계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 신지예 공동운영위원장은 “한 개인이 가부장제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그런 여성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싶어요. 그걸 만들어내는 게 또 다른 목표에요”라고 덧붙였다.


그런 목표를 위해 직접 선거에 뛰어들기도 했던 그는 “여성 청년이 정치를 한다는 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느낌이다. 새로운 루트를 짜야 한다는 건 힘든 일”이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잠시 깊은 한숨이 공간을 채우는 듯했지만, “그렇기에 같이 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이은정씨가 선거 캠프에서 후보를 챙기듯 재빨리 격려의 말을 붙였다. “우리가 새로운 환경을 같이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우리에겐 그런 기회가 너무 없었기 때문에 이제 시간이 되었다”고 말이다. 프로젝트 팀의 팀워크 또한 눈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녹색당 고은영 현 제주녹색당 운영위원장 겸 녹색당 미세먼지 기후변화 대책위원장 또한 여전히 도전을 멈추지 않고 활동 중이다 (출처: 2020여성출마프로젝트 우.정.해 4편: 주목할 만한 여성정치인 '고은영')


멋진 여성들을 만날 거라는 믿음이 있다!


사실 녹색당은 아직 원내 진출을 하지 못한 정당이다. 그러니 녹색당에서 무슨 정치인을 키우냐고 반문할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기에, 녹색당이기에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녹색당은 당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당직자의 여성 비율도 과반이 넘는다. “여성 청년이 나와서 이길 수 있는 정당”이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집단이라고 할지라도 나를 대변할 공간이 없다면 소용이 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녹색당은 허공으로 흩어질 수 있는 (여성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어요.” 신지예 공동운영위원장의 말엔 자신감이 묻어났다.


백희원 공동정책위원장은 “(여성/청년들을) 어떻게 달래서 정당에 데리고 오거나, 생색내기용 할당제 같은 ‘서비스나 콘텐츠’를 제공할 게 아니라, 실제로 권력을 잡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마 전까지 무상으로 정치교육을 진행하고 선거 출마 기간 동안 후보자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2020여성출마프로젝트>는 그런 점에서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우린 경험이 없다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연고를 가지지 않고, 자신만의 노선을 가질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도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녹색당이 군소정당으로 지금까지 버텨오며 기존의 불합리한 선거제도(후보 등록 시 큰 금액을 내야 하는 기탁금 문제, 비례대표가 선거 활동을 못 하는 문제 등) 개혁을 위해 해 온 노력이 결국 ‘중장년 남성’이 아닌 여성/청년들의 정치 진입을 도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보였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만나게 될 멋진 여성들이 기대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미 다양한 의제를 가진 여성들이 7월부터 진행되는 인큐베이팅 참가를 희망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며 들뜬 마음을 표현했다.


정치판을 한번 바꿔보자, 여성들이 한번 국회 장악해 보자는 큰 꿈을 가진 <2020여성출마프로젝트>가 이제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신지예 공동운영위원장은 “여성들이 지치지 않고 용기를 얻어서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응원해 주시고 여러 방법으로 함께 동참해주면 좋겠다”며 꼭 출마가 아니더라도 여성의 정치 세력화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은정 씨는 “이미 많은 분들이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자신 안에 힘이 있는 분들이 있다. 아직 그걸 끌어내 줄 무언가를 못 만나서 그렇다. 그 일을 해줄 판이 여기 있다, 여기로 직진하시면 된다”며 인재영업을 이어나갔고, 백희원 공동정책위원장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 이 정치를 함께하면 좋겠고 후원도 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신지예 공동운영위원장이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녹색당 신지예가 1.7%를 득표했다는 게 엄청 작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후보 8번이라는 번호를 받고 4등을 했잖아요. 사실 어떤 승리를 맛봤다고 생각해요. 다음번 승리는 더 클 텐데, 그 승리에 동참하셔야죠.”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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