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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어워드 여성후보와 ‘명단 밖’ 여성뮤지션들
<블럭의 팝 페미니즘> 여전히 아쉬운 그래미의 후보 리스트
※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 일상과 대중문화 속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어김없이 올해도 그래미 시상식(Grammy Award, 전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가 1년간의 우수한 레코드와 앨범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 후보가 발표되었다.
1959년 1회 시상식을 한 이래 이번에 61회를 맞는 그래미 시상식은 후보 선정에 있어서 보수적인 태도와 인종차별, 성차별적인 경향, 그리고 애매한 선정 기준으로 매번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긴 시간 음반업계 최고 권위를 가진 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는다. 국내에선 올해 방탄소년단(BTS)이 후보에 오를 것인지가 큰 관심사였다. 결국 BTS는 베스트 레코딩 패키지 후보에 그쳤지만, 조금 다른 부분에 시선을 돌려보자.
이번 그래미 어워드 후보 명단에서 여성뮤지션들의 이름이 많이 보인다. 종합 후보 부문에서 ‘올해의 레코드’에 카디 비(Cardi B), 브랜디 칼라일(Brandi Carlile), 레이디 가가(Lady Gaga), 마렌 모리스(Maren Morris)가 후보로 올랐다. 앨범 부문에 자넬 모네(Janelle Monae)가 눈에 띈다. 그리고 여성뮤지션의 앨범은 아니지만 흑인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OST 역시 흑인음악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블랙 팬서> OST가 꼽힌 것은 고무적이다.
▶ 클로이 앤 할리(Chloe X Halle) The Kids Are Alright 뮤직비디오 중에서
‘베스트 신인’에 비욘세(Beyonce)의 레이블 소속 신인, 클로이 앤 할리(Chloe X Halle)가 후보로 오른 것도 주목할 만하다.
※ Chloe x Halle - The Kids Are Alright(Official M/V) https://bit.ly/2GFCPbE
먼저 카디 비는 흑인여성으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밝혔으며, 돌발적인 말과 행동으로 SNS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인기 힙합가수다. 브랜디 칼라일과 마렌 모리스는 컨트리 가수인데, 브랜디 칼라일은 피아노를 비롯한 적은 악기 편성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음악을 선보였고, 적절히 어울리는 메시지를 담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마렌 모리스의 인기는 올해의 컨트리 열풍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올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 중에서 컨트리와 팝이 결합한 곡은 비비 렉사(Bebe Rexha)와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Florida Georgia Line)이 함께 선보인 “Meant to Be”였지만, 그래미는 컨트리 보컬이 팝에 쓰인 곡 중 대표적인 곡을 후보로 꼽은 듯하다. 마렌 모리스가 참여한 “The Middle”는 EDM 팝 음악에 가까우며, “Meant to Be”만큼 센세이션은 아니었지만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외에도 베스트 신인에 ‘틴 팝 디바’라 부를 수 있는 두아 리파(Dua Lipa)와 비비 렉사(Bebe Rexha)가 후보로 오른 것도 눈에 띈다.
▶ 컨트리 음악 내 다양성을 엿볼 수 있는 뮤지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Kacey Musgraves) ⓒBBC radio
그러나,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을 비롯해 여러 매체가 꼽은 올해의 앨범 리스트 상위 후보 명단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여성뮤지션 미츠키(Mitski)와 로빈(Robyn)은 그래미 후보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다. 장르와 상관 없이 이들 여성음악가들은 뛰어난 작품성과 인지도를 모두 획득했는데도 그래미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 NPR이 꼽은 Best Music Of 2018 https://n.pr/2KTJGOz
트럼프 취임 이후 컨트리의 인기는 더욱 커졌다. 보수적으로 흘러가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음악적으로 희망적인 건, 컨트리 내에서도 다양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전후로 생겨난 컨트리-팝 계보가 아닌, 제이슨 알딘(Jason Aldean)과 같은 전통적인 컨트리 가수가 인기를 얻는 반면, 앞서 소개한 브랜디 칼라일과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와 같은 여성 컨트리 음악가들도 사랑을 받았다. 아울러 케인 브라운(Kane Brown) 같은 흑인 컨트리 음악가도 올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 Kacey Musgraves - Rainbow(Radio 2 Piano Room) https://bit.ly/2rQHQVL
특히 올해 성공적으로 컴백해 자신의 상징성이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 로빈(Robyn)과, 전반기 뛰어난 음악성을 보여주며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한국에도 방문한 바 있는 칼리 우치스(Kali Uchis)가 후보에 오르지 못한 사실은, 그래미 시상식의 후보 선정에 의문을 표하게 되는 지점이다.
※ Robyn - Honey https://www.youtube.com/watch?v=Mru9GG3ur9U
▶ 콜롬비아 출신의 미국 여성뮤지션 칼리 우치스(Kali Uchis) After The Storm 뮤직비디오 중에서
장르 후보로 이동하면, 문제는 더욱 뚜렷이 보인다. 2018년에 199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던 벡(Beck)과 백스트리트 보이즈(Backstreey Boys)를 후보로 꼽은 건, 여전히 그래미 어워드가 보수적이라는 걸 입증한다. 이들이 올해 그만큼 의미 있는 활동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훨씬 뛰어난 음악성을 보여주는 팝 음악가들이 많은데 말이다.
한편으로 실크 시티(Silk City)와 같이 요즘 ‘힙한’ 음악가를 후보에 올린 것도 좀 의아하다. 물론 실크 시티는 마크 론슨(Mark Ronson)과 디플로(Diplo)라는 세계적인 두 스타가 결성한 팀이기는 하지만, 그래미가 댄스/일렉트로닉 부문에서만 트랜디한 경향을 보여주려 한 것 아닌가 싶다.
알앤비, 소울 장르로 눈을 돌리면 후보 선정에 다시금 의문이 생긴다. 몇 년 째 고정처럼 자리를 꿰차고 있는 라라 해서웨이(Lalah Hathaway)를 비롯해 대부분의 후보 명단이 공감대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미 어워드 종합 후보에 올린 자넬 모네의 경우, 장르 부문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후보 선정에서 명확한 기준을 알 수 없고, 여전히 보수적이면서도 대중의 눈치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 음악매체 피치포크에서 올해의 최고 앨범으로 꼽은 일본계 싱어송라이터 미츠키(Mitski)의 [be the cowboy]은 인종차별, 성차별, 문화적 차이와 계층 문제를 담고 있다. nobody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올해 그래미가 ‘꽂힌’ 음악가가 있으니 바로 H.E.R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앨범 [H.E.R]은 첫 앨범임에도 그래미 ‘올해의 앨범’과 ‘베스트 알앤비 앨범’ 후보로 꼽혔다. H.E.R은 총 다섯 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유행하는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흐름에서 조금 더 발라드 넘버에 가까운, 잔잔하면서도 감정을 잘 절제한 편성으로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라이브 퍼포먼스에서는 기타를 연주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더 많은 팬을 모으기도 했다.
※ H.E.R. - Best Part(Audio) ft. Daniel Caesar https://bit.ly/2HARmmT
사실, 더 좋은 음악들을 추천 받고 싶다면 그래미 후보 명단보다는 다른 여러 매체가 꼽은 올해의 앨범 리스트를 보길 권한다. 앞서 언급한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의 리스트 외에도 음악 매체 <피치포크>가 선정한 베트스 앨범 리스트를 볼 수 있는 링크를 소개한다.
※ 피치포크 The 50 Best Albums of 2018 https://bit.ly/2BxF9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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