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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시상식을 둘러싼 페미니즘의 순간들

<블럭의 팝 페미니즘> “Time’s Up” 레드카펫을 수놓은 하얀장미


※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필자 블럭]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세계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는 그래미 시상식이 올해 60주년을 맞이하였고 1월 28일 성황리에 개최됐다. 알앤비 팝스타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등 전체 부문을 휩쓸었다. 에드 시런(Ed Sheeran)이 팝 부문에서 두 개의 상을 받았고, 많은 부문에 후보로 올랐던 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는 본명인 도널드 글로버(Donald Glover)로 에미상을 수상한 뒤 그래미까지 수상하여 다재다능함을 입증했다. 힙합을 차별한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그래미를 보이콧해온 래퍼 제이지(JAY-Z)는 총 여덟 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최다 부문 후보였지만 상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이 외에도 그래미 시상식은 주목할 만한 일들이 많았는데, 페미니즘과 관련된 멋진 순간들이 만들어졌다.


▶ #MeToo 캠페인의 주제가처럼 사용되는 핑크의 “Wild Hearts Can’t Be Broken”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자넬 모네, 케샤, 그리고 여성음악가들의 연대


자넬 모네(Janelle Monae)는 시상식에서 팝 음악가 케샤(Kesha)의 무대를 소개하기 위해 등장했다. 자넬 모네는 지금까지 배우로서나, 알앤비 음악가로서나 페미니즘 메시지를 전달해온 사람이다. (관련 기사: ‘블랙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팝 스타, 자넬 모네)


“예술가로, 그리고 뿐만 아니라 한 젊은 여성으로서 여러 곳에서 음악 산업을 만들어가고 있는 가수, 작곡가, 대표, 프로듀서, 엔지니어 등의 자매들과 연대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 우리는 딸이자 아내, 여자형제, 엄마, 그리고 인간이기도 하다.”


자넬 모네는 케샤의 공연을 소개하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비즈니스를 한다. 우리를 감히 조용하게 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두 단어를 내놓겠다. Time’s up(때가 되었다; 미투#Me Too 운동의 성과로 결성된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에 맞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펀드 이름이기도 함. 관련 기사: 여성들이여, 세상을 바꿀 시간이 되었다!). 임금 차등 지급과 각종 차별, 여러 종류의 부당함과 괴롭힘에 대해 말할 때가 되었다. 권력의 남용에 관해 말할 때도 되었다. 왜냐면, 아시다시피 워싱턴(정계)뿐만 아니라 헐리우드(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래미 어워드에서 여성뮤지션들의 연대를 보여준 케샤(Kesha)의 <Praying> 앨범 커버

 

이어진 케샤의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신디 로퍼(Cyndi Lauper), 카밀라 카베요(Camila Cabello), 줄리아 마이클스(Julia Michaels), 안드라 데이(Andra Day), 비비 렉사(Bebe Rexha)까지 뛰어난 음악가들이 케샤의 무대를 서포트해 여성음악가들의 연대를 보여줬다.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1980년대에 이미 페미니즘 메시지를 음악으로 전달한 신디 로퍼와, 올해의 신인상 후보 줄리아 마이클스, 최근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카밀라 카베요가 한 자리에 모인 것도 화제였다.


메인으로 노래를 부른 케샤는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임을 이야기하고, 음악 산업 내에서 이러한 폭력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고백하고 드러낸 사람이다. 함께 한 비비 렉사 역시 레이블로부터 ‘외모 때문에 데뷔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실제로 한동안 데뷔하지 못했던 역사가 있다. 그러나 비비 렉사는 티나셰(Tinashe)의 “All Hands on Deck” 등 수많은 팝 히트곡을, 그리고 샤이니의 “루시퍼”를 쓴 유능한 작곡가이기도 하며, 가수 데뷔 이후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로직의 무대 “목소리 내는 것을 두려워 말자”


로직(Logic)은 시상식에서 자신의 곡 “1-800-273-8255”를 선보이며 큰 메시지를 전했다. 이 곡의 제목은 미국 내 자살방지센터의 번호다. 로직은 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태어나 인종차별을 당하며 자랐다. 생물학적 어머니로부터도, 사회로부터도 인종차별을 겪었던 그는 작품을 통해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것을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컨셉으로 완성도 있게 표현해냈다. 여기에 앨범이 흥행하며 더욱 주목을 받았다.


▶ 로직(Logic)의 <1-800-273-8255> 앨범 커버. 제목은 자살방지센터 전화번호다.

 

로직은 이번 무대 이전에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자살을 생각했던 이들, 지금은 그것을 이겨낸 이들과 함께 무대를 꾸민 바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로직은 공연 후반에 흑인과 여성, 이민자의 인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흑인은 아름답다. 증오는 추하다. 여성들은 내가 지금껏 본 어떤 남성보다 소중하고 강하다. (중략)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특히 기회가 생긴 순간에는. 이 세상의 악함이 힘을 감추려고 해왔으니, 약하지 않지만 아직 힘을 찾지 못한 이들을 위해 일어서서 싸우자. 다양한 문화, 다양성, 수천 년의 역사로 가득한 아름다운 나라의 사람들이여, 여러분의 나라는 거지 소굴(Shithole)이 아니다.(트럼프는 난민이 발생하는 국가를 거지 소굴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평등하지 않은, 변화를 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세상에서 불평등을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쉴 곳을 찾는 지친, 가난한, 이민자에게 우리를 데려가 달라고 말하고 싶다. 함께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나라뿐만 아니라 세상을 뭉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Time’s Up!” 캠페인을 지지하는 하얀 장미


한편 “Havana”로 세계에서 사랑받는, 한국에서도 많은 애정을 받고 있는 카밀라 카베요는 시상식에서 유투(U2)의 무대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국이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로부터 만들어졌다고 기억한다. 나의 부모는 아무것도 없이 희망만 지니고 미국에 나를 데려왔고, 두 배로 일했으며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내 이야기는 그들(꿈꾸는 이들, 이민자)과 다르지 않다. 나는 이스턴 하바나에서 태어난 쿠바-멕시코 이민자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결국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 섰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反이주민 정책을 강조하고 이에 많은 이들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카밀라 카베요는 쿠바-멕시코 이민 당사자로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 로드(Lorde)는 드레스에 붙인 문장이 Time's Up 캠페인의 상징인 하얀 장미를 대신한다고 밝혔다. (출처: CBS News)


뉴질랜드 출신의 팝 음악가 로드(Lorde)는 드레스 뒤에 강렬한 글을 붙였다. 덕분에 그 어떤 시상식 드레스보다 아름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드는 미국의 예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작품에서 발췌한 이 문장들이 하얀 장미를 대신한다고 밝혔다. 하얀 장미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Time’s Up” 캠페인, 할리우드 여성이 성평등을 위해 만든 캠페인을 지지하는 시그니처로 쓰였다. 레이디 가가(Lady Gaga)를 비롯해 하이디 클룸(Heidi Klum), 카디 비(Cardi B), 제인 말릭(Zayn Malik), 할시(Halsey), 리타 오라(Rita Ora), 톰 모렐로(Tom Morello) 등 여러 가수가 이번 그래미 시상식 레드카펫에 하얀 장미를 들고 입장하거나 지지 의사를 밝혔다. 드레스에 붙인 글은 다음과 같다.


“기뻐합시다! 우리의 사회는 관용적이지 못합니다. 용기를 가집시다. 최악은 최고의 조짐입니다. 오직 끔찍한 상황만이 억압하는 자의 전복을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낡은 것, 옳은 것은 승리하기 전에 버려야 합니다. 모순은 심해질 것입니다. 응당한 대가는 씨앗의 교란이 많아지며 서둘러질 것입니다. 아포칼립스가 피어날 것입니다.”


외에도 핑크가 부른 곡 “Wild Hearts Can’t Be Broken”은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를 위해 썼던 곡이다. (관련 기사: 치열한 여성운동사,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이 곡은 최근 #MeToo 캠페인이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는 과정에서 일종의 주제가처럼 여겨지는 곡이다. 핑크는 이를 지지하는 의미에서 이 곡을 그래미 시상식에서 직접 불렀다.


“최근 6년간 그래미 후보 899명중 9%만이 여성”


그래미 시상식 무대 위뿐 아니라 밖에서도 페미니즘 논쟁와 움직임이 일어났다. 각종 매체에서 시자(SZA)의 음악을 올해의 앨범 1위 혹은 상위권으로 꼽았지만, 수상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래미의 성/인종차별 혐의가 제기됐다.


▶ 시자(SZA)의 <Ctrl> 앨범 커버. 그래미에서 SZA가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호주 출신의 여성 래퍼 이지 아젤리아(Iggy Azalea)를 필두로, 남성 중심의 그래미를 보이콧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로드의 어머니이자 뉴질랜드 시인 손자 예리치(Sonja Yelich)는 “최근 6년간 그래미 후보에 올랐던 899명의 후보 중 9%만이 여성이었으며, 로드는 올해의 앨범 부문에 오른 유일한 여성 음악가임에도 무대가 없었다”는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인용하며, 그래미 시상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앞으로 그래미 시상식이 이러한 피드백을 얼마나 수용할지, 여성뮤지션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계속 지켜봐야 할 몫이 우리에게 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케샤(Kesha) Praying (Live Performance) http://bit.ly/2ukWyb8 

※ 로직(Logic) 1-800-273-8255 ft. Alessia Cara, Khalid (Grammys) http://bit.ly/2DLUQAB

※ 핑크(P!nk) Wild Hearts Can't Be Broken (Official Video) http://bit.ly/2nlU4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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