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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슬픔의 단계를 통과하는 입양인들을 보며

해외입양인 여성들의 경험을 듣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 (김미주)

※ 한국은 오랜 기간 입양을 통해 아동을 해외로 내보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외입양 이슈는 여성인권과 아동권, 빈곤과 차별, 인종과 이주의 문제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일다>는 각기 다른 사회에서 성장해 모국을 찾아온 해외입양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들의 경험과 한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를 듣고자 합니다. 이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이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격렬한 변화의 한 해를 겪고 있는 중이다. 한국인 입양인으로서 내가 개인적, 직업적으로 하는 일과 생각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2005년부터 나는 한국에 사는 해외입양인을 위한 정신건강 서비스 발의자가 되는 일을 비롯해, 한국에 돌아오는 입양인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한편으로 나는 다른 입양인의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는 방법을 배우는데 한국에서 성인으로서 내 삶의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내 생각들은 십 년 이상 한국의 해외입양인 수백 명과 함께 일한 것을 포함하여, 내가 직접 겪은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 한국인들이 해외입양인들을 다 똑같다 생각하지만 다 다른 경험과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일다(일러스트: 두나)

한국 사람들에게 해외입양에 관해 말하기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입양됐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뒤따르는 문제들이 불편하고 때로 거슬릴 수 있지만 말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해외입양’이라는 주제에 무지하고 둔감한 위치에서 살았다는 것을 이해한다. 사람들은 입양이 당사자들에게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매우 민감한 문제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대화들을 교육의 기회로 이용한다.

평범한 한국 사람을 만나는 해외입양인이 얼마나 많겠는가. 만약 그 한국 사람의 가족 중에 아이를 입양 보냈거나, 부모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약 내가 그런 사람과 몇 분 쯤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나는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나는 그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 알기를 바라는가. 단 한 사람과의 대화가 그가 속한 전체 집단을 보는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개개인의 삶과 사연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단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을 대표하게 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그러니 만약 그런 기회가 내게 온다면, 그 사람에게 나 자신과 내가 대표하게 될 많은 사람(해외입양인)에 대해 과연 어떻게 말할 것인가? 가끔씩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개인사를 드러내는 것이 더 쉬울 때가 있다. 택시 기사들 중에는 나와 이야기하다가 자기 가족 중에 아이를 입양 보낸 사람이 있다고 고백한 이들도 있다.

나는 (해외입양인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처지가 괜찮은 편이긴 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가 서양에서 자랐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이유로, 내가 좋은 삶을 살았다고 피상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특히 내 경우에는 친가족을 만나기까지 했으니, (친가족과 만났냐는 것은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데 한국말이 서투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내가 입양된 사람이라고 답했을 때, 꼭 뒤따르는 두 번째 질문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다 잘 된 일이라 생각한다.

이른바 ‘성공한 입양인’-생물학적 가족들을 찾고 다시 만나는 입양인-이라는 이미지에 젖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나는 미디어가 우리를 묘사하는 방식을 비롯하여 맞서 싸워야 하는 많은 문제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내가 만난 사람들이 나와 대화할 때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도록 애쓴다. 나는 사람들이 표피적인 것을 너머 더 깊이 해외입양에 대해 고민하게 되길 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짧은 시간에, 심지어 단 몇 마디로 많은 것을 전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이슈에 관해 사람들이 인식하고 이해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한국의 가족과 만나고 관계를 맺는 어려움

다른 입양인들과 하는 활동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은 그들이 친가족과 만나는 과정을 더 쉽게 만들고, 패널들과 토론을 진행하며, 한국여행을 조직하고, 성인 입양인들과 일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위한 교육 과정을 지도하는 일 등이다. 그리고 내 주요 업무인 현재 이 나라에서 유일한 ‘성인 입양인을 위한 정신건강 서비스’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정신건강은 여러 가지 걱정스러운 국가적 통계 수치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서양만큼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거나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관련 서비스들을 찾기 어렵고, 영어로 진행하는 서비스를 찾기는 더욱 어렵다. 일부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그런 서비스들을 이용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리란 걸 알지만, 나는 그래도 누군가 필요로 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있기를 원했다. 때로는 뭔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는 법이다.

▶ 내가 작업한 책들. 왼쪽은 2010년 해외입양인연대(G.O.A.’L)의 연례 친가족 찾기 캠페인에서 친가족을 찾는 입양인을 특집으로 다룬 책의 네 번째 판. 오른쪽은 공동 필자로 참여한 “성인 입양인과 전신 건강”에 관한 책. ⓒ김미주

내 한국 가족들은 내가 하는 이런 일들에 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를 것이다. 최근 두 언니들이 내가 하는 정신건강 업무에 관한 명함을 보았는데, 나는 언니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내 가족들이 내가 왜 다른 입양인들과 일하고 있는지, 왜 아직도 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한국인 엄마와 언니들은 가끔 전화를 걸어 내가 밥을 먹었는지 묻는다. 그리고 서울 날씨 얘기를 좀 하다가,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내게 당신들의 최근 근황을 전해 준 다음, 몇 분 뒤 다시 잘 밥 먹고 다니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나는 우리의 대화가 매번 이렇게 전개되는 이유가, 내 한국어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내게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몰라서 그런 걸까 의심했다. 어느 한국인 친구가 자기도 가족들과 대화할 때 보통 그런 식이라고 말했을 때, 그냥 날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내가 마침내 그것이 한국의 평범한 가족 사이의 대화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사실 나는 그것이 내가 입양되었다는 것과 뭔가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었다. 나의 이런 생각은 한국인 가족과의 관계를 거북하게 만들고, 내 결함과 우리의 차이를 더 악화시켰다.

나는 친가족을 다시 만난 지 13년이나 됐고, 그 뒤 한국에서 11년 동안 살았지만, 한국 가족과 관계는 여전히 친숙해지지 않고 있다. 가족들은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본 것과 내가 해 준 살아온 얘기 이상은 나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는 왠지 우리 사이에 그냥 서로 통하는 게 있어서 굳이 많은 걸 설명할 필요가 없으면 좋겠다. 서로 같은 가족과 문화를 갖고 있어서, 돌아가는 일들을 그냥 “알아차릴” 수 있도록 모든 게 더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은 문화 속에서 살면, 상식이라든지 모두가 공유하는 관행 혹은 지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많은 것들에 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경우엔 그럴 수 없다. 이를테면 약혼을 한 후에, 내가 자란 나라에서는 결혼식과 축하연을 보통 어떻게 계획하고 실행하는지 설명해야 했을 만큼, 한국에서 결혼을 축하하는 방식은 매우 달랐다.

어찌 보면 이런 것들을 설명해야 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대가족을 가졌기 때문에 결코 한 번의 대화로 끝날 수 없었다. 심지어 같은 사람과 함께 있어도, 여러 번 반복해서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되곤 했다. 한 번 얘기해서는 완전히 이해했는지 확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주어진 정보가 전혀 새로운 것이거나(신부 들러리가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처럼) 잘 이해되지 않았을 경우에 그랬다. 차이점은 너무나 많았다.

해외입양인 배우자를 갖는 것은, 내게 새로운 1인칭 관점을 제공했다. 나는 내 한국 가족과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한편, 남편의 한국 가족과의 관계도 유지해 나가야 했다. 내가 친가족을 찾은 지 훨씬 더 오래 되었기 때문에, 내 한국 가족보다는 남편의 한국 가족들과 우선적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말은 시어머니가 친정 가족보다 우리 아들을 더 자주 보고 있다는 걸 뜻한다. 나 스스로 그렇게 만든 면이 있기 때문에 대개 괜찮지만, 조금은 속이 상할 때가 있다.

남편의 한국 가족과 관련된 결정들을 내릴 때, 남편은 내가 기꺼이 대화를 먼저 시작하고 그가 성찰하고 정리하고 행동할 여유를 갖도록 주기적으로 소통해주는 걸 고마워한다. 남편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되면 내게 알려준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고, 나는 이 과정이 (내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 계속 그의 ‘여행’이 되도록 경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동안 내가 나 자신과 다른 입양인들을 위해 수년 간 해왔던 역할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경험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남편은 회피적인 성향이 있고 나는 더 직접 부딪쳐가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옆에서 그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씩 내가 맡은 역할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 나는 남편이 내 가족을 조금 더 생각해줬으면 하고, 또 내게도 나를 보살펴 줄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연고 없는 이 땅에서 엄마되기…가족이 분산되다

부모가 되는 일은 한국에서 겪은 경험 중에서 나를 가장 고립시키는 것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이런 외로움과 고립감을 예상치 못했다.

▶ 초음파로 촬영한 뱃속의 아기. 엄마가 된다는 것은 한국에서 겪은 일 중에 가장 어렵고 외로운 일이었다. ⓒ김미주

나는 해외입양인들 가운데 한국에서 아이를 낳은 사람들을 거의 알고 있는데, 그중 한국 국적의 사람과 커플이 아닌 경우는 단 한 사람뿐이다. 한국 국적의 파트너나 배우자가 있으면, 한국 제도와 언어와 문화, 금전적인 도움과 가족의 지원 등 완전한 외국인 커플들은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제공받을 수 있다. 한국 국민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가족의 지원이나 금전적인 도움을 받는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는 이 나라에 아무 연고가 없을 경우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도움이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 특히 한국의 싱글맘들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율과 싸우기 위해, 최근 몇 년 간 한국 정부는 막 가정을 꾸리는 부부들을 도와주는 인센티브와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 국민과 외국인으로 구성된 다문화 가정도 포함된다. 남편과 나는 둘 다 한국에서 한국 국민으로 태어났지만, 우리의 한국 국적은 입양과 함께 동의 없이 말소되었다. 우리는 귀화한 미국 국민이 되었고, 이는 지금 우리가 ‘외국인’으로 한국에 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 아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 달 뒤에 나는 또 출산을 앞두고 있지만, 우리는 한국 국민이 아니고 다문화 가족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한국 사회는 (혼혈 아이들 때문에 시작된 국제입양에 대해 부끄러움을 계속 느끼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율 때문에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을 포함해 부부가 자녀를 가지도록 유인하기 위한 인센티브 정책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생각해볼 때, 원래 한국 국민이었던 우리 부부가 지금 한국에서 살며 일하고 가족 구성원을 늘리면서 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혜택들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속 쓰린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가족은 재정적, 정서적 지원의 부족 때문에 힘든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우리는 작년에 따로 떨어져 살기로 결정했다.

▶ 여성가족부 지원으로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발간한 팜플렛. 통번역 서비스 제공, 언어발달 및 이중 언어 가족 환경 조성을 포함한 다문화가족 자녀 성장지원, 취업 및 상담 서비스, (부모를 위한) 한국어 교육을 포함한 방문교육 지원 사업 같은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아이 한 명당 매달 지급되는 수당과 교육비 감면 혜택도 받는다. ⓒ출처: 다문화 가족지원 포털 다누리

작년에 남편은 우리 아들의 주 양육자로 살았고, 나는 1년 동안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집안의 유일한 소득원 역할을 했다. 남편과 아들은 내 미국 부모님과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고, 나는 서울에서 우리가 키우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함께 사는 가족 관계에서 벗어나, 갑자기 진짜 싱글도 아니면서 싱글 라이프를 살게 된 것은 기묘한 일이다.

우리는 가능한 자주 영상 통화를 하고, 어떻게든 두 달에 한 번씩은 직접 만나고 있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아들이 엄마 없이 자라면서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게 가장 무서운 일 가운데 하나인 ‘버려진다는 두려움’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정서적이고 유전적인 트라우마의 세습이 언젠가는 끊어질 수 있을지 나는 궁금하다.

입양인 공동체, 내게 희망을 준 롤 모델들

노골적으로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한결 같은 어려움은, 내가 주변 여성들이 수행하는 역할들에 대해 예민하게 의식하도록 만들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나는 내 한국 엄마가 사찰 입구의 길가에서 뜨거운 햇볕 아래 쪼그리고 앉아 시들어가는 야채를 팔고 있는 여성들 속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친가족과 재회하고 몇 년 뒤, 내 중년의 언니가 바람을 피우다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전남편과 재결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아둔 돈도 없고, 돈 벌 수단도 없어서 살기 힘들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한국 사회와 젊은 세대들은 변화하고 있고, 특히 소셜 미디어가 부상하면서 더욱 그러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느려 보인다. 내게 절실히 필요하고, 내가 원하고 기대하고 있을 때 그런 움직임(페미니즘)은 그다지 가시화되지 않았다.

▶ 중졸 학력으로는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웠기 때문에, 둘째언니는 결국 작은 프랜차이즈 가게를 열어 수 년 동안 장시간 노동을 하며 (바람난 남편과 헤어진) 첫째언니와 형제 한 명을 포함한 가족들을 부양했다. 결국 나중에 언니는 가게를 팔고 말았다. ⓒ김미주

나는 한 지역의 입양인 공동체를 통해, 내가 한국 사회에서 찾으려고 애쓰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거기서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일―많은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아래로부터 풀뿌리 활동을 통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하고 있는 해외입양인 여성들을 만났다. 변화를 일으키는 것!

이 사람들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성인 입양인을 위해 한국 여행, 국제 소식지, 한국인 친가족에 대한 영어교육과 같은 활동과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또 정치적인 발언을 포함하여 입양 관련 이슈들에 대한 관심을 끌어 모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또한 많은 한국 국적의 여성들이 이러한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며 지원하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이 야심만만하고 겸손한 개척자들과 친구가 되었고, 같이 일하게 되었다. 그들에 대한 존경심은 더욱 커졌다. 자신의 롤 모델들과 함께 일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흔하겠는가? 그들은 대화와 실천을 통해 내게 교훈을 주었고, 나 스스로 내가 가진 가치를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또 그들의 경험과 통찰력은 나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그들의 존재를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들 가운데 하나는, 가족이든 공동체든 그것을 이끄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돌볼 수 있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스리고 타인에 대한 지지와 공감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때로 실패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입양인들과 일하면서, 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부터 아동기에서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나 자신에 대해 배웠다. 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입양인으로서 성장하고 있다.

이런 공동체가 오래 유지되지 못하는 현실은, 내 가장 가까운 많은 친구들이 자라난 나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정과 리더십을 지닌 사람들이 이곳의 풍경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진다. 그들은 나의 롤 모델이자 영감이었으며 나 자신과 타인들에 대해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내 일을 통해 나는 안내자와 비슷한 것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게도 안내자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나는 또 내가 무엇과 맞서야 하는지, 내 기대들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인 동시에, 스스로의 모든 문제들을 풀려고 애쓰는 또 하나의 입양인이라는 양쪽 위치에 동시에 놓여있다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 한국을 떠났지만 계속 자신들의 지역 공동체들에 힘을 주고,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는 동료 입양인 선구자들. ⓒ김미주

한국에 온 입양인들을 지원하는 일의 난관들

입양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얻기 힘든 특권인 반면, 다른 사람과 이런 내밀한 경험을 겪는 것은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으로 매우 진을 빼는 일이기도 하다. 보람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일종의 마비를 불러온다. 점차 관성이 나타난다. 내가 하는 이 일은 다양한 패턴으로 조금씩 변형된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의 핵심 줄거리는 똑같지만, 세부 사실은 각기 다양하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부모들, 오래 전에 불타 없어졌다던 서류의 발견, 입양 가족의 학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쌍둥이와 형제자매. 우리 일은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 일은 매우 사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내게는 자기 보존의 필요성이 점점 늘어난다. 성찰과 거리두기는 함께 수반되는 것이다.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우리들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거나 필요로 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의 손을 잡아줄 수는 없다. 훈련과정에서 나는 개인적인 것과 직업적인 것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에 관해 이야기한다. 명확하지 않고,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그런 경계들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굉장히 연약해진, 희망과 열망에 들뜬 순간에 있는 입양인들을 만난다. 친가족과 정보를 찾는 것에 대해, 혹은 단순히 한국을 경험하기 위해서 왔을 뿐이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나 친가족에게 품고 있던 환상이 현실화되길 더 열망하고 간절히 바란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그런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거나, 자신은 그 단계를 넘어 섰다거나, 별로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그런 감정을 숨긴다.

친가족 찾기에 나선 사람들을 보며 -예를 들어 대부분 친가족을 만나지 못하거나 매우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어떻게 그들이 계속 희망을 가지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줄 것인가? 반대로, 환상은 정말로 사라질 수 있는가? 환상이란 얼마나 흔히 일어나는 것인가? 꿈들이 짓밟힌다 해도, 그 뿌리는 항상 우리의 내면에 남아 있는 법이다.

해외입양인들의 한국 여행에 같이 참여하고 있는 덕분에, 나는 입양인들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절대 알 수 없는 인생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의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경험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내가 결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엄청나고 강력한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입양인들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들이 한국에 처음 온 것이 아니란 사실―즉 자신의 고향이나 고아원에 처음 온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지금 알고 있는 인생에 앞서서 삶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온 것이며, 입양인이 그곳들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든 아니든 자신들이 이 공간들에 존재했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함이다―을 일깨워준다. 그들은 단지 상상된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기억할 수 있는 현실로서 무언가를 경험하기 위해 이러한 곳들을 찾아온다.

우리는 미디어 및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퍼뜨리는 지배적인 ‘입양 서사’에 대안을 제시하는 일과 직면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유년 시절의 두려움이 만든 유령과 속삭임, 그림자, 우리의 신비로운 과거에 대한 환상들을 해체하는 힘든 과제를 풀어야만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건, 타인에게 명확히 표현되거나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현실을 느낄 때에도, 가끔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정확히 어떻게 느끼는지, 또는 왜 그런 식으로 느끼는지에 대해 어찌 설명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다. 우리가 어릴 때는 그것을 이해할 언어나 지식을 갖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성인의 경우엔 무엇을 느끼고 왜 느끼는지 명확히 사리분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를 받는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그것이 유년기에 처음 겪은 감정들과 뒤섞여 있을 경우, 그렇게 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 한국 친가족을 찾고 있는 입양인들을 위해 신상 정보들을 담고 있는 한국의 포스터들. ⓒ김미주

내가 좌절감을 크게 느끼는 부분은, 다른 입양인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조언하는 (선의를 가졌지만 한정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입양인들을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에서) 만나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입양인들이 한국에 오거나, 한국의 조직과 접촉하고 있다. 한국에 기반을 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모든 잘못된 정보와 싸워야 한다. 그것은 입양인이 이미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이나 신뢰하고 있는 정보의 출처와 부딪치는 일이다.

공동체에 새로 온 입양인이 ‘다른 사람 얘기는 다른 사람 얘기일 뿐’이라며 여기서 더 오래 살고 일한 사람들보다 자기가 더 많이 잘 알고 있다고 선언하며, 블로그를 시작하고, 이벤트를 만들고, 정말 자신이 아는 것만을 받아들이려고 할 경우, 우리 활동은 소모적인 것이 된다. 당신이 뭐라고 말하든, 사람들은 어쨌든 여전히 그런 일은 남들에게는 일어날지 모르지만 자기에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기는 예외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때, 무슨 말을 할 수 있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언제쯤 알게 될 것인가? 언제가 되어야 자기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권위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해도, 그에 대한 회의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한다. 누가 이런 종류의 문제들에 대한 권위자일 수 있겠는가? 입양인들이 자신의 사례를 누구의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들이 읽은 다른 입양인들의 이야기들이나 우연히 알게 된 개별 사례들뿐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일들에 대한 권위자가 극히 적은 세상에서, 더구나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우리/그들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 우리 입양인들이 출생에 관한 사연을 얘기하기 위해 의존하는 정보의 바로 그 기초(입양 서류들)가 잘못된 전제, 거짓말의 오래된 거미줄, 속임수, 거짓 변명들 위에 세워져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그것은 누구의 진실인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전문적 의견이나 지식을 가진 사람, 단체, 책 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거나, 누가 또는 무엇이 전문가인지 확실하지 않을 때는 어떡해야 할까? 예컨대 친가족 찾기의 경우, 입양인들의 케이스는 그들의 가족 환경 때문에 저마다 다 다르다. 그럼 모든 케이스들에 적용되는 권위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친가족을 찾아준다고 하는 단체들 역시 너무나 많이 있다. 하지만 과연 누구를 믿을 것인가? 누구를, 왜 추천할 것인가?

만일 여행을 하는 중이라면, 여행 계획을 도와주고 예상되는 상황들을 조정해 줄 각지의 지정된 여행 센터에 의존할 수 있을 것이다. 입양인으로서 부딪치는 모든 일에 적용될 수 있는 어떤 권위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랄 수 있지만, 그와 같은 것이 입양인이 가진 많은 이슈들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입양인들이 자기들이 읽거나 듣는 정보에 대해 회의적이다. 아무런 “권위”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익숙한 어려움을 가진 다른 이들을 보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 나는 그들이 슬픔의 단계를 통과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하고, 상처 받고, 종종 왜, 어떻게 그렇게 된 건 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특히 그 속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비춰질 때, 나 자신의 이야기가 겹쳐질 때 더욱 그렇다.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나는 ‘여기 있다’

한국에 사는 해외입양인들과 만날 때, 나는 그들의 정신건강의 중요성과 더불어 이해심 많고 입양 문제를 잘 아는 전문가를 구하는 일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고등학교 때 자살을 기도한 뒤, 나는 정기적으로 개인 및 집단 상담에 참여했다. 당시에 나는 상담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최초의 상담자와 잘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나는 내게 자기모순을 지적하며 치유의 길을 가도록 강하게 등을 떠미는 누군가를 만났다.

서구인과 비(非)한국인을 내가 어떻게 보고 느꼈고, 타인들에 의해 그것이 어떻게 정체화/범주화되었는지 날카롭게 의식하면서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한국인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 안의 투쟁을 화해시키는데 수년이 걸리고 있다. 외모, 신체 등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고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조그맣고 주근깨가 자글자글한 민낯의 한국인으로서 건강한 자신감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남편은 이제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오래?아동기의 대부분과 성년 생활의 많은 부분? 살았다. 나는 성인 생활의 대부분을 여기 한국에서 보냈다. 주로 가족에게 키워졌고, 고아원에서 가장 나이 많은 아이로 얼마간 지내다가 초등학교를 거의 마칠 무렵 입양된 남편의 경우는 사실상 아무 기억 없는 유아 때 입양된 나 같은 사람과 다른 경험과 관점을 가지고 있다. 공통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입양?우리의 경험과 그것이 가진 모든 함의?은 우리 두 사람에게 다르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여기 머무를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사람들이 왔다가 떠나는 것을 보았고, 여전히 나는 여기에 남아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입양인들과 일하는 것에 대한 내 열정이 줄어들어, 약간의 휴지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더 신나게 탐구하거나 발전시킬 많은 영역들을 찾아내서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을 뿐이다. 내가 넘어서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완전히 일을 놓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입양에서 기인한 분리불안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는 그것이 해결되는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입양인들과 일하고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삶인 동시에 직업적인 삶이다. 한국에서 살게 되면서 나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방법을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변자가 되기로 선택했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떻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들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정보를 얻고 참여할, 또는 그렇게 계속해 나갈 ‘용기’를 가지게 되기를 소망한다.  (번역: 권호영)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Watching Adoptees Pass through Stages of Confusion and Sadness

Listening to the experiences of overseas adoptee women (6): Why I’m here


By Mee Joo Kim


My writing for this essay comes during a year of tumultuous transitions. I share with you some of my thoughts about the work and experiences I have had personally and professionally as a Korean adoptee. Since 2005, the joy in my adult life in Korea has been spent working on behalf of returning adoptees, including being a proponent of mental health services for adoptees in Korea, becoming the wife to another adoptee, and learning about motherhood. My perspectives are based on my own experiences, including over a decade of working with hundreds of Korean adoptees.

Koreans think that overseas adoptees are all the same, but actually we all have different experiences and images. ⓒ Ilda (Illustrator: Doona)

Talking to Koreans about overseas adoptees

Whenever I meet Korean people, I will often include that I am adopted to provide them with some context in regard to my background. Though the questions that follow can be uncomfortable and sometimes inappropriate, I understand that many people come from a place of ignorance and insensitivity to the topic of adoption, which they fail to realize is deeply personal for those with first-hand experience. So, I use these interactions as a platform to educate.

How many overseas adoptees does the average Korean person meet? What if this person was someone whose family member had relinquished a child for adoption or was an unacknowledged parent? If I had a few minutes to talk to such a person, what would I share with them and want them to know? Too many times interaction with just one individual can change how we view an entire group of people. Despite our knowing that every life and every story is different, so often an interaction with just one can be representative of many.

So, if this were such an opportunity, what would I say about myself and the many whom I represent to such a person? Sometimes it's easier to disclose personal things to a complete stranger. I’ve had taxi drivers confess that a family member had given a child up for adoption.

While I am relatively okay, I don’t want them to superficially think that because I grew up in a Western country and speak English fluently that I have had a good life and everything has worked out?especially since I’m in reunion. (This is inevitably part of the second question that follows after they want to know why I look Korean but don’t sound like a native speaker, and I tell them I am adopted.)

In a society inundated by images of so-called successful adoptees, and adoptees who are searching and reuniting with their Korean families, I know many of the challenges I am up against, such as these portrayals of us in the media. So, I intentionally attempt to make these people I meet feel a little uncomfortable when I respond; I want to encourage them think beyond the superficiality. The reality is that it’s tough trying to convey so much in so little time, a few sentences even. There is so much more to realize and understand.

The difficulties of making and maintaining relationships with our Korean families

Amongst the things that I have loved doing in my work with adoptees is having facilitated reunions, moderated panels and discussions, organized tours, conducted training sessions for professionals working with adult adoptees, and largely developed what is currently the only stable mental health services programming for adult adoptees in the nation.

Mental health is not typically perceived or treated in Korea as it is in Western countries despite a variety of alarming national statistics related to the matter, so it can be difficult to access services, even more so in English. Knowing that some people will actively choose not to use such services, I still wanted there to be resources that could be utilized if and when someone was in need. Sometimes there is security in just knowing that something exists.

Books I worked on: (left) fourth edition of a book featuring adoptees searching for their Korean families as part of Global Overseas Adoptees’ Link (G.O.A.’L)’s 2010 Annual Birth Family Search Campaign; (right) book that I co-wrote. ⓒ Mee Joo Kim 

I'm sure my Korean family has almost no idea about any of the work that I do with adoptees. Recently, a couple of my sisters found my business cards related to my mental health work. I wonder what they think of it. I already know that they don’t understand why I work with adoptees?why I can’t let that part of myself go.

My Korean mom and older sisters will call sporadically to ask if I've eaten yet, comment on the weather in Seoul, ask how I've been, occasionally give me an update on their lives, and remind me to eat well before ringing off after a few minutes. I had suspected the conversations had gone like this because my Korean level wasn’t high enough and they didn’t know what to say to me. When a Korean friend told me that this is usually how her conversations are with her family, I thought she was saying it to be nice. It took years for me to finally accept that this was simply normal; I was convinced it was somehow related to me being adopted, which I thought made things awkward and exacerbated my deficiencies and the differences between us.

Even with 13 years of reunion, having lived 11 of those years in Korea, normalcy varies in my relationship with my Korean family. They know nothing beyond what they see and what I tell them about my life, and vice versa. It makes sense, but somehow I want things to be instinctive so that I don’t have to explain so much. I wish things could be more natural so that we could just “know” things because we come from the same family, culture, etc.

We wouldn’t have to think too deeply about so many things that are common sense or common practice or knowledge in one culture that are not in the other culture. Like after I got engaged, having to explain how a typical wedding ceremony and reception are planned and conducted in the country where I grew up, which is very different to how Koreans generally celebrate weddings.

On one hand, it’s not a big deal to have to explain these things; on the other hand, I have a big family and so it’s never just a one-time conversation. Even if it’s with the same person, I’ll be asked about the same thing multiple times, because sometimes we’re just not sure that we completely understood it the first time around, especially if the information that has been given is new or doesn’t make sense to us (like describing bridesmaids and their purpose). And there are just so many differences.

Having a Korean adoptee spouse has also given me a new first-person perspective. While I continue to navigate my own relationship with my Korean family, I find that I must also facilitate my husband's relationship with his Korean family. Because I have been in reunion much longer, I find that I tend to prioritize time with my husband's Korean family before mine. It means that his mom has seen our son more than my Korean family has gotten to see him, and I'm mostly okay with it since I’ve had a hand in the arrangements, but it stings a little.

When it comes to making decisions involving his Korean family, my husband appreciates that I'm willing to initiate conversations and check in regularly with him so that he has space to reflect, process, and take action, and he lets me know when he's feeling overwhelmed. We trust each other and try to maintain boundaries so that this is still his journey. It helps that this is part of what my role has been for myself and others for years.

But, because my husband tends to be avoidant and I tend to be more confrontational, it sometimes feels like I am steering instead of supporting. Sometimes this role I’ve taken on wears me down, and I find myself wishing my husband thought about my Korean family a bit more and that I had someone with more knowledge and experience looking out for me.

Parenthood in a country with no family or government support

Becoming a parent has been one of the most isolating experiences I have had in Korea?I did not expect to have such feelings of loneliness or aloneness.

A sonogram of one of my children. Becoming a parent in Korea has been isolating and difficult. ⓒ Mee Joo Kim

Amongst the adoptees I know who have had children born here, only one person was not coupled with a Korean national. Having a Korean national partner or spouse provides access denied to purely foreign couples, such as an understanding of Korean systems, language, culture, financial assistance, family support, government support, etc. While not every Korean national has great family support or financial assistance, we now know how difficult it is to have none of that here, and this has deepened our respect for parents who raise their kids independent of such help, particularly single Korean moms.

To combat their struggles with having the lowest birthrate in the world, in recent years the government has developed incentives and programs to support couples starting families, including multicultural families that consist of a Korean national and a foreigner. Although my husband and I were both born as Korean citizens in Korea, our Korean citizenship was revoked without our consent through our adoption. We became naturalized US citizens, which means now we are foreigners living in Korea. Our son was born in Korea, and I will give birth again in about a month, but we are ineligible to receive aid or benefits from the government because we are no longer Korean citizens and are not considered multicultural.

Korea fails to see the irony that it still sends its children overseas for adoption, now has the lowest birthrate in the world and has had to create incentive programs to promote couples to have children, including supporting multicultural families (despite the shame it continues to feel over international adoption having begun as a result of children of mixed-race relationships).

When I think about it, I cannot help but feel some bitterness over the contributions we are making as citizen-born Koreans living and working in Korea, increasing the members of our family, and the benefits we are denied. Our family has had to make some hard decisions because we lack financial and emotional support. For such practical reasons, last year we decided to live apart.

A brochure from the Multicultural Family Support Center, which is supported by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describing benefits available to families with one parent who is a Korean citizen. These include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services, help with raising children and creating a bilingual family environment, career and counseling services, and in-home Korean language education programs for parents and children. Such families also receive a monthly stipend per child and breaks in education costs. ⓒ Source: Danuri Portal 

Since last year, my husband has been the core caregiver for our son and I have been the sole paycheck earner with my part-time job. My husband and son live with my American parents in the US while I live with our cat in Seoul. It is strange to go from a partnership to a family and suddenly live a single life again without really being single.

We video chat as often as possible and have managed to see each other every couple of months in person for extended periods of time. What hurts most is knowing my son is growing up without his mom and he doesn't understand why?knowing that I am passing on one of my deepest fears of abandonment. It is wondering if emotional and genetic intergenerational trauma can ever be broken.

The adoptee community and the role models who gave me hope

The constant challenge of living in a blatantly patriarchal society has made me hyperaware of the roles of the women around me. When I first came to Korea, I wondered if my Korean mom was one of the women squatting by the side of the road selling wilting vegetables in the hot sun on the way to a temple.

A few years after I had reunited, I learned that my middle-aged sister had moved back in with her ex-husband after he cheated on her, left her, and married and divorced another woman, simply because she was struggling to survive on her own with no independent savings and no marketable skills. Society and younger generations are changing, particularly with the rise of social media, but the movement seems slow because when I was ready and wanting it the changes weren’t so visible and public.

Struggling to find sufficient employment with only a middle school education, my sister ended up buying a small franchise store where she worked long hours for several years to support her family, including our older sister (who finally left her cheating husband) and one of our brothers. Eventually, she sold the business. ⓒ Mee Joo Kim

What I struggled to find in Korean society, I found through my involvement in the local adoptee community where I encountered Korean adoptee women who were doing exactly what I wanted to do?working to make a difference in many people's lives and changing Korean society through grassroots efforts. Affecting change.

They were creating activities and programming for adult adoptees returning to Korea, like domestic trips, international newsletters, teaching English to Korean birth family members, and running domestic campaigns to gather attention about adoption-related issues, including the politics of it. There were also a number of Korean national women helping to support this work as well as other initiatives that all served the same purpose?to connect people and spread awareness.

Later I became friends and worked alongside with some of these ambitious, humble pioneers, which only increased my respect for them. How often do people get to work beside their role models? They taught me lessons through their conversation and works, and helped to remind myself of my value. Their experiences and insights grounded me, and through their existence, it gave me the confidence that I could do things like that, too.

One of the greatest lessons I have learned is that a leader must take care of herself before she can take care of others, whether it be family or community. I try to practice mindfulness and compassion. Sometimes I fail. Self-love is a tough lesson. By working with adoptees, I learn about myself, from preconception, childhood and into my adulthood; I evolve as a person, as an adoptee.

The transience in the community means that the majority of my closest friends have returned to their home countries. Watching those with passion and leadership disappear from the landscape here, I feel sad yet hopeful. They have been my role models, inspiration, and have set my expectations for myself and others.

Through my work, I hope that I can be a kind of a guide; yet, I too want a guide. I also want to know what I'm up against and how to regulate my expectations. It has been scary and thrilling to be on both sides as a leader in the community and as just another adoptee trying to figure everything out for myself.

Fellow adoptee pioneers that continue to empower and build their local communities despite having left Korea. (c) Mee Joo Kim

The difficulties of helping returned adoptees

While working with adoptees in these spaces is a unique privilege, to go through these intimate experiences with another person is also intensely draining mentally, emotionally, and physically. As much as it is rewarding, working in the field inevitably leads to certain numbing. There is a normalcy to it all that develops. It is listening to variations of the same stories in different packages. At the core of it, the stories are the same, but the details are different?parents who did not relinquish their children, discovery of information in files years after they allegedly had burned in a fire, abusive adoptive families, twins and other siblings discovering one another’s existence. It is explaining the same things over again.

It is always deeply personal. Simultaneously, there is a growing need for self-preservation. Reflecting and distancing go hand-in-hand. For those of us on the service side, not everyone's hand can be held no matter how much either person may want or need it. In trainings, I refer to the blurred boundaries of the personal and professional. Indistinct, undefined, but necessary boundaries.

I meet people at moments in their lives where they are incredibly vulnerable, hopeful, eager. When it comes to searching for family, information, or to just experience Korea, some are more anxious and desperate for their fantasies to be made real; others bury it under claims that they don't care, that they've moved beyond it, or it doesn't matter.

And to know the reality, in the case of those doing birth family search, for example, most will never reunite, that their searches will stagnate, how do you help keep them hopeful and realistic? Then again, do fantasies ever really die? How often does that happen? Even if dreams are crushed, perhaps their roots always remain inside of us.

Being part of peoples’ trips to Korea, I see the visceral and raw experience of unexposed parts of lives in real time that even those closest to these adoptees may never know. It is an incredible, powerful privilege that I try to never take for granted. I get to remind adoptees that this is not their first time in Korea, that when they come back to Korea, it will not be their first time in their home town or visit their orphanage?it is a return where their lives began before the life they know now, to confirm that they existed in these spaces, regardless if they actively remember it or not?to experience something not just as an imagined feeling but a tangible, memorable reality.

Confronted with alternatives to the dominant narratives of adoption by the media and the well intentioned, we are left with the daunting task of deconstructing ghosts, whispers, shadows of childhood fears and fantasies of our mysterious pasts and what could have been that even as adults is difficult to articulate or understand. Even when we feel things, sometimes we don't know how to explain to someone else exactly how we are feeling or why we are feeling that way. As a child, we may not have the language or knowledge to understand it. However, as an adult, there is a societal expectation that we should be able to recognize and identify what we feel and why. But, I think it is so much more difficult to do this when it is mixed with unexplored feelings from childhood.

Posters in South Korea featuring the identifying information of adoptees that are searching for their Korean families. ⓒ Mee Joo Kim

An area of growing frustration has been to meet adoptees (in person or online) with good intentions but limited knowledge and experience advising other adoptees with misinformation. So many adoptees come to Korea or contact an organization in Korea, and we, those based in Korea, have to address all of the misinformation, which goes against a source that the adoptee has already worked with or trusts.

When an adoptee new to the community declares they know more or better than others who have been living or working here longer because their experience was different, they start blogs, create events, and really only consider what they know, it feels discouraging. And because no matter what you say, people will somehow still think?that might have happened to them, but that won't happen to me. What can you say or do when someone is so adamant that they are the exception? When you know how much a person wants to believe it? When perhaps you believe that about yourself?

I understand that there is a desire for some kind of authority, followed by skepticism, because who is an authority on these kinds of matters? What can these adoptees compare it to? Maybe only the stories of other adoptees that they’ve read about or individuals they happen to know. In a world where there are so few authorities on these kinds of things and particularly in the digital age, who do we/they trust? When the very foundation of information (our adoption files) that we adoptees rely on to convey our origin story is built on a premise and aged web of lies, deceit, and cover stories, how can we trust? What is truth, really? Whose truth is it?

It is reassuring to know that there are people, organizations, books, etc. that have an expertise or knowledge on something that you are interested in. However, what about when something like that doesn't exist or it's not clear who or what is an expert? For example, for birth family search, every adoptee's case is different because of their family circumstances, so how can there be an authority for every case? There are also so many organizations that offer birth family search, but who do you trust? Who is recommended and why?

If you are traveling, you can rely on each place to have a designated travel center to help you plan, adjust your expectations, etc. This is generally not the case with a lot of issues that adoptees have, even though we may wish there was some kind of authority that existed for everything that we have to encounter as adopted people. Because of this, many adoptees are skeptical about the information that they read or hear about because there is no "authority."

I’ve watched and listened to others with familiar struggles. I witness the repeated movements of adoptees through the stages of grief. It is difficult to see people who are confused, afraid, and hurting, often not understanding how or why, especially when you can see yourself, glimmers of your own story reflected back.

I am here to make a difference

When working with the expat adoptee population in Korea, I've chosen to focus on the importance of mental health and having sensitive, adoption-competent professionals to help adoptees on their journeys. After a suicide attempt in high school, I attended individual and group therapy on a regular basis. I resented having to go and didn't connect well with my first therapist. Eventually I saw someone that challenged me, pointed out my contradictions, and pushed me firmly onto a path of healing.

It has taken me years to find peace and reconcile the struggle between wanting to be identified (internally and externally) as a Korean while being acutely conscious of how Western and unKorean I felt, looked, and was identified/categorized by others. In a society that values and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appearance, physical and otherwise, it has been a challenge to maintain a healthy self-confidence as a short, barefaced, sun-freckled Korean.

My husband has now lived longer in Korea than he had in the US?most of his childhood and the majority of his adult life. I have lived here for most of my adult life. For my husband who was primarily raised by family and then spent some time as the oldest kid in an orphanage before being adopted toward the end of his elementary school years, he has had a different experience and perspective than someone like me who was adopted as an infant with virtually no memories. Although there are parts that are shared, adoption?our experience and all of its connotations?is different for both of us.  

Having lived in Korea for this long, it is also the challenge of finding people who stay. I watch people come and go, and still I am here. With time, I find myself wishing more often that the passion I have for working with adoptees would diminish so that I could have some reprieve. But I only find more areas where it is rekindled that I am excited to explore or develop. Perhaps it’s separation anxiety stemming from my adoption that I struggle to move beyond, that hinders my ability to fully let go. Someday I think there will be a kind of resolution. At least that's what I want to think.

Working with and being with adoptees has been my personal and professional life. I know how one person can make a difference. With my life in Korea, I have chosen to be an advocate for myself, my family, and for those who can’t, don’t know how, or aren't ready to advocate for themselves. I hope others will have the courage to be or continue to be informed and get involved to make a difference in their communities.   Feminist Journal ILDA : ildaro.com

 

English-language blog of ILDASouth Korean Feminist Journal  http://ildaro.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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