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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바이섹슈얼’인 나를 긍정하기

[Let's Talk about Sexuality] 내 안의 다양한 정체성 (캔디)


※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여성들의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이 글은 뚱뚱하고, 질병이 있으며, 바이섹슈얼인 나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언제부터 뚱뚱했을까?


살을 처음 빼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갓 입학한 시점이었다. 처음엔 헬스장에 다녔고, 그 다음에는 지방분해 주사를 맞았고 다이어트 약을 먹었다. ‘난 언제부터 뚱뚱했던 걸까?’ 그 시작을 쫓아가기 위해 엄마, 이모와 대화를 해보았다.


나: 난 언제부터 뚱뚱했어?

엄마: 너 서울 올라가기 전(대학 졸업 전)엔 안 뚱뚱했어!! 그냥 좀 통통했지. 넌 크면서 계속 좀 통통하긴 했지만, 뚱뚱하진 않았어.

나: 근데 왜 약을 먹인 건데?

이모: 네가 통통했던 것도 맞지만, 대학생들하고 비교하면 뚱뚱했지. 대학생이면 허리가 24정도 되고 그래야 하는데 넌 그때 28이었잖아.

엄마: 나도 허벅지가 뚱뚱하긴 했지만, 대학 때는 허리 사이즈 24 정도 됐었어.

나: 헐.


▶ 어린 시절 나의 모습  ⓒ캔디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뚱뚱했던 것은 아니고 ‘통통’했었는데, 대학에 간다고 하니 “키도 작은 딸이 날씬하고 예쁘게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 주사와 약을 지원하셨던 거”라고 한다.


엄마의 입장은 이러하지만 난 엄마의 그런 반응들을 보면서 그 때부터 내가 “뚱뚱하다”는 것을 더욱 심각하게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 그 때부터 내가 입는 옷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나를 챙겨준다고 하는’ 선배들로부터 “옷 그렇게 입지 마” 라는 참견을 듣기 시작했던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 억압과 자기 검열 속의 내 대학 시절은 외국에 어학연수를 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파진 옷을 입어도, 딱 붙는 옷을 입어도, 치마를 입어도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보다 더 뚱뚱한 사람들도 탱크탑을 입고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많은 매장에서 내가 ‘입을 수 있는 사이즈의 옷’을 팔았다. ‘내 몸으로도 괜찮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오면서 건강이 무너졌다. 몇 년 전엔 당뇨 진단을 받았다. 뚱뚱한 나를 긍정할 수 있지만, 이 뚱뚱함은 현재 내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살을 빼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뚱뚱하지 않은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그 사실이, 애써 긍정하고 있는 나를 다시 부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느껴져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뚱뚱한 사람이 당뇨까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종종 너무 쉽게 내가 ‘자기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때론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조언으로 가장한 잔소리를 퍼부어 대곤 했다.


바이섹슈얼로 존재하기


그럼, 이제 바이섹슈얼 이야기로 넘어 가보자.


정체화를 한 시기는 고등학생 때였다. 남자도, 여자도 좋아하는 사람인 나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나를 “성소수자”로 정체화했다거나, 양성애자에 대한 편견에 대해 인식했다는 건 아니다. 스스로를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자각한 것은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레즈비언’이었다. 나는 남자를 사귀는 내가 창피했고, 내가 바이라는 사실이 짜증나서 어쩔 줄 몰랐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 레즈비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난 조용히 앉아 동성애자인 척하며 ‘남자와의 경험 따위는 절대 말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는 걸 인정하는 정체화 과정은 쉬웠지만, 그 정체성을 긍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L커뮤니티(레즈비언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라고 불리는 사이트들이 처음 생겼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커뮤니티들에서 바이혐오(바이포비아)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는 괜찮지만 내 애인으로는 싫다’부터 시작해서 ‘바이(여성)는 결국 남자한테 갈 것이다’, ‘너네는 그냥 바이 사이트를 따로 만들면 되지 않냐’까지 바이혐오 발언들이 잊을 만하면 올라와 게시판이 들썩였다.


성소수자를 타깃으로 하는 혐오 세력의 발언, 혹은 일상의 혐오 발언에는 함께 분노하던 사람들이 유독 바이에 대해선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을 보는 건, 서운함을 떠나 매우 이질적이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발언이 ‘혐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을 보는 것은 ‘우린 동성애자를 차별하진 않지만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던 이들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혐오와 혐오’ 사이에 놓인 나의 섹슈얼리티


▶ 몇 년 전의 나의 모습.  ⓒ캔디


어느 날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왜 나의 정체성들은 이렇게 혐오 받아야 하는 걸까?’


내가 뚱뚱한 사람인 것이 그렇게 비난 받아야 하는 일이며, 누군가로부터 계속해서 지적을 받아야 하는 일인가? 내가 나의 모습을 긍정하고 살아가는데, 내가 괜찮다는데 당신들은 왜, 무슨 권리로, 정상 체형 따위를 운운하며 날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가.


그리고 내가 바이섹슈얼인 것이 뭐가 문제인가.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왔고, 만나고 싶은지가 타인에게 비난 받아야 하는 일인가?


내가 젊은 나이에 당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기 관리를 못했다고 지적 당해야 하는 문제인가? 아픈 내가 스스로를 반성해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들을 하고 나니 뚱뚱한 사람으로서의 내 정체성과 바이섹슈얼로서의 정체성이 어떤 부분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권은 사람이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으로 인해 차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개개인은 다양한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간다. 장애인인 성소수자도 있고, 트랜스젠더인 난민도 있으며, HIV감염인인 레즈비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는 것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채 장애인으로서의 차별, 성소수자로서의 차별, 혹은 여성으로서의 차별 지점만을 강조하거나 집중하기도 한다.

▶ 2017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판매했던 ‘뚱뚱한 바이섹슈얼 프라이드’ 스티커 ⓒ캔디


그래서 나의 경험을 조금 더 가시화하기 위해 지난 해 퀴어문화축제를 맞이하며 나는 ‘뚱뚱한 바이섹슈얼 프라이드’ 스티커를 제작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뚱뚱한 바이섹슈얼인 나를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작업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냥 바이 프라이드도 아니고 뚱뚱한 바이 프라이드냐’고 묻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스티커를 기다렸다며, 공감하며 즐겁게 구매했다.


섹슈얼리티를 긍정하는 방법을 찾다


나의 여러 정체성은 한때는 나의 열등감이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남자가 아닌 내가 아쉬웠고, 사회를 살아가면서 키 작고 뚱뚱한 내가 창피했고, 트랜스인권운동을 하면서는 시스젠더(Cis-Gender, 사회에서 지정받은 신체적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하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인 나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성소수자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 레즈비언이 아닌 내가 아쉬웠다. 하지만 내가 키가 크고 날씬한 트랜스 레즈비언 여성이었으면 달랐을까? 바뀌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사회의 시선이다.


남녀차별이나 남성중심주의가 없었다면, 사람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성별표현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그 사람 자체로 존중하고 소통하는 문화가 좀 더 있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살면서 열등감을 덜 느꼈거나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제 이 모든 이야기들은 시간이 지나가며 치유되었거나, 수정되었고, 또 스스로 반박할 수 있게 되었다. 페미니즘은 내가 여자이고 키가 작고 뚱뚱한 사람임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고, 성소수자 운동은 우리가 서로의 앨라이(ALLY, 협력자: 종교 인종 정체성 등 다양한 이유로 존재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임)일 수 있음을 알려줬고, 또한 바이섹슈얼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주었다.


지난 십 몇 년을 겪어내는 동안, 나는 좀 더 나를 긍정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법을, 내가 나의 위치에서 목소리 내는 법을 배워왔다. 하지만 많은 성장이 있었다고 생각함에도, 여전히 나는 나의 몸이 창피할 때가 있고, 성소수자 운동에서 당사자로서 혹은 앨라이로서 목소리를 낼 때마다 수없이 많은 고민이 이어진다. 또 늘 새로운 고민이 나를 찾아온다.


▶ 바이섹슈얼 플래그  ⓒ캔디


내가 뚱뚱하고 질병을 가진 바이섹슈얼인 나를 긍정하는 일은 더 많은 다양한 교차하는 정체성을 가진 누군가가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첫걸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교차하는 정체성을 가진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다가오는 2018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는 더 다양한 바이섹슈얼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나와 같은 바이섹슈얼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마구마구 선보이고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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