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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 해결하려면 ‘낙태죄’가 필요하다고?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운동>② 임신중단에 관한 Q&A


※한국의 낙태죄 현황과 여성들의 임신중단 현실을 밝히고, 새로운 재생산권 담론을 모색하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운동’ 기사를 3회에 걸쳐 싣습니다. 이 기사의 필자 ‘앎’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앞선 기사에서는 ‘낙태’죄가 형법 제정 당시 일본 형법의 영향을 받아 탄생하였으며, 국가의 산아제한 정책에 따라 50년 간 사문화되어 있다가, 국가가 출산장려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논란이 대두되었음을 살펴보았다.(관련 기사: ‘인권이 아닌 인구’에 따라 임신중단 담론이 바뀌다 http://ildaro.com/8123)


이렇듯 경제발전 논리에 따라 국가가 국민의 재생산권을 통제할 수 있다는 현실은 매우 우려스럽다. 재생산권은 단지 임신, 출산, 양육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 따라 영향을 받는 삶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임신을 하면 약 10개월 동안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변화를 겪게 되고 이는 상당한 고통과 위험을 수반한다. 양육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최소 20년 이상 지속되며 이는 막대한 헌신과 비용을 요구한다. 임신중단은 출산을 하느냐 마느냐 이분법적으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며, 평생에 걸쳐 어떻게 살 것인가 통합적으로 숙고해서 결정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임신중단을 불법화하는 ‘낙태’죄는 국가가 필요에 따라 국민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그뿐인가. 직접 몸으로 임신 출산 등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재생산권은 생명권과 건강권에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도 우리나라 모성사망비(출생아 10만명 당 모성 사망의 수)는 8.4명으로 OECD 평균인 6.8명보다 높다.


▶ 모성사망비 (출처: e-나라지표 index.go.kr)


우리나라에서 임신중단이 출산보다 위험하게 인식되는 이유는 순전히 불법이기 때문이다. 임신중단이 허용되는 나라에서는 알약 복용을 통해 합리적인 비용으로 안전하게 임신중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낙태’죄가 있기 때문에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단법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불법 임신중단은 여전히 소파술이나 흡입술 같은 외과적 수술을 통해 터무니없는 비용으로 위험하게 이뤄지고 있다. 불법이기 때문에 임신중단을 한 여성들은 수술 후 부작용을 겪거나 감염이 되더라도 병원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낙태’죄는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들의 정보권과 의료권 등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많은 여성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Q. ‘낙태’죄 폐지하면 임신중단율이 증가한다?


A. 2016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임신중단율은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나라보다 허용하는 나라에서 오히려 더 낮다.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하고 출산-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나라일수록 원치 않는 임신은 줄어들고 임신중단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사회경제적 조건은 개선되기 때문이다.


임신중단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낙태’죄 폐지 여부가 아니라 낮은 피임률, 성차별 사회구조, 미성년 또는 비혼인 부모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차별, 과도한 양육비용, 실질적인 보육 지원 제도의 부재 등이다. 위와 같은 조건에서는 아무리 불법으로 규제해도 임신중단을 막을 수 없다. 짧지 않은 임신 기간과 남은 생애 전반이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때로는 생계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차라리 처벌받더라도 임신중단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은 여성 혼자만의 ‘선택’이 아니다. 상대 남성과 가족, 친지 등 주변 사람들의 영향과 광범위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영향이 개입되어 있다.


임신중단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임신중단 행위를 규제하는 대신 임신중단을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바른 피임법 교육과 확산, 성평등한 사회문화 조성, 다양한 가족구성에 대한 인정, 일-가정 양립 현실화, 의료 교육 등 영역에서 실질적인 사회보장제도 마련 등등. 국가가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는 것은 임신 출산 양육을 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가의 책무를 등한시하며, 국민의 재생산권과 행복추구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국가는 인구를 통제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낙태’죄를 이용해왔다. 그러나 ‘낙태’죄는 ‘원정낙태’를 증가시키고 임신중단을 음성화했을 뿐 실제 임신중단율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일시적으로 임신중단율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그것은 불법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졌던 수치가 표면상으로 드러나면서 생기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Q. ‘저출산 문제’ 해결하려면 ‘낙태’죄가 필요하다?


A. 앞서 살펴보았듯이 ‘낙태’죄는 임신중단율을 낮추지 못한다.


하나 더. 우리가 알고 있는 ‘저출산 문제’에는 맹점이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6년도 합계 출산율은 1.172명이다. 가임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평균 1.172명의 출생아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뜻이다. 부모 한 쌍 사이에서 출생아는 한 명밖에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미래에는 경제활동 인구가 부족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떠돈다(이에 대한 반박은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다). 언제는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기르자’더니 이제는 ‘혼자는 외롭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 따위의 표어가 성행한다.


▶ 출생아 수 및 합계 출산율 (출처: e-나라지표 index.go.kr)


그런데 ‘가임여성’이란 비혼 상태, 유배우자(배우자가 있는 상태), 사별 또는 이혼 여부를 불문하고 15세부터 49세에 해당하는 모든 여성을 의미한다. 그중에서 유배우자 여성의 비율은 불과 51%밖에 되지 않는다. 혼인제도 외의 출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임여성의 절반은 애초에 ‘출산하면 안 되는 몸’으로 분류되어 있는 셈이다. 실제로도 많은 경우 비혼여성의 임신중단은 혼외 출산을 기피한 결과로 나타난다.


그럼 유배우자 가임여성의 출산율만 따로 계산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가 2000~2016년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유배우자 합계 출산율은 2000년도에 1.7명이었고 2016년도에는 2.23명이었다. 출산율이 해마다 낮아진다며 ‘대한민국 출산지도’까지 만드는 판국인데, 유배우자 가임여성의 출산율은 16년 전에 비해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심지어 기혼여성이 비혼여성보다 임신중단을 더 많이 하는데 말이다.


즉, ‘저출산 문제’의 진짜 원인은 혼외 출산을 억제하는 사회와, 전반적인 혼인율 감소다.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것은 기혼 부부의 출산율이 아니라 유배우자 가임기 인구다. 베이비붐 세대가 해당 연령대에서 퇴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평균적인 초혼 연령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로부터 출발해서 무한정 n가지를 포기하는 ‘n포 세대’까지 확장된 우리 사회의 팍팍한 현실이 바로 ‘저출산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정말 ‘저출산 문제’를 걱정한다면 이러한 삶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낙태’죄는 증상에 대한 억압일 뿐이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Q. 모자보건법상 임신중절 예외조항을 추가하면 된다?


A. 모자보건법상 허용한계(이하 예외조항)는 국가가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말아야 하는 태아를 선별하고, 임신중단을 해도 되는 여성/해야 하는 여성을 선별하겠다는 차별적이고 시혜적인 의도를 담고 있다. 여성들의 임신중단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조항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임신중단을 적극적으로 권장 강요함으로써, 국가에 필요한 인구와 국가가 배제하고 싶은 인구를 명확하게 가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낙태’죄와 예외조항이 동시에 작동할 때 비로소 국가의 인구통제 시스템은 완성된다.


예외조항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모자보건법 14조 1항은 ①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②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④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⑤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의사가 배우자(사실혼 관계 포함)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낙태’죄가 정말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면, 예외조항은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를 제외하고 아무 것도 정당화할 수 없다. 본인이나 배우자에게 ‘유전학적 장애’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에 태아의 생명은 덜 소중한가?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에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출산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성폭력 가해자의 유전자는 보호할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인가?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이 예외조항에 포함되는 것은 태아의 부모가 법률상 혼인을 할 수 없기 때문인가, 근친상간은 유전학적 결함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인가?


만약 예외조항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한다면 그것은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는 일인가, 가난한 사람은 아이를 키우지 말라며 가난에 대한 혐오를 법제화하는 일인가?


국가가 ‘낙태’죄와 예외조항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여성은 임신중단을 하려면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또한 ‘낙태’죄는 임신중단을 한 여성만 처벌하는데, 예외조항은 여성의 배우자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여성의 몸 안에서 장기간 벌어지는 임신의 지속 또는 중단 여부에 대하여 왜 본인의 결정이 아닌 배우자의 동의를 강제하는가? 비혼여성도 예외조항에 해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혼여성만을 전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 2016년 10월 17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 피켓들 (출처: 성과재생산포럼)


한편, ‘낙태’죄는 의사들로 하여금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수술마저 기피하게 만든다. 의사들은 처벌받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예외조항 해당 여부와 배우자(또는 법적 보호자)의 동의 여부를 더욱 엄격하게 따진다.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은 예외조항에 해당하더라도 이를 증명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배우자(또는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합법적인 인공임심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다.


가령 성폭력 피해로 인해 임신한 경우에 병원에서는 최소한 가해자를 고소했다는 고소 사실확인서를 요구한다. 만약 피해자가 고소를 원하지 않거나 배우자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불법 임신중단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외조항에 아무리 많은 허용 사유를 추가한다 하더라도, 형법의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예외조항은 국가로 하여금 국가이익에 따라 인구를 선별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법이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존엄한 삶의 주체이지 국가 발전의 도구가 아니다. ‘낙태’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재생산권이 삶 전반과 연결되어 논의돼야 하는 이유를 정리해보았고, 국가가 재생산권을 통제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이용되는 주장을 Q&A 형식으로 반박하였다. 다음 기사에서는 앞으로 낙태죄 폐지와 더불어 어떤 지점들이 더 논의되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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