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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 "Cheer up, my girls" © 정은 그림
“선생님, 오전에 잠깐 뵙고 싶은데요, 괜찮을까요?”
상빈이 어머니로부터의 연락을 받고 약속을 잡았다. 마침 함께 공부하고 있는 지혜 어머니와 같이 오셨다. 평소 간단한 상담이나 알릴 사항들은 전화를 이용했었고, 이렇게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 건 공부를 시작할 때 뵌 이후 처음이다.
그때, 특히 인상적인 사람은 상빈이 어머니였다. 적극적이고 똑똑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어머니들은 참 많다. 그러나 교육관이나 아이들에 대한 시각이 마음에 들어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드는 부모님은 드물다. 상빈이 어머니는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학부모였다. 그래서 또 보자고, 자주 말씀을 나누고 싶다고, 평소 어느 어머니께도 하지 않는 말씀을 드렸었는데 그건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보게 되었다. 꼭 10개월 만이다.
“저는 선생님이 매번 보내 주시는 평가서 중에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상빈이가 ~점이 부족합니다’ 라고 아이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시는 거예요.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지를 읽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상빈이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는 내 마음을 제대로 읽어주는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다. 대부분은 제대로 읽지도 않고, 또 읽더라도 건성으로 보고 던져버리는 부모님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더욱이 불편할 수도 있는 지적들을 도리어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이 있다는 걸 발견하는 일은 감동적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지혜 어머니가 문득,
“지혜는 꿈을 정하지 못했나 봐요. ‘엄마는 내가 뭘 했으면 좋겠어?’ 라고 제게 묻는데….”
나는 그녀가 지혜에게 뭐라고 대답했을지 궁금했다. 아이들의 꿈과 관련해서는 할 이야기가 정말 많다. 내 경험은 물론,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에게 기대하는 너무 많은 학부모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혜에게 이렇게 대답했단다.
“엄마는 네가 원하는 걸 하길 바래.”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라도 ‘이게 좋겠다, 저게 좋겠다’ 부모의 생각을 은근히 요구하는 사람이 많은데, 엄마는 뭘 하면 좋겠냐고 묻기까지 하는 상황에서조차 ‘네가 원하는 걸 하길 바란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보통 내공이 아닌 것 같았다. 지혜 어머니의 말씀이 끝나자, 상빈이 어머니도 덧붙였다.
“상빈이의 요즘 꿈은 전투기조종사예요. 전 아이들의 꿈이 열두 번도 더 바뀐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아이들이 애쓰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저는 항상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고, 아이아빠는 ‘네가 잘하는 걸 하길 바란다’고 말해요.”
나는 보통 때는 어머니들의 말에 ‘그건 아닌 것 같다, 어쩠다’ 등의 토를 달 때가 참 많다. 그런데 그날은 두분 다 더할 말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생각들을 말해, 맞장구만 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난 이런저런 교육적인 생각들을 말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을 키워도 그것을 견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교육적인 관점을 잘 유지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을 뵈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 새 훌쩍 시간이 흘렀다. 이제 가봐야겠다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아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부모들이 있어 희망이 있다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우리들과는 좀 다르게 살 거라고, 그녀들이 키우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을 키워내는 이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들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본다. 정인진의 교육일기▣ 일다는 어떤 곳?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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