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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도, 욕설도 없는 촬영현장 만들기
<남순아의 젠더 프리즘> #영화계_내_성폭력 공론화 1년 후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남순아님은 페미니스트 영화인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촬영 현장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강의하다
얼마 전 백승화 감독(걷기왕, 2016)이 연출한 웹드라마 <오목소녀> 촬영을 마쳤다. 나는 이 작품에 인물 담당 연출부로 참여했고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걷기왕> 촬영 때는 교육을 받는 스태프 위치였던 내가 이번에는 강사로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올해 6월,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여성민우회가 공동 주관한 ‘영화산업 내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단 양성교육’을 받은 덕분이다.
▶ 웹드라마 <오목소녀> 스탭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하는 모습 ⓒ남순아
<걷기왕> 때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제안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불평할까봐 지레 걱정했다. 다른 현장에서는 ‘우리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거냐’며 교육에 불만을 표한 스태프도 있었다고 한다. 어째서 ‘잠재적 조력자’가 아니라 ‘잠재적 가해자’에 감정 이입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행히 <오목소녀>에서는 자연스럽게 성희롱 예방교육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걷기왕>이 이슈가 되면서 백승화 감독 현장에서는 당연히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할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성희롱 예방지침도 <걷기왕> 콘티북에는 맨 뒤에 실렸다면, <오목소녀> 콘티북에는 앞 쪽에 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현장의 성희롱 예방교육을 내가 진행하면 어떻겠냐고 제안 받았을 때는 걱정부터 앞섰다. 강의를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이면서 동시에 이 작품에 속한 스태프란 이유로 홀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젠더폭력에 책임을 쳐야할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가 되었다고 해서,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화내는 사람이 무섭다. 여기서 말하는 ‘화'는 특정한 화를 의미한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드러내는 짜증, 고성과 욕설, 나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를 비롯한 사람들)를 긴장하게 만드는 행위들이 그것이다.
생각해보면 영화 현장에서 나를 버티기 어렵게 만든 것은 성폭력만이 아니었다. 직급과 나이, 경험 차에 의한 위계폭력도 늘 위협적이었고, 훨씬 자주 일어났다. 그러나 위계폭력의 경우엔 ‘영화 현장이 원래 그렇지, 뭐’라거나 ‘바쁘니까 어쩔 수 없잖아’ 하는 식으로 성폭력에 비해 가볍게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겁이 많은 나는 항상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한동안 극영화 일을 하지 않았던 것도, 혼자서 작업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것도, <걷기왕> 촬영 때 성희롱 예방교육을 제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 촬영 중 배우 가이다마(앵글과 조명을 보기 위해 배우 대신 위치하는 것) 서는 모습 ⓒ남순아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걷기왕>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한 것이 알려져 주목받았을 때, 사람들은 우리가 교육을 받았으니 다른 현장과 달랐을 거라고 기대했다. 심각한 폭력은 없었지만 평등하고 민주적인 분위기였다고 할 수는 없어서, 이전에 참여했던 현장과 다른 게 있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대에 못 미쳐 미안한 기분이 들곤 했다.
사실 겨우 두 시간의 성희롱 예방교육으로 변하는 것은 많지 않다. 평등은 한 번의 교육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위계를 허용하고, 영화라는 대의를 지향하는 문화에 익숙하다. <걷기왕>의 콘티북에 실린 성희롱 예방지침을 보면, 성희롱은 ‘문제 있는 개인’에 의해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가 묵인되고 재생산되는 조직문화로 인해 발생한다고 나와 있다. 조직문화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무엇이 바람직한 행동인지 알게 하고, 구성원들의 행동과 태도를 결정한다. 이 조직에서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지 구성원들은 내부에서 학습하게 된다. 따라서 조직문화는 서로에게서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재생산되며 변화한다.
레베카 솔닛은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을 가르치려 들고 여성의 발언권을 빼앗는 행위가 여성에 대한 강간과 살인까지 이어지는 연속선 상의 현상들이라고 지적한다. 폭력은 점진적으로 커지고 강화된다. 조직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 조직에서 무엇을 허용하느냐에 따라, 일상적 행위가 위계폭력과 성폭력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봐도 분명한 위계폭력과 성폭력보다, 폭력이라고 하기 애매한 것 사이의 것들을 더 많이 겪는다. 따라서 위계폭력과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조직에서 가해자만 배제하는 것은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 가해 행위를 가능하도록 허용했던 조직문화를 돌아보고 수정해야 한다. 성폭력은 젠더 위계가 주요하게 작동하는 폭력이므로, 성폭력도 위계폭력과 별개의 것으로 볼 수 없다.
나는 혼자서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개인이 조직문화를 만들거나 바꿀 수 없기에, 변화의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하고 그 변화의 방향이 합의되어야 한다. ‘폭력을 저지르지 말자’라는 추상적 합의가 아니라, 무엇을 폭력이라고 생각하는지 각자의 감수성을 맞추는 것도 중요했다. 다른 스태프들과 이전 작업들에서 폭력적인 상황을 겪거나 목격한 적 있었는지, 우리 현장은 어땠으면 좋겠는지, 그러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대화를 잠깐씩 쉬면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혹은 귀갓길에 일상적으로 나누었다. 성희롱 예방교육이 끝난 뒤에는 교육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고민과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대화의 과정에서 어떨 때는 우리의 문화를 돌아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방법이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명쾌한 해결법은 없어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외롭지 않았다. 문제가 생겨도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 <오목소녀> 사무실에 프린트해서 붙여두었던 평등문화 약속문.
감독의 당부가 가져올 수 있는 효과
촬영 첫째 날, 첫 컷을 찍기 전 백승화 감독은 전체 스태프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꺼냈다. “촬영장에서 바쁘고 긴장된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등의 위계 폭력을 많이 겪어보았을 것입니다. 이번 현장에서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랍니다. 저부터 그러한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각 파트의 스태프들과 특히 헤드 스태프들께 당부 드립니다. 이미 알고 계신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첫 촬영 전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9회차 잘 부탁합니다.”
촬영장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는 감독이 위와 같은 당부를 한 것은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에게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이번 현장 스태프의 75%, 키 스태프의 3분의 2가 여성이었다(보통 현장은 반대의 경우가 많다).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백승화 감독도 저 공지를 할 때 매우 떨렸다고 한다. 다만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성/평등한 조직이 된 것이 아님을 알기에,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교육에서 나온 내용을 예방지침으로 만들어 콘티북에 실은 것처럼, 촬영에 들어가기 전 한 번 더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상기시킨 것이다.
늘 그렇듯 이번 촬영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완벽한 현장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과 관련되지 않은, 상하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훨씬 적었기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공동체는 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능률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주요 스태프들이 그런 분위기를 형성하니 다들 따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스태프와 배우들도 소리 지르거나 위압적으로 현장을 이끄는 사람이 촬영장에 없어서 좋았다고 한다. 한 스태프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돌아가는 현장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우리를 지켰구나’ 하는 생각에 만족하고 있을 때, 보조출연으로 오신 배우 분이 이 현장에는 욕설도, 닦달도, 무시도 없어서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는 걸 전해 들었다. 예상치 못한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내가 얼마나 협소하게 ‘우리’와 ‘영화계’의 범주를 잡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 <오목소녀> 촬영 중 슬레이트를 치는 모습 ⓒ남순아
‘#영화계_내_성폭력’ 누가 해결할 것인가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나온 지 1년이 지났다. 해시태그 운동 이후 나는 ‘#영화계_내_성폭력’에서 영화계는 어디인지 계속해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현장에서 겪은 성/폭력 피해 경험을 말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신과 관계없는 일인 것처럼 선을 그었다.
한 남성 영화인이 자신은 그런 일을 듣도 보도 못했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내 피해 경험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키 스태프의 위치에 오른 여성 영화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런 일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상업영화를 하는 영화인들로부터는 단편영화, 교육기관, 독립영화 판에서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상업영화 현장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들었고, 반대로 독립영화 하는 사람으로부터는 상업영화 현장에서나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은 ‘극영화계에 문제가 많지’ 라고 말했다. 아무도 폭력과 관계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데, 그 폭력은 도대체 누가 저지르는 것이며 어떻게 허용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누가 해결해야 하는지도.
자신이 폭력과 관계가 없다고 여기면 폭력은 계속 남의 문제가 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폭력의 고리를 끊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다른 누군가 혹은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변화는 영화계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작업을 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나고, 어떤 현장이 좋은 현장인지 토론하고, 좋은 현장을 경험하고,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면서 영화계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다.
이러한 태도가 게으르고 순진한 것은 아닐까 고민할 때도 있지만, 해결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는 않으려 한다. 폭력을 버티지 못한 이들이 떠나면 그것을 버틸 수 있는 이들만 현장에 남게 되고, 그들에 의해 폭력을 허용하는 문화는 강화된다. 나는 떠나지 않고 변화를 만들고 싶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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