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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의 밥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밥 공부③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빛이 들어온 식탁 ⓒ김혜련
왜 밥하는 일이 늘 낯설까?
잠 속에서 어슴푸레 눈을 뜬다.
다다다닥, 다다다다…
도닥도닥, 도닥도닥 도도도…
통통통통. 토동토동, 통통통…
도마 소리다. 오래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마치 행진곡을 듣듯 경쾌하고 발랄하다. 한 가지 소리가 아니라 다양하기도 하다.
도마 소리가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불규칙하고 둔탁한 도마 소리 따라 쿵닥쿵닥 불안하게 뛰던 내 심장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아직 덜 깬 몸이 느끼는 방의 따뜻한 온기를 즐긴다. 삶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다는 든든한 느낌.
이런 내가 낯설다. 아침이면 엄마의 화난 도마 소리와 ‘빨리 일어나서 일하라’는 고함 소리에 익숙한 나는 늘 도마 소리가 불안했다. 빨리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지 않으면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선전포고처럼 들리던 소리다. 늘 나를 허둥지둥하게 만드는 소리다.
성인이 된 뒤 나도 엄마처럼 밥 하는 일을 지겨워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누군가 밥을 하고 있으면 괜히 불안해졌다. 옆에서 거들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가 내게 화를 내거나 미워할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내가 밥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빈둥대고 놀고 있으면 화가 났다. 밥 하는 일은 고역이므로 누가하든 함께 같이 해야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M이 밥을 할 때도 나는 옆에서 거들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그가 자신이 밥하는 전 과정을 계획하고 자기 속도와 흐름에 따라 하고 있다는 것, 내가 거드는 것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밥 하는 행위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그가 정성스럽게 해주는 아침밥을 꼬박꼬박 받아먹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불안과 어리둥절함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이윽고 잠자리에 누워 그의 도마 소리를 들으며 감미롭게 다시 잠이 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 밥에 대한 질문들이 많아졌다. 나는 왜 밥을 하러 부엌에 들어가는 행위가 그리도 힘들까? 왜 밥하는 일이 늘 낯설까?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늘 막막하기만 한 것일까?
▶ 음식 재료들을 가지런히 담아놓다. ⓒ김혜련
밥하기
M이 밥하는 행위와 태도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밥 하는 일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숙달도 없다는 거였다. 수십 년 밥을 했는데 밥하는 일에 대해 어떤 물리도 익힌 게 없다니… 난감했으나 그게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싫은 일을 하는데 거기서 무엇을 익힐 것인가? 오히려 증오심만 키웠을 뿐이었다.
“언니야, 언니가 된장찌개 끓여 밥해준다 하면서 세 번이나 쓰러진 거 기억하나?”
후배의 말대로 나는 밥 한 번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내가 밥 한 자리는 폭탄이 서너 개쯤은 터진 것 같았다. 냄비와 솥, 그릇들이 온통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다. 이거하다 저거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채소를 씻고 있는데, 가스 불 위에 올려놓은 찌개는 끓어 넘치고, 그걸 끄고 오면 물은 온통 여기저기로 튀고… 그러다보면 정신이 다 나간 듯 혼비백산이다.
“공부 못 하는 것들은 청소도 못 한다니까…”
교사 시절 동료가 하던 말이다. 나는 그 말이 잔인하게 들리기도 하고 좀 찔리기도 했다. 나도 청소를 잘 못하는 사람이다. 이유를 물으니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청소할 때도 머릴 써서 책상을 다 밀고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은 뒤 다시 책상을 정리정돈해서 시간도 노력도 덜 쓰면서 깨끗하게 하는데,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청소하는 걸 보면 여기 쓸었다 저기 쓸었다, 걸레질 했다 책상 옮겼다, 분주하고 힘만 들이지 질서도 없고 청소도 깔끔하지 못하다는 거였다. 나도 그랬다. 밥을 할 때 나는 이 거했다 저 거했다 힘만 들었지 도대체 질서도 없고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M을 관찰해보니 부엌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해먹을지 미리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밥하는 전 과정을 꿰고 있었다.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부엌에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부엌을 항상 깨끗이 정돈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보니 불필요한 에너지가 안 들고 기분도 상쾌했다.) 쌀은 밥하기 30분 전에 담가두고, 필요한 재료들을 냉장고에서 꺼내오고, 국물을 낼 야채나 멸치를 다듬어서 국물을 내고, 반찬거리나 국거리들은 썰어서 큰 접시에 각각 담아두었다. 일정한 두께와 크기로 썰어 놓은 재료들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그 전 과정에서 싱크대에 널리는 그릇이나 도마 칼 등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행주로 닦았다. 물 튀김이 없도록 수돗물은 적당한 수준으로 틀고, 물일을 하다 다른 일로 옮길 때는 손을 행주에 닦았다. (늘 물을 질질질 흘리며 밥을 하는 나는 무슨 대 발견을 한 양 기뻤다. 아, 행주로 손을 닦으면 되는 거였구나!) 밥하는 과정에 복잡하고도 다양한 질서가 있는데, 그게 오래 몸에 배어 거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하나의 음식을 만드는 일은 메뉴 구상부터 설거지까지 여러 단계의 과제들을 포함한다. (…) 음식을 만드는 작업이 이 단계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복잡성을 더한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기도 하지만 한 가지 음식을 만들 때도 설거지와 정리정돈, 조리·가열은 동시에 진행된다. 또 메뉴 구상이 재료 구입에 앞서기도 하지만 장을 보다가 메뉴를 바꾸기도 하고,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의 상태가 메뉴를 결정짓기도 한다. 이 모두는 짧게는 하루, 길게는 1년 뒤의 밥상까지 내다보는 작업이다.
주부는 내일 먹을 쌀을 오늘 밤에 불려 놓고 여름에 나는 재료로 가을까지 먹을 장아찌를 담그며 가을 김장은 1년에 걸쳐 준비한다. 이 누적된 노동이 모여 한 끼의 밥상이 차려진다. (…) 아주 길고 다차원적인 시간에 걸쳐 행해지면서도 바로 그 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적시 노동이란 게 집밥 노동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한마디로 ‘엄청나다.’ -김원정, “집밥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집밥의 미래설계는 페미니즘 과제, 레디앙, 2015년 7월 22일자
김원정의 말대로 한 끼의 밥이 밥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하고도 ‘엄청난’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하찮게 보고 대충 때우려했으니 배울 수 있는 게 없었다. 밥 하는 일의 구체적인 질서나 규칙을 익힌 게 없으니 부엌에 들어가는 일이 막막하기만 한 거였다. 항상 처음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 들판 가득 벼들이 익는다, 밥이다! ⓒ김혜련
밥의 개념
“나 밥 잘 해요~”
나이 들어가면서 부부가 함께 밥을 해야 사는 게 평화롭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 남편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전기밥솥에 쌀 씻어 누르는 게 밥하는 거라면 유치원생도 하지.”
친구는 기가 찬다는 듯이 혀를 찼다.
‘밥만’ 하는 걸 밥 한다고 여기는 친구 남편을 보면서, 그나 나나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밥’하면 그저 한상 잘 차려놓은 밥상을 떠올리는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밥의 소비자’의 위치에 자신을 세워둔 것이었다.
그러나 밥을 한다는 행위를 제외하고 밥을 먹을 수 있는가? 밥을 먹는다는 건 ‘밥을 하는 행위’와 ‘밥의 재료’가 밥 개념에 들어가야 가능해진다. 밥의 외연을 넓히면 밥은 ‘한 입 톡 털어 넣는’ 게 아니라 아주 육중한 문제가 된다.
밥의 개념 속에 ‘밥하는 행위’가 들어오면 밥이 달라진다. 밥을 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게 된다. 억지로 하는 밥, 기계적으로 하는 밥, 대충하는 밥, 정성스러운 밥, 즐거운 밥… 다양한 밥이 있다. 그러면 묻게 된다. 누가 밥을 하는지, 왜 계속하는지… 정성스러운 밥, 즐거운 밥이 되려면 어떤 사회경제적, 개인적 조건이 필요한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또한 밥의 개념엔 당연히 밥의 재료들이 들어가야 한다. 마트에 진열된 재료를 돈 주고 사는 걸 넘어서, 작물을 땅에 심는 것까지 가야만 최소한의 밥 개념이 될 수 있다. 농사짓는 행위가 곧 밥이다. 유전자 조작된 농산물이나 농약을 먹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 국적불명의 재료나, 음식이 아닌 데 음식인 척 하는 가공품들을 먹는 일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 작지만 단단한 가을무 ⓒ김혜련
밥하기의 즐거움
밭에서 무 하나를 뽑는다. 비료를 먹지 않고 제 힘으로 자란 무는 작지만 단단하다. 햇빛에 드러난 푸른 부분은 단아하고 땅 속에서 올라온 흰 부분은 말갛다. 늦여름에 씨를 뿌리고 물을 준 생명이 씩씩하게 잘 자라 가을 햇살에 반짝이며 줄 지어 서 있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무청은 잘라서 무시래기를 만들면 겨울 내내 맛있는 시래깃국을 먹을 수 있다.
무를 흐르는 물에 씻는다. 단단하고도 묵직한 무의 몸이 믿음직스럽다. 무로 만드는 음식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들깨국이다. 냄비에 다시마, 굵은 멸치, 말린 표고버섯을 넣어 다싯물을 낸다. 무를 약간 도톰하게 채를 쳐 들기름에 볶다가 우려낸 육수를 붓고 끓인다. 들깨가루를 큰 숟가락으로 듬뿍 넣고 은은한 불에 좀 더 끓인다. 집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다진 마늘과 파로 양념을 한 다음, 한 숟가락 떠서 후후 불며 맛을 본다. 담백하면서 구수하고 달달하다. “와아~ 바로 이 맛이다!” 내가 좋아하는 뭇국의 완성이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정성들여 밥을 한다. 밥 하는 전 과정을 자각적으로 느끼면서 ‘허겁지겁’이 아니라 천천히, 어떤 질서를 가지고. 그러면 밥 하는 행위에 기쁨이나 빛 같은 것이 들어온다. 쌀을 씻을 때와 미역을 씻을 때의 손의 감촉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되고, 그 감촉의 차이가 주는 즐거움을 느낀다. 밥하기의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어가는, 느리고도 긴 내 여정이 스스로 믿음직해질 날이 머지않아 오리라.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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