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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로 환대하기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스킨십에 대하여



군 소재지의 작은 중학교. 아니 규모가 아주 작은 편은 아니었다. 한 학년에 일곱 반, 한 반에 30~40명가량의 학생이 있었으니. 군 안에서도 읍내라고 불리는 도심부에 여자중학교라곤 이곳 딱 한 곳뿐이었다. 읍내에 있는 3~4개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여학생들은 그대로 이 중학교로 진학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서로 이름이나, 혹은 얼굴이라도 모르는 사이인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학교에선 어떤 소문이든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안 좋은 소문일수록 더 빨랐다. 누군가는 또래집단에서 튕겨나가기도 했다. 원체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던 나도 숨죽이며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간간히 몇 반 누구랑 몇 반 누가 사귄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러면 ‘더럽다’거나, ‘게이는 괜찮지만 레즈는 싫다’는 등의 소리가 나왔다. 친구들은 손쉽게 나를 이성애자로 단정했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 아닌 노력을 해야 했다. 있지도 않은 이성의 이상형을 만든다든지, 별 관심도 없는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척 한다든지.

 

그 중 가장 신경이 쓰인 부분은 스킨십이었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정도의 스킨십이야 흔한 일이었지만, 나는 거의 질색하는 수준으로 스킨십을 싫어했다. 아니, 스킨십이 싫었다기보다는 나중에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게 됐을 때 그들이 보일 반응이 두려웠다. 내가 다른 친구들처럼 별 생각 없이 했던 스킨십이 성애적으로 해석될 것 같았다. ‘헐. 걔가 레즈라고? 나 걔랑 손잡은 적 있었는데!’ 하며 경멸하는 표정을 짓는 친구들 얼굴이 상상됐다. 이 모든 게 망상이라면 좋겠지만 아직 내가 겪지 않았을 뿐 실제로 발생하는 일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정체성을 잘 숨기며 사는 것뿐.

 

성인이 된 지금, 운 좋게도 주변 사람들은 나를 존재 자체로 봐주었다. 나는 그래도 굳이 불필요한 터치는 하지 않았다. 지인들이 나를 멋대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지만, 이미 스킨십이라는 것은 나에게 어색한 무엇이 되어있었다.

 

스킨십을 꺼리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어딘가 삭막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한들 어쩌겠는가. 태도를 바꿀만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지냈다.

 

스킨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건, 올해 열린 대구 퀴어문화축제에서다. 마냥 신나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부스 앞을 지나던 참이었다.

 

“괜찮아요.”

 

대뜸 괜찮다며 팔을 벌리는 활동가 분에게 나도 모르게 다가갔다. 그 분은 나를 꼬옥 안아주며 ‘괜찮아’, ‘너의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 ‘많이 힘들었지?’ 같은 말을 해주었다. 나는 그동안 크게 힘든 일도 없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랑받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한 번의 포옹이 주는 어떤 위안을 느꼈다.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환대였다. 모든 게 무장해제 되는,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은 느낌.

 

스킨십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냥 존재 자체로 환대받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또 생각하게 된다.

나는 타인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환대할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기사 

 

▶ hug    ⓒ머리 짧은 여자, 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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