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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강박

[머리 짧은 여자 조재] 무엇을, 누구를 위한 생산성인가



내가 사는 지역의 구인/구직 등 다양한 정보가 올라오는 커뮤니티와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종일 들여다본다.

 

“언니, 아직 쉰지 3일 밖에 안 됐어요.”

 

G가 말했다. 일을 그만둔 뒤 12월 한 달은 편히 쉬려 했지만 괜히 마음이 조급하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는 상태를 견디기 힘들다.

 

도저히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것저것 시도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특히 하루짜리 강연을 신청해서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는 일이 잦다. 각자의 고민과 경험이 오가는 자리에서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청자’ 위치에만 머물러 있다. 열심히 자기 경험을 나눠준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자주 허무해진다. 나도 내가 무엇을 바라고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다.

 

▶ 일단 멈춤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방 구조를 바꾸겠다고 책장을 들어 옮기고, 안 입는 옷들을 주섬주섬 챙겨 담고, 공간만 차지하던 온갖 물건들을 빼버렸다. 집에 쌓여있던 쓰레기까지 포함해 20L 봉지로 거의 10봉지 가량의 쓰레기가 나왔다. 이 작은 집에 별로 사들이는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이 나올까. 그래도 한바탕 비워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그래,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이런 ‘비우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도 집이 있다면, 내 마음의 집은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을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어서, 가치 있는 물건을 새로 들여도 금방 잊혀질 것이다. 늘 어딘가 공허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려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생산적으로’ 물건을 쌓아놓는 일을 그만하고 싶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생산성’인가. 자꾸만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을 멈추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유일한 혁명은 게으름이라는 말을 임옥희 선생님에게서 들었는데,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게으름’일지도 모른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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