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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품평이 인사를 대신하는 학교, 이대로 좋은가
‘여성의 몸 이미지’에 다양성과 자유를!① 윤다온
지난 4년 동안 여자중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외모에 대한 이야기들로 인해 나는 조금 질려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옷차림과 외모에 대한 평가가 아이들의 인사말이었다. 화장과 다이어트가 화제에 오르는 건 교무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말을 더 얹지 않아도, 이미 십대들 사이에서 ‘외모’ 이슈는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대체로 외모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말 한마디로 바뀔 수 있는 문제도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짐짓 훈계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 하는 무기력함도 내 침묵의 이유 중 하나였다.
외모 이슈가 넘쳐나는 학교 안에서,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학교생활을 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 비해 화장을 하지 않으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아이들의 수가 조금 더 많아졌고, 다이어트를 위해 점심 급식을 거르는 아이들이 조금 더 많아졌을 뿐이었다. 몸매 관리를 위해 단식을 하다가 운동장에서 쓰러지는 아이가 드물게 있었고, 살찐 몸을 드러내는 게 싫어 사시사철 검은 후드티를 입고 다니는 아이가 한 둘 있을 뿐이었다.
섭식장애쯤이야 예뻐지기 위한 비용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에서, 획일화된 미적 기준에 짓눌린 아이들의 자존감과 심리적 안정감, 성취 능력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들은 애초에 사회적 비용으로 계산조차 되지 않았다.
영리하게도 십대들은 우리 사회에 두 가지 모순된 상식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외모지상주의가 나쁘다’는 건 상식이지만 ‘여자라면 모름지기 꾸며야 한다’는 것 또한 상식인 것이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건 나쁘다는 건 모두가 수긍하지만, 여성의 몸을 나노미터 단위로 구분해 관리하고 평가하는 ‘일상’에서 차별을 찾아내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여성의 몸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구조는 가려둔 채, 여성이 외모를 관리하는 건 ‘자연스러운 본성’이고 여자아이들이 외모에 몰두하는 건 ‘청소년의 특성’이라고 쉽게 ‘문제가 아닌 것’으로 취급된다. 학생들도 이 주제로 토론을 할 때면 답이 정해져있다는 듯이 한 목소리로 그 폐해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그런 당위보다는 ‘예쁜 몸’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걸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몸에 대한 관심은 강렬한데 자기 몸은 모른다?
▶ 동아리 시간 아이들이 조별로 그린 ‘여성의 몸’ 그림. 여성의 몸이기 위해 갖춰야 하는 조건이 꽤 구체적이다. ⓒ윤다온
아이들이 화장과 다이어트를 한다는 사실보다 내게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이들이 사로잡혀있는 ‘몸 이미지’의 강력함이었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TV에 나오는 마른 여성의 몸을 ‘예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또 그 아름다움에 가까워지고 싶어 했다. 내가 백날 아이들에게 ‘넌 지금 있는 그대로 예쁘다’고 말해도, 문제는 아이들 눈에는 자신들의 평범하고 굴곡진 몸이 전혀 ‘예쁘지 않다’는데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가까워지고 싶은 아이들의 욕망은 강렬했다. 마르고 예쁜 여성의 몸을 갖는 것은 이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였다.
한편, 외모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해서 아이들이 자기 몸을 잘 아는 건 아니었다. 성교육 동아리 시간, 자신의 벗은 몸을 전지에 각자 그려보자는 내 제안에 아이들은 경악했다. 거울을 보고 그려도 좋고, 아니면 머릿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도 좋다고 했지만,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그리는 일 자체에 거부감을 표했다. 기껏해야 큰 전지 한 쪽 구석에 아주 작은 그림을 그리거나 얼굴만 크게 그리는 데서 그쳤다.
과학시간에 배웠을 법도 한데, 자신의 성기를 그리는 활동 시간에는 수치심은 둘째 치고 여성의 성기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모르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일 그람, 일 미리미터 단위로 자신의 몸에 관심을 기울이는 아이들이 정작 자기 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 불균형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여성의 몸에 대한 대상화와 상품화가 융단폭격 수준으로 이뤄지는 이 사회를 떠올려보면, 아이들의 불균형한 몸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사회화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제 중학생인 여자아이들에게도 이미 몸은 매일 부대끼고 돌봐야하는 나의 일부가 아니라 보여지는 것, 혹은 보여지기 때문에 관리해야 하는 소유물로 인식된다.
‘마르고 예쁜 여성의 몸’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욕망은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범주 안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인 동시에, 여성의 몸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모방하는 과정인 셈이다. 성인 여성들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문제에서 십대들이 자유롭길 기대하는 건 무모한 기대이거나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눈가림일 것이다.
여성의 몸 이미지는 교육의 이슈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대표적인 사회화 기관인 학교에서, 왜곡된 여성의 몸 이미지를 바로 잡기 위해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적지 않다.
이를테면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여성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돕는 미디어 독해력 교육, 여학생들의 신체 활동을 강화할 수 있는 체육 교육, 젠더뿐 아니라 인종, 성적 지향, 장애 유무 등 여러 차이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수용하는 다양성 교육, 건강한 몸 이미지와 자존감 형성을 목표로 한 균형 잡힌 성교육 등. 기존의 교육 과정 내에서도 건강한 몸 이미지를 강화하는 교육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영국의 학교에서 그러하듯 별도의 몸 이미지 교육을 진행하거나 정부 지원으로 외부 기관에 교육을 의뢰하는 것 또한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러나 문제는 학교뿐만 아니라 교원과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이 현재의 획일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의 몸 이미지를 ‘바꿔나가야 할 문제적 현실’로 인식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왜곡된 몸 이미지로 인해 십대 여성들이 놓치고 있는 성취 기회와 행복, 그들의 훼손된 자존감을 사회적 비용이자 손실로 여기지 않는 이상, 학교는 그저 학교 밖 사회를 그대로 비추는 역할을 할 뿐이다.
미디어에서 주입하는 ‘마르고 예쁜 여성상’이 아이들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민 없이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같은 욕망을 품고, 그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십대 여성의 문제인 동시에 성인 여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거대 산업이 되어버린 성형산업과 상품성을 우선시하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여성의 편향된 이미지는 여성들의 선택을 크게 제약하고 있으며 살찐 몸, 나이든 몸, 장애가 있는 몸 등 다양한 몸의 재현을 가로막는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마른 몸을 욕망하는 동시에 외부의 기준보다 자신이 규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은 욕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선택 차원을 넘어, 미디어 산업, 미용산업과 같이 몸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이 또한 오늘의 현실을 ‘변화시켜야 할 문제 상황’으로 다수의 여성들이 인식하고 있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다양한 몸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하여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실 나도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미적 기준(마른 몸에 대한 이 획일적인 추종을 미적 기준이나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이나 가치관은 물들게 할 수 있을지언정 타인에게 이식할 수는 없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표정과 태도에서 더 많은 것을 학습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공부나 하라’는 통제나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아리송한 말보다 사회에서 규정한 여성의 몸 이미지에 벗어나 있어도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여기는 자존감 있는 여성들, 사회의 기준을 넘나들며 자기 나름의 스타일과 개성을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가 있고, 동시에 아름답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들에게도 그 권리가 있음을, 권리를 향유하고 있는 어른들을 통해서 배운다. 여성의 몸이 시장에 도매급으로 넘겨져 마구 등급 매겨지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아름다울 권리와 아름답지 않아도 될 권리를 향유하며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들에게 기존의 몸 이미지를 쫓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성인 여성들이 왜곡된 몸 이미지에서 해방된다면 십대 여성들의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성인 여성인 나는 과연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지, 자유롭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내 고민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윤다온)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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