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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 자립하기…하늘의 별따기야
[나의 알바노동기] 주거가 불안정하다는 것
※<일다>는 청년여성들의 가감없는 아르바이트 현장 경험을 기록합니다. “나의 알바노동기”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쉼터와 그룹홈, 자립팸을 거쳐 고시텔로
▶ 16살 집을 나온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왔다.
열여섯 살에 집을 나왔다. 우리 집은 남녀차별이 심했다. 한마디로 가부장적인 집이다. 형제들은 집안 사정 상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워낙 옛날 분들이라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는 크고 작은 성차별을 당하는 게 싫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살 터울의 오빠는 고기반찬에 계란후라이까지 잘 차려진 밥상을 받았지만 내가 밥을 먹을 때는 김치에 김이나 국물, 뭐 이런 것밖에 없었다. 오빠와의 대우에서 차별을 당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밥 먹을 때가 제일 서러웠다. 게다가 폭력까지 겪었기 때문에 집을 나와서 청소년 쉼터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러 쉼터를 돌아다니다 보니 힘들어서 이제 그만 정착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열일곱 살에 들꽃청소년세상에서 만든 그룹홈에 들어갔다. 그룹홈은 청소년 쉼터에서 3~6개월 지내면 갈 수 있는 곳인데, 한 집에 다섯 명 정도 청소년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산다. 스무 살이 되면 자립해야 하는 곳이다. 그곳에 있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다. 하지만 그룹홈 선생님이 수급비를 관리해서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돈이 항상 부족했다. 그때 첫 알바를 했다. 산본에 있는 헬스장 전단지 알바. 그게 나의 첫 일 경험이자 첫 월급을 받은 경험이다.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 주는 일과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가 꼭대기 층부터 내려오면서 현관문에 전단지를 부착하는 일을 동시에 했다. 지금처럼 완전 더운 여름 날씨여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건 기본이었다. 힘들긴 했지만 열심히 일했다. 나름 재미도 있었다. 사장님이 점심이나 저녁을 매번 사주셨다. 전단지는 하루에 4~5시간 1천 장 정도를 돌렸다. 내가 일을 너무 잘해서 사장님이 시급을 1만원이나 주면서 일을 시켰다. 학교 끝나면 시간 남을 때마다 일을 하고, 주말에도 시간 있으면 일을 했다. 그렇게 전단지 알바가 끝나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 고깃집에서 서빙과 주방을 동시에 봤는데, 거의 주방 위주로 일했다.
그룹홈에서 나온 후, 열여덟 살에 자립팸 ‘이상한나라’라는 집으로 들어갔다. 여자청소년 다섯 명이 생활비 10만원씩 내고 2년 동안 지내며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집이다. 다양한 일자리를 소개받고 지원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거기서 1년 6개월 동안 살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취득했다.
그리고 마트 캐셔, 밥버거 주방과 캐셔, 택배 상하차 등 여러 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버는 족족 쓰기 바빴다. 알바만으로 돈을 모아서 자립할 준비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최저임금이라 휴대폰비 등 내가 써야할 돈을 모으는 것만도 힘들었고, 정기적으로 꾸준히 일을 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다.
열아홉이 되어서 자립팸을 나와 근처 고시텔로 들어가 지냈다. 고시텔에 살며 돈을 모을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다. 홈쇼핑 상담원, 고깃집 서빙을 했는데 생각만큼 돈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 다른 지원 없이 최저임금만 받으면서 고시텔비, 핸드폰요금, 교통비, 식비 등으로 나가는 돈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결국 돈을 모으지 못했다.
신용카드를 만들면서 생긴 일, 빚…
고시텔에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창문도 없어서 답답하고 아침인지 밤인지 구별하기도 힘들다. 남녀 공용 화장실도 불편하다. 그래서 고시텔을 나와 친구랑 자취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졌다. 생필품과 식비, 필요한 가구 등을 사야 해서 돈이 고시텔 살 때보다 많이 나갔다.
그 당시엔 홈쇼핑 상담원 일을 하고 있었는데, 월급 통장을 만들러갔다가 은행 직원이 내가 일하는 직장이 4대보험이 되고 이제 스무 살이라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다면서 카드를 만들라고 권유했다. 생활비가 항상 부족했던 나는 그 말에 넘어갔다. 딱 스무 살이 됐을 때 신용카드를 쓰게 된 것이다.
그땐 너무 어렸고, 돈 관리를 못 해서 카드를 막 긁었다. 생각 없이 할부로 긁고 핸드폰요금도 긁다 보니, 월급으로 카드 값을 메꾸고 다시 또 긁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사정이 생겨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월급이 들어올 곳이 없어진 것이다. 당연히 카드빚이 생기고, 갚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대출을 받으라’고 했다. 처음엔 스팸 전화인가보다 하고 끊었다. 그리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대출해주겠다는 게시물이 엄청 많이 떴다. 안 그래도 신용카드 대금이 연체되고 생활비가 없었던 나는 도움을 요청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알아보고 또 알아보다가 대출을 신청해버렸다. 4백만 원이라는 돈이 생겼다. 핸드폰 요금을 내고 카드빚을 갚았다. 하지만 한 달에 이자가 20% 정도 됐고, 못 갚으면 가족들에게 알려지거나 빚 갚으라고 집으로 찾아올까봐 두려웠다.
그 와중에도 일자리를 계속 알아봤지만 너무 일이 안 구해졌다. 알바도 학력을 따지고, 경력자나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하는 등 되게 까다로웠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고, 나이가 어려 마땅한 경력이 없었고, 자격증을 취득할 환경이 안 되었던 나는 알바조차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고 있었는데, 수급비를 계속 받으려면 내가 버는 돈이 80만원 이하여야 했다. 이런 부분 때문에도 일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일자리 구하는 시간이 지체되다 보니, 빚은 그대로고 갚아야할 기간은 다가오고 두려웠다. 월세도 내야 해서 생계유지도 안 되고 너무 너무 힘들었다. 돈이 없어서 식사를 편의점에서 간단히 때우거나, 담배도 못 피우고, 친구들도 만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좀 지나서 드디어 알바를 구했다. 휴대폰 대리점인데, 전화 상담을 통해 휴대폰을 판매하는 일이였다. 약 6개월 일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일한 기간 중에 최고 오래 일을 해본 경험이다. 다행히 대출금은 안 밀리고 매달 이자와 원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 어느 북카페에 갔다가 벽에 적힌 글이 예뻐서 한 컷.
남녀의 급여 차이 “원래 달라요”
이렇게 스물두 살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알바를 했다. 고깃집 서빙, 주방, 마트 캐셔, 홈쇼핑 상담원, 택배 상하차, 전단지 배포&부착, 편의점, 공장, 목공, 인스타그램 홍보, 밥버거, DDP연구원(오래된 물건을 고객한테 사와서 소장해 놓고 번호를 적어 라벨을 붙이고 몇 개가 있는지 컴퓨터에 적어 놓는 일이다. 나중에는 그 물건들을 전시한다), 운동화 판매직 등 짧게 다양한 일을 했다.
기억에 남는 알바 중 하나를 꼽으라면 택배 상하차 야간일이다.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하는데, 쉬는 시간이 따로 없고 눈치껏 화장실에 가야했다. 야간일인데 겨울이라서 너무 추웠다. 공장 안에서 일하긴 하지만 문을 열어놓은 상태로 일해야 해서 손이 시렸다. 계속 서서 무거운 택배를 옮기고 반복하니까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허리도 아프고 그냥 온몸이 다 아팠다. 집에 오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돈이 없으면 가야 했다. 여자가 당일 알바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급여가 달랐다. 나도 무거운 택배를 옮기고, 남자분도 나와 같은 일을 했는데, 남자라서 13만원 나는 여자라서 10만원을 받았다. 일당이 3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똑같이 일했는데 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급여 차이가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예상한 대답이 나왔다. “원래 달라요.”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어차피 말해봤자 남자와 똑같은 급여를 주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넘겼다.
여자는 당일 알바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당일 알바를 찾았던 이유는 월급제로 일을 하면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일 알바로 일해서 어느 정도 돈이 생긴 후에 월급제로 일하고 싶어서 당일 알바를 찾은 것이다. 여자가 할 수 있는 당일 알바는 바, 노래방 보도, 공장, 결혼식장 서빙, 가끔 마트 행사 등이 있다. 그 이외에는 거의 대부분 남자를 뽑았다.
특히 노가다 현장 근무는 나도 해보고 싶은 일이고 돈도 많이 받을 수 있는데, 왜 아예 여자는 안 뽑는지 모르겠다. 힘이 약해서? 키가 작아서? 위험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키 작은 남자도 있고, 힘이 약한 남자도 있고, 위험한 건 다 똑같이 위험한데 굳이 남자만 뽑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여자는 왜 치마를 입어야 하지?
많은 경우 알바를 구할 때, 여성이면 외모를 봤다. PC방 알바나 당구장 같은 경우 여성 알바를 뽑을 때 중점은 두는 건 외모다. 대부분 PC방을 가면 여자직원들은 예쁘다. 주변에서도 흔히 들려오는 말이 ‘여자는 외모만 보고 뽑는다’고, ‘예쁘면 다 된다’고 한다. 특히 당구장 알바는 미모가 빼어난 사람들만 뽑는다.
하루는 PC방 알바를 하려고 면접을 보러갔다. 집이 가까워서 유리한 환경이었지만 내게 부족한 게 있다면 유사한 경력이 없다는 거였다. 알바 구인 조건에는 ‘경력자 우대’가 없었고 오히려 ‘초보환영, 집 근처 우대’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런데 면접에서 떨어졌다. 영문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그 PC방을 가보니 예쁜 언니가 일하고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PC방 알바는 면접도 안 보고 쳐다도 안 본다.
여성 알바노동자에게 딱 달라붙거나 움직이기 불편한 유니폼을 입으라 하는 것도 문제다. 결혼식장 홀서빙 알바의 경우 구인 조건이 ‘여자는 구두, 치마, 정장, 머리망 착용’, ‘남자는 정장, 구두’ 이렇게 써있다. 치마를 안 입는 나 같은 사람들은 이런 당일 알바도 못하는데다가 정장 값은 본인 부담이다. 일하는데 불편하게 정장이 웬 말인가. 그것도 서빙인데, 깔끔한 검정색 옷차림이면 모를까 굳이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내가 남자였으면 그 일을 했을 것이다. 옷차림은 바지고, 구두라 해봤자 굽이 없을 테니 말이다.
왜 여자면 치마를 입어야 할까? 생각을 많이 해봤다. 하지만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내가 사회에 맞추지 말아야지’ 라고 나름 결론을 내릴 뿐이다. 그러면 일을 구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싫은 건 싫다. ‘다른 거 하고 말지’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을 잘 못 구하나보다.
▶ 친구가 찍어 준 내 뒷모습.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공부하려니 돈이 없고, 알바만 하면 내 미래는?
계속 알바만 할 수는 없다. 직장을 구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자격증을 따거나 대학을 졸업해서 취업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은 알바를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지금은 실내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나의 원래 꿈은 형사였다. 경찰이 되려고 학원도 알아봤는데 학원비가 너무 비싸서 독학으로 무료 인터넷 강의를 들어봤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알바를 하면서 공부를 하려고 해봤지만 솔직히 말하면 시도조차 못했다. 알바를 하면 체력이 소모되고, 스트레스를 받고, 시간도 없는데 공부를 언제하나. 경찰공무원이 되려면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만 해야 된다는데, 부모님이 생계를 뒷받침해주지 않는 이상 나에겐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상심했고,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내 현실이니까.
알바를 전전하면서 살다가, 자취를 시작하고 상황이 더 힘들어지면서 다시 성인쉼터에 들어왔다. 여기 살면서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자격증 취득도 하려고 한다. 현재는 인테리어 학원을 다니면서 실내건축기능사 공부를 하고 있다. 쉼터에서 소개받아서 인턴으로 5일정도 목공일을 해봤는데, 처음으로 ‘의미 있다’고 느껴지는 일이었다. 목재로 가구를 만들고, 숲에 가서 목재로 공도 만들고 휴식 공간도 만들어봤다. 너무 재미있었다. 두꺼운 나무는 무거워서 다루기 힘들었지만 인테리어에 관련된 일이라서 행복했다.
쉼터에서 산다는 것이 마음처럼 쉬운 게 아니다. 학원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건 좋지만, 쉼터 프로그램에 필수로 참여해야 하고, 통금 시간이 있기 때문에 알바를 못 하고 있다. 수중에 돈이 없다. 다시 알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공부는 포기 못하겠고, 공부를 하려니 돈이 없고… 이런 저런 마음이 오고 가고 있다. (Y)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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