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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션언어’와 눈웃음으로 나를 지우던 시간
[나의 알바노동기] 일터에서 쭈그러드는 낯선 내 모습
※ <일다>는 청년여성들의 가감없는 아르바이트 현장 경험을 기록합니다. “나의 알바노동기”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피할 수 없는 나의 좁은 공간, 계산대
작년 12월 14일 새벽 3시 30분. 경북 경산시 진량읍 한 편의점의 야간 알바노동자가 살해당했다. 당시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던 나로서는 여간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다. 20원짜리 비닐봉투 값을 지불해달라는 요구에 화가 난 손님이 집에서 흉기를 가져와 알바노동자를 찔렀다고 한다. 기사를 접한 이후 알바노동자가 살해당했을 장면들이 내가 일하는 일터에 대입되어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누군가 내 일터에 와서 날 살해하려고 할 때 나는 과연 피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 경북 경산에서 편의점 알바노동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작년 12월 15일 알바노조 편의점모임에서 <편의점 알바 인권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알바노조
편의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술 취한 중년 남성 손님이 왔다. 알바를 시작하고 세 번째로 보는 사람이었다. 늘 헝클어진 차림으로 막걸리를 대여섯 병씩 사가던 손님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손님은 막걸리 다섯 병을 가져왔고 내게 자신이 늘 사가던 담배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막걸리와 담배의 바코드를 찍을 때, 내 시선에 그의 훌러덩 풀려있는 바지가 들어왔다. 팬티도 입지 않아서 성기가 바지 바깥으로 드러나 있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흠칫했다. 근데 계산을 하고 봉투에 물건을 다 담았는데도 그 사람이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시선을 포스기에 대고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했는데도 계속 나를 응시하고는 떠나지 않았다. ‘이 상황을 어떡해야 하지? 우리 매장에 경찰에 신고가 가는 긴급버튼 같은 것이 있었나,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밖에 들릴까, 이따가 어떻게 나가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얼마나 나를 쳐다보다 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들이 내게는 아주 길었고 온 몸이 경직됐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그가 나갔다. 나는 곧바로 내가 소리를 질렀을 때 누군가 들을 수 있도록 편의점의 앞문 뒷문을 열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기분이 너무 상하고 우울했다. 다음에 그가 또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만약 그가 (꼭 그가 아니더라도) 내가 서 있는 계산대 안으로 들어왔더라면… 아무데도 도망갈 수 없이 그 좁은 공간에서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상상되었다.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중년남성 손님들은 참으로 무례했다
주로 서비스직에 종사하던 나는 중년남성들을 대하는 것이 가장 난감했다. 편의점에서 알바할 때, 매번 내게 과자나 초콜릿 등을 사주시던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 아빠 나이 정도 되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좋다고 그가 사주는 음식들을 막 받아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 이상한 소리를 했다. “좋아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저 잘생겼다고 좋아하지 말아요.” “카톡 할까요?” 하는 말들. 평소에 내 일상 속에서 들었으면 욕 한바가지를 쏟아 부을 텐데, 편의점 계산대 앞에 서면 배우지도 않은 눈웃음을 멋쩍게 짓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계산대 앞에서 아저씨들은 참 무례했다. 편의점 알바 초기엔 담배를 빨리 찾지 못한다고 면박 주던 아저씨를 수도 없이 만났다.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반말 쓰며 돈을 던지는 손님들 또한 수도 없이 만났다.
▶ 편의점에서 일할 때, 점심은 늘 폐기 도시락이었다.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근무할 때에도 끔찍한 진상 중년남성을 만난 적이 있다. 시그니처버거 (원하는 대로 버거를 만드는 시스템)는 보통 기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선택하며 주문하는데, 그는 카운터에서 내게 하나하나 자기가 말하는 재료들을 넣어서 버거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였다. 당시 포스기에 완전히 숙달되지 않았던 내가 주문을 받으며 버벅거리자 그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포스기를 강하게 수 번을 때렸다. 영수증을 내게 던지며 “제대로 하란 말야!”라고 하는 말에 침을 뱉어주어도 모자랄망정 눈물이 터져 나올 뻔했다.
그 이후로 나는 항상 덩치 큰 중년 남성의 주문을 받게 되면 어깨가 빳빳해지고 숨을 참게 되었다. 나를 스쳐지나갔던 그(놈)들과의 참 짧은 순간들 속에서 얼음이 되었던 나를 토닥이며 이야기 해주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만큼 커다란 잘못을 했던 것도 아니고, 무시당할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니며, 그들은 그렇게 내가 위축되고 두려워할만한 사람들도 아니었다는 것을.
감정과 말투, 생리통과 아토피 피부를 ‘가리고’
패스트푸드점의 매니저 언니는 늘 방긋방긋 웃으라고 했다. 주문을 받을 때도, 음식을 내어줄 때도, 실수를 했을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입꼬리와 눈꼬리라고 했다. 억지로 웃음을 짓고, 평생 해보지 않은 톤으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는 내 모습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종업원들은 손님들을 응대할 때 ‘쿠션언어’라는 것을 사용했는데, 하고자 하는 말을 최대한 부드럽고 완곡하게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손님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에도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부족하여 준비가 안 되어있습니다”, “고객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만~”과 같이 응대해야 한다.
같이 알바하던 언니는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계산대 아래로 주저앉아 있다가도 손님이 다시오면 일어나서 아픈 기색 없이 방긋방긋 웃었다. 그 때 참 언니가 불쌍하게 느껴졌는데, 어느새 내가 편의점 알바를 할 때 그 언니와 똑같이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속에 있는 말과는 다른 말을 건네는 일, 자연스럽게 나오는 내 표정을 억지로 짓이기는 일들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매장에 들어서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면을 쓰게 되었다.
▶ 내 책상. 나의 본래 모습과 일터에서 쭈그러든 모습은 너무나도 달라서 스스로 낯설다.
표정과 말투만 가리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알바를 할 때 아토피를 심하게 앓고 있었고, 팔에도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있었다. 그런 내 팔을 보며 손님들은 “여자애가 팔에 그렇게 흉터가 있어서 어떻게 해?” “징그러워” 등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아토피는 전염성이 있는 질환이 아닌데도, 음식을 내어줄 때 왠지 손님들이 거부감 들까봐 더운 매장 안에서도 긴팔 가디건을 꼭 챙겨 입어야 했다.
출근 시간이 되면 눈을 딱 감고 “오늘도 잘 버티다 나오자” 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뜨거운 감자튀김 기름으로부터, 손님들의 진상노릇으로부터, 추운 편의점으로부터, 나의 가짜 미소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지 않으면 나는 내 일상을 책임지지 못 했다. 아니, 그런 시간들을 버티면서도 나는 스스로 내 일상을 책임지지 못 했다. 이렇게 한 달을 빡시게 일하고 번 돈은 고작 최저임금. 심지어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알바노동자와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 하는 알바노동자들이 허다하다.
두 탕 알바를 뛰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날 집에 돌아오면 가장 괴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왜 나는 돈을 벌지 못하지?’ ‘왜 나는 가난하지’, ‘왜 이렇게 아토피가 심해서 이걸 치료하려고 또 돈이 드는지…’ 자꾸 다른 사람들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며 나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웠다. 그것이 나를 더 괴롭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조건들, 내 상황들을 이리저리 재어가며 나의 존재를 있는 힘껏 미워했다.
고통의 경험으로 ‘나의 노동’을 설명하지 않는 날이 오길
알바를 하다보면 내 모습이 참 낯설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다. 원래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불편한 것이 있으면 조목조목 잘 이야기하고, 누군가의 떼인 돈까지 받아주는 멋진 사람인데 말이다. 끊임없이 내 안의 모순에 직면한다. 일터에서 쭈그러드는 내 모습과 그렇지 않은 나의 본 모습들은 계속해서 내 안에서 경합하고 협상한다.
▶ 지난 총선 때 ‘페미니즘’을 내세운 하윤정 후보(노동당) 지원 유세를 했다. 왼쪽이 필자.
처음 마음을 터놓고 세상에 나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지난 총선 때 ‘페미니즘’을 내세운 노동당의 하윤정 후보를 지원하는 유세를 했을 때다. 알바하면서 겪은 나의 경험을 길을 지나다니는 행인들에게 전했다. 최저임금 1만원, 생리휴가 전면 지급, 기본소득 보장 같은 정치가 내 존재를 혐오하게 만드는 일상을 바꿀 수 있다고 호소했다.
나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이 외치는 정책들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수많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지금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나는 알바를 두 개 하지 않아도 된다. 알바를 하지 않는 시간에 사람들도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 아픈 것을 꾹꾹 참지 않아도 된다. 무서운 중년남성이 내게 폭언을 해도, 당당하게 내가 침해받은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다. 아니 정 뭐 같으면 미련 없이 일을 그만둘 수 있다. 생리휴가를 마음편히 쓸 수 있다.
나에게 모멸감을 주는 손님들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 성폭력의 위협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작업장의 구조, 내 모습을 억지로 감추지 않고 일터에서도 나다울 수 있는 권리는 더 이상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내 삶의 존엄’에 대한 것들이다. 내가 쭈그러들었던 경험, 내 고통들로 나의 노동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 [홍순영]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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