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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놓고 울 수 있는 공간, 마당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공간의 발견③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보금자리라는 말의 의미, 그 정서

 

마당 하면 보통 앞마당을 생각하는데, 사실 은근한 정을 느끼게 하는 건 뒷마당이다. 조선시대의 후원같이 잘 꾸며진 마당은 아니지만 작고 아름답게 가꾸어 놓고, 마당 쪽으로 낸 창을 통해 바라본다.

 

이른 봄 피어나는 매화를, 작은 석상과 상사화 잎이 백 년 된 돌담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살아있는 기쁨이다. 이른 아침 차 한 잔을 우리며 뒷마당을 바라본다. 석양에 지는 해가 비추어드는 곳이고, 잠시 나온 초승달을 아껴가며 즐기는 그런 마당이다.

 

▶ 나의 보금자리 곁마당   ⓒ김혜련

 

특히 이 집 서쪽에는 외부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 ‘곁마당’이 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은밀한 장소, 그곳에 꽃밭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나만의 장소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세상에 속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유를 느낀다. 구석이 주는 평화와 안온감을 하늘과 땅이 활짝 트인 곳에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도 하다.

 

이 마당에 있으면 ‘보금자리’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보금자리의 사전적 의미는 ‘새가 깃들이는 둥지’, ‘살기에 편안하고 아늑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현대를 사는 나/우리들은 보금자리라는 말이 지닌 근원적인 깊이를 잘 알지 못하리라. 그게 뭔지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늘이’는 무섭거나 아플 때 제 집으로 쏙 들어간다. 그 때 나는 보금자리가 뭔지 생각하게 된다. 제비나 벌의 집을 없애면, 그 곳에서 떠나지 못하고 계속 맴돈다. 그 행위의 절실성은 보금자리가 무엇인지 추측케 한다.

 

이 집을, 숨어있는 마당을 절실하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보금자리라는 언어가 주는 깊은 차원의 정서를 여기서 느끼기 때문이다.

 

어디 가야 울 수 있지? 도시는 울 곳이 없었다

 

▶ 백년 된 돌담이 있는 뒷마당  ⓒ김혜련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한 일 중 하나는 아마도 우는 일이었을 것이다. 생애의 첫 기억도 엄마 등에 업혀 울었던 기억으로 시작되는 나는, 울 일이 많았다. 세상에 별 환영받는 존재가 아닌 존재들이 그렇듯 삶은 서럽고 억울한 게 많았고, 그 때마다 난 울었다.

 

잘 우는 내가, 울 곳이 없다는 처참한 인식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혼을 하고 아이와 헤어지고 난 뒤, 온 몸이 울음으로 차올랐다. 어릴 때 어미 소의 울음을 들은 적이 있다. 제 새끼를 뺏긴 어미 소는 몇 날 며칠을 소리 내어 울었다. 그 울음은 평소의 소리와는 완연히 달랐다. 새끼를 잃은 짐승의 울음소리만큼 처절한 울음은 없을 것이었다.

 

어린 자식과 헤어진 나는 ‘새끼를 잃은 동물적 고통’ 외에도 겪어야 할 것이 있었다. 어디에서도 아이 울음이 들렸고, 어디에서도 세상의 비난 소리가 들렸다. 꿈속에서 아이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눈이 까만 아이에요, 제 아이를 못 보셨나요?” 맨발에 산발을 한 여자의 발에는 피가 흐르고 있다. 어디선가 돌덩이가 날아온다. “제 새끼를 버린 년!” 돌덩이는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점점 늘어난다.

 

세상의 비난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비난을 스스로 체화한,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새끼와 찢긴, 순수한 동물적 고통을 느끼는 나를 돌볼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비난하며 내 고통에 칼을 들이댔다. 고통에도 인정받는 고통과 그렇지 못한 고통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세상이 인정하는 고통은 위로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고통은 비난의 대상이었다. 어린 자식을 제 스스로 기르지 못하는 모든 어미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비난의 세례. ‘죽더라도 새끼를 안고 죽어야 한다!’ 새끼를 안고 죽지 못한 나는 스스로의 아픔조차 비난해야 했다.

 

난 내 고통과 울음을 꿰매고 살았다. 그런데 방광이 차듯 울음은 차올랐고, 넘치는 울음은 꿰맨 실밥이 터지듯 여기저기서 주체하지 못하고 터져 나왔다. 한낮의 지하도에서 무릎이 꺾이고 통곡이 터져 나왔다. 밥 먹다가 말고 오열이 터져 나와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때 처음 알았다, 도시는 울 곳이 없다는 것을. 집에서 울자니, 같이 살고 있는 친구와 후배가 있었다. 그들이 없을 때에도 방음이 안 되는 아파트에서 마음대로 울기는 힘들었다. 공원에 들어가 울자니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다가왔다. 밥 먹다가도, 수업을 하다가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오른 울음이 계속 삐죽거리며 터져 나오자 나는 적극적으로 울 곳을 찾아야만 했다.

 

어디 가야 울 수 있을까? 어디서 울어야 제대로 울 수가 있을까?

 

마리아가 떠올랐다.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일을 당한, 어미인 마리아는 내 고통을 이해할 것 같았다. 오로지 그녀만이 알 것 같았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누르고 또 누르며 한 겨울 밤 명동성당으로 갔다.

 

“저녁 9시 이후는 못 들어갑니다.”

성당의 수위는 출입을 막았다. 돌아서려고 했으나 같이 간 친구는 완강했다.

“누가 못 들어가게 했습니까? 김수환 추기경인가요?”

“………”

“ 예수님인가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그 분은 들어가라고, 대신 한 시간 이상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눈 쌓인 성당의 마리아 상 앞에서 무너졌다. 참았던 통곡이 터져 나왔다. 내 모든 고통을 이해할 마리아 앞에서 순수한 고통, 슬픔 그 자체인 울음을 울 수 있었다. 통곡은 오래 지속되었고 그건 단지 눈과 입과 목청만의 일이 아니어서 내 몸은 눈덩이에 꼬꾸라지고 엎어지고 뒹굴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울었을까. 비로소 한겨울 추위 속 어딘가에 서 있을 친구와 후배가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꼬꾸라져 운 석상이 마리아상이 아니라 예수상이라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약간 꺼벙해 보이는 단순한 예수상을 난 마리아상이라고 착각하고 그 앞에서 그리 울며 내 아픔을 미주알고주알 호소했다. 나중에 친구가 말했다.

 

“예수님이 띨빵한 널 안아줬을 거야.”

 

그 후에도 통곡이 나오는 시간들마다 난 울 곳이 없다는 사실을 늘 확인해야 했다. 그저 눈물이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오열, 그것을 받아줄 장소가 없었다.

 

▶ 내 울음을 받아주는 장소, 마당   ⓒ김혜련

 

자연 앞에서 슬픔은 자폐적이 되지 않는다

 

집은, 보금자리는 그 울음들을 울게 하는 곳, 받아주고 위로해주는 곳이다. 울음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안아주는 곳, 나는 울 곳을 찾았다. 갇혀있는 공간이 아니라 열려있는, 그러나 내밀한 공간에서의 눈물은 자신을 갉아 먹는 눈물이 아니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자연은 내 감정이나 상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인간이 어떠하든 자연은 제 갈 길을 간다. 자연이 나와 무관하게 변함없다는 사실은 든든하다. 그런 자연 앞에서 슬픔은 자폐적이 되지 않는다. 실컷 슬퍼하고 나면 푸르른 하늘이 거기에 있다. 반짝거리는 햇살과 볼을 스쳐가는 바람과 나무와 풀들이 있다.

 

내가 아무리 고통과 슬픔 속에 있어도 자연은 그토록 생기롭다는 사실은 절대적 위로가 된다. 내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 인간의 조건 안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은 나를 안심시키고 또 안심시킨다. 나를 떠난 더 큰 세계로 확장시킨다. 나는 슬픔으로 열린다.

 

이런 자연의 힘을 나는 밀양 할매들에게서도 느꼈다. ‘또하나의 문화’ 30주년에 초대되었던, ‘밀양 할매’ 대표로 오신 분은 한 학생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10여 년 이상의 싸움의 동력이 뭔가요? 그 많은 설명으로도 다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육십 대인 그 분이 할매들을 대변해서 한 말이다.

 

“할머니들은 뭔가 달라요. 조상대대로 평생 그 곳에서 산 자가 갖고 있는 어떤 물러서지 않는 힘이 있어요. 그리고 자연이에요. 하늘은 전선이 뒤덮었지만 땅은 아니잖아요. 풀도 나고 곡식도 익고… 우리가 만약 시멘트나 있고 그런 도시에서 싸우다가 패배했다면 이렇게 금방 치유되고 다시 힘내서 싸울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 내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는 큰 위로가 된다.    ⓒ김혜련

 

마당, 아프고 상심한 마음을 나누는 장소

 

젊은 날엔 주로 내 서러움 때문에 울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눈물이 많지만 다른 이유들로 눈물이 난다.

 

지독한 자기결핍이 사라지자 비로소 세상을 내 욕망과 결핍과는 무관하게 바라보게 된다. 나의 아픔이나 분노를 투사해 세상을 보지 않게 된다. 세상의 아픔이 있는 그대로 다가온다. 아픔들이 비온 뒤의 세상처럼 선명하다. 그러니 아프고 눈물 날 일이 많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모든 아름다움은 결국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된 자의 삶에 대한 절절한 심정 같은 것도 눈물이 많게 하는 이유이다. 삶의 허망성을 깊이 느끼면 느낄수록 삶은 더 절실해진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감동하고, 울컥한다. 아장거리며 걷는 아이나 젊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습, 그들을 잘 길러낸 부모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보이지 않는 숱한 사회. 개인적 정성의 결실임을 알기에 저절로 울컥해진다.

 

나는 내 집 마당, 은밀한 구석에서 자주 운다. 아프고 상심한 마음을 땅과 나무와 풀, 하늘과 나눈다. 아름다움조차도 슬픈 나이, 이 나이에 보금자리가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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