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새로 쓰는 ‘혼밥’의 서사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홀로 밥 먹는 즐거움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1. 어느 날의 밥상

 

아침에 밭에서 오이를 딴다. 지지대에 매달려 여기저기 달려있는 오이들이 햇살을 받아 푸르게 반짝인다. 오이는 온몸에 뾰족한 가시를 종종종 달고 있어 찔리면 제법 아프다. 꼭지를 가위로 조심스럽게 자른다. 잘린 꼭지에서 쓰윽 푸른 액이 돋는다. 밭 모서리 쪽에는 호박이 숨어 있다. 커다란 호박 잎 사이를 들추면 숨바꼭질하다가 들킨 아이 모양 동그랗고 귀여운 애호박이 얼굴을 내민다.

 

▶ 잎 아래 숨어 있는 애호박들.  ⓒ김혜련

 

오이 두 개, 호박 하나를 따서 부엌으로 들어온다. 흐르는 물에 살짝 씻는다. 까끌거리면서 단단한 오이의 물성이 손 안에 그득하다. 도마에 올려놓고 칼을 대니 팽팽하고 투명한 속살이 사각~하는 소리와 함께 싱그러운 향이 코를 자극한다. 한 쪽 집어서 먹는다. 입 안에서 터지는 오이의 연두빛 향기.

 

갓 딴 애호박이 여린 연두로 반짝이며 도마 위에 놓여 있다. 칼을 대니 마치 허공을 베듯 칼이 들어가는 느낌도 없다. 채소들도 자신을 보호하는 일종의 피부 같은 보호막이 있어, 따거나 썰 때 나름의 저항이 있다. 그런데 오늘 애호박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칼이 그저 ‘쓰윽’ 들어간다. 미처 보호막도 만들지 못한 어린 것을 따온 것 같아 가슴이 잠시 출렁한다. 조금 더 성숙하면 제법 칼이 들어가는 맛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오래 되거나 며칠씩 묵히면 피부의 저항은 질겨지고 호박의 맛은 떨어진다.

 

고춧가루를 조금만 넣어 오이를 무치고, 새우젓으로 간을 해 호박 나물을 한다. 그리고 다시 뒷밭으로 나가 고추 몇 개와 쌈 채소들을 따온다.

 

유월의 식탁은 달고 풍성하다. 막 맛이 들기 시작한 고추는 매콤하면서도 달고, 상추나 케일 등 쌈 채소들도 달다. 몇 년 동안 농사 지어 채소들을 먹으며 알 게 된 것은 비료로 뻥튀기 하듯 키우지 않고 제 힘으로 자란 채소들은 뒷맛이 다 달다는 거다. 처음엔 그 사실이 잘 믿기지 않으면서 신기했다.

 

“응? 고추가 달콤하네~”

“어머나, 상추가 이리도 달았단 말이야?”

 

채소들을 입 안에 조금씩 넣고 천천히 오래 씹는다. 입 안에 신선하고도 단 맛이 가득 찬다.

 

이른 봄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햇빛과 비를 받고 자라나는 모습들을 매일매일 본 생명들이 놓여 있는 식탁. 내 손으로 기르고, 내 손으로 따 온 생명을 요리해 차린 밥상. 이 밥을 먹으면서 언젠가부터 내가 든든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스스로 소중한 느낌이 든다. 이토록 생생히 살아있는, 소중한 생명들을 먹고 있는 내가 소중하다는 이 느낌은 낯설다. 처음 느껴보는 생경하면서도 가슴 벅찬 느낌.

 

그토록 막막하고 공허했던 삶이 어쩌면 아무렇게나 먹은 밥과 깊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밥 먹기를 그리 허술히 하면서 삶이 풍성하길 바랐다니….

 

▶ 나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날들.  ⓒ김혜련

 

밥 경전(經典)

 

평생 허공에 뜬 황망한 삶이

 

함부로 먹은 밥, 씹지 않고 넘긴 밥, 뒤통수 맞으며 먹은 밥, 물 말아 먹은 쉰 밥, 억지로 한 밥, 건성으로 한 밥, 분노로 한 밥, ‘지겨워, 지겨워’하며 한 밥, 타인의 수고로 먹은 밥, 돈으로 한 밥, 돈 주고 먹은 싸구려 밥…

 

밥들의 역사였다는 것이

오늘 아침 한 그릇 밥에 말갛게 드러나네.

 

“밥 없이 사는 생명 없다, 밥이 네 목숨이다!”

“밥이 아름다워야 삶이 아름답다.”

“밥이 신성해야 삶이 고결하다.”

 

스스로를 위해 정성 들여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몽글몽글 피워내는 밥의 설법(說法).

 

오십 평생 이 단순한 밥이 없었네.

그게 무슨 삶이라고! (2013)

 

2. 홀로 즐겁게 먹는 밥 이야기

 

나는 홀로 밥을 먹으며 즐겁고 충만하다. 이 먹을거리들이 어디서 왔는지 분명히 알 때, 공감과 애정의 유대가 생긴다. 내 밭에서 내 손으로 기른 먹을거리들은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홀로 밥 먹는 것이 유대와 공감의 따스한 자리가 된다.

 

“밥을 정성스럽게 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그릇에 담는다. 오늘 아침은 현미잡곡밥에 찐 고구마, 감자찌게, 갖은 채소들, 된장, 얼갈이 김치다. 오래된 소나무 밥상에 올려놓고, 스스로 감사하며 한 입씩 먹는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통통한 밥알의 무게, 쌀 알갱이가 톡 터지며 씹힐 때 입 안 가득 빛이 도는 듯 환한 느낌. 베어 물면 사르르 녹는 호박 고구마의 달디 단 맛, 감자가 으깨지도록 푹 익혀 먹는 강원도식 고추장 감자찌개.

 

홀로 밥을 먹으면서 홀로가 아님을 느낀다. 벼가 익어가던 늦가을의 들판과 고구마를 여물게 하던 한 여름의 햇살, 감자를 익히던 따뜻한 땅속의 기억, 감자꽃 향기에 묻어 있는 봄밤에 짧게 떴다 지는 초승달의 자취… 홀로 먹는 밥상에는 홀로가 아닌 것들로 그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홀로 천천히 밥을 먹다 보면 그윽한 한 세상이 저절로 그렇게 펼쳐져 있다.” (2014년의 일기)

 

▶ 혼자 먹는 밥.  홀로 즐겁게 먹는 밥 이야기는 새로운 여성 서사일지도 모른다.  ⓒ김혜련

 

내가 먹는 것과 이야기할 수 있기에 홀로 먹는 밥이 진중하고 값지다. 밥을 홀로 먹으며, 비로소 밥을 밥으로 여기게 되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다.

 

홀로 먹는 밥에서 느끼는 기쁨은 아마도 많은 여자들이 느끼는 것일 게다. 늘 누군가를 위해서 밥을 해야 하고,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여자들이 홀로 밥을 먹을 때의 홀가분함이라니!

 

얼마 전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워크숍에서 오십대 초반의 여성은 자신을 위해서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하루 중 한 번 혼자 밥 먹기’라고 했다. 그 때 그리 마음이 편하고 밥을 밥답게 먹을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언어를 듣는 역사적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 자리에 있던 젊은 남성들에게 했던 말이다. ‘여럿이 먹는 밥의 즐거움’에 대한 오랜 서사는 밥을 짓는 노동에서 면제된, 남성 서사일 게다.

 

자신을 위해 정성스런 밥상을 차리는 날들, 홀로 즐겁게 먹는 밥 이야기는 어쩌면 새로운 여성 서사일지도 모른다.

 

‘혼밥’의 시대를 건너가는 흉흉한 시절, 새로운 ‘혼밥’의 서사가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자든 여자든 또 다른 성별이든 자신의 밥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든든한 일상이 모여서, 여럿이서 먹는 밥이 평등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경험으로 말하다 >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채를 다시 고쳐 짓다  (0) 2017.08.27
도시는 울 곳이 없었다  (0) 2017.08.13
마당 예찬  (0) 2017.07.23
흙을 만지는 노동, 농사일의 기쁨  (0) 2017.06.18
다른 시간을 살다  (0) 2017.06.03
나무를 심는 마음  (0) 2017.05.14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