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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성소수자 혐오 사회에서 살아가기


▶ [내 옆의 아무개]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자신이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가 커밍아웃했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놀라움을 표하는 A. 그는 커밍아웃한 친구 OO의 실명을 거론하며 S에게 말했다. “너도 걔 알지? 그리고 걔 애인, 우리가 본적이 있었대!” 옆에서 듣던 S는 “너 그거 아웃팅이야”라며 지적했지만, A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다시 말을 가로챘다.

 

평소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A는 최근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목사님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의 말 때문이었을까. A의 친구 OO은 그 성소수자가 바로 본인이라며 커밍아웃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A를 제외한 친구들은 OO이 이미 커밍아웃을 해서 진작부터 그의 성정체성을 알고 있었다. A는 본인이 가장 늦게 알았다며, 왜 이렇게 눈치가 없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글쎄… 눈치를 떠나서 나도 S에게는 커밍아웃했지만 A에게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 OO의 심정이 퍽 이해됐다. 게다가 나는 이날 대화를 하고 나서 더욱더 A에게는 커밍아웃을 하면 안 되겠다고 확신했다. 그토록 무심하게 지인을 아웃팅시키는 건, 자신의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 A가 친구를 아웃팅시켰을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도 성소수자고 말이다.

 

교회 목사님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은 불편해하지만 친구의 성정체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아웃팅시키는 것에는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신뢰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일상의 걸림이 잦다. 누구나 자신을 100만큼 드러내며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를 90정도는 드러낼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살고 싶다. 누군가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할 때, 그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짚어주는 관계 속에서 온전한 나로 살 힘을 얻을 수 있다. 벽장 속에서 평생 나올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했던 3년 전과 다르게,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성소수자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건,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해주는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S와 또 다른 S들 덕분이다.

 

대선 이후 한 달간, 주변에서 동성애자 혐오 발언에 시달리며 내내 괴로웠다. 아니, 사실 공기처럼 떠다니는 혐오 발언 때문에 늘 괴롭다. 모 대학에서 ‘탈동성애’ 간증하는 강연이 버젓이 진행되어도, A 대위가 동성과 섹스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도, 이제는 화조차 나지 않을 지경이다. 그저 괴롭다. 그들이 열심히 입에 올리는 성소수자는 얼굴을 모르는, 어느 날 어디서 뚝 떨어진 아무개가 아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료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내가’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당신 옆의 나]   ⓒ머리 짧은 여자, 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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