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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이 평생에 걸쳐 해야 하는 일이라면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애매한 대답 대신…
이쯤 되면 내 입에서 ‘네, 저 여자 좋아해요.’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닐까. 벌써 세 번째 같은 질문이다. 처음엔 “연애를 왜 안 해? 설마 너 여자 좋아하는 건 아니지? 나이가 몇 살인데.” 두 번째엔 “수상해. 너 정말 여자 좋아하는 거 아냐?” 세 번째엔 “스타일도 그렇고, 정말 여자 좋아하는 거 아니지?”
나는 매번 “에이, 아니에요. 연애를 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도 있고, 연애를 안 하는 상태가 편한 사람이 있는 거죠.”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연애는 필수가 아니라 생각했고, 연애를 하지 않는 지금 상태가 편했다. 하지만 여성을 좋아했으므로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가지 않았다. 한 박자 숨을 고르고 삐걱삐걱 대답이 이어졌다.
매번 애매하게 핀트가 어긋난 대답을 하는 것은 괴로웠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성지향성은 나이와 무관하며(한때의 방황이 아니다), 스타일도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연애를 하지 않는 상태와 성지향성 사이엔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 당신은 너무 무지하고 무례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답변을 했을 때 벌어질 상황과 책임은 전부 내가 떠안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운이 좋으면 나 자신을 ‘설명’하게 될 것이고, 운이 나쁘면 ‘해명’을 하게 될 터였다. 이미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는 질문에 대해 설명이든 해명이든,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안 볼 수도 없는 사이였으므로 애매한 대답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언제까지 ‘이성애자 연기’를 하고 나를 해명하면서 살아야할까.
▶ 삐걱삐걱 ‘그럴 리가요’ ⓒ머리 짧은 여자, 조재
K가 링크를 하나 보내줬다. 성공회대 총학생회장으로 출마하면서 커밍아웃을 한 백승목 씨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커밍아웃을 해오면서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설명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자신에 대해 설명해야하는 일이 늘어났다고 한다. 동영상 아래 텍스트가 눈에 걸린다. ‘평생에 걸쳐 커밍아웃을 한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이성애자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평생 커밍아웃을 하고 나를 설명해야 한다니. 내가 했던 몇 번의 커밍아웃과 사람들을 떠올렸다. 몇몇 친구들과 우리 카페 팀원들, 남동생, 글쓰기 모임 멤버들 등등. 어느 순간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늘어났지만, 커밍아웃은 매번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어느 날은 조용한 장소가, 어느 날은 술이, 어느 날은 진심을 적은 글이 필요했다.
커밍아웃이 평생에 걸쳐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소중한 사람에게 떨지 않으며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는 (시스젠더)여성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성)을 좋아해’라는 말을 떨면서 하지 않는 것처럼. 또 나는 무지하고 무례한 질문에도 당당하게 ‘응, 나는 여성을 좋아해. 그리고 지금 네 태도는 무례해.’ 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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