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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탐폰을 거쳐 생리컵까지

[머리 짧은 여자, 조재] 무지여, 안녕



학교에서는 잠 잘 때 생리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다만 ‘생리대의 접착면이 팬티 쪽으로 가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붙이면 큰 고통이 올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초경이 시작된 열 네 살의 가을. 당시 내가 알고 있는 최대한의 지식-생리대의 접착면은 팬티에-을 활용해 겨우 오버나이트를 깔아주는 정도로 밤을 보냈다. 하지만 생리혈이 새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피가 샐까 두려워 몸을 목석처럼 꼿꼿이 세워 정자세로 잠을 잤지만, 밤사이 생리혈은 엉덩이를 타고 허리 아래쪽까지 흘러가기 일쑤였다. 밤마다 속옷은 물론이고 이불까지 적시다보니, 한 동안 침대가 아닌 방바닥에서 이불을 깔지 않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나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아빠와 살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생리에 관해 아빠가 알리는 만무했다. 또래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당시엔 ‘생리’라는 단어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가 부끄러워 ‘마법’이라는 단어로 대체해 부르던 때였다. 결국 별거 중이던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잠 잘 때 어떻게 생리대를 사용하고, 어떻게 누워야하는지 배웠다. 엄마는 잘 때는 바로 눕기보단 옆으로 누워서 자야하며, 팬티 위에 달라붙는 쫄바지 같은 걸 입어주면 좋다고 말했다.

 

그 뒤로 거의 10여 년. 생리 기간이면 부자연스럽게 몸을 한쪽으로 뉘여 잠을 청했다. 덕분에 생리 기간이면 몸 이곳저곳이 쑤시고 아팠다. 아침마다 축축하게 젖은 생리대를 돌돌 말아 버리고, 짓무른 엉덩이를 물로 닦아냈다.

 

탐폰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성인이 되고 난 이후였다. 질 속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것이 두려워 한동안 사용하지 않다가, 수영을 배우면서 어쩔 수 없이 탐폰을 사용하게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탐폰을 사용하다 쇼크(두통, 어지러움, 토기 등을 동반할 수 있음)를 한 번 겪고 난 후, 탐폰은 다시 두려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결국, 또 생리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생리 기간이면 여성의 몸으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웠다. 월경만 안 해도 삶이 1000배는 윤택해 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헛된 바람일 뿐, 한 달이 지나면 어김없이 생리는 시작됐다.

 

▶ 눕자, 자유롭게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얼마 지나지 않아 생리컵의 존재를 알게 됐다. 탐폰처럼 체내에 넣어서 생리혈을 받아내는 실리콘 소재의 컵. 존재는 알게 됐어도 구매를 결정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너무 종류가 다양했고, 사람마다 신체 구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내 사이즈를 알아야만 했다. 신체 사이즈라 함은 포궁 경부까지의 길이를 알아야한다는 얘기였다. 중지 손가락을 질 안으로 집어넣어 길이를 재는 식이다. 손가락을 직접 넣어본 경험이 없어 그야말로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어찌어찌 길이를 쟀지만, 내 몸에 무지한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생리컵은 내 삶에 한 줄기 빛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듯했다. 아침마다 엉덩이가 짓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충분히 자료를 찾아보고 생리컵 착용을 시도해도 영 쉽지 않았다. 결국 사용한지 3일 만에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절망스러웠지만, 주변에 먼저 생리컵을 사용해본 지인의 조언이 위안이 됐다. 몸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니 3개월 정도 천천히 시간을 주라는 말이었다.

 

열 네 살, 밤마다 생리혈을 이불에 묻히던 때를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왜 학생들에게 월경에 관해,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을까. 왜 내 몸을 내가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다고, 그게 필요하다고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을까. 열 네 살 그때 생리컵을 사용하며 미리 시행착오를 겪었더라면 지금은 어땠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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