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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것이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셀프 디펜스에 대한 질문과 답변2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2박3일 지리산 ‘셀프 디펜스’ 캠프

 

“삶을 예술로, 예술을 일상으로” 농촌에서 활동하는 <문화기획달>의 헌신과 노고 덕분에 지리산에서 2박3일 셀프 디펜스(self-defence) 캠프를 열 수 있었다.

 

해외에선 버스, 트램, 비행기 안에서도 셀프 디펜스 특강을 연다. 섬, 사막, 알프스 같은 이색적인 장소에서 셀프 디펜스 캠프를 열기도 한다. 국내에선 이번에 처음으로 산에서 셀프 디펜스 캠프를 열었다. 게다가 국립공원 1호 지리산에서.

 

▶ 지리산으로 가는 길, 동서울터미널  ⓒ스쿨오브무브먼트

 

친구, 자매, 모녀, 실상사작은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 지리산 산내면 주민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31명의 여성들이 2박3일 동안 함께 먹고 자고 웃고, 땀 흘리고 소리 지르고, 달리고 명상하고, 치고 차고 때리고, 긴장하고 응원하고, 마사지하고 요가도 했다.

 

이 글은 캠프 참가자들과 나눈 질문과 답변 중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Q 저항하면 더 위험해지는 것 아닐까요?

 

며칠 전에는 한 참가자가 “흔히 여성이 남성과 싸워 이길 수 없으니 저항하는 게 더 위험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저는 이런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이 ‘다 소용없다’는 회의감이나 패배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선, 제 뜻이 꼭 ‘맞서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그렇습니다. 셀프 디펜스에는 이기고 진다는 관점이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위험한 상황은 모면하고 회피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셀프 디펜스에서 회피는 매우 좋은 미덕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세상 모든 악에 맞서 싸울 수 없다는 점도 확실히 얘기하고 싶습니다. 영화 속 슈퍼맨조차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 뒤에서 덮치는 공격에 대한 육체적 저항  ⓒ스쿨오브무브먼트

 

그러나, 저항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공격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방어자’인 우리는 주로 상황을 맞이하는 쪽입니다. 즉 ‘방어자’가 상황을 예방하거나 회피하거나 주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치 모범운전자가 아무리 운전을 잘 해도 모든 사고를 피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방어자’가 최선을 다한다 해도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삶과 죽음’의 상황, 즉 ‘그 아니면 나’라는 상황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강간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만, 강간 사건보다 강간 시도 사건이 훨씬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디어는 외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여성들이 저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셀프 디펜스를 배웠든 배우지 않았든, 현실에서 이미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에서 번역한 책 <미녀, 야수에 맞서다>(엘렌 스노틀랜드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2016)는 성폭력 및 신체적 상해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여성에게 저항전략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셀프 디펜스를 배운 여성이 더 안전하다’는 통계는 <일다> 칼럼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셀프 디펜스를 배운 여성들이 더 안전할까?)

 

Q. 한적한 곳에서 누군가 따라온다는 느낌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적한 길을 혼자 걸을 때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수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사회적 약자가 느끼는 차별과 불안이 줄어들려면 반드시 사회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점이 가장 중요하고, 이제 저는 셀프 디펜스 강사로서 기술적인 부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불안하다면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뒤돌아보고 확인하거나, 멈춰서 상대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립니다. 멈춰서 기다릴 때는 상대를 잘 볼 수 있도록 돌아섭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동물은 주변을 경계하고 자신의 안전을 도모합니다. 마음속에 불안감을 가진 채 전전긍긍하며 걸음을 재촉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 한적한 곳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의 두려움 ⓒPeopleImages

 

그리고 둘 중 어느 쪽이 나을까요? 위험을 등 뒤에 두는 것, 앞에서 마주 대하는 것. 우리는 여러 여성들에게 “뒤에서 덮치는 공격”에 대해 다뤄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뒤에서 덮치는 공격은 공격자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당하는 공격이라 더 두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흔히 인간은 앞에서 상대의 얼굴과 눈을 마주 대할 때보다 뒤에서 상대의 얼굴과 눈이 보이지 않을 때 더 대담해지고 더 잔인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대체로 방어자는 그 반대의 상황, 즉 위험을 앞에서 마주 대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보고, 확인하세요. 그 다음 위험한 것이나 사람과 거리를 벌리거나 각도 상으로 멀어지세요.

 

Q. 셀프 디펜스 수업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연습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제 외국인 선생님의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초밥과 회를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친구와 함께 일식집을 가셨답니다. 친구가 와사비를 보고 이게 뭐냐고 묻길래, 선생님은 장난기가 발동해서 “어 그거, 아보카도야!” 하셨대요. 그러자, 말 끝나기 무섭게 친구는 와사비 전체를 한 젓가락에 뜨더니 입안으로 덥석 넣었답니다.

 

선생님 친구 분은 그 날 그 사건 이후로 와사비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됐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처음 만났을 때의 여러분과 지금의 여러분은 완전히 다릅니다. 경험해본 것과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인운동  ⓒ스쿨오브무브먼트

 

이전에 “우리 운동할까요”라는 세 편의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상)편에서 줄넘기와 달리기, (중)편에서 복부운동을 소개했습니다. 모두 셀프 디펜스에 필요한 기초체력 향상에 좋습니다. 스쿨오브무브먼트 유튜브 채널에서 해당 운동 영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편에서 소개한 대인운동은 우리가 잃어버린 문화자산이기도 합니다. 대인운동은 신속한 판단과 반응, 운동감각 향상에 좋습니다. 크라브 마가(Krav Maga)는 본능적인 반응에 기초해 아주 쉽게 풀어나간 셀프 디펜스 체계입니다. 평소에 대인운동을 해둔다면, 운동감각의 창을 넓혀둘 수 있어서 좋은 준비가 될 것입니다.

 

셀프 디펜스 수업을 하고 나면 참가자들이 정말 도움이 된다, 더 배우고 싶다, 이런 건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일단 배운 것을 서로 연습하세요. 그리고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도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셀프 디펜스를 배울 수 있는 여러 기회를 마련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함께 읽기: <문화기획달> 2박3일 지리산 캠프 스케치 “해본 것과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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