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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일상을 관통해 철학적 사색을 담는 ‘철학하는 일상’ 칼럼을 연재합니다. 삶의 경험에 기초해 철학적 물음을 던지며 대답을 얻기 위해 사색하는 과정과, 사색이 일상에 적용되는 과정을 독자들과 함께해보려고 합니다. 필자 이경신님은 일상 속에서 철학적 물음을 퍼올리며 삶 자체를 철학의 도정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일상 속에서 철학한다는 것의 의미 

일상 속에서 철학한다는 것, 도대체 뭘까?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철학적 물음을 물을 수 있고, 일상을 그 물음과 더불어 꾸려나갈 수 있으며 철학과 더불어 좋은 삶으로 나아갈 힘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 경우, 일상 속으로 느닷없이 철학적 물음이 비집고 들어 온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누워 지내시는 안방 문 앞에서 놀이에 빠져 있던 내게 할머니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알린 그 순간부터였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 그것도 아주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최초로 경험한 순간이기도 했다.
 
자신을 사랑해 주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사실이 꼬마였던 내게는 슬픔을 넘어 아찔한 공포였다.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 죽음은 밤마다 잠자리에 누운 내게 아득한 현기증을 안겨주었고, ‘죽는다는 것은 뭘까?’라는 물음은 내 인생 첫 번째 철학적 물음이 되었다.
 
그날 이후, 죽음의 물음은 또 다른 철학적 물음들-‘평등’, ‘정의’, ‘시간’, ‘욕망’, ‘권력’ 등-로 이어졌고, 어느덧 어른이 된 난 철학적 물음들에 둘러싸인 채 일상을 꾸려나가고 있다.
 
느낌과 물음으로 시작되는 생각은 때로는 나를 미궁에도 빠뜨리고, 때로는 하나의 대답, 또는 여러 대답으로 이끌기도 한다. 항상 좋은 대답을 얻지는 못한다. 일상이 좋은 대답을 얻을 만큼 숙고할 시간을 허용하지 않기도 하고, 생각의 방향이 잘못되어 좋은 대답에 이르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유한한 생명체인 내가 할 수 있는 생각, 그 생각의 한계가 명백히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설사 좋은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생각을 일상 속에서 좋은 행동으로 옮겨낼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게다가 좋은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대답 자체를 얻지 못했을 때는, 일상은 방향을 잃고 타성에 젖어 흘러가게 마련이다.
 
아무튼 오늘도 나는 느끼고 묻고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계속한다. 죽음 전까지 내게 허용된 삶을 잘 꾸려나가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기왕이면 가능한 한 좋은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 좋은 삶은 나홀로 철학한다고 해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이다. 다들 각자의 삶 속에서 철학하는 삶을 살 수는 없는 걸까? 함께 좋은 삶을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런 물음이 내게 내 일상 속의 철학하는 이야기를 쓰도록 했지만, 그 이야기는 어쩌면 실망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좋은 삶의 정답은 드물고, 물음만이 넘쳐나니 말이다.
 
하지만 철학이 일상의 나침반이고, 좋은 물음이 좋은 삶의 등대라는 믿음을 나눠볼 수 없을까?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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