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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법안을 둘러싼 쟁점: 사전 의료지시서
국회에 제출된 존엄사 법안을 통해 존엄사 논의의 핵심쟁점 중 하나인 ‘의료집착적 행위’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는 한편,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진정성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호스피스와 적극적 안락사에 이르는 논의를 지피고자 한다. -편집자 주
경실련의 존엄사 법안에서 환자의 ‘생명에 대한 유언’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로서 제안되고 있는 ‘사전 의료지시서’ 관련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전 의료지시서’란 생명에 대한 유언으로 ‘말기상태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여 자신의 죽음과 신체기관의 이식, 치료방법의 결정에 대해서 남기는 의사표시’라고 명시되어 있다.
지금껏 우리 의료현장에서 무시되어 온 말기 및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제도적으로 의료집착적 행위를 근절하며, 존엄사에 참여한 의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사전 의료지시서’를 법제도로서 정착시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반자의적 안락사’ 막기 위해 환자의 ‘진정한 동의’ 필요
존엄사법에 의하면 환자는 ‘사전 의료지시서’를 통해 존엄사와 관련한 자신의 의사를 서면동의 형태로 밝히도록 한다. 그때 증인 2명을 입회하도록 하며, 사전 의료지시서를 작성할 시 충분한 정보제공, 상세한 설명을 포함한 상담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또 원하면 언제든지 존엄사 동의를 철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불어 상담절차 이행을 거부하는 의료기관의 장에게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말기환자의 자살을 조력하거나 말기환자의 의사에 반하여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보류한 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같은 법적 절차와 처벌 규정은 환자의 ‘진정한 동의’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서 존엄사를 숙고해서 결정하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사실 환자의 ‘진정한 동의’의 문제는 치료 불가능한 말기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할 경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환자가 과연 숙고해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또 그 환자에게 가해진 부당한 압력은 없었을지 하는 의문 때문이다.
환자가 진정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면, 즉 자발적으로 숙고해서 안락사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환자의 의사에 반해 그를 죽게 하는 것이므로 환자를 부당하게 살해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반자의적 안락사’를 막기 위해 환자의 ‘진정한 동의’를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다.
보통 환자가 진정으로 안락사에 동의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진정한 동의’의 세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본다. 첫째 환자가 안락사에 동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둘째 환자가 안락사를 결정하기에 앞서 그와 관련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받아야 하고, 셋째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환자 본인이 안락사에 동의해야 한다.
그래서 의료현장에서는 이를 보장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요구되는데, 김상득의 <생명의료 윤리학>(철학과 현실사, 2000)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환자에게 자신의 질병 관련 모든 의학적 사실을 고지하고, 환자의 동의를 일정한 기간을 두고 거듭 확인하고, 환자는 안락사 윤리위원회 전원입회 하에서 동의의사를 표현하고, 환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입회시키지 않으며, 환자의 병이 치료 불가능함을 적어도 3인 이상의 의사가 동의해야 한다는 것 등이 그런 안전장치에 해당될 수 있다.
‘사전 의료지시서’ 규정, 과연 환자에게 최선일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안락사와 관련한 환자의 진정한 동의의 문제는, 환자가 ‘의사의 도움에 의한 고통 없는 빠른 죽음’이나 ‘고통완화를 통해 죽음의 과정을 겪는 죽음’처럼 환자에게 가능한-환자에게 좋다고 판단되는- 여러 죽음 대안 중 진정으로 어떤 죽음을 선택하는지를 아는 것과 관련된다.
그런데 존엄사법(안)에 의하면, 환자는 ‘사전 의료지시서’를 통해서 자신이 현대의학으로는 치료 불가능하다고 판정을 받은 의식 없는 환자가 된다면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생명연장장치에 연명치료를 받아들이는 선택을 했음을 밝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환자는 의료집착적 행위를 거부하거나 찬성하는 의사표시를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사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의료집착적 행위를 바라는 환자는 별로 없을 것이며, 현대의학으로 회복시킬 수 없는 환자를 존엄사에 이르게 하는 것이 반자의적 안락사도 아니다. 그렇다면 상담과 증인입회의 절차를 동반한 ‘사전 의료지시서’ 작성 및 동의 철회에 대한 명시, 그리고 상담절차 불이행 시의 벌금형과 말기환자의 의사에 반한 연명치료 중단할 시의 징역형이라는 처벌규정이 과연 환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법규정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환자를 위한다면 의료집착적 행위에 대한 수용 또는 거부라는 선택을 위한 상담보다도, 자신의 상태가 회복 불가능한 말기상태라는 의학적 판단이 내려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현대의학으로 치료 불가능한 말기환자에게 있어 의식을 상실했을 때는 의료집착적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 좋은 선택임을 설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전 의료지시서’와 관련된 제반 절차와 처벌 규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환자가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의료집착적 행위의 희생양이 되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제반 절차와 처벌규정을 통해서, 만일 환자가 존엄사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의사는 의료집착적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고, 환자가 존엄사를 선택한다면 환자의 존엄사에 참여한 의사는 민사적·형사적 책임, 직업적 제재를 면제받을 수 있으므로 환자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의사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결국 ‘사전 의료지시서’는 의료집착적 행위를 거부하는 환자에 한해서만 연명치료거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집착행위에 대한 인식이 없어 연명치료라는 잘못된 선택을 한 환자에게는 자기결정권이 오히려 해가 될 뿐이다.
게다가 중대한 질병이 말기상태가 되어 의식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 의료사고나 재해 등과 같은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갑작스레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라면, 사전 의료지시서를 작성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제도적 장치가 생명연장장치를 거부하는 자기결정권 행사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추정적 의사표시를 직계친족에 맡겨선 안돼
존엄사 법안은 사전 의료지시서를 작성하지 못한, 무의식 상태의 환자나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환자의 경우는 자발적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환자의 직계친족이 추정적 의사표시를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한다.
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나 자녀처럼 이해관계가 있는 환자 대리인에게 환자의 자기결정권 표명을 맡기는 것은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반영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치료가 불가능한 의식이 없는 환자의 경우라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은 바로 존엄사에 있으니까 직계친족이 아닌 그 누구라 하더라도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환자를 위하는 것이다.
존엄사 결정 부분을 직계친족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환자의 이익을 무시하는 처사로 보아야 한다. 윤리학자, 종교인, 의사, 간호사, 변호사 등이 포함된 의료윤리심의위원회를 통해서 보다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의료윤리심의위원회에서 존엄사 대상의 기준을 만들고, 기관의료윤리심의위원회에서 그 환자의 존엄사를 결정하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존엄사법(안)은 의사와 의료기관의 보호막으로서는 충분한 기능을 할 수 있겠지만,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측면에서는 소극적이고 제한된 보호밖에 해줄 수 없다. 심지어 환자가 의료집착적 행위의 희생양이 되더라도 한편으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선택 불가능한 의식불명 환자의 경우, 선택을 가족의 몫으로 미루면서 의료집착적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효과를 가져올 우려마저 있다.
존엄사법이 의도한 것처럼 치료 불가능한 의식 없는 환자가 인위적인 의료장치에 의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반인에게 의료집착적 행위의 거부와 존엄사 개념을 공론화시켜야 한다.
또한 누구나 ‘생명에 대한 유언’을 작성하도록 권장하며, 그 유언이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이고 바람직한 대안이라 생각된다.일다▣ 이경신 (필자 이경신님은 현대의학의 발달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죽음의 개념과 양상을 연구하며, ‘죽음’의 문제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철학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존엄사 법안을 통해 존엄사 논의의 핵심쟁점 중 하나인 ‘의료집착적 행위’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는 한편,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진정성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호스피스와 적극적 안락사에 이르는 논의를 지피고자 한다. -편집자 주
경실련의 존엄사 법안에서 환자의 ‘생명에 대한 유언’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로서 제안되고 있는 ‘사전 의료지시서’ 관련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전 의료지시서’란 생명에 대한 유언으로 ‘말기상태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여 자신의 죽음과 신체기관의 이식, 치료방법의 결정에 대해서 남기는 의사표시’라고 명시되어 있다.
지금껏 우리 의료현장에서 무시되어 온 말기 및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제도적으로 의료집착적 행위를 근절하며, 존엄사에 참여한 의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사전 의료지시서’를 법제도로서 정착시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반자의적 안락사’ 막기 위해 환자의 ‘진정한 동의’ 필요
존엄사법에 의하면 환자는 ‘사전 의료지시서’를 통해 존엄사와 관련한 자신의 의사를 서면동의 형태로 밝히도록 한다. 그때 증인 2명을 입회하도록 하며, 사전 의료지시서를 작성할 시 충분한 정보제공, 상세한 설명을 포함한 상담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또 원하면 언제든지 존엄사 동의를 철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불어 상담절차 이행을 거부하는 의료기관의 장에게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말기환자의 자살을 조력하거나 말기환자의 의사에 반하여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보류한 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같은 법적 절차와 처벌 규정은 환자의 ‘진정한 동의’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서 존엄사를 숙고해서 결정하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사실 환자의 ‘진정한 동의’의 문제는 치료 불가능한 말기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할 경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환자가 과연 숙고해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또 그 환자에게 가해진 부당한 압력은 없었을지 하는 의문 때문이다.
환자가 진정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면, 즉 자발적으로 숙고해서 안락사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환자의 의사에 반해 그를 죽게 하는 것이므로 환자를 부당하게 살해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반자의적 안락사’를 막기 위해 환자의 ‘진정한 동의’를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다.
보통 환자가 진정으로 안락사에 동의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진정한 동의’의 세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본다. 첫째 환자가 안락사에 동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둘째 환자가 안락사를 결정하기에 앞서 그와 관련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받아야 하고, 셋째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환자 본인이 안락사에 동의해야 한다.
그래서 의료현장에서는 이를 보장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요구되는데, 김상득의 <생명의료 윤리학>(철학과 현실사, 2000)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환자에게 자신의 질병 관련 모든 의학적 사실을 고지하고, 환자의 동의를 일정한 기간을 두고 거듭 확인하고, 환자는 안락사 윤리위원회 전원입회 하에서 동의의사를 표현하고, 환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입회시키지 않으며, 환자의 병이 치료 불가능함을 적어도 3인 이상의 의사가 동의해야 한다는 것 등이 그런 안전장치에 해당될 수 있다.
‘사전 의료지시서’ 규정, 과연 환자에게 최선일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안락사와 관련한 환자의 진정한 동의의 문제는, 환자가 ‘의사의 도움에 의한 고통 없는 빠른 죽음’이나 ‘고통완화를 통해 죽음의 과정을 겪는 죽음’처럼 환자에게 가능한-환자에게 좋다고 판단되는- 여러 죽음 대안 중 진정으로 어떤 죽음을 선택하는지를 아는 것과 관련된다.
그런데 존엄사법(안)에 의하면, 환자는 ‘사전 의료지시서’를 통해서 자신이 현대의학으로는 치료 불가능하다고 판정을 받은 의식 없는 환자가 된다면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생명연장장치에 연명치료를 받아들이는 선택을 했음을 밝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환자는 의료집착적 행위를 거부하거나 찬성하는 의사표시를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사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의료집착적 행위를 바라는 환자는 별로 없을 것이며, 현대의학으로 회복시킬 수 없는 환자를 존엄사에 이르게 하는 것이 반자의적 안락사도 아니다. 그렇다면 상담과 증인입회의 절차를 동반한 ‘사전 의료지시서’ 작성 및 동의 철회에 대한 명시, 그리고 상담절차 불이행 시의 벌금형과 말기환자의 의사에 반한 연명치료 중단할 시의 징역형이라는 처벌규정이 과연 환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법규정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환자를 위한다면 의료집착적 행위에 대한 수용 또는 거부라는 선택을 위한 상담보다도, 자신의 상태가 회복 불가능한 말기상태라는 의학적 판단이 내려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현대의학으로 치료 불가능한 말기환자에게 있어 의식을 상실했을 때는 의료집착적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 좋은 선택임을 설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전 의료지시서’와 관련된 제반 절차와 처벌 규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환자가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의료집착적 행위의 희생양이 되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제반 절차와 처벌규정을 통해서, 만일 환자가 존엄사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의사는 의료집착적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고, 환자가 존엄사를 선택한다면 환자의 존엄사에 참여한 의사는 민사적·형사적 책임, 직업적 제재를 면제받을 수 있으므로 환자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의사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결국 ‘사전 의료지시서’는 의료집착적 행위를 거부하는 환자에 한해서만 연명치료거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집착행위에 대한 인식이 없어 연명치료라는 잘못된 선택을 한 환자에게는 자기결정권이 오히려 해가 될 뿐이다.
게다가 중대한 질병이 말기상태가 되어 의식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 의료사고나 재해 등과 같은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갑작스레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라면, 사전 의료지시서를 작성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제도적 장치가 생명연장장치를 거부하는 자기결정권 행사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추정적 의사표시를 직계친족에 맡겨선 안돼
존엄사 법안은 사전 의료지시서를 작성하지 못한, 무의식 상태의 환자나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환자의 경우는 자발적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환자의 직계친족이 추정적 의사표시를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한다.
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나 자녀처럼 이해관계가 있는 환자 대리인에게 환자의 자기결정권 표명을 맡기는 것은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반영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치료가 불가능한 의식이 없는 환자의 경우라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은 바로 존엄사에 있으니까 직계친족이 아닌 그 누구라 하더라도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환자를 위하는 것이다.
존엄사 결정 부분을 직계친족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환자의 이익을 무시하는 처사로 보아야 한다. 윤리학자, 종교인, 의사, 간호사, 변호사 등이 포함된 의료윤리심의위원회를 통해서 보다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의료윤리심의위원회에서 존엄사 대상의 기준을 만들고, 기관의료윤리심의위원회에서 그 환자의 존엄사를 결정하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존엄사법(안)은 의사와 의료기관의 보호막으로서는 충분한 기능을 할 수 있겠지만,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측면에서는 소극적이고 제한된 보호밖에 해줄 수 없다. 심지어 환자가 의료집착적 행위의 희생양이 되더라도 한편으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선택 불가능한 의식불명 환자의 경우, 선택을 가족의 몫으로 미루면서 의료집착적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효과를 가져올 우려마저 있다.
존엄사법이 의도한 것처럼 치료 불가능한 의식 없는 환자가 인위적인 의료장치에 의한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반인에게 의료집착적 행위의 거부와 존엄사 개념을 공론화시켜야 한다.
또한 누구나 ‘생명에 대한 유언’을 작성하도록 권장하며, 그 유언이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이고 바람직한 대안이라 생각된다.일다▣ 이경신 (필자 이경신님은 현대의학의 발달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죽음의 개념과 양상을 연구하며, ‘죽음’의 문제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철학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다.)
[존엄사]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 이경신 | 2009/0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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