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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을 하지 않는다면… 
 
집밖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곤혹스럽다. 육식을 피하는 나로서는 식사하기에 적당한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내가 선택한 주된 외식메뉴는 바로 ‘비빔밥’, 그것도 ‘산채비빔밥’이다. 값비싼 식당의 비빔밥은 다진 쇠고기가 들어 있고, 값싼 식당의 비빔밥에는 달걀이 들어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나랑 함께 외식을 하는 사람은 “또 비빔밥이야?”하며 지겹다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경제적인 이유, 건강상의 이유로 육식 제한
  

존 로빈스 "음식혁명" (시공사, 2002)

내가 육식을 완전히 피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고기반찬은 귀한 음식이었고 손님이라도 초대하는 날이면 고기반찬이 빠져선 안 되었다. 물론 어린 시절에도 고기반찬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아서 많이 먹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식탁에서 밀쳐놓지는 않았다.

 
당시에 내가 싫어해서 매번 어머니랑 실랑이를 벌였던 고기음식은 햄, 소시지와 같은 육류가공식품이었다. 하지만 나도 무엇이든 음식은 골고루 먹는 것이 올바른 식습관으로 믿었으며, 학교까지 함께 걸어 다녔던 길동무가 식사 때마다 고기를 가려내는 것을 좋지 않게 보았다.
 
대학에 진학하여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되고, 또 대학졸업 이후 독립된 생활을 계속하게 되면서 내 식탁에 고기반찬이 거의 오르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비로는 한 달에 한번이나 겨우 고기를 먹을 수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로 달걀 노른자를 포함한 기름진 육식-갈비, 삼겹살, 닭날개, 햄버거 등-을 제한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우연히 받게 된 건강검진에서 정상체중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의사는 동맥경화나 심장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운동과 더불어 식이요법이 필요하다는 처방을 내렸다.
 
육식을 거의 하고 있지 않았던 당시에 내게 내려진 육식제한 처방은 참으로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아무튼 음식을 가려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니, 할 수 없었다. 최근 몇 년 전 스스로 육식을 완전히 금하기까지 제한된 육식섭취는 드물긴 해도 계속되었다. ‘기름지지 않다면 살코기는 괜찮아’ 하고 말이다.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육식, 새로운 질병을 야기하는 육식
 
그런 내가 육식을 완전히 접게 된 것은 친구, 이웃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이 하나 둘 유방암 선고를 받게 되면서였던 것 같다. 아니, 살코기만 먹었지만 잘 줄어들지 않는 나의 콜레스테롤 수치나, 어릴 때부터 시달려 온 소화기장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육식이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서였다. 실제로 육식을 금한 후, 내 건강은 좋아졌다.
 
현대인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심장질환, 고혈압, 동맥경화,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과 비만, 그리고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과 같은 암이 육식과 관련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처럼 건강상의 이상징후가 실제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육식을 줄이거나 금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www.vivausa.org에서 진행 중인 캠페인 사진

그런데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가축의 처지를 동정하여 ‘동물의 생존권’을 지켜주는 차원에서 육식을 문제 삼기도 한다. 내가 육식을 전면적으로 금하기에 앞서 육식을 극도로 줄이게 된 계기도 바로 ‘동물의 생존권’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는데, 값이 비싸더라도 ‘유기농 고기, 달걀만’ 구매하고, 유제품 섭취는 줄였다.
 
이전에는 공장식 축산이 얼마나 보편화되어 있고, 그로 인해 소, 돼지, 닭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들판에서 풀을 뜯는 젖소, 시골 외양간에서 삼삼오오 자라는 소와 돼지, 그리고 뜰을 뛰어다니는 닭은 상업적 광고 속에나 등장하는 드문 현실일 뿐이라니, 충격이었다.
 
우리가 슈퍼나 마트, 정육점에서 구입하는 고기, 달걀 대부분은 공장식 축산의 상품이다. 부리 자르기, 꼬리 자르기, 거세하기 등과 같은 신체절단, 좁은 우리에 완전감금, 자연채광 없는 인공조명, 먹이와 물의 제한된 자동공급 등 비인도적인 사육 속에서 가축은 더이상 생명체가 아니라 물건이나 기계로 취급되고 있다.
 
이윤추구에만 관심 있는 공장식 사육의 처참한 현실이 그렇다. 게다가 면역체계가 약화된 가축이 질병에라도 걸리면 잔혹하게 도살되기도 하고, 조류독감,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이라도 돌게 되면 끔찍하게 집단 살처분된다.
 
또 비록 동물의 생존권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육식을 지속하는 한 공장식 사육이 인간에게 안겨준-살모넬라, 리스테리아, 캄필로박터 등과 같은 항생제 내성을 가진 세균이 야기하는-식인성 질병이나 광우병과 같은 신종질병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육식이 가져오는 환경재앙과 기아
 
요즘은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는 형편이다. 육식이 내 건강을 망치고 동물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환경에도 엄청난 재앙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육식을 충족하기 위한 가축사육이 물과 화석연료의 과도한 소비, 가축배설물이 야기하는 물 오염, 식생과 토양변화, 열대 우림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야생동물의 멸종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세계기아를 가속화시켜 빈곤층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웃에게 늘어놓으면 “동물이 불쌍하지만, 고기를 좋아해서…”, “식물은 뭐 생명이 없나요?”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먹을 것 없어요”, “유기농인들 믿을 수 있나?” “너무 일방적인 생각만 하지 마세요”, “뭐, 이렇게 먹다 죽는 거지” 등 제각기 의견을 내놓지만, 다들 육식을 포기할 수 없다는 한 목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식을 과도하게 하는 것, 육식을 적게 하는 것, 육식을 줄이려고 애쓰는 것, 유기농 고기를 섭취하는 것, 식당에서 고기음식을 먹지 않는 것 등에는 분명히 사람들마다 생각과 행위의 차이가 존재한다.
 
아무튼 어떻게 합리화하건 육식습관을 고집하는 한, 그 길의 끝은 분명해 보인다. 늦기 전에 진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함께 읽자. 존 로빈스 <음식혁명>(시공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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