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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 딸이 어머니에게 바칩니다

<오지 않은 미래의 발견> Mutter-seelen-allein


※ 여성학자이자 <노년은 아름다워>의 저자 김영옥(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대표)님이 “오지 않은 미래의 발견”이라는 화두로 기사를 연재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0. 프롤로그

 

Mutter-seelen-allein(mother-soul-alone) 엄마-영혼(없이)-홀로.

 

어머니의 영혼은 고대 독일어에서 사람 또는 사람의 영혼을 강조하는 은유였다. 국어를 모국어로 부르는 것과 유사한 강조용법이다. 19세기 만해도 어머니의 영혼조차 떠난 이의 처절하게 외로운 실존을 가리키는 이 단어에는 도저한 감정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당신이 언제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어머니의 영혼조차 당신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가버렸다. 당신은 이제 철저히 홀로 남겨졌다.’

 

지금은 ‘홀로’를 의미하는 평범한 일상어로 통용되지만, ‘어머니의 영혼이 떠나버려 홀로 남겨진’이라는 이 단어는 여전히 번역이 불가능한 깊은 울림을 품고 있다.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떠오른 이 단어는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나를 휘감는다.

 

1. 엄마,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 박상은 作  [내 가슴 속에 널 묻던 날]   ⓒ일다


밤마다 나는 그녀의 수면양말을 신고 자리에 눕는다. 양말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꼼지락거리면서 그녀의 발과 접촉하려 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신고 있던 이 양말 속에서 나는 그녀의 체온을 느끼려 한다. 그녀의 손을, 얼굴을, 어깨를, 가슴을 만나려 한다. 어떻게든 다시 한 번 그녀의 몸에 가닿으려 한다.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따스한 작은 새처럼 내 손에 폭 깃들던 그녀의 손. 점점 작아져 타원형의 검은 점이 되었지만 감사와 호기심으로 빛나기를 멈추지 않던 그녀의 두 눈. 조금만 힘을 줘도 바스라질 것처럼 앙상하던 그녀의 어깨. 그리고 공기 빠진 풍선처럼 가볍게 쳐져 내리던 그녀의 가슴. 보라색 줄무늬가 있는 수면양말에 두 발을 집어넣고 이렇게 나는 이제 더 이상 내 곁에 있지 않는 그녀의 몸을 만지려 한다.

 

엄마, 라고 불러본다. 그러나 ‘엄마’는 깊은 동굴 속에 갇힌 신호처럼 머릿속에서 맴돌 뿐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엄마, 라고 부를 때 고개를 돌리며 낯선 손님을 의혹 없이 반기듯 미소로 화답하던 그녀가 부재하기에, 이제부터 나는 영원히 ‘엄마’라는 부름말의 결핍을 견뎌야 한다. 이제 다시는 부를 수 없는 이름.

 

엄마, 라는 명사. 명사이면서 그 어떤 다른 언어로 대체할 수 없는 가장 고유하고 내밀한 고유명사인 이 언어. 이 고유/명사를 소리 내어 말할 때 나는 그 의미의 비매개적이며 육체적인 현전에 행복했고, 기꺼이 존재의 태곳적 자궁 안으로 퇴행해 들어갔다. 이제 내게서 이 고유/명사는 영원히 상실되었다. 엄마, 라고 소리 내어 부를 때의 그 따뜻하고 달큰하고 아삭아삭한 맛. 소외되지 않고 온전했던 그 의미의 맛. 그것은 사과를 씹는 것 같았고, 푹 빠지고 싶은 깃털 웅덩이 같았다.

 

이제 엄마는 어느 곳에 있는가. 그 엄연하던 현존과 이 엄연한 부재의 간극. 엄마, 의, 존재, 를 빼앗기지 않으려 나는 이 냉정한 경계선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안간힘을 쓴다.

 

2. 죽음 앞에 깨어 있으라: 메멘토 모리의 또 다른 정언명령


마지막 몇 번의 만남에서 내 손에 맡겨진 엄마의 손은 차갑고, 그래서 안쓰럽고 애처로웠다. 혈액순환이 안돼서 늘 손발이 찬 내가 왜 엄마의 손이 그토록 찬 것을 의아해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그 차가움이 전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수신하지 못했을까. 찰나에 빈틈이 생겼고, 그 빈 틈새로는 무엇이든 스며들 수 있었다. 마지막 따스한 사랑의 인사든, 결정적인 실수의 검은 그림자든. 충분히 ‘깨어있지’ 못했던 나는 그 틈새로 마지막 따스한 사랑의 인사가 아니라 결정적인 실수의 검은 그림자가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여러 번 위기의 순간이 있었고, 그때마다 엄마는 회복했다. “구정을 못 넘기실 것 같으니 어디 가지 말고 서울에 계세요.” 그래서 아무데도 가지 않고 서울에 있던 그해 엄마는 구정을 넘기고 봄을 맞이했다. 작년의 일이다. 입안에 든 한 스푼의 죽을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삼키지 못하는 상태가 있었다. “뇌가 음식 삼키는 것을 잊어버려서 그래요.” 그러나 엄마는 다시 죽을 삼킬 수 있게 되었다. 재작년인가의 일이다. 음식 싫다는 일이 드문 엄마가 자꾸 식판을 밀어냈다. 평소에 몹시 좋아하던 막대사탕을 너무 쓰다고 도리질을 치며 내치고 단 것 좀 줘보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 단백 영양죽을 입에 갖다 대니 조금씩이지만 받아 삼켰다.


▶ 슬픔과 애도에 관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저서 <Black Sun 검은 태양> 

 

“독감만 걸리지 않으시면 올 겨울도 잘 넘기실 거예요. 다녀오세요.”

 

올 겨울, 엄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의 일이다. 지난 8년간 요양원이 수용인원 9인 규모에서 20인 규모로, 그러다 갑자기 100인 규모로 바뀌는 동안 요양원 원장이 입소 노년들 하나하나를 꼼꼼히 관찰하고 챙기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는/안한다는 것을 계속 불안해하며 확인하던 나였지만, 부적처럼 원장의 말을 덥석 받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요양원은 환자와 가족과 원장 및 요양보호사 등 세 당사자가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유사 가족에서 점점 더 면대면 접촉이 사라지고 불가능해지는 ‘시설’이 되어갔다. 가족이 오면 그동안 환자의 몸 상태가 어떠했는지 알려주던 원장은 100인 규모 ‘시설’에서는 만나기 힘든 사람이 되어버렸다. 원장은 엄마의 손발이 차가워지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나는 감지했으되 그 이유를 질문할 만큼 깨어있지 못했다.

 

여행 전 해야 할 일 리스트 맨 위에는 엄마 방문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아래 줄줄이 적혀 있던 다른 의무들이 가까스로 X표가 쳐지는 동안, 제일 위에 적혀있던 엄마방문은 계속 X표 없이 남아있었다. 학생들 졸업전시회 가기, 도서관에 가서 책 빌리기, 마감을 넘긴 원고 마무리하기, 책 원고 교정쇄 읽기, 세탁물 찾아 짐에 넣기, 번역원고 챙기기 등등. 새벽에라도 엄마를 만나고 공항으로 가겠다고 별렀지만 결국 실행하지 못했다.

 

공항으로 가면서, 비행기 좌석에 앉으면서 계속 불안했다. 리스트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엄마방문’에 어떻게든 X표를 치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주문처럼 요양원 원장의 말을 되새겼다. 몇 번이나 위기를 넘기셨으니까…. 스스로를 달래며 ‘내가 다녀올 때까지 꼭 이 세상에 계셔주시는 거다, 엄마’ 다짐하던 내게 손가락 걸고 약속하던 엄마의 ‘마음’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고 믿으려 애썼다. ‘치매’가 심해 시간의 흐름과 동시에 앞선 것을 잊어버리는 엄마지만 그럼에도 긴 시간 ‘교감의 신비’를 맛보게 해준 엄마였기에 가능할 것 같았다.

 

찰나에 빈틈이 벌어졌고, 그 안으로 이미 결정적인 실수의 검은 그림자가 미끄러져 들어간 것을 알아채지 못한 어리석은 신비주의자의 알리바이. 엄마가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를 강타한 게 바로 그 실패의 느낌이었다. 검게 두근거리던 심장에 정확하게 화살이 꽂혔단 느낌이었다. 아, 삶이란 이렇게 봐주는 법이 없구나, 탄식이 뒤따랐다.

 

끝내 지워지지 못한 채 리스트에 남아있던 ‘엄마방문’은 거의 두 달이 가까워 오는 지금까지 시시때때로 나를 불러 세운다. 저 리스트의 의무들을 다 하지 않았던들 뭐가 그리 대수였을까. 일정의 차질, 약간의 의무방기에 대한 아쉬움 정도? 그것들 모두 안전한 삶의 영토 내부에 속하는 것들 아닌가. 그러나 엄마는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에 머문 지 오래되었다.

 

나는 거의 매번 엄마를 방문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는 심정으로 고마웠다 사랑한다 엄마의 딸이어서 행복했다 고백했고, 헤어질 때도 등을 보인 채 병실을 나서지 않으려 주의했다(결국 등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가시면 5분도 안 돼서 오셨던 것도 기억 못하시는 걸요, 뭐.” 요양보호사의 이 말에 불안하고 미안한 마음을 얹어 안위하지 않으려 애썼다(결국 안위했다).

 

요양원에 방문할 때마다 엄마는 거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니네 집에 가서 살면 안 되니’라고 물었고, 기억력이나 인지력이 더 죽음 쪽으로 기울었을 때 이 물음은 ‘자고 가면 안 되니’로 바뀌었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그 물음 앞에서 ‘한번쯤은, 그래, 꼭 한번쯤은 엄마 곁에 몇 십 분이라도 누워 있다 가리라’, 실행하지 못한 다짐 뒤로 이어지고 또 이어지던 다짐들.

 

아흔을 넘긴 엄마의 발에는, 양말을 벗길 때마다 수북이 쏟아져 내리던 비듬조차 더 이상 일지 않았다. 잘 마른 양가죽처럼 습기도 살도 비듬도 없던 엄마의 손과 발에 깃들어 있던 죽음은 그러나 늘 따스했고 온유했다. 살이 죽음을 품고 있으며 죽음의 말없는 인도 속에 살이 마지막 순간까지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 손과 발에서 배우곤 했다(결국 나는 메멘토 모리 앞에서 깨어있지 못하고 일상의 의무에 허우적거리며 엄마에게 가는 길을 잃었다). 죽음은 늘 거기 엄마 곁에 있었지만, 죽음의 최종 순간은 도적떼처럼 쳐들어왔다.

 

엄마, 요양원 침대에서 홀로 의식을 놓으실 때 외롭지 않으셨나요? 혹시 저를 찾지 않으셨나요?

 

3. 페미니스트가 되어 비로소 어머니의 딸이 되다

 

30대 중반, 페미니스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 그녀와 나는 내가 50대에 들어서면서 사랑에 빠졌다. 엄마의 ‘치매’가 심해지기 시작하면서였다.

 

1923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피난민으로 결혼생활을 했던 그녀는 해방과 함께 귀향했다가 1.4 후퇴 때 월남해 서울에서 다시 또 생존을 다투는 피난민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평생 거칠고 드셌던 억척 엄마를 나는 늘 낯설어했고, 이것은 막내인 내가 20대 30대의 엄마 모습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엄마의 딸’이라는 자아정체감은 페미니즘 인식론에 힘입어 싹트기 시작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한명의 민중여성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나는 그녀를 ‘나의 엄마’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인지적으로, 신체적으로 취약해지면서 나는 그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단지 그녀의 의존성이 나의 돌봄 지각과 의지를 각성시켜서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의 취약함 속에서 마냥 부드럽고 다정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치 백조로 변신한 미운오리새끼처럼, 또는 껍질을 벗고 나방으로 변태한 애벌레처럼 그녀는 사랑스럽고 온유해졌다. 뒤늦게 싹튼 한 ‘치매 할매’와의 친밀한 관계는 의혹에서 완전히 자유롭고 부족함 없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웠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통증을 호소할 때면 사는 게 그렇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그녀는 나를 위로하며 어루만져 주었다.

 

평화로운 만남이었고, 깊고 올바른 인성에로의 이끎이었다. 그녀를 통해 생각이나 인지에 대한 기존 관념의 편협함을 깨달았고, 생산도 소비도 움직임도 없는 노년의 하루살이가 의미 있고 가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합리성의 미망에서 노년의 존재에 대한 사유로 이끄는 아리아드네의 실이었다. ‘치매 할매’의 80대와 더불어 보낸 나의 50대는 나이 들고 병들어 죽는 생의 범속한 여정에 대한 범속한 눈뜸의 시간이었다.

 

4. 이야기가 된/되는 삶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있는 동영상에는 12월 11일이라는 날짜가 찍혀 있다. 막대사탕을 입에 문 엄마는 ‘할머니 이름이 뭐에요?’라고 묻는 요양보호사에게 당신의 이름이 아닌 막내딸인 나의 이름을 댄다. 요양보호사와 손뼉 마주치기를 하는 엄마는 ‘누가 제일 보고 싶어요?’ 라는 요양보호사의 질문에 ‘당신’이라고 답한다. ‘누가 제일 보고 싶다구요?’ 한 번 더 묻는 그녀에게 엄마는 ‘자기’라고 말한다. 이에 ‘내가 제일 보고 싶어요? 난 매일 보는데? 아이구, 감사합니다’라고 요양보호사가 웃으며 말한다. 사이사이로 ‘짠 짠 짠…’ 하는 그녀의 박자 맞춤 추렴새가 들린다.

 

내가 여행준비로 엄마 방문을 못한 주에 그녀가 나를 위해 핸드폰으로 찍어 보낸 2분 23초짜리 이 동영상 속의 엄마 모습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보는 엄마 모습이다. 엄마, 라는 음성 부름말을 상실한 자리에서 활자 기호로만 남겨진 엄마를 기억하고 이해하고 나의 삶 텍스트 속에 짜 넣는 작업은 이렇게 시작된다.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반비


이야기의 전통을 설명하는 언어는 다양하지만 이야기와 죽음 (그래서 궁극적으로 삶), 또는 시간과의 관계야말로 이야기 이해의 핵심이다. 개인이나 공동체가 우연성을 넘어 필연성의 차원에서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개인의 삶이든 공동체의 삶이든 이야기가 되어야한다는,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흔한 진실. 여기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세 단위는 회상된 현재, 현재, 기대된 현재라는 현재적 지각의 세 층위로 이야기의 시간 구조를 형성한다.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이야기꾼이든 청중이든 참되다고 여기는 무엇에 몸과 마음을 집중한다. 이 몰입을 가능케 하는 에로스, 즉 생성의 에너지를 구태여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꾼의 전통을 설명하면서 모든 죽음이야말로 이야기될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때나(“이야기꾼 – 니콜라이 레쓰코프의 작품에 관한 고찰”), 레베카 솔닛이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두고 아라베스크 문양의 이야기/여행 또는 여행/이야기를 짤 때나(『멀고도 가까운』) 근저에 놓인 믿음은 동일하다.

 

그것은 유한한 삶을 사는 모든 역사적 존재는 죽음 속에서 그 삶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증언하고, 바로 그 가치를 참된 것으로 전승시키는 것에 이야기의 의미가 있다는 믿음이다. 이야기가 되지 않은 삶이야말로 버림받은 삶이다. 그 쓸쓸함을 어디에 비견하랴. 그러나 이야기가 되어 전승되는 삶은 사랑의 축복 속에서 우주적 차원의 삶을 지속한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어떤 것도 이 우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인과율의 흔들리지 않는 법칙 속에서 다른 모든 것과 이어진다. 죄가 있다면, 사랑의 축복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 아마도 그것이리라. 나는 삶이 하나의 통일체로서, 일단 한번 생겨난 사랑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느낀다. (…) 사랑의 그물이 지구를 가로지른다. 미묘하게 빛나는 선들이 세상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가는 망을 만든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랑의 끈들이 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진행되고 있다. 사랑에 참여하고 사랑을 주는 것은 인생의 가장 위대한 보답이다. 사랑에는 끝이 없으며 영원히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과 떠남은 삶의 일부이다.” 

 

헬렌 니어링의 이 말은(『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239-240) 사후세계를 믿는가 안 믿는가의 문제나, ‘죽음 이후’라는 것이 논리-철학적으로 사유 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죽은 이의 삶을 나의/우리의 삶 속에 통합시켜 전승과 순환의 텍스트를 짜는 것의 문제며 애도의 문제, ‘슬픔을 멈추지 않을 권리’의 문제다(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금요일엔 돌아오렴』 211).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2반 길채원 학생의 어머니 허영무 씨는 ‘천국이라는 희망’을 말한다.

 

“암환자는 마음을 좋게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살아간다는 걸 감사하라는데, 아이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감사하라는 건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느님의 자비가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거니까 처음에는 하느님을 부정하게 되잖아요. 저는 갈 데가 없어서 결국 하느님한테 다시 돌아갔어요. 천국이라는 희망조차 없으면 우리 채원이는 그저 암흑일 뿐이니까.” (『금요일엔 돌아오렴』 218)

 

사랑하기를 멈출 수 없는 딸 채원이가 영원한 암흑의 무저갱에 떨어지지 않도록 ‘천국’이라는 희망을 꽉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암 투병 중인) 어머니의 말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논리가 있다. 사랑과 애도와 이어짐, 의미의 이 문화논리는 그 어떤 철학논리보다 죽음과 상실의 고통을 껴안아야 하는 이들에게 필요하며 적합한 논리다. ‘엄마’라는 목소리 대상을 상실하고 활자로만 엄마를 만나야 하는 내게 이 논리는 주름이 풍부한 천/텍스트의 논리다.

 

▲  카토 하루요 감독의 다큐멘터리 <치즈와 구더기> 스틸 컷. 2005

 

슬프고 투명한 다큐멘터리 <치즈와 구더기>(카토 하루요, 2005)는 이 논리가 자양분을 취하고 있는 유물론의 토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딸의 이야기, 혹은 ‘떠나고 있는 중인’ 어머니의 이야기다. 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가 1-2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적 같은 회복’을 막연히 기대하며 카메라를 잡은 딸이 발견한 기적은, 그러나 궁극적으로 회복에 있지 않고 전승에 있었다.

 

영화는 밥하고 먹고 텃밭을 가꾸고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샤미센을 연습하고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하는 어머니의 ‘평온하고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머리카락이 뭉턱뭉턱 빠지는 모습도 있지만 다큐 속의 어머니는 그 어떤 ‘격하거나 강도 높은’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91세 할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의 마지막 모습들을 비스듬히 모로 누워 바라보고 있다. 딸을 향한 노모의 그리움에는 더함이나 덜함의 감정이 없다. 노모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함께 살았으나 이제 더 이상 곁에 없다’는 단절의 감정이 아니라, ‘함께 살았으며 이제 곁에 없으며 함께 살았던 때의 흔적을 품으며’라는 삶의 지각이다. 이것은 현재적 현존으로 지속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다. 91세인 그녀도 이제 함께 살았던 손녀를 두고 죽음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이 나이가 되면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말은 그녀가 손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다.

 

영화의 제목 ‘치즈와 구더기’는 어머니와 딸인 나, 그리고 할머니의 삶과 죽음을 느끼고 사유하는 이 영화가 지향하는 또는 믿는 ‘우주관’이 무엇인지 암시한다.

 

“제가 생각하고 믿는 바에 따르면, 흙 공기 물 그리고 불, 이 모든 것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구더기들은 천사들입니다.” 


영화의 초입에 안내표지처럼 등장하는 이 말은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책 『치즈와 구더기: 한 방앗간 주인이 품은 우주관』에서 한 방앗간 주인이 한 말이다. 미시사를 제안하는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가 재구성한 역사-이야기(hi-story) 속 주인공인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한 지고지선한 존재는 아들이 하느님과 천사이기를 원하였고, 그 수많은 천사들 중에는 같은 시간대에 그 큰 덩어리에서 만들어진 신도 있었지요.” 

 

이렇게 치즈-구더기-천사-위대한 권위-하느님(천사와 인간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으로 이어지는 계열체를 만들어낸(『치즈와 구더기』 185) 메노키오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이며 “우리의 영혼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되돌아”간다고도 말한다.(같은 책, 226)


철저한 유물론과 농부종교, 그리고 중세 기독교의 추상적 교리 및 철학적 사념을 접합시킨 메노키오의 이 말을 나는 신학적 논쟁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함께 웃고 산책하고 음식을 나누고 서로 머리를 감겨주고 고통을 염려하며 돌봐주었던 사람의 존재가 한 순간에 현존에서 부재로 바뀌는 스캔들을 설명할 언어가 필요할 뿐이다.


▶ 미시사를 제안하는 역사학자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책 <치즈와 구더기: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문학과지성사)


영화에서 어머니는 달걀껍질을 비롯한 음식물 찌꺼기를 쌀겨와 함께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담는다. 나중에 그 통 안에서는 무수히 많은 구더기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지났을 때 구더기라는 분명한 ‘생명체’가 태어난 것이다. 중세에 농부들은 치즈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것을 보았고, 지금 우리는 음식물 찌꺼기에서 구더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본다. 유물론이 필요한 관점이라면 부재와 현존 사이에 전환으로 놓여있는 바로 이 연결 때문이다.

 

치즈 혹은 음식물 찌꺼기에서 만들어지는 구더기를 천사 더 나아가 신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은 용기와 도약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 용기나 도약이 그처럼 불가능한 것일까. 생태계를 피부의 감각으로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용기가 도약이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공존하며 ‘이어지는’ 삶의 계승은 삶과 죽음의 단순 반복 혹은 영원회귀와는 다른 시간의 감각을 요구하거나 제공한다. 죽음이 절대적 단절이 아니라 움트는 어떤 다른 생명의 계기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러한 거대한 삶의 순환적 움직임에 대한 인식론적 각성과 그 순환이 ‘헐벗은’ 단순 반복이 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하는 것이다.

 

5. 에필로그: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 사랑 없는 상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감정은 무의미함이다. ... 슬픔은 상황에 걸맞은 우울함이지만 우울증은 상황에 걸맞지 않은 슬픔이다. ... 슬픔은 우리에게 강하고 분명한 생각들과 자신의 깊이에 대한 이해를 남기는 허름한 옷차림의 천사다. 그리고 우울증은 우리를 겁에 질리도록 만드는 악마다.” (앤드류 솔로몬, 『한낮의 우울』 23-25)


“아들을 

도보훈련에 데려간

운하를 따라 난    산책 코스에서,

작은 간질 발작의 징조가 있다.

울적하여,

그 자신의 밖이나

깊은 안쪽에 있다.

쉬었다가

천천히 걷는 일의 되풀이로,

고지대의 집에 도착했다.

성취감에    소파에 드러누워,

『나그네 돌아오지 않고』를 읽고 있으니

분발한 아내가,

아들이 속옷에 싸놓은 것을 뭉쳐

손에 들고 달려갔다.

이층 화장실에서 처리하는 모양이다. 

욕실로 가다가,

어슴푸레한 복도에

분홍빛이 도는 하얀 엉덩이를

굵직한 허벅지로 지탱하며

...

엎드려 있는    아들이,

처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았던 산책코스에서

이렇게 되었다면

노인은 움직일 수도 없다.

공포와, 잘 참아주었구나

하는 안도에    슬픔,

기시감이 있는   인생의 오묘함.”

(오에 겐자부로, 『말의 정의(定義)』 135-137, 띄어쓰기는 저자의 의도임)

 

“나는 우울증 덕분에 형이상학적인 최상의 명석함을 얻었다. ... 슬픔이나 애도 속의 정화는 의기양양하지는 않지만 정교하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창의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Black Sun 검은 태양』 4/22)

 

나는 이 글을 쓰는데 필요한 문체를 찾지 못해 고통스럽게 절망하고 방황하는 날들을 보냈다. 거의 두 달여가 지나가지만 모친을 여읜 슬픔과 안타까움, 후회와 미안함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체를 찾는 것은 여전히 묘연하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노선을 벗어난 정체성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임을 확인할 때마다, 죽음과의 만남이 요구하는 엄혹함이나 절대 고독을 깨닫는다. 다양하게 지각되던 몸-존재에서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 절대 부재로 넘어간 엄마를 영원히 상실하지 않게 돕는 언어는 무엇일까.

 

나는 허구에서든 현실에서든 어머니와 사별한 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떻게 그 상실의 터널을 지나가야할지 몰라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슬픔과 애도를 듣곤 했다는 어떤 선배동료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타는 목마름 속에서 언어를 의례를 표현을 갈망했다. 찾아 나선 길에서 만난 언어, 의례, 표현은 서로 무관한 듯 연결되어 있다. 위 인용문들은 그중 몇 개다.

 

두 번째 인용문은 가장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나는 늙은 오에 겐자부로의 어눌하면서도 정직한 문장들을 읽으며 큰 위로를 받았다. 장애아들을 키우며 80을 넘긴 남자가 자신의 사생활과 국가정책, 세계 정의, 인류의 미래를 밥상보 만들 듯이 엮어낸 길지 않은 글들은 애도의 산책길에 만나 몇 구간인가를 함께 걷는 길동무 같았다. 되돌아가는 지점이 보이고, 여러 번 매만지는 손길이 느껴지고, 제대로 숨쉬기 위해 숨을 멈추거나, 제대로 말하기 위해 말을 멈추는 휴지기가 느껴지는 그 글들은 애도의 형식과 문체를 찾아 헤매는 내게 도움을 주었다.

 

뇌에 장애가 있는 장남 히카리와 함께 걷는 연습을 하고 돌아온 뒤 쓴 위의 시는 깊은 슬픔을 단순함 안에 무던하게 담아낸다. 공포와 슬픔, 그리고 기시감이 있는 인생의 오묘함. 가까운 이의 상실에는 이 “기시감이 있는 인생의 오묘함”을 전면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있다. 인생의 오묘함을 감지하는 일, 자신과 타인의 깊이를 깊게 느끼고 생각하고 그로써 새로운 트임으로 나아가는 일은 애도의 공동체적 지평을 가리킨다.

 

‘미안하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과 샴쌍둥이처럼 붙어 동시에 숨 쉬고 움직이는 상태, 이것이 상실이 가져온 슬픔이며, 이 슬픔 속에서 나는/우리는 제대로 싸울 준비가 될 수 있게 정화된다. 명징한 통찰력을 얻게 된다. 슬픔과 애도가 사적-공적 구분이나 대립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다. 죽음이 평등한, 평등해야 할 이유다. 슬픔을 멈추지 않을 이유다.  (김영옥/ 여성학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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