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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페미니스트 투어’

페미니스트 뉴욕에 가다③ 여성의 시각으로 작품 보기 (작성: 주연)



뉴욕의 필수 코스 중 하나.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박물관 전경을 가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줄여서 ‘더 매트’(The MET)라고 불리는 이 박물관은 센트럴파크 안, 주소 상으로는 1000 5th 애비뉴(E82nd 스트리트)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 3대 박물관이자 미국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고, 또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박물관. 약 2백만 개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17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하니 어마어마하게 큰 박물관임은 분명하다. (참고로 한국에서 가장 큰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6개의 관으로 이루어져 있고 약 1만2천개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가이드 벡스  ⓒ주연


그러니까 박물관을 다 돌아보겠다고 계획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니 그런 무리한 계획은 잡지 않는 것이 좋다. 보고 싶은 작품이나 작가 혹은 어떤 섹션이 있다고 하면 그 부분 위주로, 미술 예술 유물 이런 거 잘 모른다 하는 사람들은 유명한 작품 위주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부가 워낙 넓고 사람도 많아서 복잡한 공간이라 미아 되기 십상이니, 박물관 내부에선 지도를 잘 챙겨 다니는 것 또한 필수다.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배운 게 있다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그냥 보는 것보다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보면 확실히 다르게 보이는 점들이 있다. 투어에 참가하는 것이 너무 관광객 같아 보일수도 있지만, 자유로운 여행에도 때론 도움이 필요한 법이다.

 

투어 정보는 ‘트립어드바이저’(Trip advisor) 등의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도 있다. 한국어로도 제공되고 있으니 미리 스마트폰에 어플을 다운 받아서 가거나, 박물관에서 기기를 대여할 수도 있다. 단 기기 대여 시에는 대여비를 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세상을 바꾸고 싶은 영감을 주는 ‘페미니즘 투어’

 

난 사전에 내 여행의 테마에 맞게 박물관에 페미니즘 관련 섹션이 있는지, 그런 전시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있다면 그걸 위주로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에 미리 좀 검색을 했다. 그러다가 뮤지엄핵(Musem hack)이라는 곳에서 투어 이름도 너무 너무 너무 마음에 드는 ‘배드애스 비치즈 투어’(Badass Bitches Tour)를 한다는 걸 발견했다. 심봤다! 라고 외치는 마음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투어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 페이지에 아래와 같이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투어에서 경험하게 될 것들]

 

- 당신이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멋진 여성예술가들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 가부장제를 해체시키는 액션을 취하게 된다.

- 박물관 안에서 다양한 게임을 하게 된다.

- F폭탄을 맞게 된다(페미니즘 말이다).

- 세상을 바꾸고 싶은 영감을 얻게 된다.

 

이건 꼭 들어야 해! 하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뉴욕에 머무는 기간 동안의 스케줄을 보니 마침 예약이 가능하길래 바로 예약 완료. (현재 투어는 매주 토요일 오후 1시에 시작한다. 투어 요금은 59달러,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적어도 2-3주 전에 예약하는 게 좋다.)

 

투어가 예정된 당일, 설레는 마음으로 만남의 장소(박물관 내부 어느 동상 앞)에 가서 가이드 벡스(BEX)를 만났다. 함께 투어를 하게 된 사람들은 여성그룹 3명, 여성그룹 2명, 남녀커플(부인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이 투어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그리고 나, 총 8명이었다. 이름표를 붙이고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하고 투어가 시작되었다.

 

벡스는 페미니스트가 무엇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설명부터 왜 ‘배드애스 비치즈’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비치(Bitch)라는 단어가 왜 여자를 욕하는 말로 쓰이는지, 하지만 우리는 왜 스스로를 ‘비치’라고 부를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흥미롭지만 화가 나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1989년 박물관에 있는 작품 조사를 했더니 현대미술 섹션의 여성작가는 5% 이하였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누드 작품의 85%는 여성이었다는 거다. 2011년에 조사했을 때 여성작가의 작품은 4%, 여성 누드 작품은 76%였다고 한다. 지금 여성작가 작품 비율은 조금 더 상승한 정도로, 아직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추가적으로 내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작가뿐만 아니라 미국 내 미술관(박물관)의 작품을 관장하는 디렉터의 남녀 임금 차이가 존재하며, 높은 자리일수록 남자가 많다고 한다. 2005년에는 여성 디렉터의 비율이 32%였는데, 2015년 조사에는 42.6%로 높아졌다는 점은 그래도 주목해 볼만한 하다.

 

‘딜루카이’와 버자이너 파워

 

가이드 벡스는 여성작가 작품의 비율이 낮지만 그래도 멋있는 작품들이 있고, 여성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긴 작품들이 있으니까 투어 동안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벡스가 ‘페니스’(Penis) 이야기부터 끄집어내는 순간, 역시 이 투어를 신청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팍팍 들기 시작했다. 누드 작품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반해, 신기하게도 여성성기(Vagina, 버자이너)를 볼 수 있는 작품은 매우 드물다고 한다. 남성성기(Penis)는 엄청 많은데 말이다. (수많은 조각상에 당당하게 등장하는 그 페니스들을 생각해 보라.) 유일하게 ‘버자이너’를 대놓고 노출한 작품은 바로 ‘딜루카이’라고 한다.

 

▶ 딜루카이의 모습   ⓒ주연

 

딜루카이(Dilukai)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팔라우(오세아니아 동북방 남태평양 상에 있는 공화국)에서 발견된, 나무로 만들어진 조각상으로 족장의 문 앞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이 조각상을 걸어두는 이유는 마을 사람들의 건강, 작물들을 악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여성의 힘이란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런 목적으로 쓰이게 된 발단의 이야기가 재미있는데 ‘딜루카이’라고 불린 여성이, 문제를 계속 일으키고 다니는 망나니 남동생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자 자신의 모습을 한 저 조각상을 마을 곳곳에 두기로 한 게 시초였다고 한다. 남동생이 마을에 들어오려고 하다가 놀라서 도망가도록 말이다. 그야말로 악마를 쫓아내는 버자이너였던 것!!

 

그런데 이걸 처음 발견했던 기독교 선교사들은 이 조각상이 나쁜 짓을 한 여성들을 벌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멋대로(정반대로) 생각했다고 한다. 저 조각상을 걸어둠으로써 마을의 여성들이 자신들이 부끄러워질 만한 일을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이다. 이 얼마나 기독교인 남성다운 생각인가. 아마도 지금 현대의 기독교인 남성이 딜루카이를 처음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버자이너 파워’에 심취되어 기분이 고조되었는데, 때마침 벡스가 투어 동안 해야 하는 미션을 알려주었다. 투어가 끝나기 전까지 ‘버자이너’처럼 생긴 무언가를 찾아서 찍으라는 것! 마지막에 최고의 버자이너를 결정하고 상을 주겠다고 말이다. 내 생애 최고의 숙제! 왜 진작 이런 숙제를 해 보지 못했나 아쉬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투어는 차근차근 진행되었고, 많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은 건 아니지만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예술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소비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고 말이다. 투어 내용을 다 이야기는 어려우니까, 특히 인상에 남은 작품 몇 개에 대해서만 조금 더 소개하겠다.

 

뿌리 깊은 여성혐오를 상징하는 ‘릴리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앞서 이야기한 버자이너 파워의 딜루카이와 ‘릴리스’(Lilith)다. 페미니즘 현대미술가로 알려져 있는 키키 스미스(Kiki Smith), 여성의 신체에 대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온 그녀의 유명 작품 중 하나인 릴리스는 1994년 발표된 것으로 조각상의 몸의 움직임이 굉장히 흥미롭다.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나의 제한적 언어표현 능력이 원통할 지경이다. 이 조각상은 지금이라도 움직일 것 같이 역동적인 한편, 또 그 자리에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나를 쳐다볼 것 같이 매우 조용하고 정적이다.

 

▶ 키키 스미스의 작품 <릴리스>의 모습. 박물관에서 릴리스의 위치를 종종 이동시킨다고 한다.  ⓒ주연

 

무엇보다도 이 조각상의 최고는 눈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빛나고 있는 파란 눈. 그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숨겨둔 내 안의 무언가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런 느낌을 받는다.

 

나는 사실 릴리스에 대해 처음 들었는데, 릴리스는 유대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아담의 첫 번째 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릴리스는 너무나도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자기 주장이 강한(아마도 자기 주장이 있는) 사람이었던 탓에, 그녀를 컨트롤하기 힘들었던 아담이 신에게 자기 갈비뼈로, 자신에게 종속될 수 있는 이브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아담과 이브가 탄생하고 홀로 남은 릴리스는 ‘밤의 괴물’, ‘밤의 마녀’ 등으로 불리는 존재가 된다. 남자의 말을 듣지 않았던 여자는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자장가=렐러바이(Lullaby)라는 말의 기원이 ‘릴리스 사라져라=릴리스 어웨이(Lilith Away)’를 사람들이 밤마다 주문 외우듯이 말하다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뿌리 깊은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의 발견인가. (주로) 엄마가 아이들한테 불러줬던 자장가라는 것의 존재가 미소지니와 연결되어 있다니, 참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우리는 이렇게 역사 깊은 미소지니와 계속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17C 페미니스트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이번에는 작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바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다.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시대의 화가였던 그녀는 카라바조(1592년~1610년 이탈리아 피렌체, 로마, 시실리에서 활동한 화가로 빛과 어둠의 대가라고 불림)의 영향을 많이 받은 화가 중 한명이다. 그 시절만 해도 여성이 미술교육을 받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때였는데, 다행히 화가였던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23살에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디 아르떼 델 디세뇨’의 멤버가 되었다고 한다.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홀로페우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 우피치미술관 ⓒ출처: wikimedia commons


가장 유명한 작품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건 아니고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과 나폴리 카포디몬테 박물관에 있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Judith Slaying Holofernes). 난 몇 년 전 우피치 박물관에서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작품에 그만 압도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 작품은 17살의 아르테미시아가 강간을 당하고 난 후 그린 것이다. 목을 자르는 여성의 모습, 목에서 뿜어져 나가는 피가 무서운 게 아니라 시원하게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 드는 작품이다. 그녀의 복수의 욕망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배경 스토리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작품에서 느껴지는 강한 카리스마는 보는 이들을 서늘하게도, 시원하게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에 나오는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은 강간범의 얼굴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여성으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를 한 것이 아닐까?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그녀의 작품은 <아하수에로 앞의 에스더>(Esther Before Ahasuerus)다.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르와 에스더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데,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장면은 그들이 만나는 장면으로 에스더는 우아하게 서 있고 그런 그녀의 앞으로 왕이 다가가려 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 같은 역동성과 우아함, 적절한 빛과 그림자의 배치 덕분에 그림이 사진 같이 느껴지기도 해서 계속 바라보게 되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도 에스더의 목, 팔 라인, 몸의 라인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에스더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오히려 목선을 드러내고 있으며, 권력을 지니고 있는 남자인 왕이 에스더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상징적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1600년대 여성화가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던 때 아르테미시아는 그 어떤 화가보다도 재능 있는 작가였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강간범을 고발했고, 그로 인해 그녀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고문도 받았다고 하니, 가해자에 대한 재판이라고 할지 피해자에 대한 재판이라고 할지 모를 정도의 끔찍한 재판 과정을 거쳐 승리를 거둔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그 시대의 유일무이한, 가장 표현이 풍부하고 진보적 화가이자 페미니스트 화가로 평가하고 있다.

 

가부장제를 물리치자! 주문을 함께 외치며

 

투어는 2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모든 여성작가의 작품, 페미니즘과 관련된 작품을 보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리 많은 작품을 본 건 아니다. 작품마다 설명이 좀 긴 편이었고, 게임도 하고 하느라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이 투어를 통해 확실히 배운 한 가지는 바로 새로운 시각으로 예술 작품을 보는 방법이다.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찾는 방법.

 

이제 박물관, 미술관에 가게 되면 우리도 미션을 정하고 가보는 건 어떨까? 꼭 버자이너를 찾아야 된다는 건 아니고(물론 그게 제일 재미있을 것 같긴 하지만), 여성작가가 얼마나 있는지, 작품 속에서 여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여성을 나타내는 작품은 있는지 등을 찾아보는 미션 말이다.

 

투어가 시작할 때 그리고 끝날 때, 다함께 외쳤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가부장제를 물리치자!”(Dismiss Patriarchy!) 우리도 박물관에 모여서 한번 외쳐보면 어떨까?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마법의 주문이 될지 모른다. (일다)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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