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우리는 같은 여성이다’ 성녀/창녀는 없다!
안미선 작가의 <언니, 같이 가자!>
※ 이 기사의 필자 김고연주 님은 여성학자이며 청소년 성매매 이슈를 다룬 <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 다른 이야기>(이후, 2011) 저자입니다.
“언니!”
보통 나이 어린 여성이 손 위 여성을 부르는 호칭이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여성들이 서로를 다정히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언니, 같이 가자!”라는 제목은 여성들의 맞잡은 두 손과 힘찬 발걸음을 떠올린다. 언니라는 호칭은 정겹고, 맞잡은 두 손은 따뜻하며, 힘찬 발걸음은 씩씩하다. 이들은 누구이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성매매 현장을 벗어난 여성들 ‘곁에 있는 사람들’
<언니, 같이 가자!>(안미선 지음, 삼인, 2016)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가 기획한 세 번째 책이다. 2008년에는 탈(脫)성매매 여성들의 자활 과정을 담은 사례집 <축하해>(박금선 지음, 샨티)를, 2015년에는 성매매 현장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책 <내가 제일 잘한 일>(박금선 지음, 샨티)을 출간했다. 앞의 두 책이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이야기라면, 이번 책은 시선을 조금 옮겼다.
사실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우리가 외면한 채 보지 않아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언제나 곁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짝꿍’인 활동가들이다. 성매매 피해여성들에게 무관심할 뿐 아니라 이들을 배제하고 주변화시키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굳건히 이들의 곁을 지키고 있는 활동가들은 낯선 존재들임이 틀림없다. 이 책은 이 낯선 존재들의 이야기다.
활동가들은 경험을 통해서 ‘성매매가 여성에게 어떤 경험인지’, ‘자활이 과연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양한 자활 지원 사례들은 경제적 자립의 개념을 넘어서 지역과의 연대, 사회의 변화를 포괄하고 있다. 또한 쉼터와 대안학교에서 십대 여성들과 동행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청소년 성매매’의 현실과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룬다. 여전히 성매매 집결지가 존재하는 전주, 부산, 그리고 관광지로만 알려져 있는 제주의 이야기도 별도로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활동가들은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구출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경찰서와 법원에 동행한다. 가끔 결혼식에도 가고, 돌잔치에도 간다. 그리고 종종 장례식에도 간다. 살해당하거나 자살하는 여성들의 마지막을 이들이 지켜준다.
이렇게 끈끈한 관계지만,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삶에 부침이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여성들은 활동가들과 관계를 끊는 것이 성매매와의 단절 과정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활동가들은 그런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삶의 부침을 인내심을 지니고 지켜본다. 그리고 관계를 끊는 여성들의 결정을 존중한다. 어쨌든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 그리고 여성들과 일상을 함께하며 웃음 짓는 것이다.
▶ 안미선 지음 <언니, 같이 가자!> (삼인, 2016)
성녀/창녀 이분법에 도전하다
그동안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를 기록해 온 안미선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서울, 부산, 포항, 대구, 광주, 제주 등등 그야말로 전국 방방곡곡을 바지런히 다니며 활동가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작가가 특정한 분야의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을 인터뷰해서 쓴 책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목소리가 섞여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글을 쓴 이는 안미선 작가이지만, 화자는 활동가들이다. 그런데 화자는 활동가들이지만, 주인공은 성매매 피해여성들이다.
그래서 <언니, 같이 가자!>는 안미선 작가와 활동가들과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함께 쓴 책으로 읽힌다. 누가 작가이고, 화자이고, 주인공인지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또한 작가, 화자, 주인공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말한다. 성매매 피해여성과 자신은 똑같다고. “같은 여성이고, 같은 인간”이라고. 나이, 계급, 지역, 국적, 인종, 경험이 모두 다르지만 누구나 여성으로서 자신만의 기구한 사연과 상처가 있다는 사실은 동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주면 여성들이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도 말이다.
활동가들은 사실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자신들 만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만나면서 자신들도 성장하고 치유됐기 때문이다. 성매매 피해여성들도 활동가들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활동가들이 내민 손을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잡고,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내민 손을 활동가들이 잡으면서, 상호 지지와 상호 치유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여성들을 성매매 피해여성과 일반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보여준다. 곧 우리 사회의 공고한 “성녀/창녀 이분법”에 도전하고 있다. 어쩌면 성매매 여성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활동가들이야말로 “성녀/창녀 이분법”에 적확히 들어맞는 이들일 것이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호명이 현장에서는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실제로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활동가들로 성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아웃리치를 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다가와 돈을 주겠다며 성매매를 제안하는 남성들도 적지 않다. 이는 우리의 생활 속에 성매매가 얼마나 만연해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활동가들은 성매매가 ‘여성을 사고팔 수 있는 물건으로 여기기 때문에 모든 여성에게 위험하다’고 단언한다. 곧 성매매는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와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성매매 피해여성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동시대를 살고 있는 같은 여성이라고 정체화한다. 성매매 피해여성을 지원하는 활동이야말로 자신이 여성임을 끊임없이 자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성매매는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의 문제
그렇지만 성매매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활동은 ‘극한 직업’일수밖에 없다. 활동가들은 제도적, 법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활동가들이 다수다. 이들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이들은 다름 아닌 성매매 피해여성들이다. 때론 싸우기도 하고, 때론 울기도 하고, 때론 서운하기도 하지만, 성매매 피해여성들은 활동가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무엇인지를 매일같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해하고 믿고 기다리면 성매매 피해여성들은 반드시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숨은 힘을 드러낸다. 지하철을 탈 줄 몰랐던 언니들이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게 되는 변화들은 감동의 연속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는 이들의 모습은 활동가들에게 힘을 북돋아준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활동가들은 경력이나 지역이 제각각이고, 자원하는 활동도 각기 다르지만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이야기를 한다. “성매매 현장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고,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단언이다. “우리 사회가 안전망 없이 해체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그녀들이 희생물”이었지만, “살아가다 생긴 한 사건이지 성매매가 곧 그 사람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여성폭력인데도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는 기꺼이 도움을 주려고 하지만 성매매 피해여성에게는 거리를 두고 편견을 가지고” 보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촉구한다.
결국 이 책은 경계를 무너뜨린 여성들이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여성들의 연대’를 조망하고 있다. 물론 개별 여성들은 잡은 손을 놓을 때도 있다. 하지만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옆에 있는 다른 여성이 또 손을 내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묵묵히 걷다 보면 손을 놓았던 여성이 다시 나타나 손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힘든 길을 가면서도 지치지 않는 것은, 이들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길을 내고 있는 개척자들이 아니다. 이미 이 여성들 앞에 수많은 여성들이 오랫동안 걷고 또 걸어 길을 내놨다. 지금의 여성들은 그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이들이 쓰러지지 않고 이 힘든 길을 걸을 수 있다. 앞에서 길을 내준 언니들이 있고, 지금 함께 손을 잡고 걷는 언니들이 있으며, 또 뒤를 따라오는 언니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성들의 연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어진다.
활동가들과 성매매 피해여성들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고. ■일다 Feminist Journal ILDA
'문화감성 충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움을 만지다> 세월호 엄마들과 이웃들의 뜨개질 (0) | 2017.02.17 |
---|---|
여성의 시각으로 미술작품 보기 (0) | 2017.02.08 |
사랑하고 미워하는 나의 가족에게 (0) | 2017.01.31 |
“난 꿈이 없었다” 타자로서의 여성 (0) | 2017.01.15 |
브로드웨이에서 본 페미니즘 뮤지컬들 (1) | 2017.01.14 |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0) | 2016.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