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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남짓, 그녀는 정말 천사가 아니었을까?

<초보여행자 헤이유의 세계여행> 빠이에서 바이크를 타고


※ 초보여행자 헤이유의 세계여행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서른여덟에 혼자 떠난 배낭여행은 태국과 라오스, 인도를 거쳐 남아공과 잠비아, 탄자니아, 이집트 등에서 3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혼+마흔+여성 여행자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일다) feminist journal ILDA

 

▶ 태국 빠이. 자유로움은 예술로 표현한다. ⓒ 헤이유

 

빠이에 도착했다.

 

호스텔 닷컴에서 가격최저 순으로 검색한 다음 별자리 많은 숙소 순으로 일박을 예약해두고 버스정류장에서 픽업이 오기를 기다린다.

 

작은 마을에 옹기종기 여행사들이 모여 있다. 길거리 노점들 속의 사람들이 여유롭지만 분주한 곳이다. 태국에서의 히피 성지. 구석구석 동서양의 퓨전 레스토랑과 액세서리 점포가 모여 있는 곳.

 

이십분을 기다려 픽업 차량이 왔다.

 

오마이갓. 너무 귀여운 텍트 바이크를 타고 온 작은 체구의 그녀. 내 큰 배낭을 자신의 다리 사이에 두고 나를 싣고서 굽이굽이 작은 마을을 벗어나 작은 개울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자신의 숙소로 픽업하는 그녀는 이 호스텔의 작은 주인이자 며느리다.

 

이내 나는 이 숙소에 홀딱 반하게 되는데, 아침마다 그녀가 내놓은 파타야와 음료가 그 이유다. 숙소 일박의 금액은 아침 포함 2천원.

 

“바이크 탈 줄 알아요? 바이크를 못타는 사람에겐 빌려줄 수 없어요.”

“그럼요. 한국에서도 탔어요.”

“그럼, 이리와요. 바이크는 하루에 1천8백원이에요.”

“네. 이 바이크가 제 껀가요?”

“그래요. 여기 열쇠 있어요.”

“그런데, 이 바이크는 한국 것과 다르군요. 어떻게 시동을 켜야 하죠?”

“이렇게. 이렇게 해서…”

“아. 알겠어요. 이게 가는 거고 이게 스톱인가요?”

 

그렇게 내 인생의 첫(!) 바이크를 타는 순간이었다.

 

▶ 20분만 바이크를 타고 가면 나오는 따뜻한 노상온천에서. ⓒ 헤이유

 

빠이에서는 바이크 한 대를 빌려 구석구석을 다니는 게 내 목표였다. 워낙 물가가 싸기도 하지만, 시내는 한두 시간만 걸으면 이미 끝나지만, 그 외의 20~30분만 외곽으로 돌면서 혼자 여행하면 자연과 구석구석의 빠이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들을 만난 것은 운전이 익숙지 않은 바이크로 산 위에 올라 불상을 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바이크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어렵다는 것을 처음 안 나는 그대로 슬라이딩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사람 없는 비탈길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했다. 아. 이 길을 내려가기도 힘들지만, 일단 너무 아프다. 한쪽 허벅지 바깥 쪽이 다 갈려있었다.

 

이후에도 여러 번 느꼈는데, 신기하게도 혼자 있고 싶은 순간엔 혼자가 되고, 누군가가 필요할 땐 누군가가 나타난다.

 

10살 남짓 눈이 이쁜 아이였다. 너무도 반가웠지만, 나는 어른이 필요했다. 그녀는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치고 부리나케 달아나 버렸다. 그래, 외국인들이 무서운 시골아이구나… 그런데 잠시 후, 그녀보다 더 힘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할아버지와 함께 짐 바이크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할아버지와 함께 내 바이크를 그보다 더 작은 바이크 뒤에 달린 수레에 넣고(사실 그들은 거들뿐 내가 혼자 올렸지만), 그 작고 빠릿한 손으로 자신의 스카프를 벗어 내 다리에 매달아 주었다. 할아버지가 바이크를 몰고 내려가는 동안, 그녀는 내 손을 자신의 어깨에 두른 채 비탈길을 걸어 내려갔다.

 

다리에 피가 나진 않았지만 둘러준 스카프가 따뜻해서, 키가 작은 그녀의 어깨에 의지하기엔 몸이 편하지는 않지만 그 단단함이 듬직해서, 그렇게 따뜻한 비탈길을 웃으며 내려왔다.

 

▶ 바이크 타고 가다 만난 히피친구들. 낯선 이를 반기던 고마운 사람들. ⓒ 헤이유

 

빠이에서 히피들의 문화를 엿보고 하루에 2천 원짜리 방에 머물며, 재즈 바에서 3천 원짜리 라떼를 마시고, 아침마다 푸짐한 파타야를 먹고, 바이크로 종일 다니며 온천을 하고, 수없이 많은 불상들을 찾아가고, 마사지를 받으며 유유자적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녀와의 짧은 순간만큼 강렬하진 않다.

 

그 순박한 미소와 강한 눈빛. 낡은 스카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의 이름. 그렇지만 그녀는 내게 첫 천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녀에게 줄 것이 없어 허둥대는 내게, 그녀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자신보다 더 작은 할아버지와 함께 손 흔들며 짐 바이크를 타고 사라졌다. 스카프만을 남긴 채.

 

그녀는 정말 천사가 아니었을까?   (일다)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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