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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중심의 예술계에서 ‘사라지지 말자!’

예술계 내 성폭력 성명서 발표한 여성예술인연대



지난 주 금요일(13일) 저녁, 여성예술인연대(Association of Women Artists)의 신년 티타임에 참석했다. 타이틀은 ‘다음 행동을 도모하는 신년 티타임’.

 

여성예술인이자 여성주의자로서, 남성중심의 시각문화와 제도를 비판하고 대안을 찾는 활동을 해오면서 ‘개인’이라는 한계와 외로움을 느끼던 차였다. 그러다 여성예술인연대 소식을 접하고 드디어 ‘동지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티타임에 ‘다음 행동 도모’라는 진지한 제목이 붙은 이유는, 여성예술인으로서 ‘생존’ 자체가 어려운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다. 여성예술인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누며 행동을 기획하고 다짐하는 모임이 절실한 것이 사실이다.

 

▶ 1월 13일 서울 NPO지원센터에서 열린 여성예술인연대 ‘다음 행동을 도모하는 신년 티타임’ ⓒAWA

 

예술계 내 성폭력 성명서, 2천명의 서명을 받다

 

지난해 10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시작된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말하기의 열기는 그새 사그라들고 있다. 용기를 내어 성폭력 경험을 이야기한 여성들 중에는 오히려 가해지목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이들도 있다. 또 문화예술계 내에서 ‘예술인-남자’는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되는 이상하고 위험한 흐름도 감지되었다.

 

여성예술인연대는 이러한 흐름에 문제 의식을 가진 작가들은 긴밀하게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예술계 내 성폭력’이 제도적인 문제라는 걸 인식하며 민원운동이 시작됐고, 텔레그램 모임이 만들어졌고, 이후 페이스북 그룹으로 대중적인 접근성을 높여나갔다고 한다.

 

#문화예술계내성폭력 #국현민원1to5 해시태그를 만들고, 룰을 정하고, 민원을 넣고, 캡처해서 SNS에 공유하던 이들은 11월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하는 집단 상담에 참여하면서 미술작가와 기획자 두 분을 중심으로 성명서 문안을 작성했다. 그리고 활동의 주체를 여성예술인연대(Association of Women Artists, 이하 AWA)로 최종 결정하였다.

 

AWA는 ‘2016년 가을부터 쏟아져 나온 예술계 내 성폭력 증언들을 통해 사태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자 만들어진 수평적이며 열려 있는 자생적 조직’이다. 네 번의 회의를 통해 공동 작성한 성명서는 2016년 12월 25일에 발표되었다.

 

‘예술계 내 성폭력 성명서’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이다.

1. 용기를 내서 폭로한 피해자들이 고립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한 동의

2. 지금까지 이러한 성폭력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예술인 개인 차원에서의 반성과 예술계의 제도적 개선의 시급함 호소

3. 성폭력 상담기구 설치와 같은 구체적인 요구 사항

 

성명서를 발표하며 서명운동을 시작한 첫 날, 3백 명 이상의 서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성명서는 2017년 1월 11일까지 2천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AWA는 2천 명 이상의 의지가 모인 성명서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더 많은 사람들과 고민하는 자리로 ‘다음 행동을 도모하는 신년 티타임’을 열었던 것이다.

 

▶ 여성예술인연대 ‘다음 행동을 도모하는 신년 티타임’ 참가자들이 미술계 성폭력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 ⓒAWA

 

작은 힘들이 모여 남성중심의 권력을 흔든다

 

‘티타임’은 AWA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시작해 6~7명이 한 조를 이뤄 #미술계_내_성폭력 사태에서 드러난 문제와 대응 방법에 대해 토론했다. 성폭력 경험을 공개한 후에 닥칠 일에 대한 두려움, 남성중심의 문화와 예술계 내 젠더 인식/교육의 부재, 대응조직이나 제도의 부재 등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함께 고민을 나눴다.

 

‘폭력’은 권력관계가 작동할 때에 발생한다. 자유로울 것만 같아 보이는 예술계는 실은 매우 협소하고, 인맥을 중시하는 남성문화가 지배적이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오해하는 예술에 대한 ‘신화’ 앞에서, ‘예술계 내 성폭력’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조차 어렵고 드러내기는 더더욱 어렵다.

 

공동 토론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라지지 말자’라는 말이었다. ‘여성’ 작가를 동료로 인식하지 않는 남성문화와 여전히 ‘형식’을 중요시하는 예술‘계’의 특성에 적응하고 싶지 않아서, 예술‘계’라는 경계에 메이지 않는 예술 활동을 모색하던 나는 예술가 ‘개인’으로서의 내 살 길만 찾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계를 ‘공동체’로서 인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다.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AWA의 움직임이 남성중심의 ‘권력’을 흔들어 ‘예술계’가 변화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면 좋겠다. 공고한 ‘권력’을 흔들기 위한 ‘작은 힘’의 모임에 더 많은 예술인들이 동참할 수 있길 바란다. (이충열) feminist journal ILDA 바로가기

 

※ 여성예술인연대 성명서 전문 보기 https://goo.gl/forms/R0Ttwx667Vvb97VH3

※ 여성예술인연대 페이스북 페이지 facebook.com/speakout.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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