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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V백신 부작용 하나하나가 한명 한명의 사람

日 자궁경부암 백신 피해소송 원고 사카이 나나미



“겨우 몇 밀리그램의 액체. 하지만, 그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하고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하는 여성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와 제약회사를 상대로 63명의 원고들이 전국 네 곳의 법원에서 일제히 소송을 제기한 것은 2016년 7월 27일의 일이다.

 

도쿄 소송의 원고 중 한 명인 사카이 나나미 씨(1994년 생)는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들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고, 멀리 있는 병원에도 정기적으로 다녀야 합니다. 제 몸이 어떻게 될지, 앞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나미 씨는 자궁경부암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 HPV(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한 후, 팔다리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휠체어 없이는 외출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근긴장, 무력, 빈맥, 무월경, 권태감, 고차뇌기능장해, 시야결손 등… 여러 증상을 떠안게 되었다.

 

나나미 씨를 비롯한 이번 소송 원고들은 자궁경부암 백신 피해에 대해 명확한 책임 소재를 규명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고 있다. 또한 국가와 제약회사 측에 자궁경부암 백신을 정기접종 대상으로 공적 지원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고, 의료 지원과 진학, 구직 지원 등 항구적인 구제와 재발방지책을 요구하고 있다.


▶ 자궁경부암 백신 피해소송 원고 사카이 나나미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백신이 원인이라는 진단을 받기까지 3년 걸려

 

어릴 때부터 무척 활발했던 사카이 나나미 씨. 초등학교 때 피아노 연주의 매력에 빠져, 중학교 2학년 때 사이타마현 피아노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았다. 전 유엔난민 고등판무관인 오카다 사다코 씨의 활동에 감명을 받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 변호사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학교 행사와 학생회 활동, 어학연수 외에도 거문고부에 가입해 연습에 매진했다.

 

고등학교 1학년말 쯤, 자궁경부암 백신 주사를 맞았다. 시에서 안내를 받았고, 학교 칠판에 전단도 붙었으며, 주변 친구들도 하나하나 접종을 받았다. 암을 예방할 수 있다면야 싶어서 맞기로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접종을 받은 다음날 밤, 목욕을 한 후에 갑자기 실신해버렸다. 40도까지 고열이 났다. 그 후에도 다양한 부작용 증상이 나타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화됐다. 보행 장애, 실신, 전신 탈력, 기억장애, 한자나 도형 인지장애….

 

고등학교 3학년 12월부터는 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재수생이 된 후에도 앉은 자세를 유지하기 힘든 데다, 목욕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려고 해도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게 되어, 학원에도 다니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하는 등 자기들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 “기억장애도 있어서 장래에 대한 초조함조차 못 느끼게 되었어요. 지금은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고 생각하지만요.”

 

국가는 ‘고통이 야기하는 심신반응’이라며 증상과 백신과의 원인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나미 씨는 진단과 치료를 받기 위해 스무 군데 이상의 병원을 돌아다녔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의료기관에서 입시 스트레스 등의 ‘심인성’이라거나 ‘히스테리’, ‘꾀병’이란 소리를 들었던 일이다.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의 악화를 멈추고 싶다”는 나나미 씨의 마음 깊은 외침이 전해진 것은 증상이 나타난 지 3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다. 백신이 원인인 ‘자기면역성 뇌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마침내 치료가 시작됐다. 하지만 치료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데다, 이해해주는 의료기관이 적어 증상 개선을 위해 다섯 군데의 의료기관을 찾아가 25차례나 입원을 했다.

 

국가의 HPV 백신 부작용 추적 조사에서 누락돼

 

사카이 나나미 씨는 어느 날, 국가가 시작한 ‘자궁경부암 백신 부작용 추적 조사’에서 자신이 그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고열이 났을 때 백신을 접종했던 병원은 제약회사에 부작용을 보고했지만, 제약회사 측은 ‘회복’으로 분류했던 것이다.

 

나나미 씨는 국가와 의약품 부작용 피해 구제와 실태 조사 등을 하는 ‘의약품 의료기기종합기구’(PMDA)에 몇 번이고 자신의 증상을 제대로 반영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이 기관은 개인정보 보호와 번호 관리 등을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관철하고 있다.

 

“왜 (나의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을까 끝없이 생각해요. 초기 단계의 부작용 정보 수집에서 발생했던 문제가 원인 규명을 위한 연구와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증상으로 인해 격변한 일상생활의 구제 등 모든 대응의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싱글맘 가정이나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에게는 정말 어려운 상황입니다.”

 

사카이 나나미 씨는 스무 살이 됐을 때, 실명으로 언론의 취재에 응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들은 보고서의 데이터가 아닙니다. 부작용 수 하나하나가 우리 한 명 한 명의 사람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번 자궁경부암 백신 피해소송을 통해 국가와 제약회사 두 곳을 제소하기로 결심한 것은 “어쨌건 알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백신의 도입 경위와 저에 대한 부작용 보고가 왜 전달되지 않았는지. 왜 백신 접종을 위한 제도는 많이 만들어지는데 반해, 부작용에 대한 제도가 충분하지 않은지. 그리고 제약회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어요.”

 

현재 나나미 씨는 대학에서 복지학을 배우고 있다. 매일 배웅과 마중을 받고, 학교에서는 장애학생을 위한 노트필기와 교실이동 등의 지원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

 

“진로 변경을 할 수밖에 없었고, 체력을 고려해 짠 수업시간표를 소화하는 게 고작이라, 대학생다운 생활은 못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동창들은 구직활동이나 졸업논문을 쓰면서 사회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저는 대학 2학년. 하지만 대학 진학 자체를 못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학생이 된 것만으로도 기뻐요” 라고 말하며 웃는 나나미 씨.

 

“지금도 법률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하지만, 여러 제도의 틈새에 빠져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주워 담아 지원하는 것이라는 ‘복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변호사와 유사해 (복지학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나나미 씨는 공판에 출석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나미 씨의 어머니, 사카이 토모코 씨의 이야기]

 

▶사카이 나나미 씨의 어머니, 사카이 토모코 씨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2011년에 시에서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딸의 학교에서도 홍보를 했습니다. 그때까지 다른 백신도 별 생각 없이 접종을 받은 데다 ‘암을 막는 유일한 백신’이라는 국가의 홍보 문구에 아무 의심도 없이 접종 받기로 했습니다.

 

2차 접종 다음 날, 딸이 갑자기 실신하더니 40도까지 열이 올랐습니다. 건강 그 자체였던 딸이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백신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해 종합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바로 부작용 치료가 시작될 것으로 알았고, 이렇게 긴 싸움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 후 차례차례 나타나는 여러 전신증상으로 괴로워하는 딸의 치료를 위해 필사적으로 병원을 돌았습니다. 3년이 지나, 마침내 백신 부작용에 의한 뇌증과 다양한 부작용 증상을 진단 받았고, 이를 치료하고 재활하는 의료기관에 이르렀습니다.

 

딸의 증상이 악화되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던 것은, 발생할지도 모르는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의료 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궁경부암 백신을 권한 국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휠체어가 필요해진 딸은 그밖에도 여러 장애가 있어서 통학을 하거나 친구들과 외출할 때에도 제가 꼭 동반해야 합니다.

 

딸은 절대 울지 않습니다. 제가 ‘딸에게 백신 주사를 맞도록 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할 거라 생각해서인지, “힘들지만 괜찮다”고 말합니다. 딸이 장래에는 자립하여 미래를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약해(藥害: 약을 잘못 써서 받은 피해)의 전모를 밝히고 항구적인 지원 제도를 확립하기를 바랍니다.

 

자궁경부암 백신 피해자 집단소송의 제소는 딸이 결정했습니다.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저는 딸을 있는 힘껏 돕겠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이 만드는 미디어 일다  Feminist Journal ILDA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가시와라 토키코 씨가 작성하고 고주영 씨가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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