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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소수자의 “앨라이”가 되어주세요

우리 각자의 차이가 무지개처럼 빛나는 세상을 위하여


※ 얼마 전 아기 아빠가 된 이성애자 남성이 성적소수자(sexual minority) 인권을 지지하는 “앨라이”(ALLY) 캠페인에 동참을 요청하는 편지를 기고해주셨습니다. Feminist Journal ILDA 

 

▶ “나는 앨라이입니다” 거리캠페인 엑스배너  ⓒ비온뒤무지개재단

 

“아들이야, 딸이야?”에 담긴 선입견

 

안녕하세요. 약 두 달 전, 아기 아빠가 된 병헌이라고 합니다. 아기가 태어났다고 하면 다들 “아들이야, 딸이야?” 물어봅니다. 그런데 저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아직 제 아기는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밝힌 적이 없으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이 아기가 ‘남성’ 혹은 ‘여성’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모에게 질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곤란한 마음이 들지만, 저는 급한 대로 ‘산부인과 의사는 딸이라고 얘기해줬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또 어떤 분들은 ‘그럼 둘째는 아들 낳아야겠네’ 하고 덕담처럼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어쩌면 이미 아들을 얻었을지도 모르지요’ 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태어날 때 산부인과 의사가 정해준 성별에 따라, 남성 혹은 여성, 둘 중 하나의 성별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결정해 버립니다. 그런 선입견들이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이런 얘길 한다고 해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대단한 인권교육을 받아왔던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서 커밍아웃한 성적소수자를 거의 만나지 못하고 성장했고, 마치 모든 사람이 이성애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성적소수자를 위한 재단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성적소수자들이 일상에서 겪고 있는 일들을 듣고 보다 보니,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과 스스로 변화해야 할 것들, 세상이 바뀌어야 할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아기의 성별을 묻는 질문에 담겨있는 선입견 역시 제가 성적소수자(sexual minority)의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았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편견과 선입견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런 세상에서 제 아이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제 아이는 훗날 어떤 일들을 겪으며 성장하게 될까요? 또한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제 아이를 두고 저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성적소수자들은 어떤 경험들을 하고 있을까요? 이제는 현실을 바꿔나갈 때가 되지 않을까요?

 

▶ I'm ALLY(나는 앨라이입니다)  ⓒ출처: iamally.kr

 

성적소수자의 앨라이(ALLY)란?

 

얼마 전 세상에 나온 제 아기와 여러분의 형제, 자매, 자녀, 삼촌, 이모, 고모, 당숙, 동창, 동네 친구, 직장 동료, 그리고 자주 마주치는 마트계산원, 택배원분들 등등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성적소수자의 앨라이”가 되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려고 이 글을 씁니다.

 

“앨라이”는 “ALLY”를 소리 나는 대로 읽은 표현이고요. “ALLY”는 “동맹국, 협력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사전적 의미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종교, 인종, 정체성 등 다양한 부분에서 존재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즉, “성적소수자의 앨라이”라면 “성적소수자가 겪고 있는 차별을 이해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입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적소수자의 편이 되어주는 겁니다. 성적소수자의 편이 된다는 것은, 주변에 있는 성적소수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성적소수자를 차별하는 행위, 혐오하는 발언이나 농담을 접하면 문제제기를 할 줄 안다는 이야깁니다. 더 적극적으로 성적소수자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거나, 성적소수자를 차별하는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투표하지 않는 것도 “성적소수자의 앨라이”입니다.

 

“앨라이”가 되어 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것은 저와 저의 아기, 그리고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바로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적소수자의 존재와 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성적소수자들은 지금처럼 차별과 혐오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 앨라이 캠페인 중에서  ⓒ출처: iamally.kr


혹시 지금 ‘내 주변에는 성적소수자가 없는데…’ 라고 생각하셨나요? 그건 본인이 모르기 때문이지, 절대로 없을 수는 없습니다. 나의 핸드폰 속에 저장된 사람이 30명이 넘는다면, 그 중에서 최소한 한 명은 성적소수자일 것입니다. 반드시 여러분은 성적소수자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성적소수자인 것을 모를 뿐입니다.

 

그 사람은 형제, 자매일 수도 있고, 초등학교 동창이거나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 주민일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인 바로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자기 자신을 곧이곧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정체성을 부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요. 당신이 이성애자라면, 애인과 어깨동무를 하고 광장에 나서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으로 작성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2014)에 따르면, 청소년 성적소수자 응답자의 54%는 자신의 정체성이 알려진 뒤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이 바로 당신의 곁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처럼 아기가 있는 부모라면, 혹은 자녀 못지않게 아끼고 사랑하는 주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 졸이며 자신을 숨긴 채 생활하기를 바라시나요? 저는 만약 제 아기가 동성애자이든, 트랜스젠더이든, 혹은 젠더퀴어이든, 세상의 그 어떤 성적소수자라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아끼고 긍정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관심과 인정을 받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성애자라면, 다른 이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지 않는 한 본인이 당연시하는 권리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적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멈추기 위하여

 

여러분들 중에는 이미 “앨라이”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것을 아는 이유는 제가 “나는앨라이입니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거리에 나가 시민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홍대입구역 앞에서 거리캠페인을 하면서, 대학축제 자리에서 부스를 지키면서, 제가 하는 말을 경청해주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 “나는 앨라이입니다” 거리 캠페인에서 서명을 받고 있는 이병헌 씨  ⓒ비온뒤무지개재단

 

작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면 충분합니다. TV에서 성적소수자가 나왔을 때, 누군가가 그 사람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말을 한다면 “그건 아니야”라고 얘기해주세요. 그 한 마디, 그 한 번의 행동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메시지가 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이 모여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켜 갑니다. ‘아, 성적소수자에 대한 비하와 혐오의 발언을 하는 것은 누군가가 상처받고 고통 받는 일이구나’ 라고 말이죠.

 

물론 한 번에 모든 사람이 바뀌지는 않을 거에요. 하지만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더 많은 사람들이 “앨라이”가 되고, 성적소수자의 편이 되어 말하고 행동한다면 성적소수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겁니다.

 

다시 한 번 요청드립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나는 앨라이입니다” 캠페인에 참여해주세요. 성적소수자들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으로 인해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더는 벌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성적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출 수 있도록 “앨라이”가 되어주세요. 여러분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이 글을 읽고 있을 성적소수자 당사자분들에게도 성적소수자의 “앨라이”는 이성애자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본인과 다른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갖고 있는 성적소수자들에게 당신이 “앨라이”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성적소수자들이 당신의 “앨라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함께 각자 갖고 있는 차이들이 무지개처럼 빛나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병헌 Feminist Journal ILDA 

 

※ “나는 앨라이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앨라이 선언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고, 캠페인에 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http://iamall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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