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日 ‘약물 사용’ 추정되는 성폭력에 획기적 판결!
물적 증거 없이 피해자의 진술과 2차 피해까지 인정해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지극히 악질적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민사재판에서 올해 3월, 도쿄지방법원이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피해를 당한 여성은 회사 상사 등과의 술자리에서 평소 취할 리 없는 주량으로 기억을 잃었고 성폭력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깊은 심리적 상처를 입고 회사에서도 해고된 피해자의 치료를 맡아온 ‘도쿄 강간구제센터’ 자문의사인 나가이 치에코 씨(내과의사, 니레노키클리닉 원장)의 기고 글이다.
두 상사에게 성폭력 당하고 해고된 20대 여성 A씨
이번 판결은 사실관계에 대해 원고 측 주장을 대부분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위자료 770만엔(약 8천4백만원), 변호사 비용 40만엔(약 440만원), 치료비 32만엔(약 350만원) 등 총 842만엔(약 9천2백만원)을 가해자 측에 지급하도록 명했다.
이뿐 아니라 성폭력 사건 관련 재판에서 쉽게 인정된 바 없는 피해자의 막대한 ‘심적 고통’을 인정했다. 무엇보다 이 판결이 획기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가해자들이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는 동안 해댔던 주장이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라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이 판결을 이끌어낸 것은 심신의 건강과 일, 약혼자, 친구 등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면서도 4년 반 이상 최선을 다해온 피해자 A씨와 이를 지원해온 변호인단의 힘이 크다. 사건 당시부터 A씨의 치료를 맡아온 사람으로서, 이 판결을 성폭력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3월, 도쿄지방법원이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 페민 제공
민사재판에서 ‘약물 사용’ 증거 없지만, 가능성 인정해
사건 당시 스물여섯 살인 A씨는 회사의 남성 상사 세 명과 여성 동료 한 명, 총 다섯 명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평소라면 취할 리 없는 주량으로 기억을 잃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A씨는 호텔에서 나체가 되어있었다. 남성 상사 두 명이 A씨의 몸을 만지고 있었다. 그 후 A씨는 강제로 주스를 마셨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강간을 당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A씨는 다음 날 경찰에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취할 리 없는 양으로 기억을 잃은 것으로 보아 약을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약물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A씨의 고발장은 수리되었지만, 사건 후 4년 반이 지난 지금도 형사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사건이 입건된 후에도 진척이 없는 형사사건과는 별개로, 상사 두 명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 기소한 것이 이번 민사재판이다.
그 사건 이후 A씨는 두려움 때문에 회사에도 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지만, 오히려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피고들의 행위는 ‘계획적인 강제 추행죄’에 해당하며 ‘강간죄’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수면제 및 그 외 약물을 음료에 첨가해 마시도록 해 의식을 잃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도쿄지방법원 판결은 첫째, 사실관계에 관해 원고 A씨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했다. “피고 등으로부터 성적인 피해를 입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심각한 정신질환이 발병했으며, 결과적으로 직업도 잃고 인생 계획이 크게 훼손당했다.”
둘째, 피해자가 입은 손해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피고 등의 행위는 지극히 악질적이고 비열하다. 게다가 사죄 및 그 외의 고통에 대해 보상할 조치는 전혀 강구하지 않고 뻔뻔하게 불합리한 변명을 늘어놓고, 자기의 비열한 행위를 정당화 하려고 하고, 원고의 인격을 부정하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2차 피해를 입혔다.”
셋째, 약물을 이용한 것에 관해 “피고 등이 약물을 사용했다고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그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으며, 원고에게 피고 등이 약물을 사용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즉, 물적 증거는 없지만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반론을 2차 피해로 간주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 실상을 상당히 깊숙하게 파악하고 그러한 바탕 위에 내려진 판결이라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이번 판결에는 그 외에도 획기적으로 여겨지는 내용이 몇 가지 더 있다.
A씨는 사건 직후부터의 자신의 상태 등을 노트에 기록하여 그것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으며, 원고 심문에서도 진술했다. 그 노트와 진술에 대해 법원은 신빙성을 인정했다.
“피해를 주장한 경위, 그 후의 심경까지 포함해 실제로 성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아니면 진술할 수 없는 구체성, 생생함, 박진감을 띤다. 그 진술에는 빠져 있는 부분이나 애매하게 보이는 부분이 없지는 없지만, 몹시 취하고 의식이나 기억을 잃고, 깨어보니 충격적이고 떠올리기도 괴로운 성적 피해를 체험한 상황을 생각하면, 그러한 부분이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며, 억지스럽다고 볼 수 없다.”
한편, 피고들은 A씨가 도망가려는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합의에 의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어디로 이끌려가는 지도 모른 채, 남성 두 사람으로부터 강한 폭력을 당할 법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원고의 행동은) 자연스럽다”고 반박했다.
강간 사건에서 피해자가 항상 듣게 되는 말, “왜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는가”라는 내용은 판결문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말인 “당신은 나쁘지 않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성폭력 가해자의 상투적인 수단인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반론이 전면적으로 전개되었다. A씨가 ‘음담패설을 좋아하고, 일도 대충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다수 직원들로부터 보고서가 제출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회사 관계자의 보고서는 과장과 왜곡, 나아가 허위가 포함되어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그 신빙성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다시 말해, 이 판결에서 어떤 식으로는 피해자를 질책하는 듯한 내용은 전혀 없다.
거기에 더욱 획기적인 것은, 피고들이 벌인 반론을 ‘2차 피해’라고 인정한 것이다. 재판을 방청한 우리는 속이 후련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피고 대리인의 심문은 포르노 영화를 재현하는 것처럼 듣기 힘든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준비된 서면도 품위가 없고 모욕적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언급은 피해자에게 큰 위안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치료해온 내게도 격려가 된 판결
재판 과정에서 나는 주치의로서 A씨가 받은 정신적 피해의 막대함과, 심각한 외상후 증후군의 원인은 이 사건밖에 없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증인 심문을 통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나아가 정신과 전문의와 연계해, 사건 당시 약리학적으로도 약물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피력했다. A씨의 상태는 중증 우울증, 외상후 증후군이며, 피고 등이 주장하는 인격장애나 망상성 장애의 근거는 전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러한 의견이 판결문 중간 중간에 인용되며 인정받은 점은 오랜 기간 의료 분야에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힘이 되고자 해온 나에게도 큰 격려가 되었다.
도쿄지방법원의 판결 후 피고들은 항소했지만, 항소심에서 1심 판정과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화해가 성립됐다. 현재 A씨는 조금씩 안정된 생활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Feminist Journal ILDA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저널리즘 새지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역 문화예술계 성폭력 얘기는 왜 안나올까 (0) | 2016.11.09 |
---|---|
알바생의 권리 ‘알아야’ 지킬 수 있다 (3) | 2016.11.08 |
로스쿨에서 본 법조계 성차별 (5) | 2016.11.04 |
“완전한 임신중단권 위해 싸우자” (0) | 2016.10.31 |
키다리 아저씨 없이 기적처럼 살아내다 (0) | 2016.10.30 |
새만금 여성어민들의 네버엔딩스토리 (1) | 2016.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