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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관용’의 실체, 개념과 현실 사이의 간극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6.09.06 08:30

“당신은 정상인입니까?” 정상성을 묻다

13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대상 수상작 <내추럴 디스오더>



13회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6) 상영작이자 대상 수상작인 <내추럴 디스오더>(Natural Disorder, 크리스티안 쇤더비 옙센 연출, 2015)는 덴마크로 입양된 한국계 남성이자 뇌성마비 장애인인 야코브 노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야코브가 던지는 세 가지 도전적인 질문

 

▶크리스티안 쇤더비 옙센 연출 다큐멘터리 <내추럴 디스오더>


자신의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탐구하기 위해 마이크를 들고 거리로 나선 야코브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정상인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당황스럽다는 표정과, 당신은 장애의 정도가 크게 심하지 않으니 그 정도면 정상이 아니냐는, 바라지 않았던 인정뿐이다.

 

다큐멘터리 <내추럴 디스오더>는 야코브가 덴마크 왕립극장에 올릴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연극은 ‘나는 살 권리가 있는가’, ‘나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갖고 싶은가’, ‘정상성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핵심적인 세 가지 질문을 품는다. 야코브가 본인에게, 연극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에게 동시에 던지는 질문들이다.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야코브는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난다. MRI 촬영 후 남들과 큰 차이가 없는 뇌 사진을 보면서 그는 “정상인이 된 기분”이라고 가볍게 말한다. 하지만 지금과 다른 인생을 꿈꿔본 적 있냐는 질문에 겨우 “가끔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DNA검사를 받기 위해 들른 유전자연구소에서는 미래의 DNA 기술이 장애 아이를 걸러내는데 쓰일 것이라는 전망을 듣는다. 야코브는 ‘미래에 남지 않을, 멸종할 인류’로 살아간다는 불편을 예술이라는 방법론으로 풀어간다.

 

‘관용’의 실체, 개념과 현실 사이의 간극

 

연극 작업이 후반부로 향하면서 야코브와 동료들 사이의 관계 문제가 도드라진다. 야코브가 자신의 몸을 통해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펼쳐 낼 때 감탄하고, 앞으로 태어날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르는 자신의 아이에게 쓴 편지를 낭독할 때 감동을 표현하던 동료들은 그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오자 부담스러워한다.

 

연극 작업 안에서 타인들과 소통하고 협업하는 문제는 직장 면접을 보러 다니는 과정에서 세상이 야코브를 바라보는 시선과 교차된다. 인턴 면접을 보러 온 그에게 국영 방송사 직원은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요구한다. 신문사 직원은 ‘장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충고한다. 쿨한 태도를 가장한 차별은 낙인과 배제의 효과를 낳을 뿐이다.

 

▶ 한국계 입양인이자 뇌성마비 장애인 아코브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내추럴 디스오더> 중에서

 

야코브는 자신의 모습을 연기하는 비장애인 대역배우의 모습이 좀 더 자신 같았으면 좋겠다고 주문한다. 야코브 본인이 나서서 언어장애가 있는 자신의 말투나 불수의운동이 일어나는 몸 움직임을 알려주지만, 대역배우는 야코브의 인생이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리를 피한다. 이들의 만남과 어긋남을 통해서 관객들은 사회화된 인간으로서 익혀야 하는 미덕으로 교육받아온 ‘관용’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며

 

연극은 교통사고로 인한 아코브의 건강 문제와, 협업하는 예술가들과의 소통 문제, 무대 위에 서는 것에 대한 야코브의 두려움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아슬아슬하게 막이 오른다.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이 ‘나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갖고 싶은가’ 등의 질문에 버튼을 누를 때, 영화의 관객들도 똑같은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야코브는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인식하듯,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야코브의 꿈은 ‘정상이 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그리워하고 연민하며 쓰는 편지는 아버지의 입장에 이입해 생명을 만들 수 있는 존재로서의 남성성을 전제한다. 야코브는 이성애자 장애인 남성의 위치에서 말한다.


▶ 다큐멘터리 <내추럴 디스오더>(크리스티안 쇤더비 옙센 연출, 2015) 중에서

 

장애인 인권 활동가이자 예술가인 해릴린 루소(Harilyn Rousso)는 저서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Don't Call Me Inspirational, 2013)에서 장애여성으로 살아가는 이중 굴레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장애를 가진 자신의 몸이 스스로 생각하는 여성스럽고 매력적인 얼굴과 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이중의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해릴린이 다른 여성들과의 만남에서 깨달았듯, 대부분의 여성들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자신의 생김새와 ‘여성성’의 이상 사이에서 갈등과 경합의 역사를 갖는 것이 보통이다.


인간은 그 난이도와 질은 다를지언정 누구든 자기 위치에서 ‘정상성’의 강박을 짊어지고 산다. 개인들의 강박을 사투로 만드는 것은 사회다. 야코브가 집 안에 있을 때는 정상이지만 문 밖으로 나가면 비정상이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야코브는 실체가 없는 규범으로서의, 동시에 실체가 있는 제도로서의 ‘정상성’의 굴레 안에서,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면서 자신의 정상성을 확보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한 철학자가 언급하듯 야코브는 모두가 쉬쉬하는 추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궁정의 광대처럼, 자신의 몸을 통해 정상성이라는 개념의 연약한 뿌리를 직면하게 만든다. (케이)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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