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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된 올리브나무를 보러 떠난 여행
<여라의 와이너리 시즌2> 오래된 새로운 이야기를 지으며
※ 여라의 와이너리 리턴즈! 시즌2가 막을 내립니다. 그 동안 와인여행을 안내해주신 여라님과 이 칼럼을 사랑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수령이 1천7백 년 된 올리브나무를 찾아서
애석하게도 한국에서 나의 와인 라이프는 만족도가 크게 아쉬운 상태다. 와인 시장이 작아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것도 별루고, 가깝게 접하는 와인이 종류가 빤하고 재미없다는 것도 별루고, 와인은 무조건 고급이고 사치스럽다는 편견도 별루이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였음 와인을 세 번 마실 일을 두 번 혹은 한 번으로 애써 줄여야 하는 것도 그저 그렇고, 겉멋만 실컷 부리고 내실이 없는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도 진짜 별루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근사한 곳과, 나와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좋은 와인을 수입하는 소규모 수입상이 늘어나 거기에서 출구를 찾아 숨통을 틀 수 있으니 다행이다. (그들의 노력이 제발 오래오래 그대로 지속될 수 있길…!)
▶ 오래된 올리브나무의 자태(1천7백 살이라는 그 나무보다 훨씬 어린, 그냥 길가다 만난 아무런 나무다.) ⓒ 여라
이 모든 것은 내가 처한 상황이니, 소주와 맛난 우리 음식과 술친들로 대처한다. 다만 와인 배터리가 떨어졌다고 느낄 때에는 와인 지역으로 여행 가는 것으로 충전한다.
어느 날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신문에 마드리드 대학의 연구로, 카탈루냐 지역에 어떤 올리브나무의 수령(樹齡)이 1천7백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는 보도를 접했다. 저길 가야겠다! 비행기 표를 질렀다. (올리브나무 보러 온 김에 스페인에서 와인 지역으로 핫한 프리오랏도 가고, 스파클링 와인 까바를 만드는 자역 페네데스까지 묶어 여행할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나!)
시간을 돈 주고 살 순 없는 일이다
그 뒤에 계속된 나의 집요한 검색으로 알게 된 사실은, 천 년된 올리브나무 수백 그루가 있는 군락지가 있다는 것, 중동 부자들이 천 년된 올리브나무들을 사다가 자기 집 마당에 가져다 심으며 돈지랄을 한다는 것 등이다.
현지에 와서 이 지역을 연구하는 역사교수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렇게 팔려 옮겨진 나무 중에 살아남은 것이 거의 없다는 것과, 다행히 카탈루냐 주 정부가 보호수로 지정하여 천 년을 지켜온 올리브나무들의 판매가 금지되었단다.
신이 누구에게나 시간을 똑같이 나누어 주셨구나를 곰곰이 생각하는 여행이 되었다. 그것을 돈 주고 사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영어표현으로 ‘시간을 산다’(to buy time)는 말이 있다. 돈을 주고라도 시간이 필요할 때를 이른다. 일부러 일을 미뤄서 상황을 좀 낫게 하거나 다른 여지를 만들어 본다는 뜻으로 쓴다.
무어든 시간이 필요하다. 와인도 억지로 만들어지는 기간을 무슨 공사기간 단축하듯 할 수 없다. 포도나무도 농부도 겨울을 지내며 1년을 준비해야 하고, 새순이 돋아나기부터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익어가기까지, 시간과 수고가 집중되는 추수를 거쳐, 와인을 발효시키는 데에도 가다려야 하고 숙성도 다 시간이다.
▶프리오랏 지역의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스칼라 데이(Scala Dei, 신의 계단) 와인 저장고. 17세기에 지어진 건물. ⓒ여라
오랜 세월이 쌓인, 풍성한 와인 이야기
이야기로 치면 와인만큼 오래되고 다양한 게 있을까. 아무리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와인만큼 또 거듭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 무슨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인지, 와인이야말로 인류와 함께 해온 세월만큼 어디 문화, 역사, 예술, 과학, 경제, 사회, 개인 등 어디든 엮어지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이것이 내가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다. 앞으로도 놀이와 장난감이 끊이지 않을 테니 만족스럽다. 더해지는 새로운 이야기가 오랜 이야기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만들 테니, 내 비록 천 년은커녕 백 년이나 살까마는 올리브나무처럼 멋진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 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띄엄띄엄 올리는 부족한 글에도 불구하고 응원하고 자극이 되어준 독자들에게 무한히 고맙고(폴더인사 꾸벅!) 오랜 기간 ‘참을 인’자 새기며 자리를 펴준 ‘일다’에게 감사드린다. (여라)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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